썰/스파이디

the Fall 10

Spideypool 2016. 5. 11. 12:47

Chapter 10_the Murderer.


 (그러니까, 그, 아멜리아 허니 오스왈드가 사라졌다고?)

 [그래! 근데 내가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the, 란 단어엔 아무 뜻도 없어, 없다고! 그것만 붙인다고 특별한 뜻이 되는 게 아니라니까!]

 “그래, 그렇긴 하지. 흠.”


 흰 박스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린 데드풀은 또 다시 텔레비전에서 노란 박스가 언급한 이름이 나오자 고개를 들어 화면을 응시했다.


 [……현재 HYG의 편집장이었던 아멜리아 허니 오스왈드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어벤져스는 현 상황에 대해서 이미 지난번 사건에 등장했던 빌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추정조차 발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건 이후 본 방송사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아. 속보가 들어 왔다네요. 제인?]

 [네! 저는 지금 스파이더맨의 최초 살인 현장일지도 모르는 곳에 나와 있는데요! 평소처럼 추적 불가능한 핸드폰으로 걸려온 신고를 받고 온 경관들이 거미줄에 묶인 채 사망한 피해자의 시신을 지금 막 발견해 현장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아, 저기 경관님 한 분이 나오시네요. 경관님!]


 골목 앞에 쳐져있는 노란 테이프 앞에서 외운 듯한 대사를 줄줄 읊던 리포터가 노란 테이프 아래로 고개를 숙이며 나온 경관을 재빨리 붙잡았고, 할 말을 잃은 채 화면을 지켜보던 데드풀 대신 노란 박스가 대뜸 소리를 질렀다.


 (우리, 그, 스파이더맨이, 그러니까 스파이디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살인을?)

 [내가 말했지, 그, 라고 붙여봤자 아무 의미도-]

 “살인이다, 살인이야!”


 신이나 Murderer를 외치던 데드풀은 피곤한 얼굴의 경관이 텔레비전 화면 속에 들어오자 재빨리 입을 다물었고, 데드풀이 머더러를 외치건 말건 잔소리를 퍼붓던 흰 박스도 입을 다문 뒤 경관의 말을 기다렸다.


 [스파이더맨이 소매치기범을 살해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아니요. 피해자가 스파이더맨의 거미줄로 추정되는 것에 묶여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발견당시 거미줄에 묶여있었다는 건 사실이란 말씀이시죠?]

 [아, 그렇긴 한데-]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 말로는 총격조차 울리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야 요즘 나오는 총들에 소음기만 달면 해결되는 문제니까요.]

 [그럼 피해자의 정확한 사망 시각 파악은 어렵겠네요. 스파이더맨이 저 골목을 떠나는 걸 본 사람들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야 자기가 신고를 했으니 자리를 떴겠죠. 그 친구가 하는 일이 늘 그렇습니다. 우리가 갔을 땐 자리를 비우고 없다고요.]

 [그럼 결국 경관님 말씀은 스파이더맨이 피해자를 살해했더라도 그 현장을 목격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란 건가요?]


 리포터의 질문에 경관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어이없다는 몸짓을 해보였고, 그 전까지만 해도 화면에 집중한 채 소파 끄트머리에 앉아있던 데드풀은 욕설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데드풀이 다시 욕설을 시작하려는 찰나, 여전히 자신을 쳐다보며 마이크를 내밀고 있는 리포터를 향해 고개를 내저은 경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제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기를 기대하는지 알겠습니다만, 그래요, 현 상황에 있어서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스파이더맨인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게 곧 그 친구가 범인이란 뜻은 아니라 이겁니다. 곧 정식 성명서도 발표될 거고, 무엇보다 이 친구는 이럴 친구가 아니라는 게 제 입장입니다. NYPD 입장은 아니고, 제 입장 말입니다. 스파이더맨이 자경단원 일을 해서 우리가 무능력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도 알고는 있지만, 스파이더맨이 하는 일은 딱 거기까집니다. 범인을 잡아서 포박시켜놓고 저희한테 신고해서 넘기는 딱 거기까지 말입니다.]

 [네, 경관님의 개인 의견은 아주 잘 들었고요, 지금까지 스파이더맨의 최초 살인현장일지도 모르는 곳에 나와있던 리포터 제인 포스터였습니다.]

 (당장 저 여자 죽이러 갈 사람 손! 나 손들었어, 지금!)

 [넌 손이 없잖아, 병신아.]

 (그건 이게 글이라서 그런 거고, 이게 그림이었다면 난 손을 들고 있었을 거라고! 내 멋진 노란 박스 위로 손 모양이 올라와 있었을 거라고! 글 쓰는 병신 손이 고자손이라 그림을 못 그리는 걸 내 탓으로 돌리면 안 되지, 병신아!)

 “나 지금 심각하게 손들었다. 저 또라이 죽이러 갈 파티원 모집합니다. 흰 박스, 거절은 거절한다!”

 [애초에 나한테 거절이 가능이나 했으면 말이나 않지. 아, 이 똘추들을 어쩐다.]

 (흰 박스 온, 노란 박스 온, 데드풀 온! 새로운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저 또라이에게 첫 방을 먹이는 놈에게 보너스 100점을 선사합니다!)

 “말 안 해도 그건 내가 될 거라는 건 잘들 알고 있겠지!”


 박스들과 떠드는 동안 모든 연장을 챙긴 데드풀이 야심차게 문을 여는 순간 흰 박스가 혀를 찼고, 문을 연 채로 데드풀이 멈춰 서자 흰 박스가 동정심 어린 목소리로 그에게 조언했다.


 [니가 저 여자 죽인 걸 알면 스파이디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걸.]

 “그게 뭔 개소리야? 스파이디는 나한테 감사해야 한다고.”

 (맞아! 안티들은 답이 없어! 노래도 있잖아!)

 [그리고 민간인이지. 스파이디가 보호하는 뉴욕 시민이고.]

 (미사일에 태워서 미주리주로 보낸 다음에 죽이면 되지 않을까? 응?)

 “그렇다면 저 망할 년이 이사 갈 때까지 이 작전은 보류한다!”

 (병신, 머저리, 똘추, 씨발 놈들아!)


 노란 박스의 욕설은 귓등으로 흘린 데드풀은 장전했던 총의 잠금쇠를 다시 원상복귀 시키며 집에 들어와 앉았고, 다 식어빠진 타코를 집어 들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아예 하던 뉴스조차 중단한 채 스파이더맨 특집을 틀기 시작했고, 여전히 미련을 못 버린 노란 박스가 데드풀에게 속삭였다.


 (이게 다 그 아멜리아 허니 오스왈드의 계략일지도 몰라, 친구. 지난번에 했던 말을 생각해보라고.)

 [흠. 인정하기 싫지만 신빙성 있는 가설이야.]


 흰 박스의 동조에 고개를 주억거리다 딱딱한 치즈에 기분이 나빠진 데드풀은 연신 스파이더맨이란 단어를 내뱉는 텔레비전에 타코를 집어던진 후 자리에서 일어선 뒤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그럼 그 아멜리아 허니 오스왈드를 찾아서 족쳐야 겠구만.”

 (그럼 그래야지. 이래야 내 데드풀 답지. 오랜만에 우리 신상 애기들 좀 써보자고, 신사 여러분들!)


 노란 박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린 데드풀은 내려놨던 무기들을 다시 집어 들어 장착한 뒤 집을 나섰고,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도 흰 박스는 침묵을 지킨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