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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풀 전력 60분, 주제 : 꽃_아스포델

Spideypool 2016. 5. 14. 17:53


데드풀 전력 60분, 꽃_아스포텔, 나는 당신의 것.


 01.


 주둥이를 벌려 여섯 방향으로 봉우리를 찢은 꽃은, 그의 오랜 연인의 피부색만큼이나 창백했고, 하늘을 향해 뻗은 가지의 끝은, 그 꽃을 물들일 희생자라도 찾는 듯 다급하게 솟아 있었다. 못다 핀 꽃들과 한껏 주둥이를 벌린 채 핀 꽃들이 창날마냥 모양을 형성하고 있는 꽃. 이름 모를 그 꽃이 집으로 배달된 지 벌써 한 달 째였다.


 데드풀에게 생긴 이변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은 의외로 울버린이었다. 처음 데드풀을 마주쳤을 때부터 인상을 찌푸린 채 킁킁거리던 그는, 집구석에 뭔 놈의 꽃을 잔뜩 가져다 놨길래 냄새가 진동하냐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물었지만 딱히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던 듯, 데드풀이 무어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거리를 벌렸고, 울버린의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신이 나 떠들었던 데드풀은 어느 새 듣는 이 없이 허공으로 흩어지는 말들에 제 입을 다문 채 언제 묻어왔을지 모를 꽃잎을 털어낸 뒤 임무에 집중했다.


 카드 한 장 없이 배달되어 온 화분들은 어느 새 각종 가구 위를 차지하다 못해 거실 바닥에까지 즐비한 채였지만 데드풀은 물을 주지 않아 시든 화분들마저도 별다른 생각 없이 방치해두었기에 어쩌면 어벤져스와의 임무로 해외로 나갔다 돌아온 피터가 엉망진창에 꽃 천지인 집을 보고 기겁한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황당한 얼굴로 이게 다 뭔 꽃이냐고 하는 피터의 질문에 당연히 네가 보낸 줄 알았다고 말하려던 데드풀은, 피터에게 그만한 돈이 없을 거라는 걸 뒤늦게 떠올리고는 입을 다물었고, 데드풀과 동거하는 사이 그의 영문 모를 행동들에 익숙해져있던 피터는 그를 만류하는 데드풀을 한 손으로 막아가며 이미 다 시든 화분들을 정리해 집 밖에 내놓은 뒤에야 더 이상 화분을 들이지 말라는 당부까지 마친 뒤 그 시간대면 늘 그러했듯, 활짝 열린 창문 아래로 가뿐히 뛰어내렸다.


 그리고 그 보내는 이 모를 꽃 배달이 하루에 한 번에서 두 번으로 늘어난 것도 그 때부터였다.



02.


 시작은 별 것 아닌 친절에서부터였다.


 처음 시작한 알바자리였기에 어리숙했던 그녀는, 계산대 앞에 선 사내의 얼굴에 놀라 몇 번이고 실수를 반복했고, 보다 못한 매니저의 짜증 섞인 고함을 막아선 사내의 목소리는 빈말로도 듣기 좋은 음색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놀라우리만큼 친절해서, 그녀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눈을 크게 부릅뜬 채 계산대 버튼을 눌러야만 했었다.


 거의 매일 저녁이면 가게를 찾는 사내는 첫날과 달리 후드 집업의 모자까지 눌러쓴 채 계산대 앞에 섰고,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입술을 깨물었던 그녀는, 그가 주문한 타코에 양상추 하나나 토마토 토핑을 더 넣는 것 따위로 보상해주려 했지만, 그 사실을 그를 알 리는 없었다.


 처음엔 단순한 고마움이나 친절로 시작했던 마음이 커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흉측한 얼굴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얼굴에서 시선을 돌리고 나서부터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그녀의 심장을, 영혼을 뒤흔들어놓기 시작할 때부터 그녀는, 그가 가게를 찾는 시간을 기다렸고, 어느 순간부터는 부디 저 사내의 얼굴을 지겹도록 가리고 있는 모자를 벗겨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곤 했다.


 그리고 매일 저녁 가게를 찾던 사내가 주말 점심시간대에 가게에 들어서자 환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던 그녀는, 사내의 곁에 서서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건네고 있는 청년을 발견하곤 얼른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마치 처음 계산대를 두고 사내와 마주쳤던 그 날처럼, 몇 번이고 버벅이는 그녀에게 친절하게 말을 건네는 청년은, 빈 말로도 못생겼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빛나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그 청년의 곁에 서서 미소 짓고 있는 사내는-


 막 그 봉우리를 터트렸던 꽃이 약한 신음을 내며 꽃잎을 일그러뜨렸고, 잔뜩 당황해 꽃잎에서 손을 떼어낸 그녀는, 일그러진 꽃을 잠시 쳐다보다 이내 가위를 들어 꽃을 떼어냈다. 곧게 뻗은 가지를 빙 둘러싸고 피어난 꽃무리에 생긴 빈공간은 공허했고, 애꿎은 자신들에게 화풀이를 한 그녀를 질책하고 있었다.


 ‘나는 당신의 것.’


 그녀는 아직도, 그 꽃의 꽃말을 보았던 때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꽃보다도 먼저 알게 된 꽃말은, 그 사내에게 대해 거즌 포기하고 있던 그녀의 심장을 뒤흔들어 놓았고, 가슴 깊숙이에 박힌 채 서서히 죽어가고 있던 욕망이 다시금 들끓기 시작한 것도, 그저 지나갈 인연이다, 혹은 나 같은 사람이 다가갈 수 없는 사람이다 말 따위에 막힌 채 썩어가던 애정이 목구멍 바로 아래까지 치밀어 오른 것도, 그 때부터였다.


 흔하게 접할 수 없는 그 꽃의 꽃말은 그녀의 머리보다도 먼저 그녀의 심장에 와 박혔고, 애초에 내 것이 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내가 소유당하는 것도 나쁘지 않느냐는 생각은 그 날부터 끊임없이 그녀의 영혼을 물고 늘어지고 있었다.


 고심 끝에 찾아본 꽃은, 그 꽃이 가진, 그 애절한 고백과 달리 그녀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그런 것들은 더 이상 그녀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그 꽃의 형태가 아니라 그 꽃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였으니까.


 꽃의 씨앗을 구하고 키워내고, 그 사내의 집주소를 알아내는 데엔 자그마치 일 년이란 시간이 걸렸고, 알바를 제외한 그녀의 일상은 모조리 무너진 지 오래였다.


 사내는 여전히 저녁이면 가게를 찾았고, 종종 청년과 함께했지만, 그녀에겐 그런 것들은 중요치 않았다. 이제 그녀에게 중요한 건 오로지 이 사내가 자신의 마음을, 꽃 속에 숨긴 자신의 고백을 알아봐주느냐, 혹은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진 않아도 내다버리지 않느냐 따위였고, 그녀는 부디 그가 자신의 마음이 담긴 이 꽃을 거절하지 않기만을 간절히 소망했다.


 길다랗게 뻗은 줄기 위로 피어난 꽃은, 그녀의 답 없는 사랑의 방향을 닮기라도 한 듯 새하얗게 질려있었고,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하듯 벌어진 꽃잎들의 행태는 애처롭기가 그지없었지만, 그녀는 더 이상 저가 어쩔 수 없는 일에 매달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 사내에게 연인이 있는 것도, 혹 그 사내가 꽃을 내다버린대도, 그건 그녀가 어쩔 수 없는 일에 속했고, 그런 것들에 매달리기엔 그녀가 가진 시간은 너무나도 짧고도 짧았다.


 자신이 부탁한 꽃을 배달하기 위해 건물 아래에 도착한 배달원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그녀는, 건물 밖으로 나온 배달원의 손이 빈 것을 확인한 뒤에야 들쑥날쑥 뛰기 시작한 심장을 움켜쥔 채로 집으로 향할 수 있었고, 새하얗게 질린 손가락에 움켜져진 옷자락은 잔뜩 구져진 채 펴질 줄 몰랐다.


 부러 그의 연인이 자리를 비웠을 때에 꽃을 보낸 것이 답이었던 듯, 그 후로도 배달된 꽃들은 반송되는 일 없이 순조롭게 배달되어졌고, 남몰래 그의 집 근처까지 갔던 그녀는, 꽤나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도 내어지지 않는 화분에 저절로 위로 향하는 입 꼬리를 주체하지 못한 채 매일 밤, 해가 질 때면 고개를 떨구는 꽃들을 어루만지곤 했다.


 그리고 한 달. 그 꿈과도 같은 한 달이 지난 후 집 앞에 내어진 화분들은 그녀의 메마른 입술마냥 말라비틀어져 있었고, 마치 그 화분들이 자신의 애정에 대한 그의 대답이라도 되는 듯 심장을 저미는 듯한 통증에 집으로 향했던 그녀는, 스파이더맨이 다시 뉴욕시로 돌아왔다는 뉴스에 이를 갈며 핸드폰을 들었다.


 하루에 두 번씩 배달되어진 화분 탓에 한 때는 집을 가득 메우고 있던 집은 날이 갈수록 공허해져갔고, 더 이상 말라비틀어진 화분이 집 밖으로 내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날로 커져가는 분노에 이를 갈아야만 했다.


 그를 위해 키워낸 꽃들이, 그를 위해 보낸 제 꽃들이 그의 연인의 보살핌으로 연명하고 있단 사실은 그녀를 끊임없이 괴롭혔고, 악몽에 시달리기 시작한 그녀의 영혼은 빠르게 지쳐가고 있었다. 


 그리고, 검은 색 정장을 입은 사내가 그녀를 찾은 것도 바로 그 길고 긴 악몽이 그녀의 밤을 물고 늘어진 어느 날 밤의 일이었다.



03.


 “그러니까 꽃을 보낸 사람이 누구냐고요. 배달하면서 발신인 정보도 안 가지고 와요? 반송은 어떻게 하는데요?”

 “죄송하지만 전 일개 배달원이라서요. 아마 문의를 하셔도 저희 회사로 하셔야 될 텐데, 저희 회사 모토가 당신의 은밀한 사랑을 배달해드립니다, 라서-”

 “네, 네, 알겠습니다!”


 난처한 얼굴로 대답하는 배달원의 말을 끊은 채 문을 거칠게 닫은 피터는, 식탁, 스톨, 커피 테이블을 채우다 못해 방 한쪽에 늘어선 화분들의 행렬에 한숨을 내쉰 뒤 그 행렬의 끝에 화분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고, 


- 은 여자 찾아온 사람은 그린 고블린이었고, 꽃에 거미 인간인 피터한테만 작용하는 독이 있었던 걸로.

- 알아서 잘 해결되겠지 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