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운명 ㅋㅋㅋㅋ
- 피터는 히어로가 아님
- 웨이드는 힐링 팩터도 있고 그 덕에 꽤나 오랜 삶을 살아오고 있지만 자기 힐링 팩터가 어디서 왔는지 모름. 용병 생활 안 하고 오랜 시간동안 가명을 바꿔가며 작가 생활 중.
일탈을 꿈꾸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었다. 특히나 친구들이 피터 파커 럭(luck)이라고 부를 정도로 불운이 따라다니는 그의 삶에선 더더욱.
“그러니까, 전 과학부-”
“하라면 하지, 뭔 말이 그렇게 많나!”
고함을 내지른 조나 제임슨은 다짜고짜 아마도 질문지가 있을 파일을 그의 품에 안겼고, 얼결에 파일을 받은 그가 편집장 사무실에서 쫓겨난 것도, 비서가 작가 집주소라며 무언가가 적힌 포스트잇을 그 파일에 붙이고 사무실 안으로 사라진 것도 순식간이었다.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불운들에 일일이 반응하는 데에도 지친다고 중얼거린 그는, 그냥 삶에 수긍하기로 했고, 아직 산더미처럼 남아있는 학자금 대출 금액을 끊임없이 되새김질 하며 낡디 낡은 철문 앞에 섰다.
아무리 눌러도 소리 하나 없는 초인종에 지친 그가 막 문을 향해 발길질을 하려고 할 때 비스듬히 열린 문틈 사이론 총구가 들이밀어졌고, 재빨리 사원증을 들이민 그는 저도 모르게 남은 한 손을 들어 올린 채로 곧 이어 활짝 열린 문 안으로 들어섰다.
며칠째 무더위라는 말이 우습게도 집 안은 냉기로 가득했고, 의아하던 찰나, 자신의 앞에서 절뚝이며 걸어가는 사내의 옷차림을 본 그는 이내 집안이 어째서 그렇게 추운지에 대해 쉽게 납득했다. 한여름에 후드 집업이라니. 거기다 그가 따라오는지 보려는 듯 잠깐 돌려진 고개를 봐선 스냅백까지 쓰고 있는 듯 했다. 속으로만 혀를 찬 그가, 어지간히도 얼굴 보기 힘든 인간이라는 생각을 할 때 사내의 손에 들려있던 총이 들려졌고, 긴장한 그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들려진 총구가 식탁 위에 맞닿았다.
“뭘 좋아할지 몰라서 그냥 다 쓸어왔으니까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
다 쓸어왔다는 말이 빈말은 아닌 듯, 좁다란 식탁 위는 물론, 식탁 의자까지 줄지어 늘어선 음료들은 색깔별로 정돈되어 있었고, 그 광경에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던 그는, 자신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나오자마자 멈춰서는 사내에 재빨리 웃음을 삼키며 바로 앞에 있던 물을 집어 들었다.
“이거, 이거면 돼요.”
사내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피터가 우물쭈물하건 말건 내 갈 길을 간다는 식으로 걸어간 사내가 긴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 것을 본 피터가 재빨리 그 옆에 있는 코우치에 엉덩이를 붙였고, 얇다란 파일은, 지나치게 깔끔해 보이는 커피 테이블 위에 놓여졌다.
“어, 출판사 담당자분 말씀으론 사람 상대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신다고 해서요. 질문지를 아예 작성해 왔거든요. 이거 그냥 작성하셔서 맨 뒤에 있는 메일로 보내주시면-”
“난 인터뷰를 한다고 했는데. 설문지를 작성한다고 한 게 아니라.”
피터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혼잣말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린 사내는 자신의 앞쪽에 놓여진 파일을 피터 쪽으로 밀었고, 또 다시 자신에게 떠맡겨진 파일에 이를 악문 피터가 애써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과학부라서 이쪽은 문외한이거든요.”
“내 책 한 번도 안 읽어봤어요? 그래도 꽤 유명한데.”
사내의 고개는 여전히 바닥을 향한 채였고, 시야를 가로막은 모자의 검은 색 챙을 노려보던 피터는 학자금 대출을 읊조리며 애써 마음을 가다듬었다.
“제가 그 쪽 소설은 별로 안 좋아해서-”
“어쨌든 일인데 취재하는 사람 책 하나도 안 읽고 질문지만 달랑 들고, 그것도 남이 작성한 질문지를. 그것만 들고 인터뷰에 오셨다. 대단한 직업정신이시네요, 피터 벤자민 파커씨.”
“그러니까요-”
“이참에 읽어요. 읽고 다시 합시다.”
“마감일이 10일 남았고 광고도 다 낸 상태라서 작가님 기사가 꼭 나가야 되거든요. 이번 한 번만 좀-”
“그럼 오늘 안에 다 읽으시면 되겠네요. 자요.”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듯 협탁 위에 올려져 있다 이젠 파일 위로 옮겨진 책은 표지에 작가 싸인은 물론, 그 표지 보호를 위해선지 얇은 비닐로 싸여 있었고, 그냥 봐도 두께가 상당한 책에 기겁한 피터가 입술을 깨물었다.
“작가님, 이러실 거였으면 차라리 다른 기자를 요청하시지 그러셨어요. 저희 신문사에 작가님 팬 엄청 많아요. 저 말고-”
“아니요. 난 당신하고 계약한 겁니다. 편집장이 말 안 하던가요?”
“그러시긴 했죠. 그러시긴 했는데-”
“내일 같은 시간에 다시 보죠.”
계속해서 피터 말을 끊고 자기 할 말만 늘어놓은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섰고, 순간 치밀어 오른 화에 학자금 대출액이나 집 렌트비는 모두 잊은 피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함을 쳤다.
“아니! 그러니까! 왜 저냐구요! 전 과!학!부! 기자란 말입니다!”
냅다 고함을 치곤 이내 후회한 그는 사과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고, 처음으로 마주한 사내의 얼굴에 숨을 삼켰다. 피터보다 못해도 10센치는 커 보이는 사내의 얼굴은 화상이라도 입은 건지 흉터로 뒤덮여 있었고, 있는지 없는지 모를 눈썹 아래의 푸른 눈은 위협적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어, 작가님,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유가 그렇게 궁금했으면 진작 물어보지 그랬어요.”
“네?”
화를 낼 거라는 생각과 달리 다정스런 목소리로 피터의 말을 또 다시 끊은 사내가 비죽 웃었고, 오싹한 느낌에 피터가 재빨리 파일과 책을 집어 들기 위해 몸을 숙였을 때 그의 팔을 잡아 다시 일으켜 세운 사내가 그대로 손을 옮겨 피터의 손을 잡아 입을 맞췄다.
“당신과 나는 함께할 운명이거든요. 그래서였어요.”
손끝에서부터 끼쳐 오르는 소름에 얼굴을 구긴 피터가 무언가 반응을 하기도 전에 가볍게 와 닿았던 입술이 떨어져 나갔고, 피터가 요구하기도 전에 순순히 손을 놓아준 사내가 다시 모자와 후드 집업으로 얼굴을 가린 뒤 현관문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내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요. 책은 다 읽고 오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