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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ken Crown #01

Spideypool 2017. 11. 25. 19:12


Chapter 01_Dream come true


 한 밤 중의 뉴욕은 평화로웠다. 평화로운 모습과 달리 벌써 두 달째 원인 없이 울리는 스파이더 센스는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었고, 두 달간의 기록을 기준으로 아예 미리 그 곳으로 와 잠복하고 있던 피터는 한 시간째 데드풀의 수다와 끊임없이 울리는 스파이더 센스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자기야, 내가 악몽을 꿨다는데 관심도 없어 보이네?”

 “그러니까, 그냥 꿈이잖아요, 데드풀. 그리고 애초에 전 당신 자기가 아니라고요! 데드풀?”


 참다 참다 소리를 지르던 피터는 건물 옥상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있던 자신의 곁에 와서 선 데드풀에 놀라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다음 순간, 데드풀이 휘청이더니-


 “여러분, 이 사람이 내 자기예요! 이러면서도 나에 대한 애정을 부정한다니까요!”

 “내일 여기 청소할 환경미화원 분이 불쌍해서 이러는 거예요! 제발, 좀!”

 “이제 그만 인정을-”


 추락하는 데드풀을 간신히 붙잡아 인도에 내려놓은 피터는 계속해서 쏟아질 데드풀의 수다에 귀를 막을 준비를 했지만, 피터의 예상과 달리 건물 사이 골목에 시선을 돌린 데드풀은 입을 다문 채 가만히 서 있었고, 그를 따라 시선을 돌린 피터는, 골목 끝의 인영에 눈을 가늘게 떴다.


 어두컴컴한 골목 안의 가로등은 모조리 꺼져 있는 채였고, 어디선가 굴러들어간 낙엽들로 지저분했다. 그리고 그리 길지 않은 골목 끝의 그 인영은, 검은 그림자의 모습으로 웅크린 채였다.


 흘려듣기는 했어도 요점은 다 기억하고 있던 피터가 데드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무언가 말을 꺼내려는 찰나 데드풀이 골목을 향해 발을 내딛었고, 피터의 손이 그를 가로막기도 전에 골목 안으로 총알이 발사되었다.


 적막하기만 했던 골목 안쪽의 창문 몇 개에 불이 켜졌고, 웅크리고 있던 그림자가 천천히 일어서는 걸 본 피터가 재빨리 데드풀의 손에서 총을 빼앗곤 어디서 나온 건지 다른 손에 들린 총마저 빼앗은 뒤 데드풀의 앞을 막아섰다.


 “그만해요! 그냥 꿈이잖아요, 데드풀.”

 “꿈? 이게 꿈이란 말이지? 그럼 너도 진짜가 아니겠네.”


 넋이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린 데드풀이 카타나를 빼어들었고, 데드풀의 이상 행동에 질겁한 피터가 골목 안쪽으로 뒷걸음 쳤을 때 작은 아이 하나가 피터를 지나쳐 데드풀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아빠!”


 앳된 목소리의 소년의 등엔 낡아빠진 분홍색 키티 가방에 메어져 있었고 풍성한 브루넷의 머리칼은 엉망으로 헝클어진 채였다.


 “아빠?”


 갑작스런 소년의 포옹에 데드풀이 소년의 말을 중얼거리며 경계 태세를 푼 사이 피터가 그의 손에서 칼을 거둬갔고, 멀리서 들리기 시작한 사이렌 소리에 소년이 고개를 들어 데드풀과 눈을 맞춘 뒤 그를 재촉했다.


 “일이 복잡해지기 전에 어디로든 가야되지 않을까요?”


 묻기는 데드풀에게 묻고 자신을 쳐다보는 소년의 눈빛에 한숨을 내쉰 피터는 경찰차를 피해 둘을 어떻게든 들어 언젠가 가보았던 데드풀의 집 근처 골목에 둘을 내려놔야만 했고, 스파이더 센스는 어느 새 잠잠해진 채였다.


 그 골목에서 데드풀 집 근처로 오기까지 문제의 소년은 말을 아끼며 데드풀의 품에 안긴 채 눈조차 감고 있었기에 데드풀이나 피터, 둘 다 아무런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상태였고, 나이도 어려보이는 소년을 데드풀의 집에 놓고 갈 수 없었던 피터가 결국 쪼그리고 앉아 데드풀의 한 손을 두 손으로 꼭 붙잡고 있는 소년과 눈을 맞췄다.


 “부모님은 어디 계셔?”


 피터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소년은 데드풀의 손을 잡은 채로 데드풀의 다리 뒤로 숨어버렸고, 머쓱해진 피터가 일어나 데드풀에게 턱짓으로 소년을 가리키자 머리를 긁적인 데드풀이 소년에게 물었다.


 “꼬마야, 너 부모님은 어디있냐.”

 “여기예요.”


 해맑게 웃은 소년이 데드풀의 손을 꼭 붙잡은 채 머리를 부볐고, 난감해진 데드풀이 소년과 키를 맞추기 위해 한쪽 무릎을 꿇어 자세를 낮춘 뒤, 마스크를 벗었다.


 “니네 부모가 이렇게 생겼냐.”

 “네!”

 “데드풀, 진짜로 어디에 애 하나 있는데 나 몰라라, 한 거 아니에요?”

 “나야 모르지.”

 “아니거든요!”


 피터의 질문에 둘이 동시에 말했고, 성이 난 듯 데드풀의 손을 붙잡은 채로 피터 앞으로 나온 소년이 씩씩거리며 말을 이었다.


 “우리 아빠는요! 엄청 대단한 히어로였어요! 세상도 구하고! 빌런도 무찌르고! 그리고 돈도 많이 벌고! 얼굴은 못 생겼지만, 다른 아빠가 잘생겨서 괜찮댔어요! 둘이 합치면 평균이랬다고요!”

 “다른 아빠?”


 소년의 말에 데드풀이 되묻자 소년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데드풀의 손을 놓은 뒤 가방을 벗어 바닥에 내려놓더니 지퍼 끝까지 올리고 있던 점퍼를 벗었고, 소년의 가슴을 감싸고 있는 익숙한 벨트를 발견한 데드풀이 낮은 신음소리를 내었다.


 “텔레포트 벨트.”

 “아저씨가 내 진짜 아빠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보고 싶었단 말이에요.”

 “지구 몇이냐, 도대체. 내가 남자랑 해서 이런 애를 낳았다고?”

 “정확힌 유전자 혼합이랬어요, 피터 아빠가 그러는데 그건 우리 세계에서만 된대요.”

 “피터 아빠? 그 피터가 설마 피터 벤자민 파커는 아니겠지?”


 소년의 말에 저도 모르게 자신의 이름을 꺼낸 피터가 아차 싶어 입을 다물었고, 피터의 질문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돌린 소년이 입을 비죽이며 말했다.


 “맞는데요. 그래서 제 이름도 벤자민 네이튼 파커-웨이든데요.”


 소년의 말에 아연실색한 피터가 속으로만 욕을 하며 머리를 짚었고, 피터의 질문을 별 생각 없이 들은 데드풀이 소년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미들 네임이 네이튼이야? 애초에 니 이름은 그 세계 내 남편 미들 네임이고?”

 “벤자민은 할아버지 이름이랬어요! 그리고 그렇게 하자고 한 건 웨이드 아빠였고요!”

 “내가?”


 데드풀의 질문에 신이 난 벤자민이 신이 나 이것저것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가방과 점퍼를 주운 피터는 자신을 닮은 브루넷과 마스크를 벗은 데드풀의 눈과 똑 닮은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불이 꺼진 건물들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소년의 말을 들어봐선 무슨 이유에서건 소년은 웨이드 아빠를 보지 못하는 상황인 듯 했고, 그를 보려고 몇 차례 이 세계에 온 듯 했다. 아마도 요 근래 원인을 찾지 못했던 스파이더 센스 발동 원인은 이 소년일 가능성이 높았다. 설사 아무 해를 끼칠 생각 없이 한 짓이라 할지라도 이 기현상을 감지한 게 비단 그 뿐만은 아닐 가능성 또한 높았고, 그 쪽 세계에 있을 소년의 보호자가 이 소년의 실종을 깨닫기까지 걸릴 시간이나 실종 원인에 대해 어떻게 추측할 지는 미지수였다.


 당장 보낼 수 있을지 없을지는 묻기 전엔 모르는 일이었지만, 설사 보낼 수 있다 하더라도 어린 소년을 이 한밤중에 저렇게 지친 상태로 보낸다는 것도, 엉망일 게 분명할 데드풀의 집에서 재운다는 것 또한 그의 기준에 있어선 옳지 못한 일이었기에 남은 선택지 앞에서 피터가 망설이는 사이 데드풀이 소년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신 뭘 상상하든 그 끝을 보게 될 테니까 각오해!”

 “우리 웨이드 아빠 방도 엉망이었어서 괜찮아요!”

 “그거보다 더할걸?”


 데드풀의 말에 소년이 키득거리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던 피터는 둘이 어느 한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리자 재빨리 둘의 앞을 가로 막아섰고, 잠시 어리둥절해하던 데드풀이 피터의 손에서 가방과 점퍼를 받아갔다.


 “고마워, 스파이디. 아직 우리 자기가 누군지 모르지? 얘는 뉴욕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이야, 벤.”

 “데드풀, 진짜로 당신 집에 얘를 데려가게요?”


 피터가 질문과 동시에 다시 가방과 점퍼를 빼앗아 들었고, 벤자민의 손에 잡혀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데드풀이 다시 가방과 점퍼를 빼앗았다.


 “그럼 애 아빠가 여기 있는데 애를 어디로 보내?”

 “정확힌 당신이 애 아빠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어디서 왔는지, 몸은 성한건지도 모르고, 솔직히 말하면 정체도 알 수 없는 애를-”

 “저리 가시죠, 스파이더맨씨.”


 피터의 말을 끊은 벤자민이 자신의 가방과 점퍼로 향하던 피터의 손을 가로막으며 피터의 말을 끊었고, 싸늘한 벤자민의 어조에 피터가 멈칫한 사이 소년은 데드풀의 손에서 점퍼와 가방을 빼와 다시 몸에 걸쳤다.


 “이 사람이 내 진짜 아빠가 아닌 건 알아요. 그걸 착각할 만큼 어리지도, 멍청하지도 않고요. 난 그냥, 그냥 유전자만 같더라도 내 아빠랑 똑같은 사람이 살아있는 게 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녹화되어지고 녹음되어진 게 진짜 사람과 같을 수는 없으니까요.”


 여태 데드풀에 해맑게 웃던 모습과 생판 다르게 얼굴을 굳힌 벤자민이 등에 걸치기 전에 가방에서 꺼낸 사진을 피터에게 건넸고, 사진을 건네받은 피터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마스크 덕에 그의 얼굴을 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난 그냥, 내가 기억하는 그 눈동자가 기록되어진 데이터대로 반짝이는 게 아니라, 지고 뜨는 빛에 의해 반짝이는 걸 내 눈으로 보고, 녹음되어진 대로 울리는 목소리가 아니라 진짜 성대에서 울려나오는 진짜 목소리를 내 귀로 듣고 싶었을 뿐이에요. 내 정체가 궁금하시다면 내일 스타크 타워로 가죠. 여기도 토니 스타크씨가 있다고 들었어요. 그 정도면 되나요?”

 “벤자민, 하지만 진심으로 말하는데 이 사람 집은 네가 잘 곳이 못 돼. 난 사실 그게 걱정이 돼서 말한 거야.”


 희미한 빛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진 속엔 환하게 웃고 있는 자신이 데드풀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있었고, 그 데드풀의 품에 안긴 벤자민이 양 손으로 브이를 한 채 데드풀과 함께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벤자민에게 건네기 전 다시 한 번 사진을 본 피터가 앞으로 내밀어진 벤자민의 손에 사진을 얹어주었고, 조심스레 사진을 받아든 벤자민이 사진을 잠시 쳐다본 뒤 데드풀에게 건네곤 피터를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그럼 어디 가서 잘까요? 설마 당신 집이라고 할 건 아니죠? 우리 세계 스파이더맨도 자기 정체 밝히는 일이라면 질색하거든요.”

 “아니면 스타크 타워라던가-”

 “토니 스타크씨가 아저씨도 타워에 들여 주신다면요. 근데 이 세계에서 데드풀은 그렇게 반갑지 않은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아닌가요?”

 “스파이디, 정 걱정된다면 그냥 호텔에 가서 자는 방법도 있어. 그것도 나쁘지 않겠네. 이왕 여기 온 거 호화롭게 놀다 가자, 벤. 너네 아빠만 돈이 많은 게 아니라 나도 엄청 많이 벌거든!”


 어색한 분위기 틈바구니를 깨고 끼어든 데드풀이 벤자민의 가방을 열어 사진을 조심스레 넣은 뒤 벤을 품에 안았고, 익숙하게 소년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본 피터가 한숨을 내쉬며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데려다 드릴게요.”

 “새벽의 뉴욕이 택시가 잘 안 잡히기는 하지.”


 유쾌한 목소리로 피터에게 답한 데드풀이 스파이디 택시를 외치며 벤을 꼭 껴안았고, 데드풀의 품 안으로 파고드는 벤자민을 착잡하게 쳐다보던 피터가 둘을 거미줄로 묶은 뒤 뉴욕 상공으로 뛰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