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ken Crown #05
Chapter 05_Illusion
만지면 사라질 것만 같던 청년의 손은 따스했고 그의 목소리만큼이나 부드러웠다. 자기도 모르게 오래 잡고 있었던 탓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놓은 웨이드는 다가갔던 만큼 뒷걸음질 쳐 그에게서 멀어졌고, 청년의 등 뒤에 서있는 토니가 크게 헛기침 소리를 내며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우리 둘이 할 이야기가 있을 거 같은데, 핏.”
“파커라고 부르셔도 돼요, 스타크씨. 당신이라면 토니보다는 이편이 더 편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닌가요? 자비스?”
[네.]
“당신 주인님이 우리 벤자민더러 호칭을 어떻게 하라던가요?”
[스타크씨로 하라고 하셨죠.]
자비스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보라는 듯 어깨를 으쓱인 청년은 안을 쭉 둘러보더니 크게 숨을 내쉰 뒤 주머니에서 작은 패드를 꺼내 따닥였고, 흥미롭게 쳐다보는 토니의 시선을 피해 패드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당신이 뭘 궁금해 하는지는 대충 알아요. 근데 문제는 알려드릴 수가 없네요. 저작권이나 특효권이 저한테 있는 게 아니라 스타크 인더스트리에 있는 거라서요. 텔레포트 벨트는 정확히는 제 아들이랑 스타크씨가 공동 소유하고 있고요.”
“아까 그 꼬맹이 이야기 하는 거야, 설마?”
“그 꼬맹이가 제 아들이거든요, 스타크씨?”
청년의 설명에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던 토니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고개를 까닥인 청년이 잠시 토니를 쳐다보다 데드풀을 피해 구석으로 끌고 가 한참을 속닥이더니 둘이서 툭탁거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산타가 준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그럴 리가 없잖아.」
[오랜만에 맞는 소리하네.]
「그도 그럴게 산타는 지난번에 우리가 다 쏴죽였잖아.」
“하나쯤 남아있을 수도 있지.”
[어쨌거나 그 골칫덩어리하고도 안녕이군.]
청년은 여전히 토니와 열띤 토론 중이었고, 청년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웨이드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저 사람이 나 같은 사람이랑 결혼했다고?”
「우리가 뭐 어때서? 엉덩이? 이정도면 합격, 몸매? 끝내주지. 밤일은 뭐 말할 것도 없고-」
[얼굴은 왜 빼먹냐.]
「사람이 어떻게 얼굴만 보고 사냐, 병신아. 명언 중에 그거 몰라? 가난이 창문 틈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대문으로 나간다는 거? 우린 그 구멍들을 벤자민 프랭클린 얼굴로 막고 살 수 있는 인간이라고!」
“웨이드, 박스들한테 닥치라고 전해줘요. 그리고 당신 같은 사람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제 세계 데드풀, 그러니까 웨이드 윌슨이랑 결혼한 건 맞아요.”
토니와 한창 대화중이었던 듯 보이던 청년이 갑작스레 뒤를 돌아 웨이드를 향해 말했고, 벙찐 그의 표정을 보더니 키득거리며 제가 귀가 좀 밝거든요, 라고 덧붙인 뒤 토니의 등을 떠밀어 엘리베이터에 태워버리곤 웨이드를 향해 걸어왔다.
“그래서, 벤자민은 어디 있죠?”
“스파이더맨이랑 같이 내보냈는데, 토니가.”
웨이드의 대답에 눈썹을 치켜뜨고 웨이드를 쳐다보던 청년은 몇 번이고 입을 열었다 닫았고 대충 그가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눈치 챈 웨이드가 그에게 물었다.
“벤자민은 왜 스파이더맨을 싫어하지?”
웨이드의 질문에 입을 오물거리던 청년은 대답 대신 웨이드의 뒤에 있던 소파에 주저앉더니 웨이드를 쳐다보며 자신과 조금 떨어진 자리를 툭툭 쳐 앉으라는 시늉을 해보였고, 웨이드가 앉을 때까지 기다린 뒤 입을 열었다.
“제 세계에서도 당신은 데드풀이었고, 음, 당신이랑 조금 다른 점이라면 히어로였다는 거겠네요. 그리고 스파이더맨이랑 상당히 친했어요. 상당히요.”
거기까지 말한 청년이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다 애매한 표정으로 웃으며 코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그냥 짧게 말하죠. 제 남편은 스파이더맨을 구하다 죽었어요.”
「좋은 죽음이었다, 웨이드 윌슨. 스파이더맨의 완벽한 엉덩이 라인과 허벅지를 살리고 넌 죽은 거야.」
[이런 남편을 두고 따질 엉덩이와 허벅지가 있다면 말이지.]
「어쨌든 둘 다 세상에 남긴 거잖아.」
“그 전까지는, 그렇게 싫어하지 않았는데, 그 이후로는, 뭐, 말 안 해도 되겠죠.”
씁쓸하게 말을 마친 청년이 말을 마친 뒤 웨이드의 얼굴을 살폈고 웨이드는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고개를 숙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청년은 여전히 뒤에 앉아있었고, 그를 등진 채로 센세등을 밝히기 시작한 창문을 쳐다본 웨이드가 청년의 눈앞에 손을 흔든 뒤 창문을 가리키자 청년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곁에 섰다.
“이번에 오면 진짜로 혼내주려고요. 토니도 마찬가지예요. 그 동안 방관하다가 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애가 오지 않는다면서 죽을 상 하고 오기나 하고 말이죠.”
“너한테 안 알리고 그 쪽 토니가 왔으면 더 웃겼을 텐데 말이야. 아쉽게 됐어.”
아까보다 더 빠르게 점멸하는 불빛을 보며 갑작스레 대화가 끊긴 게 자신의 탓인가 싶어 웨이드가 청년이 와서 아쉬웠단 소리가 아니였다고 변명해야 되나 고민할 때쯤 그의 옆에서 앞으로 와서 선 청년의 갈색 눈동자가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웨이드가 보고 싶은 건 벤자민 뿐이 아니거든요. 설사 그 마음 때문에 저지른 일로 그 이에게 미안해진다고 해도 말이에요.”
갑작스런 말에 당황한 웨이드가 답할 말을 찾지 못해 당황하고 있는 사이 자꾸 창문을 깨고 들어오는 스파이더맨 때문에 만든 자동 개폐식 창문이 부드럽게 열리며 찬바람이 안쪽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잠시 멈칫했던 스파이더맨이 조심스럽게 벤자민을 내려놓았다.
“벤자민.”
혼내줄 거라는 종전의 말과 달리 부드러운 목소리로 벤자민을 부른 청년은 그를 향해 뛰어온 아이를 번쩍 안아들더니 아이가 건넨 봉투를 확인하곤 웃음을 터트렸다. 봉투 바깥에 찍힌 로고가 스파이더맨이 자주 가는 핫도그 가게임을 눈치 챈 웨이드가 스파이더맨이 데려갔나보다, 짐작하고 있을 때 청년의 품에 안겨있던 아이가 가방을 앞으로 끌어 열더니 그에게 갈색 봉투와 흰 봉투를 건넸고 그것이 자신의 단골 타코 가게 런치 세트임을 눈치 챈 데드풀이 놀라 쳐다보자 벤자민이 속삭였다.
“이 쪽 스파이더맨은 생각보다 안 나쁜 거 같아요. 흰 색은 스파이더맨 아저씨 거예요.”
스파이더맨은 사실 핫도그를 더 좋아한다고 말해줘야 하나 싶던 웨이드는 봉투를 건네자마자 신이 나서 청년과 떠드는 아이의 모습에 곧 떠날 판에 굳이 이야기 해줄 필요가 없겠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고, 시선을 자신들에게 향한 채로 뒷걸음질 치고 있는 스파이더맨을 불러 세웠다.
“허니, 아니, 스파이디. 당신 앞에서 다른 사람한테 허니라고 하면 좀 그런가?”
「그대여, 그 바람 피지 마오.」
[삑. 제 남편이 아닙니다.]
무심코 평소대로 스파이더맨을 부른 웨이드는 허니라고 부르기가 무섭게 자신을 향하는 벤자민의 시선에 움찔해 말을 뱉었지만, 말을 받아야 할 청년은 자신과 피터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미묘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저을 뿐이었고, 애초에 그가 애칭을 부르던 아이언맨에게 성이나 부르자고 못 박던 걸 떠올린 웨이드는 어깨를 으쓱인 뒤 스파이더맨을 향해 흰 봉투를 던졌다.
“하긴 내가 당신이랑 결혼한 것도 아니고. 스파이디, 이거 받아.”
[딩동댕. 우린 아직 솔로라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솔로.]
「데스 보고 싶은 건 나뿐? 레알로 나뿐?」
데스를 부르짖는 노란 박스의 말에 입을 비죽인 웨이드는 이제 신이 나서 자신이 해준 팬케이크와 핫케이크의 다른 점에 대해, 과학적인 측면에서 떠들고 있는 벤자민으로 시선을 돌린 채로 집 안에 남은 총알 수를 기억해내려 애썼고, 그가 집에 남은 총알 수를 다 기억해냈을 때엔, 창문 앞에 서 있던 스파이더맨은 이미 모습을 감춘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