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dpool Back in Black_Chapter 02
쓰면서 들은 노래 : Mumford & Sons - Broken Crown.
그는,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중이었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로 그는 밤거리를 달리고 있었고, 평소라면 질색을 할 그 시뻘건 수트가 근처에라도 보이길 간절히 기도했다. 어쨌거나 이럴 때 이 뉴욕시에서 도움을 요청할 이라면 그뿐이 없지 않은가.
몰이라도 당하듯 대로변에서 조금 더 작은 거리로, 그리고 거리에서 골목으로, 골목에서 막다른 길에 당도한 그는 거친 숨을 헐떡이며 다 죽어가는 가로등 불빛을 향해 몸을 돌렸지만, 그 곳에 스치듯 보았던 빛은 없었다.
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아 번득이는 칼날이 그의 턱 아래에 들어왔고, 서늘한 감촉에 헐떡이던 숨을 들이쉰 그의 코를 비릿한 향이 가득 메웠다.
“사, 살려주세요!”
“글쎄.”
싸늘한 목소리에 자비심은 없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늘을 쳐다보느라 치켜 올라간 그의 턱선을 따라 칼날이 미끄러져 들어왔다.
“신에게 기도라도 하게? 아니면-”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한 이는, 대답 따윈 바라지 않는다는 듯 칼을 그대로 그었고, 그는 날카로운 통증과 함께 무언가 흘러내리는 걸 느끼며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번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차가운 쇳덩이가 그의 이마로 닿았고, 구름 사이로 드러난 별빛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가 한껏 웃으며 말을 맺었다.
“스파이더맨이라도 찾는 건가.”
* * *
토니의 사무실 방문 이후로 뉴스를 챙겨보기 시작한 그는, 사이트 메인에 뜬 뉴스 기사를 클릭해보곤 이를 악물었다.
「또 다른 범죄자 사체 발견! 정의의 사도인가, 빌런인가.」
경찰도, 토니도, 피터도 그 피해자들이 스파이더맨에게 잡혔던 범죄자인 게 밝혀지길 원치 않았고, 이해관계가 일치한 세 측은 피터의 이야기만 빠진 정보를 신문사들에 넘겼다. 사람들은 여전히 정체모를 이가 흉악범을 잡는 거라 생각했고, 몇몇 사람들은 그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상태였다.
그 아파트를 발견한 뒤 경찰은 타 지역으로 이동한 범죄자들 중 조건에 부합한 이들을 추적했고 그들의 시체를 찾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단순히 범죄자들끼리의 다툼 중에 사망한 것으로 생각한 타 지역의 경찰들은 다른 수사에 집중하고 있었고, 뉴욕에서 발견된 시체 더미가 아니었더라면, 그들의 사망은 여전히 미제 사건으로 그저 묻혀있었을 터였다.
아파트가 발견된 뒤 범인은 시체 숨기기를 포기한 듯, 사건 현장에 그대로 시체를 남겨두었지만, 거기서 발견되는 증거는 없었다. 하나 같이 뒷골목에서 등장하는 시체들에 질린 경찰들은 온 도시의 CCTV를 뒤져가며 범인 찾기에 몰두 중이었지만, 그 수많은 CCTV 중 그 어떤 것도 범인이나 피해자의 모습을 잡은 건 없었다.
“이쯤 되면 이 노릇을 관둬야 되나 싶기도 하고.”
“서커스단처럼 남의 집 비상계단 난간에 걸터앉는 거 말이라면 관두는 게 나을 거 같은데?”
갑자기 들려온 퉁명스런 목소리에 놀란 피터가 휘청거렸고, 재빨리 그의 팔을 잡아챈 사내는 그가 난간에서 내려올 때까지 기다린 뒤 팔짱을 끼고 훈수하기 시작했다.
“여기가 8층인 건 알지?”
“넵.”
“일찍 생 마감하고 싶은 생각 아니면 난간 위에 올라앉아 있는 노릇은 그만하는 게 좋겠어.”
“원랜 안 이러거든요? 근데 오늘은 컨디션이 좀 안 좋나 봐요.”
컨디션이 안 좋다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잠시 올라갔던 모자챙은 그의 시선이 얼굴에 닿기도 전에 빠르게 내려갔고, 주머니에 손을 꽂은 사내가 잠시 그의 발끝을 응시하다 말을 이었다.
“그럼 계단에 걸터앉아있으면 되잖아.”
“그럼 통행에 방해되잖아요.”
“8층 난간에서 청소년이 자살한 건물 되는 것보단 그게 나을 거 같은데.”
“애초에 여긴 비상계단인데 비상상황이세요?”
“화장실이 급하거든.”
신경이 날카로웠던 탓에 비딱한 어조로 대답하던 피터는 태평한 어조로 화장실 소리를 하는 사내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고, 피식 웃은 사내는 어깨만 으쓱한 채 그대로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사내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냄새가 익숙하면서도 불쾌하단 생각에 그 냄새가 뭔지 고민하던 피터는 핸드폰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리고 있단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고, 화면에 뜬 메이 숙모의 이름을 보곤 전화를 받으며 그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