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디가 없는 뉴욕.
그가 사라진 날이 정확히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뉴욕 시민에게 때가 되면 내려쬐는 햇볕이나, 신경 쓰지 않아도 불어오는 바람과도 같은, 그저 일상 같은 존재였기에, 그 누구도 그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려 들지 않았고, 그랬기에, 그가 사라진 것을 알아챈 것은, 그의 흔적조차 찾기 힘든 때에 이르러서였다. 사람들은 스파이더맨을 부르짖으며 고함치는 J.J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어렴풋이 그의 빈자리를 느꼈다가, 평소라면 스파이더맨의 등장으로 시작했을 뉴스들이, 빌런들에게 털린 은행들에 관한 것들이나, 소매치기를 쫓다가 사고를 당한 일반 시민의 것들로 바뀌고 나서부터는 그들이 아무렇지 않게 여겼던 그 존재가 얼마나 많은 일들을 감당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그리고 그가 나타나기 이전의 뉴욕이 얼마나 시끄러운 동네였는지에 대해 뒤늦게 깨닫기 시작했다. 더 이상 뉴욕의 늦은 저녁거리를 쏘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사건 사고에 몸을 떨며 여전히 큰 사건에만 고개를 내밀곤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는 어벤져스에 진절머리를 느끼기 시작했고, 어벤져스에 들어오라는 제의도 거절한 채 뉴욕의 건물 숲을 쏘다니던 스파이더맨을 그저 소일거리를 하는 괴짜 청년 정도로 생각하고 있던 어벤져스의 일원들도, 뉴욕의 늘어가는 범죄에 대한 화살이 자신들에게 돌아오고 나서는 그 청년이 그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는 어느 날 불쑥 나타났다가 나타났던 때만큼 불쑥 사라진 이 영웅을 찾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녔지만, 유독 개인 신상에 예민했던 이 청년을 인구수만 800만을 넘기는 뉴욕에서 찾기란 사막에서 잃어버린 바늘을 찾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계속되는 요청에도 그의 신상을 가지고 있을 법도 한 닉 퓨리는 개인 사정에 의한 휴직이나 마찬가지라며 입을 굳게 닫고 있었고, 한동안 바쁘게 데이터베이스를 돌리며 그를 찾는 것처럼 보이던 토니 스타크마저도 어느 순간부터는 두 손을 놓은 채 어벤져스 일원들의 질문에 어깨를 으쓱이며 닉 퓨리와 똑같은 대답으로 일관하다가, 마침내 중요한 출국을 앞두고 공항에서 벌어진 시위에 성이 난 캡틴 아메리카가 사무실로 찾아와 그의 책상에 방패를 메다꽂고 나서야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말했잖아, 개인사정이라고.]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질 힘이 있는 영웅이, 고작 개인사정 때문에 이 사태를 만든다고?]
[캡, 당신은 그게 문제야. 당신은 대의만 생각하잖아, 안 그래?]
신랄한 어조로 말을 받은 토니 스타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책상에 박힌 방패를 뽑으려다 아무리 애를 써도 방패가 꿈적도 하지 않자, 신경질적으로 방패를 툭 치고는 다시 의자에 앉으며 책상 위로 튄 파편을 바닥으로 쓸어냈다.
[이게 얼마짜리 책상인지 알아? 이 대리석은, 내가 직접 이탈리아까지 가서 공수해온 거라고. 당신 방패는 또 어떻고? 그래, 물론 이런 거 가지고 기스 같은 게 날 리야 없겠지. 그래도 가격을 듣고 나면 이렇게 휘두르진 못할 걸.]
[토니,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내 질문에 답이나 하게. 스파이더맨은 지금 어디 있나?]
[그렇게 알고 싶으시다면, 어디에 있는지 쯤이야 대답 못할 것도 없지. 그래, 지금 이 시간쯤이면 묘지에 있겠네. 걔도 참 성실한 게 매일 이 시간이면 파이나 유기농 달걀 따위나 사들고 꼬박꼬박 거기로 출근한단 말이야. 성실한 걸로 치면 당신 뺨을 칠 걸. 마트 들릴 시간에 먹지도 않을 달걀이 미어터지는 냉장고나 정리할 것이지.]
뜻밖의 말에 캡틴 아메리카가 입을 다문 사이 책상 위로 튀어있던 파편들을 다 쓸어낸 토니 스타크는 책상 위에 방패가 박혀있는 것도 꽤 괜찮겠다고 중얼거리곤 의자를 뒤로 젖힌 뒤 책상 위로 다리를 얹은 채 거의 반쯤 드러눕다시피한 자세로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서 있는 캡틴 아메리카를 올려다보곤 말을 이었다.
[말했잖아. 개인 사정이라고.]
[그래도 이건 너무 길지 않나. 벌써 6개월이 넘었네.]
[오, 캡치고 세심한데? 6개월이 넘은 건 또 어떻게 알았대? 다들 대충 4,5개월 되었겠지, 하던데.]
[토니. 그 친구에게 관심이 있던 건 자네뿐만이 아닐세. 요즘 아이 치고는-]
[보기 드문 심성을 가진 애라고? 알아, 귀가 닳도록 들었다고. 애초에 걜 어벤져스에 넣자고 한 것도 당신이잖아. 그럼 관심 좀 더 가져주지 그랬어. 실제로 걔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얼마나 어린지, 혹은, 걔가 어디에 사는지, 걔 첫사랑이 어떻게 죽었는지, 걔네 부모는 어떻게 죽었는지, 아니면 적어도.]
순식간에 말을 쏟아낸 토니 스타크는 거기서 말을 멈췄고, 무언가 말을 더 쏟아낼 거라고 생각했던 캡틴 아메리카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 비단 당신 탓만은 아니겠지. 그걸 다 알고서도 이 사태가 벌어지도록 내버려둔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거기까지 말을 이은 토니 스타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에 일어나 여전히 미동조차 않는 방패로 시선을 주었다가 자신을 따라 움직인 캡틴 아메리카의 시선을 마주한 뒤 자신을 붙잡으려는 그의 손을 조심스럽게 뿌리친 채 사무실 문을 열은 뒤 고갯짓으로 나가라는 시늉을 해 보였고, 한숨을 내쉰 캡틴 아메리카가 책상에서 방패를 뽑고 문을 나서려는 순간 한참을 망설이던 토니 스타크가 그를 붙잡았다.
[걔 부모님은 국가 일을 하다가 죽었어. 걔가 그걸 아는지 모르는 지야 나도 모르지만.]
[뭐라고 했나?]
[그리고 걔 삼촌은, 강도를 잡으려다 강도 총에 맞아 죽었고.]
[…….]
[걔 첫사랑네 아버지는 고블린 손에 죽었고, 그 덕에 걘 첫사랑한테 자기가 스파이더맨인 걸 영원히 말하지 못했지. 아마 앞으로도 못할 걸?]
말하는 내용과 달리 우스꽝스럽게 입 꼬리를 잔뜩 올린 토니 스타크를 빤히 쳐다보던 캡틴 아메리카는 잠시간 침묵이 흐른 뒤에야 토니 스타크가 자신의 질문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용히 물었다.
[……왜지?]
[걔 첫사랑도 고블린 손에 죽었거든. 말할래야 말할 수 있기는 한데 그건 묘비 앞에서나 가능하겠지. 근데 이를 어쩌나, 죽은 자는 말이 없는데. 이젠 영원히 그 첫사랑에게 말하지 못했던 거에 대해서, 혹은 말했어야만 했던 것에 대해서 답을 얻지 못할 테니, 영영 그 죄책감을 덜긴 글렀지.]
[그럼 스파이더맨이 나타나지 않은 건-]
[오, 내가 이걸 말하는 걸 깜빡했구나. 그건 좀 오래된 일이야. 그러니까 이번에 잠수 탄 건 그거 때문은 아니지.]
[토니, 지금 날 놀리려는 거라면 그만두는 게 좋을 걸세. 알다시피 최근의 일로-]
[피곤하겠지. 몹시. 근데 걔는 오래전부터 피곤하던 애야. 걔가 세심하게 여길 살피는 동안, 우리 홈그라운드를 홀로 지키는 동안 우리가 여기에 너무 무심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캡? 당신이나 나는 성인이기라도 하지, 걔는 망할 10대라고. 선생들이 내준 과제나, 시시껄렁한 연애 고민이 다여야 할, 그런 10대. 그런데도 걔는 부모가 없는 상태에서 자기 아버지나 마찬가지인 사람을 잃고, 자기 첫사랑이 스파이더맨 때문에 자기 아버지가 죽었다고 원망하던 와중에 그 첫사랑마저도 자기 싸움에 휘말려 죽은 그 상황에서 싸워왔다고. 그런 애가 갑자기 펑, 하고 사라졌어.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아, 캡? 그 모든 상황에서 버텨온 애가 갑자기 잠수를 타고 그토록 정성들여 돌보던 뉴욕 시민들의! 친절한 이웃이 되는 걸 관뒀다고. 저 망할 미디어가, 그리고 그 망할 미디어 신봉자들이, 자기한테 뭐라고 하건 신경조차 쓰지 않고 그저 선하고 친절한 이웃일 수 있으면 그걸로 됐다고 하던 그, 애가 사라졌단 말이야.]
열린 문으로 새어나간 고함에 밖에 지나가던 직원 몇이 술렁이기 시작했고, 문 바로 앞에 앉아있던 비서가 대충 상황을 짐작하고는 층을 비우는 동안 눈을 감은 채 숨을 고르던 토니 스타크는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선 캡틴 아메리카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다들 그 애를 찾아서 다시 일 시킬 생각만 하지, 그 애가 도대체 무슨 사정으로 갑자기 사라졌는지 걱정은 하지도 않지, 안 그래? 도덕심이라면 따를 자가 없다는 당신조차도 책임 운운하고 있는 마당에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
문손잡이를 잡고 있던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린 토니 스타크가 한숨을 내쉬었고, 손에 들고 있던 방패를 등 뒤로 꽂은 캡틴 아메리카가 열려있던 문을 조용히 닫았다. 한참동안 캡틴 아메리카의 가슴에 박힌 성조기 별들을 쳐다보던 토니 스타크가 입을 연 건, 침묵에 지친 캡틴 아메리카가 더 이상 답 듣기를 포기하고 다시 문고리에 손을 올렸을 때였다.
[한 육 개월 정도 전에 페이스북이며 유튭에서 난리난 동영상이 하나 있지. 그 중 하나는 그 날 뉴스 마지막에도 나왔을 걸? 물론 그 날 뉴스도 처음이야 거미줄에 둘둘 말린 소매치기로 시작했지만 말이야.]
[뜬금없이 그건 또……]
[한 노친네가 길거리에서 건달 서넛에 둘러싸여서 실갱이를 벌이다가 건달 주먹에 잘못 맞아죽는 거였는데, 본 적 없나봐? 뭐, 나도 하도 사건이 많은 동네니 그냥 우리 스파이더맨이 못 구한 안타까운 인사 중 하나겠거니 하긴 했어. 사실 그렇게 늦은 저녁도 아니었어. 그 노친네는 자기 조카 귀가가 늦으니까 어련히 또 유기농 계란인가 뭔가를 안 사오겠구나 싶은데 그렇게 늦지 않았으니 괜찮겠지 하고 마트에 갔던 거고.]
[토니, 쓸데없는 소리를 할 거라면-]
[제발! 사람 말 좀 끝까지 들어, 캡, 아니. 스티브 로저스. 아니면 내가 제발 사람 말 좀 끝까지 들어주게, 스티브씨라고 해야 들어줄 건가?]
[……계속 말하게.]
[그 건달들이 그 불쌍한 노친네를 붙잡고 시비를 거는 동안, 그리고 그 노친네가 쓸데없이 용감하게 구는 동안 그 거리에 있던 꽤 많은 사람들이 뭘 했는지 알아? 페이스북이며 트위터, 유튭에 올라온 수많은 동영상을 찍느라 바빴지. 그 중 일부는 지들 목숨 살린다고 자리 피하느라 신고조차 해주지 않았고, 그 자리를 지키고 섰던 다른 사람들이 동영상이 끊길까봐 전화 한 통 걸지 않은 채로 누군가는 하겠지, 란 안일한 생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서있는 동안, 그 노친네는 결국, 죽었다고. 거기 서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 애가 지키고 있던 뉴욕 시민이었어. 그 애가 스스로 친절한 이웃이 되고자 했던 그 이웃들이었다고.]
[……그래서 그 노인의 죽음 때문에 스파이더맨이 실망해서 관뒀다는 건가, 지금?]
의뭉스런 표정으로 토니 스타크를 쳐다보던 캡틴 아메리카는 뒤늦게 스파이더맨이 황급히 뛰어갈 때면 늘 습관처럼 내뱉던 유기농 계란을 사야한다는 말을 떠올렸고, 어쩌면 그게 그냥 뒤풀이를 피하려는 핑계거리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그 사람이 그 애의 마지막 남은 가족이었어. 그 가족이, 그 애가 그토록 신경 쓰던 뉴욕 시민의 무관심 속에서 죽었다고.]
[……토니, 난 몰랐네. 난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은…….]
[그러니까 이제 말해봐. 이건 도대체 몇 개월 동안 애도하면 다시 영웅 놀음을 할 수 있는 개인 사정이지? 애초에 걘 어벤져스도 아니고 쉴드에 속해 있지도 않아. 애초에 누가 걔더러 해라 마라 할 것도 없지만, 굳이 따지자면 몇 개월 동안 애도하면 지나치지 않은 개인 사정이냔 말이야. 왜, 그래도 육 개월은 너무 지나친가? 스티브 로저스! 뚫린 입이 있다면 한 번 말을 해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