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용의자로 몰린 스파이더맨으로
- 범인 묶어놓고 갔는데 죽은 채로 발견됨.
- 트위터 피터 파커 봇이랑 이야기 하다가 씀.
- 정확힌 럼로우 봇이 피터 파커 봇 놀리느라고 한 거에 내가 끼어들고 어쩌고 저쩌고
- 시빌워 이전.
피터 파커에게 그 날은 그냥 평범한 하루였다. 학교 일과가 끝나기가 무섭게 코스튬을 갈아입고 건물 사이를 날아다니다 좀도둑 몇을 잡아 거미줄로 동여매놓곤 경찰에 신고를 하고 또 골목 사이 사이를 누비가 갑작스레 걸려온 메이 숙모 전화에 당황한 채로 황급히 범인을 묶고 재빨리 옥상으로 날아오른, 그런 평범한 하루. 메이 숙모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느라 마지막에 잡은 범인에게 경찰이 도달해 확보하는 것까지 확인하지 못한 피터는 자신이 방금 벗어나온 골목을 향해 달려가는 경찰차만 확인한 채로 자신의 아파트로 향했고, 뒤늦게 내린 눈에 반쯤 젖은 코스튬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며 하루 종일 돌아가고 있던 텔레비전 앞 소파에 드러누웠다. 일상적인 뉴스가 지속되던 화면은 갑작스레 낯익은 골목 앞으로 바뀌었고, 노란색 테이프가 둘러진 골목 앞에 선 금발의 리포터가 잔뜩 흥분한 얼굴로 화면을 가득 메웠다.
[긴급 속보입니다! 전 지금 NYPD가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에 묶인 채 머리에 총격을 맞고 사망한 A씨를 발견한 현장에 와 있습니다!]
빌런이라도 나타난 건가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코스튬을 집어 들던 피터는 리포터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코스튬을 집어든 손을 그대로 멈추고 입을 반쯤 벌린 채 화면을 응시했고, 그 사이에 카메라는 잔뜩 인상을 찌푸린, 그러니까 하루가 멀다하고 멀찍이 뒤통수만 보던 경관들 중 하나의 얼굴을 리포터와 함께 화면에 잡았다.
[스파이더맨이 A씨를 살해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아니, 지금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고요, 애초에 거미줄에 묶여있었다고 저 놈을 반드시 스파이더맨이 죽였으리란 보장도 없질 않습니까.]
[하지만 방금 저희 정보원이 확인한 바에 의하면 범인을 감싸고 있던 거미줄이 평소 스파이더맨이 사용하던 거미줄과 같은 걸로 결과가 나왔다고 하는데요, 경관님이 들으신 것과 같은가요?]
[이 사람들은 도대체 이걸 어떻게- 아니, 그러니까 스파이더맨이 자경단원 노릇을 하긴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친구도 아니고, 잡고 나서도 저희를 불러서 저희가 체포하게 뒀단 말입니다.]
[그럼 스파이더맨이 범인이 아니란 말씀이신가요?]
[제가 말했잖습니까. 지금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고. 이제 현장 정리되고 좀 알아보려는-]
[그러니까 스파이더맨도 용의자 중 하나란 말씀이시죠?]
[그거야 당연한 거긴 한데, 이봐요-]
[네, 지금까지 스파이더맨의 최초 살인 현장일지도 모르는 곳에 나와 있던 리포터-]
거기까지 듣던 피터는 천천히 손에 들고 있던 코스튬을 내려놓은 뒤 미친 듯이 울리고 있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고, 화면에 뜬 이름을 보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
[스파이디.]
“토니. 미리 말해두지만, 제가 그런 게-”
[아니겠지. 그거야 당연한 거고. 애초에 니 코스튬에 총이 들어갈 자리가 있기는 하냐.]
“……그쵸. 그렇긴 하죠.”
[그래서, 네 생각엔 어떻게 된 거 같아?]
“하나도 모르겠는데요. 전 그냥 소매치기 하나 잡아서 가방 주인한테 가방 던져주고 저 사람 쫓아가서 묶어놓은 거 밖에 없거든요.”
[경찰이 오는 것까지 보통 확인하는 거 아니었어?]
“……숙모한테 전화가 와서요.”
[흠. 그렇단 말이지.]
거기까지 말한 토니는 침음을 내며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었고, 그 짧은 통화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텔레비전에서 몇 번이나 들리는 ‘스파이더맨’이란 단어에 기가 질린 피터는 리모컨을 집어 들어 음소거를 누른 뒤 소파에 엉덩이를 붙인 채 토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상황이 썩 좋진 않아.]
“정말요? 그렇다니 참 놀랍네요.”
[농담할 기분 아니야, 스파이디. 다들 난리라고. 안 그래도 요즘 우리들 여론 안 좋은 거 알지? 다들 당장 소환장 받아야 될 사람 신상도 모르는 판에 수사를 어떻게 진행할 거냐고 난리라고. 당장 네 신상 까라고 내가 받은 트윗이며 댓글, 전화가 몇 통인지 알아?]
“그건 미안해요, 토니.”
[미안해할 놈들은 따로 있지. 어떻게 그런 으슥한 골목에 감시 카메라 하나가 없느냔 말이야.]
“음, 토니? 그래서 제가 거기다-”
<거기까지 해두게, 스파이더맨.>
“묶어둔 거였다고요……. 음, 캡도 있었어요?”
<그럼 이 상황을 토니 혼자 맡게 두었을 거라고 생각했나?>
“아, 당연히 아니겠죠. 어쩐지 아까부터 토니가 스파이디라고 부른다 했어요.”
<……토니가 자네 신상은 나한테도 비밀로 해두어서 말일세.>
스티브 로저스 뒤로 토니가 무어라 말하는 게 들리기 시작하더니 피터를 내버려둔 채로 둘 사이에 고성이 오갔고, 잠시 그 고성을 들으며 텔레비전을 주시하던 피터는 익숙한 콧수염이 텔레비전에 등장하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렇지. 이 자리에 안 나오면 양반이 아니지.”
<지금 뭐라고 했나?>
“아, 캡보고 한 소리는 아니었어요.”
<그보다 진짜로 뭔가 짐작 가는 게 없나? 아, 그래. 그렇게 하지.>
“네?”
[스피커폰으로 돌렸어. 일단 지금 상황을 설명해줄게. 주 용의자는 당연히 너고, 그 외에도 많아. 알고 보니까 그 놈이 그냥 소매치기가 아니더라고. 니가 가방 찾아준 주인도 그냥 소시민도 아니고.]
“네에?”
[내 생각에 그건 디디가 더 잘 알거 같긴 한데-]
<디디는 또 누군가?>
[그 왜 헬스키친에 시뻘건 친구. 여튼, 요지는 그 새낄 죽일만한 놈들이 너무 많다는 거지.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설사 그 놈을 죽인 범인이 따로 있다 하더라도 넌 법정에 서야 할 거야, 스파이디. 어쨌든 네가 그 놈을 묶은 탓에 손쉽게 죽은 것도 있으니까. 마침 J.J가 그걸 아주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네. 저 인간이 니 안티라서 그렇지 아주 못쓸 인간은 아니야.]
<토니.>
[아, 미안. 확실히 그건 너한테 도움 안 되는 소리긴 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한 며칠만 조용히 살라고. 적어도 이 사건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될 때까지 말이야. 사건 현장에 갔던 경관들 대부분이 네 편이야. 윗대가리들이야 내가 어떻게든 구워삶으면 되고. 재판은, 그래. 그게 문젠데……. 진짜로 네 신상 깔 생각은 없는 거야, 스파이디? 그거면 네 알리바이가 성립될 수도 있고, 그냥 평범한 소시민 스파이더맨을 알게 되면 다들 동정여론도-]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절대로 안 돼요, 토니.”
<그 부분에 대해선 나도 스파이더맨과 같은 의견일세.>
[아주 열렬한 비밀 신상 신봉자들 납셨어요들. 결국 고생하는 건 난데 말이지.]
<자네가 그렇게 말하면 스파이더맨이->
“아니에요, 캡. 토니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닌데요, 뭐. 재판에 서더라도 피터 파커가 아니라 스파이더맨으로 갈 거예요.”
[그럼 벌금은 누가 내고 실형은 누가 살 건데? 사회보장번호도 없는 유령 시민이? 아니면 네 코스튬만 덜렁 내놓을 셈이야? 주체가 없잖아, 주체가.]
“감옥 가더라도 코스튬 입고 계속 살면 되죠.”
[농담 한 번 참 섬뜩하다. 그 채로 감옥 가면 일주일 이후부터는 면회도 안 갈 줄 알아, 스파이디.]
“우리 우정이 고작 악취로 무너질 거였어요, 토니? 그건 좀 섭섭한데요.”
[향수 떡칠을 해도 안 볼 참이니까 알아서 해.]
다시 무언가 말을 하려던 토니는 속삭이는 듯한 소리와 함께 말을 멈췄고, 잠시간 거칠게 속닥거리는 소리에 의미 없이 리모컨을 쥔 손을 놀리던 피터는 무심코 돌린 채널에서 자신이 데일리 뷰글에 제출했던 사진과 함께 현상 수배지가 나타나자 손을 멈춘 채 신경질적으로 볼륨을 올렸다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