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o, the Grief
- 둘이 썸타던 사인데
- 피터는 먼저 고백하기는 괜히 자존심 상해서 은근히 눈치 주면서 덷풀이 먼저 고백하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 덷풀은 원래도 정신 없는 애니까 썸인지 쌈인지 도끼병인지 상관 없는 상태였는데
- 어느 날 갑자기 덷풀이 암이 나아버리고 박스들까지 사라지면서 제정신이 돌아옴
- 혼란 + 박스들이 사라져서 진짜로 혼자가 됨 + 피터와 썸이 아니라 자기 혼자 미친 짓 하면서 삽질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게 되어서
- 혼자 방황.
화창한 일요일 오전이었다. 지난 밤 내렸던 비가 만들어낸 웅덩이를 제외하면 어제만 해도 땅을 뚫어버릴 듯 쏟아 붓던 비의 흔적은 사라지고 없었고, 한 주간 몰아닥쳤던 추위에 추켜 올라갔던 어깨를 편 사람들의 얼굴은 밝았다. 지난주 내내 건물 사이를 누비던 겨울바람은 내리쬐는 햇살에 녹은 듯 부드럽게 사람들 머리끝을 스치고 지나갔고, 슬슬 다가오는 봄을 대비하는 가로수 가지 끝은 수채화 물감으로 뭉개놓은 듯 흐렸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느긋했고 한동안 주인을 찾지 못한 채 비어있던 카페 야외 테라스에는 휴일을 맞아 데이트 중인 커플들로 인해 만석이었다. 아침을 먹기는 늦고 점심을 먹기엔 이른 시각에 거리를 거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고, 그 사람들 틈 사이로 빠르게 걷던 피터는 무심코 지나치려던 골목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곤 발걸음을 되돌려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처음 세워졌을 때엔 회색에 불과했을 벽은 여러 사람들이 오가며 그린 그림에 덮여 뉴욕의 그 어느 건물보다도 화려한 색을 띄고 있었고, 한참을 벽 앞에 서서 자신의 시선을 잡아끈 것의 정체를 찾던 피터는 그 어지러운 그림 속에서 익숙한 검은색과 빨간색 조합을 발견하곤 작게 한숨지었다. 아무렇게나 써진 그 글씨는 그 위에 덧그려진 그림에 반쯤은 덮여 있었지만 늘 그렇듯 글씨 끝에 서명 대신으로 그려 넣던 장난스런 표정의 동그라미만큼은 온전히 드러나 있었고, 아마도 꽤 오래 전에 그려진 듯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진 채 너덜거리고 있었다. 몇 번이고 움찔거리며 그러쥐었다 풀어졌던 피터의 손이 마침내 잔뜩 치켜 올라간 흰색의 눈꼬리에 닿았고, 마치 그 손길을 기다렸다는 듯 그의 손이 닿은 부분의 페인트가 버석거리는 소리를 내며 벽에서 떨어져나갔다.
데드풀이 모습을 감춘 지 일 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은 글이 안 써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