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네가 그리워
-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순전히 언더테일 때문.
- 이 동영상 때문에
반짝이는 별들은 여전히 똑같은 자릴 맴돌고
같은 태양이, 같은 달이 같은 궤도를 따라가.
대지 위를 덮은 눈은 하얀 도화지 같은데
찍히는 발자국은 하나뿐야.
그래, 난 네가 그리워.
보고 싶단 게 아냐.
둘은 다른 이야기지.
전혀 다른 이야기.
난 네가 그리워.
실없는 웃음, 답 없는 희망론,
그리워하리라 생각지 못한 것들이 자꾸 떠올라.
그래, 난 네가 그리워.
봄에는 네 손길이 닿았던 것과 같은 모양의 꽃들이 피고
여름, 네 얼굴을 뒤덮던 그늘은 여기에,
가을이면 널 설레게 하던 과일이 이 가지에
겨울엔 네 발자국이 찍히던 눈이 내려.
나조차도 여기 이 자리 똑같은 곳에 있는데
네 흔적들이 날 에워싸고 있는데
그러니 내가 어떻게 널 잊을 수 있겠어.
그러니, 내가 어떻게 널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겠어.
봄이 되어 앙상한 가지 끄트머리 꽃망울이 터지고
꽃이 비운 자리에 잎이 돋아나 그늘을 드리우고
그 잎들이 물들 때쯤 과실이 영글고
앙상한 가지 위에, 뿌리 위에 눈이 내려앉는 동안은
난 널 잊지 못하고 그리워할 거야.
시간이 멈추지 않는 한
그들이 멈추지 않는 한.
네 손길이 닿던 꽃들은 이른 봄의 바람결에도 쉽게 상하고
네 그늘을 만들던 이파리조차도 여름의 열기엔 말라붙곤 해.
가을에 열리는 과실조차도 늦가을 서리엔 도리 없이 낙과하고
온 세상을 덮는 눈도 아침 햇살엔 녹아 사라져.
네가 그랬듯, 그래, 네가 그랬듯 말이야.
생명은 덧없고 시간은 잔인하며 후회는 의미 없는 일에 불과해.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라지만 누가 먼저 약속을 지키지 않았는지는 신만이 알겠지.
봄이 오면 꽃은 어김없이 다시 피어오르고
꽃이 비운 자리엔 반드시 이파리가 가지마다 돋아 날 테고
해마다 새로운 과실이 가지 끝에 매달리고
날마다 눈이 내린다 해도
네 손길이 닿았던 꽃들은 진 지 오래고
올 해의 그늘은 네 얼굴 위로 드리워진 것과는 다르고
지난해의 과실은 자취조차 없으며
한순간에 녹아 사라질 눈은 말할 것도 없을 테지.
그리워하고 그리워해서 돌아올 것들이라면
보고 싶어 하게 될 지도 몰라.
여름엔 겨울의 한기를,
겨울엔 여름의 열기를 그리워하듯,
그렇게 말이야.
하지만 난 그럴 수가 없어.
그리워하는 건 쉽지만
보고 싶어 하는 건 어렵지.
그래, 네가 그리워.
널 보고 싶어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네게 실없는 농담을 건넬 수 있었으면 좋겠어.
봄날 꽃잎에 조심스러웠던 네 손길이,
여름이면 그늘에 젖어 어둡던 네 얼굴이,
가을이면 늘 과일 단내가 묻어나던 네 목소리가
겨울에 내 곁에 찍히던 네 발자국이,
그 모든 게 그리워.
그렇다고 해서 보고 싶단 이야기는 아니야.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싶어 할 정도로 내 삶이 여유롭지 못해서가 아니라
네가 사랑하던 그 모든 것조차 질려할 정도로 네가 그리울까봐
그러니까, 난 널 보고 싶어 할 수가 없어.
봄에 핀 꽃들에서 네 손길을 그리고
여름,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에서 네 속삭임을 듣고
가을에 영근 과실은 네 형편없는 요리보다 나으니까
그리고 겨울엔 앞만 보고 걸으면 될 거야.
그러니까, 난 그리움으로 충분해.
그러니까, 난 앞만 보고 걸을게.
네가 남겨진 등 뒤는 보지 않을 거야.
아무도 없는 옆을 향해
농담을 던질 때도 있긴 해.
하지만 그건 조만간 끝이 나겠지.
가볍지 않은 발자국 하나,
그리고 내 앞엔 선이 하나.
네가 믿었던 희망을 다시 한 번 믿어볼게.
내기 비웃던 희망에 다시 한 번 걸어볼게.
그래도 되지 않는다면,
그 때는 돌아서지 않을 거야.
그래, 난 네가 그리워.
그래, 난 네가 보고 싶어.
이 모든 게임이 끝나면
그 때는 영영 볼 수 없겠지만
그 또한 끝이 아니란 걸 알아.
되돌이표에 놀아나는 악보처럼
똑같은 음표를 수십번 수백번 연주 한 대도 난 상관없어.
널 볼 수만 있다면.
널 또 다시 그리워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