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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같은 소재. 구속 속박으로

Spideypool 2016. 3. 6. 03:15

 그러니까 평소와 같은 날이었다. 하루 종일 여기 저기 참견질을 하고 다니다 면박을 먹고 새벽 2시만을 기다리다 늘 같은 옥상에서 스파이더맨을 만난, 그냥 그저 그런 날. 다른 것이 있다면 아마도 스파이더맨 손에 들린 총 정도?


 (스파이더맨이 총을 쓴다고? 금시초문인데. 그보다 저 모델은 좋지 않아, 좋지 않다고. 반동도 너무 세고-)

 “장전하기도 어렵지.”

 [니들 둘 다 쟤가 누굴 겨누고 있는지도 안 보이나 보지, 머저리들아.]

 “그래봤자 스파이더맨이라고. 그 누구도 내 앞에선 죽지 않는다던 그, 스파이더맨.”

 “제가요?”


 데드풀 말에 심상한 어조로 되물은 스파이더맨은 총을 데드풀에 고정시킨 채로 장전시켰고, 옥상에 도착하자마자 총에 겨눠진 탓에 어정쩡한 위치에 서 있던 데드풀이 머리를 긁적인 뒤 어깨를 으쓱였다.


 “데드풀, 아니. 웨이드.”

 (웨이이이이드? 쟤가 지금 우릴 웨이드라고 불렀어? 내 고막이 드디어 힐링 팩터를 모조리 상실했나?)

 “……당신은 안 죽는다고 그랬죠?”

 “그거야 당연히-”


 그 날의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데드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아쇠에 가있던 스파이더맨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겼고, 미간을 정통으로 맞고 쓰러졌던 데드풀은 그대로 쓰러져야만 했다.


 그리고 그 날을 시작으로 스파이더맨은 데드풀과 마주치기만 하면 냅다 데드풀을 죽였고, 일주일정도는 스파이더맨이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럴 거라는 노란 박스의 말에 수긍하며 옥상을 찾던 데드풀은 같은 일의 반복이 일주일을 넘어가기 시작하자 스파이더맨을 슬슬 피하기 시작했고, 그 때마다 스파이더맨은 데드풀을 귀신같이 찾아내 죽이고 있었다.


 “젠장.”

 (이승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웨이드 윌슨. 이번 패널티는 30분 정도였군요. 늘 그렇듯이 말이죠.)


 노란 박스의 비아냥거림에 인상을 찌푸린 데드풀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흩어진 뇌수조각들을 대충 발로 뭉갠 뒤 어김없이 근처에 떨어져 있는 총을 보곤 혀를 찼고, 온종일 침묵을 지키고 있던 흰 박스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도대체 저 정의감에 똘똘 뭉친 또라이가 갑자기 그냥 또라이가 된 건지 단서를 찾으신 분?]

 (저요, 저요! 아무래도 우리가 그 또라이 놈의 스트레스 풀이 겸 샌드백이 된 거 같습니다!)

 “드디어 안 죽는 놈을 찾아서 살해 욕구를 채우겠다 이거란 말이지.”

 “……그런 건 아닌데요, 데드풀.”

 (이런 캡아 샌드백이 맞아 죽다 승천할 일을 봤나. 하루에 두 번은 우리도 못 참는다고! 그게 제 아무리 새끈하고 낭창한 허리와 다리를 가진 스파이더맨이더라도 말이지! 네 다리 사이에 달린 게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다면 총을 들어라, 웨이드 윌슨! 저 빌런을 무찌르는 거야! 그리고 어벤져스에 가입하는 거지.)

 “우리 이미 어벤져스에 가입한 거 아니었어?”


 혼자 꿍얼거리며 노란 박스의 말을 받은 데드풀은 무심코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인영 쪽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스파이더맨이 마스크를 벗고 있단 사실에 당황하며 그가 건물 그림자 밖으로 나오기 직전 눈을 감은 뒤, 두 손으로 앞으로 내밀어 그를 막아 세우며 뒷걸음질 쳤다.


 “제발, 자기야! 그 망할 마스크 좀 써줄래? 자기 아름다움에 내가 숨 막혀서 죽으면 어쩌려고 그래?”

 “어차피 다시 살아날 테니까 괜찮아요.”

 (라고 연쇄살인마 피터 ㅍ-아니지, 스파이더맨이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살아난다고 안 아픈 건 아니거든? 도대체 니 비밀 신상까지 까발려가면서까지 날 죽이려는 이유가 뭔데?”

 “확신이 필요했거든요.”


 눈을 감은 탓에 스파이더맨이 바로 앞까지 다가온 것을 눈치 채지 못했던 데드풀이 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숨을 크게 들이쉬었고, 천천히 데드풀의 마스크를 벗긴 스파이더맨이 여전히 앞으로 향해 있는 데드풀의 손을 잡아 내리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죽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필요했어요.”

 (네, 네, 그래서 불에 태워도 보고 전기에 구워도 보고 총으로 난사도 해보셨구나, 그러셨구나. 여태 데일리 뷰글이 입 닥치고 있는 게 신기할 지경이네.)

 [이런.]

 “왜?”

 [내 생각에 지금 저 자식이-]

 “더 이상은 누굴 영원히 잃고 싶지 않았거든요.”

 (네? 여러분은 지금, 추측이 확신이 되는 것을 보고 계십니다. 스파이더맨이 미쳤어! 지구가 멸망할 거야! 어서 지구 616을 떠나자, 웨이드 윌슨!)

 [좀 닥쳐봐.]

 “눈 좀 떠줘요, 웨이드. 당신이 내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면, 그래요, 그런 거라면 평생 스파이더맨 마스크를 쓰고 살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제발 눈 좀 떠줘요.”


 한참을 망설이던 데드풀은 자신을 잡고 있던 스파이더맨의 손이 떨어지고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끝난 뒤에야 천천히 눈을 떴고, 낮게 신음했다.


 (저 망할 놈이 우릴 속였어. 마스크를 벗고 있잖아!)

 “스파이더맨이 우리한테 거짓말을 하다니.”

 [세상에 널린 게 거짓말쟁인데 스파이더맨이라고 거짓말을 하지 말란 법은 없지, 안 그래?]


 흥분한 둘과 달리 흰 박스의 느긋한 어조에 성질이 난 데드풀이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금방이라도 닿을 듯 가까이에 서 있던 스파이더맨이 뒤로 물러섰고 눈을 뜨자마자 얼굴로 닿았던 시선을 내렸던 데드풀은 그제야 그의 손에 그러쥐어진 마스크가 잔뜩 구겨진 걸 발견하곤 천천히 시선을 올렸다.


 “아무래도 네가 우릴 심쿵사하게 만들 작정이었던가 본데, 전제부터가 틀렸어, 스파이더맨. 아니, 피터 파커. 난 이미 오래전부터 네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고! 난 그냥, 네가 네 신상을 알면 싫어할 것 같아서-”

 “사랑해요, 웨이드.”

 “뭐?”


 당황한 나머지 아무렇게나 꿍얼거리고 있던 데드풀이 당황해 거의 고함에 가깝게 소리를 치며 뒷걸음질 쳤고, 재빨리 앞으로 걸어가 거리를 좁힌 스파이더맨이 마스크조차 내팽겨 친 채로 그의 팔을 잡아챘다.


 “사랑한다고요! 당신이 그렇게 바라던 말이 이거 아니었어요?”

 (……노란 박스 로그아웃. 할많하않)

 [그럼 나도 로그아웃 해야지. 혼자서 잘 해보라고, 입 달린 용병 데드풀, 웨이드 윌슨씨. 흰 박스 로그아웃.]

 “나만 두고 가는 게 어딨어! 잠깐만, 이것 좀 놓고-”


 비명과도 같은 데드풀의 말은 팔이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끊어졌지만 그대로 뼈라도 으스러뜨릴 양 팔을 움켜잡은 스파이더맨의 손은 풀리지 않았다.


 “스파이더맨, 자기, 그러니까 그 마음은 잘 알겠는데-”

 “왜요, 이제 와서 도망 갈 참인가요? 아니면 마스크를 벗어서 그래요? 스파이더맨은 좋고, 피터 파커는 아니라는 건가요? 그도 아니면 내가 요 며칠간 당신을 죽여서 그래요? 아, 이 단어는 싫다고 그랬죠. 못 살게 해서 그런 가요?”

 “그게 문제가 아니라, 도대체 이 어린 놈이 뭐하다 이렇게 미친 거야? 자기야, 삶이 힘들어? 그럼 상담사를 찾아가. 하다못해 아이언맨이나 캡을 찾아가라고. 아니면 자기 따라다니던 여자애들한테 가던가! 난 아니야, 난 아니라고.”

 “내가 당신을 원한다고요! 이제 와서 발을 뺄 생각은 말아요. 이미 늦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