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시 마니또 피터, 웨이드로
- 신청한 사람을 번호로 분류해서 익명으로 연결해주는 마니또 서비스.
- A의 편지를 서비스 센터에서 받아서 B한테 보내는 식.
- 편지를 받은 사람이 더 이상 답장을 보내고 싶지 않으면 서비스 센터에 거부 의사를 밝히고 그걸 서비스 센터가 상대방에게 알려줌.
- 서로의 주소는 그래서 모름.
낯선 사람에게.
어, 안녕하세요. 아마 처음은 이렇게 시작하는 게 맞겠죠? 하지만 저한텐 더 좋은 문구가 있으니까 그걸로 시작할래요.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입니다!
와, 이렇게 적고 보니까 정말 바보 같네요. 외칠 땐 몰랐는데 적으니까 정말 바보 같아요. 이미 여기서 제 사칭이 넘치고 있는 거 같긴 한데, 뭐,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신대도 상관없어요. 그건 그거 나름대로 장점이 있을 테니까요, 그쵸? 그만큼 절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리고- 여튼 절 사칭한 사람들이 욕 섞인 답장만 받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건 저한테 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거니까요! 아닌가? 여튼, 전 그래요.
그냥 말할 사람이 필요했어요. 사실 제 주변 사람들은 제가 스파이더맨인 걸 모르거든요. 넵, 여러분의 영웅들도 가끔씩은 속을 터놓고 말할 사람이 필요하답니다. 당신이 부디 이 편지를 받고 기뻐했으면 좋겠어요. 하나님, 제발 제 안티나 조나 제임슨만 아니게 해주세요. 설마 이 편지 받고 데일리 뷰글에 제보할 건 아니죠? 그쵸? 그 사람들이라면 제 바보 같은 사진이랑 같이 분명 악의 다분한 기사를 또 내보낼 거라고요…….
이런,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여튼! 그냥 오늘도 어제도 그제도 너무 힘들었어요. 당신도 뉴욕시에 사니까 알잖아요, 이 뉴욕에 제 일거리가 얼마나 많은지 말예요. 솔직히 전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면 그 피로가 다 풀리곤 하는데 그마저도 받기 힘든 때도 많거든요. 안 믿기신다고요? 글쎄, 오늘 가방 찾아준 할머니는 손녀한테 물려줄 가방에 흠집을 냈다고 그 가방으로 절 후들겨 패시더라니까요! 가방에 흠집났다던 분이, 그 가방으로! 제가 흠집을 내고 싶어서 냈습니까, 그걸 들고 튀니까 그걸 잡아채느라 팔을 좀 휘둘렀고, 그게, 음, 제가 나빴네요. 가방 채집용 거미줄이라도 따로 만들어야 겠어요. 그 놈의 소매치기는 왜 그렇게 많은 건지. 뉴욕시에 일자리가 넘친다는 말도 다 옛말인가 봐요, 그쵸? 아니면 너무 박봉이라 그걸로 먹고 살기 힘들던가……. 그거라면 조금이나마 이해를, 하면 안 되죠! 어쨌거나 나쁜 짓이잖아요…….
주말에 친구를 만나러 시내에 나가는 건 꿈도 못 꿔요. 시내에 나갔다 하면 바로 사건이 터지는 통에 늦는 건 양반이고, 만나고서도 별에 별 핑계를 대고 빠져나와야 하니까요. 제 친구들은 제가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 있는 줄 알아요……. 제 대장한테 자유의지라도 있었다간 전 아마 대장이 없는 채로 살아야 했을 거예요.
그리고 숙모도 그래요. 그 놈에 계란은 어찌나 많이 쓰시는지 이틀에 한 번꼴로 계란을 사가야 하는데, 저한텐 그것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깨지는 건 다반사고 안 사갔다간 그 다음날 아침에 뭐가 올라오는지 압니까, 시민분? 네, 그렇습니다. 영국제 콩 통조림입니다. 미국제도 있는데 굳이 영국제를 꺼내주시죠. 굳이, 말이에요……. 차라리 그럼 30개짜리 한 판을 사다놓고 쓰시지, 왜 굳이 12개짜리를 고집하시는지도 의문이에요.
어쨌거나 제 신세한탄은 끝났어요! 오늘로서는 말이에요! 혹시 불쾌하셨다면 죄송해요. 그래도 어디 말할 데가 있어야죠. 숙모한테 사실 제가 스파이더맨이라서 도둑 잡다 깨먹었어요 죄송! 이럴 순 없잖아요. 친구들한테도 마찬가지고요. 너희들도 내가 스파이더맨인 거 알지? 오늘도 이 형이 정의 구현 좀 하다 늦었다, 하하하! 에휴. 여튼 여기까지 읽어줬다면, 정말 고마워요. 답장은, 음, 안 해줘도 음, 실망하진 않을게요. 솔직히 저기에 뭐 답할 게 있겠어요? 그쵸? 심지어 손 편지도 아니고, 타자로 친 에이포 용진데. 하지만 이해 좀 해줘요. 요새는 세상이 무서워서 글씨체만으로도 알아낼 수 있는 게 너무 많거든요. 사실 이건 비밀인데, 이 편지도 저희 집 컴퓨터랑 프린터로 쓴 게 아니랍니다. 그러니까 그걸로 절 잡아낼 생각은 말아요, 셜록 홈즈!
어쨌거나 읽어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좋은 하루 보내요. 당신의 안전은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이 지키니까 걱정 마시고요!
비 오는 어느 봄, 여러분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으로부터.
스파이더맨에게.
흠, 우선 만나서 반가워, 스파이더맨. 네 말대로 네 사칭이 너무 많아서 진짜 넌지 긴가민가하고 있긴 한데 내가 스파이더맨이라고 믿는 한 스파이더맨일 테니 스파이더맨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 그러다보니 답장이 너무 늦어진 거니까 너무 탓하지는 않았으면 해. 진짜 스파이더맨이라면 진짜 잭팟인데, 글쎄, 나한테 그런 행운이? 그건 차차 알아나가기로 하고.
무엇보다도 구슬퍼하고 있을 네 대장에 심심찮은 애도의 말을 보낸다. 그래도 뭐 어쩌겠어, 네 몸에 노동력을 지불하고 세 들어 사는 처지에 그 정도는 이해하겠지. 몸이 안전을 확보해야 대장의 안전도 확보되는 거잖아? 세상엔 못 믿을 놈 천지라고, 스파이더맨의 대장 양반. 당신이 그 정도는 이해하고 양보해야 한다고.
그리고 계란이라, 흠. 숙모한테 계란 배달 서비스에 대해선 말해본 거야? 아니면 온라인 쇼핑은? 요새는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정해진 시간에 문 앞까지 배달해주는데. 계란뿐만 아니라 그냥 모든 식재료가 다 가능하니까 추천해드리도록 해봐. 숙모의 무릎을 희생시켜가면서 장을 봐올 필요는 없는 거잖아? 우린 지금 21세기에 살고 있다고. 망할 20세기나 19세기가 아니라 말이지.
데일리 뷰글은 신경 쓸 필요 없어. 거기에 동조하는 좆 같은 놈들도. 그 놈들은 좆 같은 놈들이라 좆이라서 대가리에 뇌가 없거든. 설마 스파이더맨은 좆 대가리에도 뇌가 있다고 할 참은 아니지? 내가 말한 좆 같은 놈들은 좆같다는 표현의 좆이 아니라 진짜 좆 같아서 좆이라고 한 거거든. 하는 짓이 좆같아서 좆같다는 건 좆 같은 거지 좆인 건 아니잖아, 그러니까 내말은 그 놈들이 좆이라서 좆과 같은 놈들이란 뜻이지.
아, 그리고 고맙단 인사를 안 하고 튀는 놈들, 하. 나도 꽤 많이 겪는 일인데, 그거. 남 일 같지 않아서 말하지만, 그 놈들은 평생 그럴 놈들이야. 네가 아니라 아이언맨이 와도 똑같을 거라고. 자기 챙길 것만 챙기고 튀는, 이기적인 놈들이란 소리지. 타이타닉 호에 있었으면 여자나 아이, 노인 전부 밀쳐내고 구명정 가지고 튀었을 거야. 그것도 구멍 난 구명정으로. 그런 식으로 사는 놈들 중에 잘 되는 놈은 거의 없거든. 뭐, 내가 할 소린 아니지만.
어쨌거나 좀 놀라긴 해도 못 들어줄 신세한탄은 아니었으니까 걱정 말라고. 스파이더맨의 사소한 걱정을 공유하는 건, 나한테도 꽤나 즐거운 일이거든. 그럼 안전한 하루 보내, 스파이더맨. 안전은 나보다는 너한테 필요한 거 같거든.
그럼 다음 이 시간까지, 즐겁게 보내요, 거미 양반.
나가 놀기 좋은 어느 봄, 당신의 고민 상담소 지킴이가.
조금은 덜 낯선 사람에게.
와, 사실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좋은 소식은, 제가 이 편지를 숙모가 발견하기 전에 들고 들어왔다는 거고, 나쁜 소식은, 제가 이 편지 봉투를 들고 방방 뛰다가 숙모한테 걸렸다는 거예요. 숙모가 무슨 편지냐고 묻긴 했는데 대충 무슨 사진 공모전 예선에 통과했다는 편지인 것 같다는 걸로 둘러대고 올라오긴 했지만, 글쎄요, 숙모 눈빛이 그다지 믿는 표정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요새 숙모가 자꾸 누구 없냐고 물으시는데, 없다고요, 숙모! 없어요! 그런 걸 만들 시간도 없다고요! 하나님, 거미들도 새끼를 치는데, 전 왜 여친도 없는 건가요!
여튼 제 불쌍한 대장이 작은 감사의 표시로 보낸 쿠키는 맛있게 먹으셨길 바랄게요. 제 친구한테 배워서 구운 쿠킨데 도대체 그 모양으로 만든 쿠키를 누구한테 자꾸 물어서 둘러대느라 혼났어요. 똥 모양이긴 해도 음,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어요. 혹시 탄 부분 있으면 꼭 떼고 드시고요.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는데 가장자리에 둔 쿠키 몇 개가 조금 탔거든요…….
아, 그리고 그 배달 서비스! 아무렴 제가 숙모께 안 권해봤겠습니까, 선생님……. 근데 인터넷 서비스는 못 믿으시겠다는 거 있죠! 배달원도 못 믿겠대요! 나 참! 문 앞에 두고 가라고 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럼 물건 확인을 못해서 안 된대요! 그럼 제가 있을 때 시간대로 주문하시라고 하려다가, 제가 스파이더맨인 게 떠올라서 입을 다물었죠. 넵, 그렇습니다. 전 그렇게 영원한 계란 셔틀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었습니다……. 옆집만 해도 잘만 주문해서 쓴다고 그렇게 설득을 해봐도 안 된다고 그러시네요. 뭐, 삶이 그렇게 쉽다면 –물론 충분히 쉬워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삶이 삶이 아닌 거겠죠. 애초에 저 글씨를 봐요. 저게 어디 쓰기 쉽냔 말이죠. 균형도 잘 맞춰 써야 모양새가 나오는 글씨라고요……. 겹받침이라니! 삶은 계란이라더니 전 삶도, 계란도 둘 다 지긋지긋해요.
데일리 뷰글이라면 이제 괜찮아요. 뭐, 그거 읽고 즐거워하는 시민분이 있다면 저의 작은 굴욕은 그냥 넘길 수도 있어요, 네, 뭐, 그럴 수도 있죠. 그럴 수도……. 그나저나 한 문단에 좆이란 단어를 얼마나 쓴 거예요? 안 세보셨다면 제가 말씀드리죠! 무려 15개라고요! 15개! 그리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 제 뇌에겐 애석한 일지만 제 음, 그 부분에는 뇌가 없답니다. 그랬다면 아마 삶이 조금은 쉬워졌을지도 모르겠어요. 생각을 할 뇌가 두 개나 되는 거잖아요. 물론, 거기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말이죠. 그리고, 전 스파이더맨이지, 스파이더몬스터가 아니라고요! 거미도 거기엔 뇌가 없어요! 아마도? 아마 그럴 거예요. 현 인류가 아는 한 말이죠…….
그리고 타이타닉이라니! 설마 평소에도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죠? 친구들이 다 도망갈 거예요! 그리고 구멍 난 구명정에서 사람을 구하려면 전 또 개고생을 해야 할 거고요……. 이상하게 사건이 일어나는 곳엔 늘 제가 있더라고요……. 아니면 내가 가는 곳에 사건이 생기나…….
어쨌거나 제 신세한탄이 그렇게 못 들어줄 건 아니라고 하셔서 하는 말인데요, 음, 설마 이게 마지막 편지는 아니겠죠? 여튼. 요새 계속 주변에서 알짱거리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 때문에 안 그래도 터질 것 같은 제 머리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에요. 그 사람은 늘 괜찮다고 하는데, 제 눈엔 그렇게 안 보이거든요. 근데, 각자의 인생은 각자가 알아서 하는 거고, 그리고 그 사람도 성인이고 어쨌거나 그 사람만의 방식이 있는 건데 제 생각만으로 판단해서 함부로 말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놔두기도 그렇고, 그런데 또 끼어들자니 좀 그렇고……. 아, 그렇다고 제가 막 그 사람을 그렇게 신경 쓰는 건 아닌데, 음, 그러니까 그냥 평범한 오지랖이죠, 오지랖. 그거 말곤 설명할 방법이 없어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니까요?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냐면, 사실 이 이야기를 친구 이야기라고 둘러대고 숙모한테 이야기 했더니 숙모가- 아, 여기까지만 말할래요. 더 말하면 제가 너무 슬플 것 같아요.
여튼, 요새는 날이 더워져서 수트를 다른 걸로 바꿔 입어야 할 것 같아요. 문제는, 아침엔 춥고 저녁에 덥다는 건데- 아, 제가 설마 사시사철 똑같은 수트를 입고 다닌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저도 나름 봄, 가을용, 여름용, 겨울용 수트가 따로 있다고요! 물론, 그 전엔 하나로 버티긴 했지만요……. 그리고 제 통장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버리고 말았답니다……. 그래도 웹슈터가 고장 안 나는 게 어디예요……. 그건 한 번 고장 나면 제 통장이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는 걸로는 안 끝날 거예요……. 거미줄은 또 어떻고요. 가끔은 거미줄 비용 아끼려고 집까지 걸어간다니까요……. 사장님, 월급 적어요, 월급 좀 올려주세요, 엉엉엉.
근데 이거 저한테 전달되는 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 걸까요? 사실 날 좋은 봄날을 단서로 추측해보려고 했는데, 요새 날이 하도 오락가락해서 쉽지가 않더라구요.
여하튼, 여러분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은 이것으로 오늘 이야기를 끝내겠습니다! 왜 이렇게 짧냐고 구박마세요. 지금 안 그래도 절 찾는 알람이 마구 울리고 있는 걸 꾹 참고 마무리 짓고 있는 거라고요. 좋은 하루 보내요, 조금은 덜 낯선 양반. 아, 그리고 내 안전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사실 그 소리 듣는 것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라서 조금 감동 받았어요. 다들 제가 천하무적인줄 아는데, 저도 스파이더‘맨’ 이라고요. 사람이란 뜻이죠. 이런, 또 길어져버렸네.
그럼 부디 다음 편지까지 우리 둘 다 무사하길 바라며!
당신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이.
추신. 당신 이름 좀 알려줄 수 있어요? 아니면 우리끼리 부를 호칭이라도? 매번 낯선 사람이라고 쓰긴 좀 그렇잖아요. 부르기에도 좀 그렇고……. 싫으시면 말고요……. 강요하는 건 아니었어요!
뉴욕시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에게.
쿠키는 잘 먹었어. 생각보다 안타서 전부 다 먹어치웠으니까 나대신 네 대장에게 감사 인사 좀 전해줘. 아, 물론 내 대장도 감사 인사를 전해 달라 더라고. 사실, 그 쪽은 그렇게 안녕해 보이지 않지만 말이야. 네 쿠키 탓은 아니고, 고질병이야.
호칭이라. 흠, 애매한 문젠데. 그냥 당신은 어때? 아니면 자기? 여보? 농담이야, 정색하지 말라고. 지난번에 친구한테 이런 농담 쳤다가 개정색 당해서 한동안 우울했거든. 그러니까 정색하지만 말아줘. 키다리 아저씨 정도로 하자. 다정스럽잖아. 그리고 거미한테서 유래된 이름이기도 하고. 스파이더맨과 거미에서 착안한 키다리 아저씨. 잘 어울리지 않아?
삶이 지긋지긋하다니, 이렇게 익숙할 데가 있나. 삶은 계란이지. 먹어 치워서 끝내버려도 껍질이 남는, 그런 거란 말이야. 그래도 네가 남길 껍질에 감사할 사람은 많으니까 지긋지긋하더라도 당장 먹어치울 생각만은 말아줘. 그 감사하는 사람 중 하나가 나이기도 하니까, 아, 그건 상관없으려나. 어쨌거나, 너무 쉬운 게임은 금세 질리듯, 삶이 너무 쉬웠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문제였을 거야, 안 그래?
그래서 30개들이 계란을 안 사시는 이유는 뭐래? 그건 말 안 해준 거 같은데.
흠. 내가 좆이란 단어를 15번이나 썼다고? 그리고 우리 스파이더맨은 그 좆이란 단어를 일일이 셌고 말이지? 흠.
타이타닉은 남극인가 북극인가 여튼 뉴욕시 밖에서 사단이 났고, 타이타닉 티켓 값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네가 무슨 수로 거기에 있게? 네 통장 사망한 거 아니었어? 아니면 설마 스파이더맨은 도박도 잘하나? 그 영화 남주처럼 도박으로 티켓이라도 따서 들어갈 참이야? 어쨌거나. 세상 모든 사람을 네가 구할 수는 없어, 스파이더맨. 그리고 모든 생명은 평등하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움이 더, 필요한 사람은 있기 마련이지. 사람들을 밀치고 구명정에 올라탈 정도의 악바리면 구명정에 구멍이 나도 살았을 거야. 네가 구해줄 필요는 없었을 거라고.
아. 그리고 친구. 애초에 난 친구도 별로 없거니와 겨우 그 정도 소리를 듣고 달아날 친구도 없는 처지라서.
니가 말을 줄이지 않아도 네 숙모가 뭐라고 했을지는 알겠다. 그건, 바로 사랑이란다, 스파이더맨. 뭐 비슷한 말을 했겠지. 아마 그래서 계속 누구 없냐고 하는 걸 테고. 뭐, 네가 뭐라고 설명하건 네 숙모는 그렇게 생각할 걸. 나야 네가 스파이더맨인 걸 아니까 그냥 평범한 오지랖이라고 납득하고 있지만 말이야. 흠. 어려운 문젠데. 그냥 내버려 둬. 네가 그냥 내버려둬도, 혹은 기를 쓰고 노력을 해도, 갈 사람은 가고, 살 사람은 살고, 죽을 사람은 죽는 법이거든. 적어도 내 친구 말론 그래. -내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난데 그 쪽이라며 아주 믿을만한 친구지.- 나이가 몇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스파이더맨에게 그런 고민을 안기다니, 못 미더운 친구인가 보지? 여튼, 내 조언은 그거야. 그냥 내버려두고 네 할 일을 하면서 곁에 있어줘. 어쩌면 그게 가장 좋은 대처법일 수도 있거든. 네가 하는 모든 일 –그게 얼마나 놀라운 일이건 간에 말이지- 에 대한 보상은 감사하단 인사 하나로 충분하다고 했던 거나, 내 작은 말에 네가 감동받았던 걸 생각해보면, 그 사람한텐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수도 있어.
그리고 수트, 흠. 전혀 모르겠던데. 난 또 네가 똑같은 수트 여러 벌로 돌려 입는 줄 알았지. 근데 계절별로 하나씩이라니. 도대체 세탁은 해 입는 거야? 한 해에 한 번씩 하나? 어쩐지 스파이더맨이 간 곳엔 그 체취가 남는다는 말이 나돌더니, 그게 거짓말은 아니었구만. 깨끗하게 좀 살아, 거미양반. 사냥꾼한테 체취가 있으면 사냥감들이 다 도망간다고. 100미터 밖에서도 맡을 악취가 알람이 되는 수가 있다고.
네가 내 편지에 바로 답장해서 보냈다는 걸 전제로 추측해 보건데 대충 2주 정도 소요되는 거 같은데, 글쎄.
아, 그리고 같이 동봉한 수표는 부디 좋은 곳에 써달라고. 가령 네 계절별로 하나뿐인 수트를 두 벌씩으로 늘린다던가. 키다리 아저씨란 호칭을 가지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다시 반송하면 앞으로 이 고민 상담소는 영영 열리지 않을 거고, 난, 아주, 아주, 아주, 많이 슬퍼지겠지.
그럼 다음엔 깨끗한 수트로 뉴욕시에 나타나줘, 스파이더맨.
너의 키다리 아저씨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