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풀 악몽으로.
- 피터 죽고 자살 반복하는 걸로.
- 쓰면서 들은 노래.
01.
너도 알다시피 난 친구가 없어.
02.
인형은 늘 그렇듯 말이 없었다. 뽀얗게 먼지가 앉은 커피 테이블 위엔 온갖 히어로 만화책들이 널부러져 있었고, 다 먹은 인스턴트 식품 포장지들은 바닥을 뒤덮고 있었지만, 그에겐 잔소리를 할 엄마도, 괜찮다 편 들어줄 아빠도 더 이상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젠가는 그 둘 중 누군가가 나타날 지도 모른다는 소망을 버리지 못한 채 자신의 오랜 영웅을 본따 만든 인형을 끌어안은 채 소파 깊숙이로 몸을 묻었다.
03.
그래, 나도 알아. 엄마도 아빠도 없다는 것 정도는. 그래도 이건 꿈이잖아, 안 그래? 그 정도는 바라도 되는 거 아닐까? 꿈인데? 빌어먹을 꿈 정도는 내 마음대로 해줘도 되는 거 아니냐고!
04.
손에서 뭉개진 인형이 보스락대다 이내 찢어져 나갔고, 그는 튿어진 천 사이로 비어져 나온 솜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자 쏟아져 나오려는 울음을 삼키며 인형을 다시 품에 안았다.
05.
네가 보고 싶어.
06.
인형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솜을 흠뻑 적신 액체는 그의 손을 타고 흘러내려가기 시작했고, 종내엔 거실 카페트를, 그리고 바닥을 메우고 천천히 그의 발끝을 향해 차오르고 있었다.
07.
네 목소리를 듣고 싶고, 네 웃음을, 네 눈을 보고 싶어.
08.
막 붉은 액체가 발끝에 닿으려는 찰나 소파 위로 발을 끌어올린 그는, 여전히 말없이 그의 품에 안겨있는 인형에 코를 묻었다. 처음엔 희미하게만 느껴지던 비릿한 향내는 점차 그의 코를 뭉갤 듯이 그의 후각을 자극하기 시작했고, 온통 붉게 변한 세상 속에서 두 눈을 감았다 뜬 그는, 익숙한 천장과 익숙한 난장판에 헛웃음을 지으며 여전히 자신의 손 안에서 그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총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겨누었다.
09.
그러니, 단 한 순간만이라도, 그게 비록 빌어먹을 꿈속의 환상에 불과하더라도 널 볼 수 있기를.
10.
인형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