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아메리카'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5.10.05 시빌워 이전의 아마도 슈퍼팸? 비스무리 한 걸로.
  2. 2015.09.30 스파이디가 없는 뉴욕.

- 시빌워 이전으로 피터가 왜 아이언맨 편을 들었는가를 그냥 얼티밋 세계관 배경으로 지껄여봄.

- 캐붕, 세계관 시망 주의

- 노바랑 트랩스터는 얼티밋에 나오는 애들.


[다음 소식입니다. 오늘 오후, 메인 스트릿에서 강도를 당한 여성이 거리에 쓰러지고도 10여분간이나 방치되었던 사건이 있었던 곳에 저희 리포터가 나가 있는데요, 제인?]

[.]

[정말로, 대낮에, 그것도 대로변에서 여성이 강도를 당하는 동안은 물론, 그 여성이 쓰러지고 스파이더맨이 나타날 때까지 그 누구도 아무런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 안타깝게도 이 모든 게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근방을 지났던 시민들은 모두 곧 스파이더맨이 나타나 해결해줄 거라 믿고 그냥 지나쳤다고 증언했는데요-]

젠장!”

, 말조심 해야지.”

 

리포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실 벽면을 가득 메운 텔레비전의 전원을 끄고 리모컨을 던진 피터가 몸부림을 치며 욕설을 내뱉은 뒤 소파 위로 늘어졌고, 소파 근처의 안락의자에 앉아 스케치북에 한창 그림을 그리던 스티브가 피터의 욕설을 듣고는 바로 피터의 언행을 지적했다.

 

하지만, . 저걸 보고도 어떻게 욕을 안 할 수가 있어요? 저게 말이나 돼요? 제가 올 걸 알아서 신고를 안 했다니? 제가 몸이 여러 개도 아니고, 전 그 때 거기서 5마일은 떨어진 데서 은행 털던 트랩스터를 잡고 있었다고요. 도대체 내가 언제 올 줄 알고 저러고 있었느냔 말이에요, 제 말은.”

, 늘 말하지만 저들은 우리보다 약하고, 우린 저들을 도울 의무가 있어.”

, 너무 약해서 핸드폰 숫자 버튼 누를 힘도 없었나 보죠?”

스파이더맨.”

 

피터와 말을 주고받으면서도 연필을 놓지 않았던 스티브가 피터의 비아냥거림에 스케치북을 접으며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고, 스티브가 무어라 말을 잇기도 전에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문으로 이동한 피터가 얼굴도 보지 않은 채로 외치며 사라졌다.

 

잠깐 나갔다 올게요.”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내내 음료 바 뒤에서 사태를 관망하던 토니가 음료 두 잔을 들고 와 스티브에게 건네며 말했다.

 

적어도 창문 깨고 나가진 않았네, 안 그래?”

토니.”

? , 나도 당신한테 늘 이야기 하지만, 당신은 저 애한테 지나치게 엄격해. 쟬 보라고, 당신이 지난번에 창문을 깨고 나가는 거나, 창문을 열고 창밖으로 뛰어내리는 거에 대해 잔소리 한 뒤로 쟤가 창문을 통해서 나가는 거 봤어? 내가 그렇게 창문 값을 운운해도 내 계좌나 운운하던 녀석이 말이지.”

 

피식 웃은 토니는 잔을 흔들어 얼음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즐기다가 스티브가 여전히 선 채로 피터가 나간 문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곤 한숨을 내쉬었고, 토니의 한숨 소리에 시선을 돌린 스티브가 토니의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토니, 저 아이는 어쩌면 우리보다 더 나은 히어로가 될 수 있을 지도 모르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에게 있어선 가정이 아니라 확신에 가까운 일이란 말일세. 알다시피, 내겐 혈청으로 얻은 힘과 도덕심, 그리고 군인으로서의 책임감이 있지. 하지만 난 자네만한 두뇌는 없어. 반면 자네는 그 모든 수완과 머리가 있는 대신…….”

 

거기까지 말한 스티브가 더 이상 말 잇기를 망설이자 어깨를 으쓱인 토니가 여전히 한 입도 비워지지 않은 스티브의 잔에 자신의 잔을 맞부딪혀 건배를 하곤 장난스러운 어조로 그를 대신해 말을 이었다.

 

도덕심이 결여되어 있단 소리를 하고 싶은 거야, 책임감이 결여되어 있단 소릴 하고 싶은 거야? 그도 아니면, 효율성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때때로 인간성을 잃는다는 소리를 하고 싶은 거야?”

 

여전히 장난스럽게 올라간 토니의 입 꼬리를 한참 응시하다 한숨을 내쉰 스티브가 더미가 가져온 쟁반 위에 자신의 잔을 올려놓은 뒤 소파에 깊숙이 기대어 앉았고, 어느 새 자신의 잔은 모조리 비운 토니가, 스티브가 비우지 않은 잔을 들어 마시기 시작했다.

 

오해는 말게. 내 말은 저 아이는 우리 둘 모두의 장점만을 가지고 있단 소리를 하고 싶었던 거니까.”

, 그래서 그 히어로계의 미래를 이끌 아이를 직접 지도 하시겠다?”

그게 앞선 세대의 의무가 아니겠나. 본인들이 한 실수를 후대가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거 말일세.”

 

스티브가 말하는 동안 자신의 잔을 모조리 비운 토니가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 더미의 쟁반 위에 잔을 올리곤 더미의 머리쯤으로 생각하는 부분을 쓰다듬으며 그에게 말했다.

 

. 아니, 스티브. 애들은 원래 어른들이 그렇게 안달복달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커. 그게 걔네들이 제일 잘 하는 거라고. 더군더나 그게 우리 스파이더맨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 스티브, 왜 매번 자네 화분은 매번 죽는데, 자네가 그렇게 물 좀 주라고 닦달하는 내 화분은 멀쩡한 줄 알아?”

 

자리에서 일어난 토니는 더미가 느리게 쟁반을 들고 움직이는 모양새를 잠시 지켜보다가 창문가에 놓여진, 잎이 누렇게 뜬 스티브의 화분을 들어 커피 테이블 위로 올렸고, 토니가 하는 모양새를 가만히 지켜보던 스티브는, 대뜸 토니가 식물 줄기를 뭉텅이로 잡아 화분에서 뽑자 신음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화내지 마. 얜 어차피 죽을 거였으니까. 이 뿌리 보여, 스팁?”

토니.”

 

지나치게 많은 물, 그러니까, 지나치게 많은 관심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어. 그것만 알아두라고.”

 

말을 마친 토니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기가 무섭게 아까부터 아슬아슬하게 쟁반을 들고 가던 더미가 쟁반을 놓친 듯 음료 바 근처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고, 한숨을 내쉰 토니가 뽑힌 식물을 대충 테이블 위로 던져둔 채 소파를 뛰어넘어 더미에게 잔소리를 퍼붓는 소리를 듣던 스티브의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밤을 맞은 뉴욕의 시내는 고요했다. 간간히 거리를 오가는 택시나 있으나마나 한 거리의 가로등을 제외한다면 어느 빛도, 소음도 들리지 않는 거리를 내려다보던 피터는 한숨을 내쉬며 시계탑의 둥근 돔에 기대어 드러누웠다가 12시를 알리는 종소리에 머리가 울릴 지경에 이르자 도무지 맘 편히 머물 곳이 없다고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때, 그의 눈앞으로 빛 한 줄기가 시야를 어지럽히며 날아들었다.

 

어우, 우리 모지리 거미 소년이 또 청승을 떨고 있구만!”

그러는 깡통 머리는 통금시간 안 지났냐? 외출 금지령이 그리웠나 보지?”

허락 받고 나온 거거든? 너야말로 큰 일 났어, 거미대가리. 캡이 너 좀 찾아오라고 해서 나온 참이었다고.”

아오오오오오오오.”

 

노바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피터가 비명을 지르자 잠시 뒤로 물러나 귀를 막았던 노바는 헬맷 위로 귀를 막아봤자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는 몸을 늘어뜨렸다가 피터의 비명이 끝난 후에 그의 곁으로 다가가 어깨를 다독였고, 잠시 노바의 다독거림을 받고 있던 피터가 몸을 홱 돌리며 노바에게 물었다.

 

내 생각엔 캡이 날 싫어하는 게 분명해.”

, 내 생각도 그래.”

?”

 

당연히 부정할 거라 생각했던 노바가 너무나도 쉽게 수긍하자 어이가 없어진 피터가 할 말을 잃은 채 노바를 쳐다보았지만, 노바는 그저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애초에 이건 노동법 위반이라고! 난 아직 미성년잔데 밤까지 일하잖아.”

그럼, 그럼. 그렇고말고.”

니들이 사고 쳤을 땐 그저 위로나 하고 격려나 하면서 내가 실수하면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거리고!”

내 생각에 그건 캡이 우릴 안 갈궈도 닉 퓨리가 우릴 갈궈서인 거 같기는 한데, 뭐 굳이 따지자면 그렇지.”

창문으로 나가는 게 어때서! 애초에 난 스파이더맨이라고! 엘리베이터를 탈 필요가 없단 말이야! 캡이 너더러도 창문으로 나가지 말래?”

아니.”

아우우우우우우우.”

 

또 다시 피터가 짜증 섞인 비명을 내지르자 그제껏 피터의 곁에 바짝 다가서 있던 노바가 한걸음 뒤로 물러났고, 한참이나 비명을 지르던 피터는 다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여전히 서 있는 노바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근데 니가 오늘따라 이상하게 친절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내 착각이지?”

당연히 아니지. 아이언맨이 널 달래서 데려오면 나한테 2시간 동안 스타크사 제트팩을 타게 해준댔거든.”

제트팩을?!”

 

제트팩이란 단어에 피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자 입꼬리를 한껏 올린 노바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또 다시 이어질 피터의 비명에 대비해 헬맷 안으로 손을 넣어 귀를 막았다. 하지만, 그런 노바의 수고가 우습게도 어디선가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고, 여전히 귀를 막은 채 불길이 치솟은 방향을 쳐다보고 있는 노바를 흘깃 쳐다본 피터는 그대로 시계탑 아래로 뛰어내렸다.

불길이 치솟은 곳은 시 외곽에 위치한 꽤나 큰 고아원이었고, 순식간에 건물 앞에 당도한 피터가 소방차가 올 시간을 계산할 생각조차 못한 채로 불이 번진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고 얼결에 야밤에 일을 하게 된 노바가 한숨을 내쉰 뒤 피터의 뒤를 따랐다. 다행히 원장이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었던 듯, 제대로 갖춰진 소방 시설 덕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고아원 직원들의 인솔 하에 이미 대피 중이었고, 나오지 못한 아이들은 피터와 노바가 모조리 데리고 나왔을 때 쯤 도착한 소방차가 불길을 잡아 다행히 옆 건물로 번지는 불상사만은 막을 수 있었다. 잠에 취한 아이들은 칭얼거리다가 스파이더맨과 노바를 알아보곤 모여들었고, 예상치 못한 환대에 그 둘이 머쓱해하면서도 아이들의 시선에 맞춰 쭈그려 앉은 채 아이들을 달래는 모습을 쳐다보던 소방관 하나가 혀를 찼다.

 

이러니, 다들 신고할 생각도 않지.”

 

소방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피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고, 뒤늦게 분위기를 파악한 노바가 헬맷 위를 긁적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날카로운 피터의 어조에 노바가 그의 팔을 붙잡았고, 혀를 찼던 소방관의 동료가 그 소방관을 만류했지만, 동료의 팔을 뿌리친 소방관이 오히려 피터의 앞으로 다가서며 말을 받았다.

 

아니, , 내가 틀린 말 했나. 자네들이 이렇게 공권력을 무시하고 나대니까, 다들 신고할 생각은 않고 아무런 의무감도, 책임감도 없는 자네들이 올 거에만 기대는 게 아니냐고. 자네들과 달리 우리는 이 뉴욕시의 시민들을 구하겠다고 정당한 절차를 걸치고, 시험을 봐서 이 자리에 온 사람들이야. 우린, 소위 히어로라 불리는 자네들이 이 도시에서 영웅 노릇을 하기도 전부터 이 사람들을 구하던 사람들이라고. 근데 우리가 하면 당연한 일이고, 히어로가 하면 환호할 일이라는 게 말이 되냔 소리냔 걸세. 우리가 구하지 못한 사람은 우리가 무책임해서고, 자네들이 구하지 못한 사람은 단순히 운이 없는 사람이 되는 이 행태가 말이 되냐는 거지.”

의무감이 없다고요? 책임감이 없다고요? 그럼 당신 말대로 의무감도 없고 책임감도 없고 정당한 지위조차 갖지 못한 우리에게 시민들이 기대게 만든 당신들은요? 그리고 그런 사람만 믿고 신고를 할 의무감도 책임감도 없는 시민들에 대해선 또 뭐라고 비난하실 참이신가요?”

 

노바는 피터가 뿌리친 자신의 팔을 등 뒤로 돌려 뒷짐을 졌다가 사라졌고, 점점 험악해져 가는 분위기에 칭얼거리기 시작한 아이들을, 직원들이 달래기 시작했다.

 

젊은 친구, 내 말은 자네가 진정으로 이 시민들을 돕고, 구하고 싶다면 절차를 걸치란 말일세. 지금처럼, 소속 불명에 정부가 인정하는지 안 하는지 제대로 의견 표명조차 안 한 그런 오합지졸에 속한 채로 공권력을 무시하는 걸로 자네 힘을 과시하려는 게 아니라면 말이야. , 내 할아버지도 소방관이었고, 내 아버지도 소방관이었어. 두 분 다 화재에서 사람을 구해내다 돌아가셨고. 그 두 분 다 뉴스에서 한 번씩 나오는 소위 영웅들이 받는 환호도, 하잘 것 없어 보이는 묘비 위 화환도 못 받았단 말일세. 그래도 난 상관없었네. 그게 그 두 분이 바란 거였으니까. 공치사고 뭐고 필요 없이 사람을 구하는 거 말이야. 난 그 두 사람을 보면서 자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 일을 꿈꿨어. 이 차를 탈 때면 언제나 내가 제시간에 도착해 사람들을 구하길 바랐다고. 근데, 오늘 일은-”

그걸 이 젊은 친구에게 책임을 물어선 안 되죠, 제임스 프랭클린씨.”

 

소음과 함께 나타난 토니가 아머를 착륙시키곤 피터의 어깨에 팔을 얹었고, 잔뜩 경직된 피터의 어깨에 아머 안에서 남모래 한숨을 내쉰 토니가 말을 이었다.

 

개인 신상이라 제가 여기서 일일이 이야기할 수 없지만, 책임감이라면 이 친구도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거든요. 소방서와 경찰서 홍보를 맡고 있는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에 필적할 친구라고요, 이 친구가.”

 

가벼운 어조로 말을 이은 토니가 피터의 어깨를 다독인 뒤,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소방관을 향해 말했다.

 

그리고 그, 캡틴 아메리카가 자기 후계자로 삼고 싶다고 한 친구란 말입니다.”

?”

뭘 그리 놀라. 그럼 그 캡틴이 너한테 눈에 안 차는 며느리 시집살이 시키는 시어머니마냥 구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했어?”

그거야 절 싫어해서…….”

, 스파이더맨, 니가 아직 스팁을 모르나 본데, 그 양반은 자기가 싫어하는 인간을 눈앞에 두고 그런 눈을 하진 않는다고. 내가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말이야-”

토니.”

. 우리 중요한 이야기 하고 있었지. 어쨌거나 제임스씨, 아마 업무가 너무 많아서 이 친구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를 모르나본데, 이 기회에 여기 계신 모두에게 알려드리죠. 이 친구 캐치프레이즈가 바로 뉴욕시의 친근한 이웃스파이더맨이라고요. 뉴욕시의 강력한 영웅이 아니라 말이죠. 뉴욕에 사는 어느 이웃이 이 친구처럼 자기 시간을 할애하고 힘을 소비해가면서 다른 이웃을 돕던가요? 안 그래요? 그리고, 이웃이 이웃을 돕겠다는데 정당한 절차와 시험이라.”

 

말끝을 늘인 토니는 이제는 얼굴 위로 당혹감이 가득한 소방관의 얼굴을 보곤 내내 피터의 어깨에 올라가 있던 팔을 들어 피터의 등을 밀었고, 당황한 피터가 뒤를 돌아보자 어깨를 으쓱인 뒤 귀찮은 듯 손짓을 해보였다.

 

, 친근한 이웃이 이웃집 아저씨한테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한껏 표현한 것에 대한 사죄나 좀 해, 스파이더맨.”

 

토니의 말이 끝나고도 한참이나 애절한 눈빛으로 토니를 쳐다보던 피터는 뒤늦게 마스크를 쓴 탓에 그가 자신의 눈빛을 볼 수 있을 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곤 고개를 숙인 채 우물쭈물거리며 소방관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자신의 앞으로 불쑥 내밀어진 손에 놀란 피터가 고개를 들었을 땐, 멋쩍은 표정을 한 중년 사내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냥 이래저래 답답했던 차에 자네한테 몹쓸 소리만 늘어놓은 것 같구만. 미안하네.”

,아니, 스파이디?”

……저도 다짜고짜 달려들어서 죄송했어요, 프랭클린씨.”

제임스, 그냥 제임스라고 부르게. 친근한 이웃이라면서 프랭클린은 친근과는 거리가 좀 먼 거 같구만.”

 

피식 웃은 피터가 두터운 방화 장갑이 벗겨진 그의 손을 마주 잡았고, 아머를 낀 채 박수를 친 토니가 이젠 완전히 잠에서 깬 채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꼬마들을 향해 한껏 팔을 벌리곤 외쳤다.

 

, 이렇게 어메이징한 아이언맨이 스펙타큘러하게 사건을 해결했습니다, 여러분! 아이언맨이랑 하늘 날아볼 사람? , 노바도 자원한다고? 좋지!”

 

얼결에 토니에게 휘말린 노바가 토니가 반강제로 안긴 아이를 안고 날아올랐고, 또 다시 출동신고를 받고 출발한 소방차를 배웅한 피터가 토니의 곁에 서며 작게 속삭였다.

 

진짜로 노바한테 제트팩 2시간 이용권을 주신 거예요?”

 

피터의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던 토니는 두 팔을 벌리고 달려드는 꼬마 중 하나를 피터의 품에 안겼고, 얼결에 아이를 받아든 피터는, 아머를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아머 아래에서 분명히 짓고 있을 토니의 의기양양한 표정을 본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피터의 질문을 뒤로 한 채로 꼬마 중 하나를 안아 든 토니가 피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가 자신의 품에 안겨 기대에 찬 꼬마에게 말했다.

 

, 오늘 사건을 해결한 건 누구라고?”

어메이징 아이언맨!”

똑똑한 친구네. 그러면 두 번째 문제! 오늘 상으로 제트팩을 타야하는 건 누굴까요?”

아이언맨!”

봤지?”

 

아머의 전면 커버를 들어 올리자 드러난 토니의 얼굴엔 피터가 상상한 그대로 의기양양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고,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던 피터는 불현 듯 무언가가 떠오른 듯 막 날아오른 아이어맨을 향해 웹슈터를 쏘며 외쳤다.

 

잠깐만요! 어메이징이랑 스펙타큘러는 제 거라고요! 스타크사 사장이 저작권도 무시할 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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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pideypool
:

 그가 사라진 날이 정확히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뉴욕 시민에게 때가 되면 내려쬐는 햇볕이나, 신경 쓰지 않아도 불어오는 바람과도 같은, 그저 일상 같은 존재였기에, 그 누구도 그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려 들지 않았고, 그랬기에, 그가 사라진 것을 알아챈 것은, 그의 흔적조차 찾기 힘든 때에 이르러서였다. 사람들은 스파이더맨을 부르짖으며 고함치는 J.J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어렴풋이 그의 빈자리를 느꼈다가, 평소라면 스파이더맨의 등장으로 시작했을 뉴스들이, 빌런들에게 털린 은행들에 관한 것들이나, 소매치기를 쫓다가 사고를 당한 일반 시민의 것들로 바뀌고 나서부터는 그들이 아무렇지 않게 여겼던 그 존재가 얼마나 많은 일들을 감당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그리고 그가 나타나기 이전의 뉴욕이 얼마나 시끄러운 동네였는지에 대해 뒤늦게 깨닫기 시작했다. 더 이상 뉴욕의 늦은 저녁거리를 쏘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사건 사고에 몸을 떨며 여전히 큰 사건에만 고개를 내밀곤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는 어벤져스에 진절머리를 느끼기 시작했고, 어벤져스에 들어오라는 제의도 거절한 채 뉴욕의 건물 숲을 쏘다니던 스파이더맨을 그저 소일거리를 하는 괴짜 청년 정도로 생각하고 있던 어벤져스의 일원들도, 뉴욕의 늘어가는 범죄에 대한 화살이 자신들에게 돌아오고 나서는 그 청년이 그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는 어느 날 불쑥 나타났다가 나타났던 때만큼 불쑥 사라진 이 영웅을 찾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녔지만, 유독 개인 신상에 예민했던 이 청년을 인구수만 800만을 넘기는 뉴욕에서 찾기란 사막에서 잃어버린 바늘을 찾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계속되는 요청에도 그의 신상을 가지고 있을 법도 한 닉 퓨리는 개인 사정에 의한 휴직이나 마찬가지라며 입을 굳게 닫고 있었고, 한동안 바쁘게 데이터베이스를 돌리며 그를 찾는 것처럼 보이던 토니 스타크마저도 어느 순간부터는 두 손을 놓은 채 어벤져스 일원들의 질문에 어깨를 으쓱이며 닉 퓨리와 똑같은 대답으로 일관하다가, 마침내 중요한 출국을 앞두고 공항에서 벌어진 시위에 성이 난 캡틴 아메리카가 사무실로 찾아와 그의 책상에 방패를 메다꽂고 나서야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말했잖아, 개인사정이라고.]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질 힘이 있는 영웅이, 고작 개인사정 때문에 이 사태를 만든다고?]

 [캡, 당신은 그게 문제야. 당신은 대의만 생각하잖아, 안 그래?]


 신랄한 어조로 말을 받은 토니 스타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책상에 박힌 방패를 뽑으려다 아무리 애를 써도 방패가 꿈적도 하지 않자, 신경질적으로 방패를 툭 치고는 다시 의자에 앉으며 책상 위로 튄 파편을 바닥으로 쓸어냈다.


 [이게 얼마짜리 책상인지 알아? 이 대리석은, 내가 직접 이탈리아까지 가서 공수해온 거라고. 당신 방패는 또 어떻고? 그래, 물론 이런 거 가지고 기스 같은 게 날 리야 없겠지. 그래도 가격을 듣고 나면 이렇게 휘두르진 못할 걸.]

 [토니,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내 질문에 답이나 하게. 스파이더맨은 지금 어디 있나?]

 [그렇게 알고 싶으시다면, 어디에 있는지 쯤이야 대답 못할 것도 없지. 그래, 지금 이 시간쯤이면 묘지에 있겠네. 걔도 참 성실한 게 매일 이 시간이면 파이나 유기농 달걀 따위나 사들고 꼬박꼬박 거기로 출근한단 말이야. 성실한 걸로 치면 당신 뺨을 칠 걸. 마트 들릴 시간에 먹지도 않을 달걀이 미어터지는 냉장고나 정리할 것이지.]


 뜻밖의 말에 캡틴 아메리카가 입을 다문 사이 책상 위로 튀어있던 파편들을 다 쓸어낸 토니 스타크는 책상 위에 방패가 박혀있는 것도 꽤 괜찮겠다고 중얼거리곤 의자를 뒤로 젖힌 뒤 책상 위로 다리를 얹은 채 거의 반쯤 드러눕다시피한 자세로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서 있는 캡틴 아메리카를 올려다보곤 말을 이었다.


 [말했잖아. 개인 사정이라고.]

 [그래도 이건 너무 길지 않나. 벌써 6개월이 넘었네.]

 [오, 캡치고 세심한데? 6개월이 넘은 건 또 어떻게 알았대? 다들 대충 4,5개월 되었겠지, 하던데.]

 [토니. 그 친구에게 관심이 있던 건 자네뿐만이 아닐세. 요즘 아이 치고는-]

 [보기 드문 심성을 가진 애라고? 알아, 귀가 닳도록 들었다고. 애초에 걜 어벤져스에 넣자고 한 것도 당신이잖아. 그럼 관심 좀 더 가져주지 그랬어. 실제로 걔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얼마나 어린지, 혹은, 걔가 어디에 사는지, 걔 첫사랑이 어떻게 죽었는지, 걔네 부모는 어떻게 죽었는지, 아니면 적어도.]


 순식간에 말을 쏟아낸 토니 스타크는 거기서 말을 멈췄고, 무언가 말을 더 쏟아낼 거라고 생각했던 캡틴 아메리카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 비단 당신 탓만은 아니겠지. 그걸 다 알고서도 이 사태가 벌어지도록 내버려둔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거기까지 말을 이은 토니 스타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에 일어나 여전히 미동조차 않는 방패로 시선을 주었다가 자신을 따라 움직인 캡틴 아메리카의 시선을 마주한 뒤 자신을 붙잡으려는 그의 손을 조심스럽게 뿌리친 채 사무실 문을 열은 뒤 고갯짓으로 나가라는 시늉을 해 보였고, 한숨을 내쉰 캡틴 아메리카가 책상에서 방패를 뽑고 문을 나서려는 순간 한참을 망설이던 토니 스타크가 그를 붙잡았다.


 [걔 부모님은 국가 일을 하다가 죽었어. 걔가 그걸 아는지 모르는 지야 나도 모르지만.]

 [뭐라고 했나?]

 [그리고 걔 삼촌은, 강도를 잡으려다 강도 총에 맞아 죽었고.]

 […….]

 [걔 첫사랑네 아버지는 고블린 손에 죽었고, 그 덕에 걘 첫사랑한테 자기가 스파이더맨인 걸 영원히 말하지 못했지. 아마 앞으로도 못할 걸?]


 말하는 내용과 달리 우스꽝스럽게 입 꼬리를 잔뜩 올린 토니 스타크를 빤히 쳐다보던 캡틴 아메리카는 잠시간 침묵이 흐른 뒤에야 토니 스타크가 자신의 질문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용히 물었다.


 [……왜지?]

 [걔 첫사랑도 고블린 손에 죽었거든. 말할래야 말할 수 있기는 한데 그건 묘비 앞에서나 가능하겠지. 근데 이를 어쩌나, 죽은 자는 말이 없는데. 이젠 영원히 그 첫사랑에게 말하지 못했던 거에 대해서, 혹은 말했어야만 했던 것에 대해서 답을 얻지 못할 테니, 영영 그 죄책감을 덜긴 글렀지.]

 [그럼 스파이더맨이 나타나지 않은 건-]

 [오, 내가 이걸 말하는 걸 깜빡했구나. 그건 좀 오래된 일이야. 그러니까 이번에 잠수 탄 건 그거 때문은 아니지.]

 [토니, 지금 날 놀리려는 거라면 그만두는 게 좋을 걸세. 알다시피 최근의 일로-]

 [피곤하겠지. 몹시. 근데 걔는 오래전부터 피곤하던 애야. 걔가 세심하게 여길 살피는 동안, 우리 홈그라운드를 홀로 지키는 동안 우리가 여기에 너무 무심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캡? 당신이나 나는 성인이기라도 하지, 걔는 망할 10대라고. 선생들이 내준 과제나, 시시껄렁한 연애 고민이 다여야 할, 그런 10대. 그런데도 걔는 부모가 없는 상태에서 자기 아버지나 마찬가지인 사람을 잃고, 자기 첫사랑이 스파이더맨 때문에 자기 아버지가 죽었다고 원망하던 와중에 그 첫사랑마저도 자기 싸움에 휘말려 죽은 그 상황에서 싸워왔다고. 그런 애가 갑자기 펑, 하고 사라졌어.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아, 캡? 그 모든 상황에서 버텨온 애가 갑자기 잠수를 타고 그토록 정성들여 돌보던 뉴욕 시민들의! 친절한 이웃이 되는 걸 관뒀다고. 저 망할 미디어가, 그리고 그 망할 미디어 신봉자들이, 자기한테 뭐라고 하건 신경조차 쓰지 않고 그저 선하고 친절한 이웃일 수 있으면 그걸로 됐다고 하던 그, 애가 사라졌단 말이야.]


 열린 문으로 새어나간 고함에 밖에 지나가던 직원 몇이 술렁이기 시작했고, 문 바로 앞에 앉아있던 비서가 대충 상황을 짐작하고는 층을 비우는 동안 눈을 감은 채 숨을 고르던 토니 스타크는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선 캡틴 아메리카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다들 그 애를 찾아서 다시 일 시킬 생각만 하지, 그 애가 도대체 무슨 사정으로 갑자기 사라졌는지 걱정은 하지도 않지, 안 그래? 도덕심이라면 따를 자가 없다는 당신조차도 책임 운운하고 있는 마당에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


 문손잡이를 잡고 있던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린 토니 스타크가 한숨을 내쉬었고, 손에 들고 있던 방패를 등 뒤로 꽂은 캡틴 아메리카가 열려있던 문을 조용히 닫았다. 한참동안 캡틴 아메리카의 가슴에 박힌 성조기 별들을 쳐다보던 토니 스타크가 입을 연 건, 침묵에 지친 캡틴 아메리카가 더 이상 답 듣기를 포기하고 다시 문고리에 손을 올렸을 때였다.


 [한 육 개월 정도 전에 페이스북이며 유튭에서 난리난 동영상이 하나 있지. 그 중 하나는 그 날 뉴스 마지막에도 나왔을 걸? 물론 그 날 뉴스도 처음이야 거미줄에 둘둘 말린 소매치기로 시작했지만 말이야.]

 [뜬금없이 그건 또……]

 [한 노친네가 길거리에서 건달 서넛에 둘러싸여서 실갱이를 벌이다가 건달 주먹에 잘못 맞아죽는 거였는데, 본 적 없나봐? 뭐, 나도 하도 사건이 많은 동네니 그냥 우리 스파이더맨이 못 구한 안타까운 인사 중 하나겠거니 하긴 했어. 사실 그렇게 늦은 저녁도 아니었어. 그 노친네는 자기 조카 귀가가 늦으니까 어련히 또 유기농 계란인가 뭔가를 안 사오겠구나 싶은데 그렇게 늦지 않았으니 괜찮겠지 하고 마트에 갔던 거고.]

 [토니, 쓸데없는 소리를 할 거라면-]

 [제발! 사람 말 좀 끝까지 들어, 캡, 아니. 스티브 로저스. 아니면 내가 제발 사람 말 좀 끝까지 들어주게, 스티브씨라고 해야 들어줄 건가?]

 [……계속 말하게.]

 [그 건달들이 그 불쌍한 노친네를 붙잡고 시비를 거는 동안, 그리고 그 노친네가 쓸데없이 용감하게 구는 동안 그 거리에 있던 꽤 많은 사람들이 뭘 했는지 알아? 페이스북이며 트위터, 유튭에 올라온 수많은 동영상을 찍느라 바빴지. 그 중 일부는 지들 목숨 살린다고 자리 피하느라 신고조차 해주지 않았고, 그 자리를 지키고 섰던 다른 사람들이 동영상이 끊길까봐 전화 한 통 걸지 않은 채로 누군가는 하겠지, 란 안일한 생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서있는 동안, 그 노친네는 결국, 죽었다고. 거기 서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 애가 지키고 있던 뉴욕 시민이었어. 그 애가 스스로 친절한 이웃이 되고자 했던 그 이웃들이었다고.]

 [……그래서 그 노인의 죽음 때문에 스파이더맨이 실망해서 관뒀다는 건가, 지금?]


 의뭉스런 표정으로 토니 스타크를 쳐다보던 캡틴 아메리카는 뒤늦게 스파이더맨이 황급히 뛰어갈 때면 늘 습관처럼 내뱉던 유기농 계란을 사야한다는 말을 떠올렸고, 어쩌면 그게 그냥 뒤풀이를 피하려는 핑계거리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그 사람이 그 애의 마지막 남은 가족이었어. 그 가족이, 그 애가 그토록 신경 쓰던 뉴욕 시민의 무관심 속에서 죽었다고.]

 [……토니, 난 몰랐네. 난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은…….]

 [그러니까 이제 말해봐. 이건 도대체 몇 개월 동안 애도하면 다시 영웅 놀음을 할 수 있는 개인 사정이지? 애초에 걘 어벤져스도 아니고 쉴드에 속해 있지도 않아. 애초에 누가 걔더러 해라 마라 할 것도 없지만, 굳이 따지자면 몇 개월 동안 애도하면 지나치지 않은 개인 사정이냔 말이야. 왜, 그래도 육 개월은 너무 지나친가? 스티브 로저스! 뚫린 입이 있다면 한 번 말을 해보라고!]



Posted by Spideyp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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