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시 마니또, 피터 웨이드로 2
썰/덷거미덷 2016. 5. 6. 16:16 |키다리인지 알 수 없는 키다리 아저씨에게.
어휴. 그건 그냥 신세한탄이었어요! 돈을 보내달라는 소린 아니었다구요……. 하지만, 음, 어쨌든 저도 이대로 편지를 끝내고 싶진 않았거든요? 그래서 받은 거예요! 여튼, 덕분에 수트 세 벌은 무사히 만들었습니다. 이제 제 취를 안 맡으셔서 참 행복하시겠어요……. 뉴욕시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이 당신을 뉴욕시의 공기청정 인간으로 임명합니다! 만족해요? 나 참. 근데, 진짜로 저 냄새 나나요? 물론, 옷을 안 빨아 입은 건 아닌데, 혹시나 해서요. 사실 매일 입고 다니다보니까 세탁이 그렇게 쉬운 편은 아니어서……. 가끔 덜 마른 거 입고 나간 날도 있고…….
제 대장을 걱정할 게 아니라 아저씨 대장을 걱정해야 했던 거네요. 진짜로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거나 한 건 아니죠? 고질병이라니. 흠. 전 상상도 안 가는데, 도대체 무슨 고질병이에요? 제 친구 중 하나는 매운 음식만 먹으면 화장실에서 나오질 못하더라고요. 더 웃긴 건 그러면서 매운 음식을 엄청 먹어댄다는 거죠. 그럴 가치가 있다나, 뭐라나.
아무래도 제가 지난번에 너무 부정적으로 말했나 봐요. 제가 뭐 삶을 당장 끝내고 싶다! 이런 건 아니었고, 그냥 단순히 힘들다는 거였어요. 힘들긴 해도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감사 인사를 못 들으면 어때요? 어쨌거나 전 제 할 일을 한 것뿐이니까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니고…….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니까요.
30개들이 계란은 너무 많으시답니다. 상하기 전에 못 쓸 거 같으시대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숙모님……. 제 생각엔 당장 양계장을 열어도 문제없을 것 같은데 말이죠. 하지만 숙모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그래도 계란만 부탁하시는 게 어디예요. 잠만, 그러고보니 왜 유독 계란만 저한테 맡기시는 거지……? 다른 건 다 본인이 장을 보시면서……? 새로운 의문이 생겼네요. 물어봐야 겠어요. 다음에 뭐라고 하셨는지 알려드릴게요. 지금 집이 아니라서 갑자기 물어보기가 좀 그래요.
그리고 무슨 상상을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전 글자 수를 셌을 뿐이라고요! 스파이더맨이라고 뭐 그냥 딱 보면 글자 수가 좌라락 나오는 줄 아시나……. 여튼 15번이나 썼어요! 그 증거물이 제 방 서랍에 있단 말입니다!
뉴욕시 밖인 건 별 문제가 없는데 티켓 값은 좀 그렇네요. 얼마였죠? 진짜 그거 살 돈도 없나? 사실 수트 만들고 돈이 좀 남았거든요? 그거면 되려나? 도박은 젬병이라서요. 불운의 스파이더맨이라고 들어는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근데 말이죠, 구멍 난 구명정에 있는 사람보다 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아. 맞어. 침몰 직전까지 연주하던 연주자들도 있었고, 선장님도 있었죠. 흠. 그러게요. 어떻게 구해야 되지? 흠. 새로운 숙제네요. 좋아, 스파이더맨이 한 번 연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구멍 난 구명정이야 제 거미줄로 어떻게든 해보면 되고, 음, 배는, 음. 어렵네요.
그런 소리를 듣고도 도망가지 않는 친구라면, 음, 아마 상당히 너그러운 친구겠죠? 사실 친구 수는 중요치 않잖아요. 어떤 친구느냐의 문제죠. 좋은 친구들인가봐요, 아저씨.
그리고 아주 정확히 제 숙모의 의중을 꿰뚫으셨네요. 요새는 저녁에 나가면 더 깨끗한 옷은 없냐고도 하신다니까요……. 나 참.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오해를 푸실지 모르겠어요. 얼마 전엔 친구가 –그 쿠키 만드는 법 알려준 친구요- 와서 설마 그 쿠키 받은 사람이 제 여자 친구냐고 까지 하더라고요……. 숙모가 글쎄 그 친구한테 떠봤답니다. 제가 살 수가 없어요, 살 수가……. 아, 죽겠단 소린 아니에요. 말이 그렇단 거지…….
그냥 곁에서 그 꼴을 지켜보면서 내버려두란 말이죠. 흠. 그 사람 신상이 밝혀질까봐 더 말은 못하겠는데, 보통 사람이었다면 그냥 지켜만 보면 안 되는 류의 일이라서요. 곁에 있어주는 것도, 음, 사실 좀 어려워요. 워낙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는 데다 제가 바로 그 스파이더맨이잖아요. 곁에 늘 있어줄 수 있었다면 애초에 약속 시간에 늦을 일도, 가게 문 닫는 시간을 못 맞춰서 계란을 못 사가는 일도 없었겠죠. 좋아요, 그래도 노력은 해볼게요! 노력은 해보겠단 거예요.
제가 바로 답장했을 때를 가정한다고 하면, 음……. 미안해요. 사실 바로 바로 답장을 하진 못하거든요. 일도 해야 되고, 학교도 가야 되고, 과제도 있고, 스파이더맨 노릇도 해야 하고……. 노력은 하는데 생각만큼 시간이 잘 안 돼요. 정말 미안해요.
어쨌거나 그래도 근래엔 꽤 괜찮은 편이예요. 오늘도 감사하단 인사를 세 번이나 들었다고요! 데일리 뷰글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그 뉴스를 보고 낄낄거리겠죠. 누구라도 즐거웠으면 된 거겠죠. 흑.
새로 만든 수트 디자인은 고민 고민하다가 결국 똑같은 디자인으로 만들었어요. 다른 게 너무 티가 나며 제 세탁 패턴이 들켜서 진짜로 스팅키 스파이더맨 같은 게 별명으로 생길 지도 모르거든요……. 그래도 아저씨 덕에 세탁 횟수는 좀 늘겠죠, 아마?
웹슈터는 여름에 업그레이드 할 생각이에요! 어차피 지금은 시간도 없거든요.
남은 돈으로 뭘 할지도 조금 고민이긴 해요. 혹시 남은 돈 거슬러서 드리면 좀 그럴까요? 액수가 너무 커서 가지고 있기도 사실 좀 그렇거든요. 숙모가 이 돈을 보기라도 하면- 상상하기도 싫네요.
여튼, 큰 선물 고마워요, 키다리 아저씨. 아저씨 덕에 뉴욕시의 공기 청정도와 스파이더맨 호감도가 한층 올라갔습니다!
그럼 다음에 볼 때까지 부디 건강 잘 챙기세요. 좋은 하루 보내고요!
당신의 주디, 스파이더맨 올림.
향긋한 우리의 영웅, 스파이더맨에게.
편지 쓰기 좋은 날이야. 내 말은, 집구석에 처박혀서 우중충한 글 적기에 적절한 날이라 이거지.
어쨌거나, 네 체취를 못 맡게 된 건 유감이지만 내가 뉴욕 공기 청정기 노릇을 했다니 기뻐하긴 해야겠군. 네 새 수트들이 부디 오래가길 바라. 그리고 혹시 돈 필요하면 이 키다리 아저씨한테 꼭 말하고. 은근슬쩍 키다리는 빼고 아저씨라고 부르던데, 그러지 마라. 너, 애초에 내 나이도 모르잖아. 내가 20대 젊은 사업가면 어쩌려고 그래? 어쨌든.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야. 네가 그 돈을 쓴 덕에 우리 편지가 이어지게 된 것도 다행이고. 뭐, 빈말인 줄 알았어? 난 진심이었는데? 스파이더맨한테 거짓말을 할 리가. 스파이더맨은 모든 걸 알고 있잖아, 그치?
흠, 이젠 내 대장에까지 네 오지랖이 펼쳐지는 것 같은데, 걱정 말라고. 열심히 낫고 있는 중이니까. 물론 그만큼 빨리 대장이 닳아 없어지는 중이라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이긴 한데, 그게 어디야. 내 대장을 걱정할 시간에 네 대장한테 존중이나 표하라고. 네가 핑계댈 때마다 네 친구들이 그 건장한 친구를 연약하다 욕하고 있을 텐데, 얼마나 억울하겠어.
매운 음식? 좋지. 난 네 친구의 결정에 전적으로 동의해. 다음에 한 번 메인 스트릿에 있는 타코 가게에서 가장 매운 걸로 한 번 시켜서 먹어봐. 끝내줄걸. 내가 보장하지. 아, 그 친구한테 추천하는 거 잊지 말고. 잘하면 그 친구는 이미 먹어봤을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스파이더맨, 이건 꼭 말해둬야겠는데, 누가 뭐라고 생각하건 간에 넌 어메이징한 놈이야. 네가 하는 일들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고. 그래, 어벤져스가 겉보기엔 큰 사건들을 다루니까 위대해보일지 모르지만, 이 세상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은 네가 대단치 않다 생각하는 그 사소한 사건들로 쉽사리 무너지거든. 네가 한 모든 일들이 그 삶들을 구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자부심을 가져, 스파이더맨.
큰 힘에 큰 책임이 따른다고? 그런 개소리는 어디서 주워들은 거야? 큰 힘엔 큰 가능성이 있을 뿐이야. 그 가능성이 어디로 향하느냐의 차이지. 네가 가진 힘으로 하는 일은 절대로 사소하지도 당연하지도 않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어메이징한 일들이지. 네가 하는 모든 일들은.
흠. 계란은 이만 포기하는 게 좋겠어. 내 생각엔 네 숙모가 그걸 일종의 통금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 같거든. 어쨌거나 계란을 사서 돌아오려면 그 시간엔 가게에 가야한다는 거잖아, 안 그래? 아마 이미 숙모한테 그럴 듯하면서도 납득하기는 힘든 답변을 들었을 테지만 내가 볼 땐 그래.
증거물이 서랍 안에 있다라. 내 편지를 모아둔다 이거지. 좋았어. 다음부턴 예쁜 인쇄지라도 사서 편지를 프린트해야겠어. 한정판으로다가. 혹시 예쁜 상자에라도 담아두는 거야? 연애편지 모으듯이?
그리고 타이타닉- 난 이게 이렇게 길게 끌 대화라곤 생각지도 못했는데. 맙소사. 너한텐 무슨 말을 못하겠어. 연구는 집어치우고 그 시간에 과제나 더 해두는 게 어때? 곧 기말고사 기간 아냐? 성적은 안전하십니까, 스파이더맨 선생?
우선 아저씨가 아니고 키다리 아저씨고, 흠, 좋은 친구라. 그게 좋은 친구라니 놀라운데. 뭐, 일단 그렇다고 치자고…….
이참에 아예 상상으로라도 하나 만들지 그래? 적당한 시기-가령 여자 친구 데리고 식사하러 오라고 물을 때 쯤 이라던가-에 우중충하게 지내면 아마 헤어졌다고 생각해서 더 묻지 않을 텐데. 잘하면 계란 셔틀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젊은 친구.
그리고 그 사람에 관해선, 그래, 뭐, 노력한다는 게 중요하지. 그나저나 대관절 누구길래 신상을 지켜줘야 할 정도야? 내가 알 만한 사람인가?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팔콘? 누구야? 설마 우리 캡틴한테 무슨 고민거리가 생긴 건 아니겠지? 제발 아니라고 해줘, 스파이더맨.
답장은 늦어져도 괜찮아. 거절당했다는 메시지만 받는 게 아니라면 말이지. 영웅이 바쁜 건 누구나 안다고. 더군더나 그게 스파이더맨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지. 스파이더맨만을 위한 고민 상담소는 늘 열려 있을 테니까, 너무 걱정 말고 느긋하게 할 거 하다 와. 난 언제나 여기 있을 테니까.
제기랄, 그래서 새 디자인의 수트는 못 본다는 거지? 솔직히 말해서, 스파이더맨, 빨강은 개인적으로 존중하지만, 파랑? 망할 파랑이라고? 네 수트가 무슨 노을 지는 하늘색이야? 해 지는 바다에서 따온 건가? 이왕 준 돈이면 좀 새끈하게 뽑아보지 그랬어. 뭐, 지금도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야, 말이.
난 이미 돈을 줬고, 그 이후론 네 소관이야. 네가 알아서 잘 쓰리라고 믿어. 기부를 하건, 네 까까를 사먹건 그건 네 소관이라고. 나한테 돌려줄 생각만 안하면 네가 그걸 빌런한테 기부한다고 해도 난 찬성이야.
여튼 좋은 하루 보내고, 기말 고사 잘 보고, 건실한 하루 보내길 바란다.
물론, 그 모든 날들을 안전하게 보내는 거 잊지 말고.
그럼 다음에 보자고.
스파이더맨의 고민 상담소에서, 스파이더맨만을 위한 키다리 아저씨가.
추신. 아, 근데 그 스파이더맨 호감도가 상승했다는 건, 스파이더맨의 나에 대한 호감도가 올라갔다는 거야, 뉴욕 시민들의 스파이더맨에 대한 호감도가 올라갔다는 거야?
기다리다 목이 빠졌을 키다리 아저씨에게.
설마 진짜로 목이 빠진 건 아니죠? 하하하……. 미안해요. 한동안 진짜 정신이 없었거든요……. 기말고사에, 아르바이트에, 여튼, 진짜 정신없는 날들이었어요.
여름용 수트는 아주 잘, 입고 있습니다! 옛날 수트가 불편해서 못 입을 정도라니까요! 이러다 수트 한 벌만 입을 것 같아서 큰일이에요.
호감도는, 음, 그냥 둘 다라고 해두죠. 후자쪽만이라고 하면 당신이 너무 실망할 것 같으니까 제가 봐드리는 거예요!
그리고 호칭 말이에요, 솔직히 키다리 아저씨는 너무 길지 않아요? 우리 아저씨로 합의보죠! 가슴에 손을 얹고 아저씨죠, 그쵸? 내 초감각이 말하길 당신은 아저씨래요! 아니면 삼촌? 그건 좀 그렇고, 아저씨가 맞는 것 같아요, 아저씨.
그 타코는 먹어봤어요. 아저씨 말대로 친구는 이미 애진작에 먹어 봤다더라구요……. 뉴욕에서 유명한 집이라는데 왜 난 몰랐지……. 여튼 그거 먹고 둘 다 다음날 난리도 아니었어요. 내 대장! 제 대장이 당신 편지를 찢어버리려는 걸 말리느라 혼났다고요……. 뭐, 그래도 다음에 한 두 번은 더 시도해볼 법한 것 같아요. 이건, 제 대장이나 위장한테는 비밀이에요. 걔네가 알면 먹기도 전에 뒤집어질 걸요.
그리고 계란에 대해선 당신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이제야 뭔가 알 것 같네요. 앞으론 그냥 마음 편히 계란 셔틀이나 해야겠어요. 뭐, 그걸로 숙모가 안심한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나쁘진 않죠. 조금 힘이 들긴 하지만요.
당신한텐 슬프게도, 그냥 서랍 안에 있습니다. 제가 좀 까마귀 습성이 있어서 여간한 건 다 모으거든요. 이 서랍 하나면 스파이더맨의 신상을 탈탈 털 수도 있다고요. 예쁜 인쇄지라고 말해서 말인데, 이 종이 어때요? 한정판은 아니지만 나름 괜찮지 않아요? 그 때 남은 돈으로 이것도 샀어요! 프린터에 자꾸 끼어서 겨우겨우 프린트 한 거라고요.
그리고 제 성적은 매우 안전하게 잘 있습니다. 비록 수석은 놓쳤지만, 아마 다음 학기엔 수석자리를 노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쓸 데 없는 걱정은 넣어두시라고요, 아저씨.
상상연인이라니! 상상도 못해봤네요. 하지만 그렇게 좋은 방법은 아닌 거 같아요. 그러려면 제 친구도 속여야 되고, 무엇보다 숙모를 속여야 되는 것도 좀 그렇고요. 우중충하게 있는 동안은 농담도 못할 거 아녀요? 아니 될 말씀이지요. 제 인생에서 농담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요.
어휴, 도대체 우리 캡한텐 무슨 억하심정이 있으시길래 그렇게 집착적으로 물으시는 거예요? 다행이도 그 사람이 캡은 아닙니다. 아이언맨도 땡, 팔콘도 땡! 그 세 분 모두 본인들의 인생을 아주 건실하게 잘 살고 계시니까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거 같아요. 뭐, 어쨌거나 그 사람도 제가 조금만 설명하면 당신이 알아볼 정도의 사람이라서요. 혹시 또 모르잖아요. 내가 괜히 그 사람 이야기를 뒤에서 했다가 당신이 그 사람을 음, 제 시선에서 평가한대로 보게 될 지도요. 어쨌거나 요근래엔 그 사람이랑 마주칠 기회도 얼마 없어서 곁에 있어주는 건 고사하고 말도 못 나눠봤어요. 그리고, 요새 조금 조용해진 것 같기도 하고, 음, 확실한지는 모르겠는데 조금 거리를 두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요. 확실한 건, 그게 좋은 징조는 아닌 것 같다는 거죠. 어느 쪽이건 간에 말이에요. 요새는 글쎄 얼굴 보기도 힘들다니까요! 아, 이미 저 위에 적어놨네요. 내 정신이 오락가락 하나봐요. 이래서는 어디다 정신을 팔고 다니냐는 숙모 말에 반박도 못하겠네요.
답장이 얼마나 늦어져도 괜찮은 거예요? 천년만년 기다릴 순 없을 거 아니에요? 제가 알기로 이 서비스가 1:1인데, 기다리시다가 정말로 좋은 인연을 놓치실 수도 있고……. 여튼, 언제든 너무 기다렸다 싶으시면 끊으셔도 원망은 않을 게요. 제 탓인 걸요. 어쩔 수 없죠.
아, 근데 이거 꼭 교환식은 아니어도 되는 거 아세요? 그러니까, 제가 너무 바빠서 답장이 없을 땐 독촉 편지를 보내셔도- 음, 사실은 그냥 제가 편지를 보내지 않을 때 당신은 뭘 하고 지내는지 궁금해서요. 솔직히 저랑 이야기 하시면서도 개인적인 이야기는 별로 안 하시는 것 같고, 그게 불만이라는 건 아니지만, 너무 제가 제 이야기만 했나 싶기도 하고, 당신도 뭔가 이야기 할 상대를 찾아서 서비스에 가입한 걸 텐데, 저만 너무 이야기 하는 것 같아서요…….
단언컨대 빨강과 파랑은 완벽한 색 조합입니다. 아주 완벽하죠. 동양 쪽에선 국기에 이 두 색을 박아 넣은 곳도 있다고요! 궁금하면 구글에 한국 국기라고 검색 해봐요. 스파이더맨은 여러분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고로, 빨강과 파랑은 완벽한 색 조합이란 말도 진실이란 말이죠!
당신이 준 돈은, 타코 사먹은 것 외엔 아마 여름에 웹슈터 업그레이드 때 쓰게 될 거 같아요.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긴 했는데, 그렇게 페이가 좋은 편은 아니라서요……. 그렇다고 돈을 더 보내실 건 없어요! 이미 부품은 다 주문했거든요! 절대로, 더 보내지 마세요!
음, 그리고 고마워요. 그냥 모든 게 다요. 솔직히 별 생각 없이 시작한 거였는데 이렇게 위로를 받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근데 말이죠, 만약에 이 서비스가 사라지면, 음, 그러면 우리도 얼결에 서로 연락할 길이 없게 되는 건데, 음, 그래서 말이죠, 음, 당신만 괜찮다면, 우리 한 번 만나는 게 어때요? 아니면 다른 연락책이라던가. 강요하는 건 절대로 아니고, 그냥, 진짜 그냥 물어보는 거예요! 답하기 싫으시면 답하지 않으셔도 되고요! 답장 말고 이 제의에 대한 답이요! 답장은 해주셔야 해요! 이 상담소 없이는 전 이제 살 수 없는 몸이 되었답니다.
좋은 하루 보내고 근시일내에 또 봐요! 저도 이제 방학이라서 칼답장 할 수 있으니까, 어쩌면 더 자주 이야기 할 수 있겠네요!
부디 좋은 하루 보내고 다음에 또 봐요! 헐, 이거 두 번이나 썼네요.
호감도가 오른 스파이더맨으로부터.
조용한 우리 키다리 아저씨에게.
방학이에요!
벌써 답장이 올 때가 지나긴 한 거 같긴 한데, 방학 맞은 기념으로 제가 한 통 더 보내죠, 뭐. 당신도 기다려줬는데 저라고 못할 건 뭐 있겠어요. 그냥 제가 심심해서 보내는 거예요. 그리고 동시에 독촉의 의미를 담고 있죠!
이번 여름 방학을 놓치시면 겨울 방학까지는 신속한 답장을 못 받아볼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여튼 이번 방학도 바쁘긴 할 것 같아요. 그렇다고 답장할 시간이 없다는 건 아니고요! 아르바이트에, 숙모가 부탁한 일도 있고 –헛간에 물이 샌답니다……. 넵, 여러분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은 이번 여름 방학에 속성 목수 과정을 밟을 거예요…….- 그 쿠기 굽는 법 가르쳐준 친구가 이번엔 머핀 굽는 법을 가르쳐주기로 했어요. 다음엔 제 얼굴이 박힌 머핀도 같이 보내줄게요! 설마 다 상해서 가진 않겠죠? 그쵸? 잠깐만, 지난번 쿠키는 그럼……? 설마 그거 먹고 배탈 났던 건 아니죠……?
어쨌거나 전 좋은 하루들을 보내고 있어요. 간간이 빌런이나 좀도둑도 잡으면서요. 아저씨는 뭐 여름휴가 계획 같은 건 없어요? 돈도 많겠다, 여행도 좀 가고- 아, 벌써 간 건가. 갔다와서 답장 꼭 주세요! 슬슬 당신이 제 고민거리가 되고 있는 중이라고요……. 고민 상담소에서 고민을 만들면 어쩌자는 거예요…….
여튼 여름휴가 잘 보내고 와요, 키다리 아저씨.
다음에 보자고요!
당신의 답장을 목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 스파이더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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