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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6.05.06 뉴욕시 마니또 피터, 웨이드로

 키다리인지 알 수 없는 키다리 아저씨에게.


 어휴. 그건 그냥 신세한탄이었어요! 돈을 보내달라는 소린 아니었다구요……. 하지만, 음, 어쨌든 저도 이대로 편지를 끝내고 싶진 않았거든요? 그래서 받은 거예요! 여튼, 덕분에 수트 세 벌은 무사히 만들었습니다. 이제 제 취를 안 맡으셔서 참 행복하시겠어요……. 뉴욕시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이 당신을 뉴욕시의 공기청정 인간으로 임명합니다! 만족해요? 나 참. 근데, 진짜로 저 냄새 나나요? 물론, 옷을 안 빨아 입은 건 아닌데, 혹시나 해서요. 사실 매일 입고 다니다보니까 세탁이 그렇게 쉬운 편은 아니어서……. 가끔 덜 마른 거 입고 나간 날도 있고…….


 제 대장을 걱정할 게 아니라 아저씨 대장을 걱정해야 했던 거네요. 진짜로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거나 한 건 아니죠? 고질병이라니. 흠. 전 상상도 안 가는데, 도대체 무슨 고질병이에요? 제 친구 중 하나는 매운 음식만 먹으면 화장실에서 나오질 못하더라고요. 더 웃긴 건 그러면서 매운 음식을 엄청 먹어댄다는 거죠. 그럴 가치가 있다나, 뭐라나.


 아무래도 제가 지난번에 너무 부정적으로 말했나 봐요. 제가 뭐 삶을 당장 끝내고 싶다! 이런 건 아니었고, 그냥 단순히 힘들다는 거였어요. 힘들긴 해도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감사 인사를 못 들으면 어때요? 어쨌거나 전 제 할 일을 한 것뿐이니까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니고…….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니까요.


 30개들이 계란은 너무 많으시답니다. 상하기 전에 못 쓸 거 같으시대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숙모님……. 제 생각엔 당장 양계장을 열어도 문제없을 것 같은데 말이죠. 하지만 숙모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그래도 계란만 부탁하시는 게 어디예요. 잠만, 그러고보니 왜 유독 계란만 저한테 맡기시는 거지……? 다른 건 다 본인이 장을 보시면서……? 새로운 의문이 생겼네요. 물어봐야 겠어요. 다음에 뭐라고 하셨는지 알려드릴게요. 지금 집이 아니라서 갑자기 물어보기가 좀 그래요.


 그리고 무슨 상상을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전 글자 수를 셌을 뿐이라고요! 스파이더맨이라고 뭐 그냥 딱 보면 글자 수가 좌라락 나오는 줄 아시나……. 여튼 15번이나 썼어요! 그 증거물이 제 방 서랍에 있단 말입니다!


 뉴욕시 밖인 건 별 문제가 없는데 티켓 값은 좀 그렇네요. 얼마였죠? 진짜 그거 살 돈도 없나? 사실 수트 만들고 돈이 좀 남았거든요? 그거면 되려나? 도박은 젬병이라서요. 불운의 스파이더맨이라고 들어는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근데 말이죠, 구멍 난 구명정에 있는 사람보다 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아. 맞어. 침몰 직전까지 연주하던 연주자들도 있었고, 선장님도 있었죠. 흠. 그러게요. 어떻게 구해야 되지? 흠. 새로운 숙제네요. 좋아, 스파이더맨이 한 번 연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구멍 난 구명정이야 제 거미줄로 어떻게든 해보면 되고, 음, 배는, 음. 어렵네요.


 그런 소리를 듣고도 도망가지 않는 친구라면, 음, 아마 상당히 너그러운 친구겠죠? 사실 친구 수는 중요치 않잖아요. 어떤 친구느냐의 문제죠. 좋은 친구들인가봐요, 아저씨.


 그리고 아주 정확히 제 숙모의 의중을 꿰뚫으셨네요. 요새는 저녁에 나가면 더 깨끗한 옷은 없냐고도 하신다니까요……. 나 참.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오해를 푸실지 모르겠어요. 얼마 전엔 친구가 –그 쿠키 만드는 법 알려준 친구요- 와서 설마 그 쿠키 받은 사람이 제 여자 친구냐고 까지 하더라고요……. 숙모가 글쎄 그 친구한테 떠봤답니다. 제가 살 수가 없어요, 살 수가……. 아, 죽겠단 소린 아니에요. 말이 그렇단 거지…….


 그냥 곁에서 그 꼴을 지켜보면서 내버려두란 말이죠. 흠. 그 사람 신상이 밝혀질까봐 더 말은 못하겠는데, 보통 사람이었다면 그냥 지켜만 보면 안 되는 류의 일이라서요. 곁에 있어주는 것도, 음, 사실 좀 어려워요. 워낙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는 데다 제가 바로 그 스파이더맨이잖아요. 곁에 늘 있어줄 수 있었다면 애초에 약속 시간에 늦을 일도, 가게 문 닫는 시간을 못 맞춰서 계란을 못 사가는 일도 없었겠죠. 좋아요, 그래도 노력은 해볼게요! 노력은 해보겠단 거예요.


 제가 바로 답장했을 때를 가정한다고 하면, 음……. 미안해요. 사실 바로 바로 답장을 하진 못하거든요. 일도 해야 되고, 학교도 가야 되고, 과제도 있고, 스파이더맨 노릇도 해야 하고……. 노력은 하는데 생각만큼 시간이 잘 안 돼요. 정말 미안해요.


 어쨌거나 그래도 근래엔 꽤 괜찮은 편이예요. 오늘도 감사하단 인사를 세 번이나 들었다고요! 데일리 뷰글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그 뉴스를 보고 낄낄거리겠죠. 누구라도 즐거웠으면 된 거겠죠. 흑.


 새로 만든 수트 디자인은 고민 고민하다가 결국 똑같은 디자인으로 만들었어요. 다른 게 너무 티가 나며 제 세탁 패턴이 들켜서 진짜로 스팅키 스파이더맨 같은 게 별명으로 생길 지도 모르거든요……. 그래도 아저씨 덕에 세탁 횟수는 좀 늘겠죠, 아마?


 웹슈터는 여름에 업그레이드 할 생각이에요! 어차피 지금은 시간도 없거든요.


 남은 돈으로 뭘 할지도 조금 고민이긴 해요. 혹시 남은 돈 거슬러서 드리면 좀 그럴까요? 액수가 너무 커서 가지고 있기도 사실 좀 그렇거든요. 숙모가 이 돈을 보기라도 하면- 상상하기도 싫네요.


 여튼, 큰 선물 고마워요, 키다리 아저씨. 아저씨 덕에 뉴욕시의 공기 청정도와 스파이더맨 호감도가 한층 올라갔습니다!


 그럼 다음에 볼 때까지 부디 건강 잘 챙기세요. 좋은 하루 보내고요!


당신의 주디, 스파이더맨 올림.




 향긋한 우리의 영웅, 스파이더맨에게.


 편지 쓰기 좋은 날이야. 내 말은, 집구석에 처박혀서 우중충한 글 적기에 적절한 날이라 이거지.


 어쨌거나, 네 체취를 못 맡게 된 건 유감이지만 내가 뉴욕 공기 청정기 노릇을 했다니 기뻐하긴 해야겠군. 네 새 수트들이 부디 오래가길 바라. 그리고 혹시 돈 필요하면 이 키다리 아저씨한테 꼭 말하고. 은근슬쩍 키다리는 빼고 아저씨라고 부르던데, 그러지 마라. 너, 애초에 내 나이도 모르잖아. 내가 20대 젊은 사업가면 어쩌려고 그래? 어쨌든.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야. 네가 그 돈을 쓴 덕에 우리 편지가 이어지게 된 것도 다행이고. 뭐, 빈말인 줄 알았어? 난 진심이었는데? 스파이더맨한테 거짓말을 할 리가. 스파이더맨은 모든 걸 알고 있잖아, 그치?


 흠, 이젠 내 대장에까지 네 오지랖이 펼쳐지는 것 같은데, 걱정 말라고. 열심히 낫고 있는 중이니까. 물론 그만큼 빨리 대장이 닳아 없어지는 중이라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이긴 한데, 그게 어디야. 내 대장을 걱정할 시간에 네 대장한테 존중이나 표하라고. 네가 핑계댈 때마다 네 친구들이 그 건장한 친구를 연약하다 욕하고 있을 텐데, 얼마나 억울하겠어.


 매운 음식? 좋지. 난 네 친구의 결정에 전적으로 동의해. 다음에 한 번 메인 스트릿에 있는 타코 가게에서 가장 매운 걸로 한 번 시켜서 먹어봐. 끝내줄걸. 내가 보장하지. 아, 그 친구한테 추천하는 거 잊지 말고. 잘하면 그 친구는 이미 먹어봤을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스파이더맨, 이건 꼭 말해둬야겠는데, 누가 뭐라고 생각하건 간에 넌 어메이징한 놈이야. 네가 하는 일들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고. 그래, 어벤져스가 겉보기엔 큰 사건들을 다루니까 위대해보일지 모르지만, 이 세상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은 네가 대단치 않다 생각하는 그 사소한 사건들로 쉽사리 무너지거든. 네가 한 모든 일들이 그 삶들을 구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자부심을 가져, 스파이더맨.


 큰 힘에 큰 책임이 따른다고? 그런 개소리는 어디서 주워들은 거야? 큰 힘엔 큰 가능성이 있을 뿐이야. 그 가능성이 어디로 향하느냐의 차이지. 네가 가진 힘으로 하는 일은 절대로 사소하지도 당연하지도 않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어메이징한 일들이지. 네가 하는 모든 일들은.


 흠. 계란은 이만 포기하는 게 좋겠어. 내 생각엔 네 숙모가 그걸 일종의 통금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 같거든. 어쨌거나 계란을 사서 돌아오려면 그 시간엔 가게에 가야한다는 거잖아, 안 그래? 아마 이미 숙모한테 그럴 듯하면서도 납득하기는 힘든 답변을 들었을 테지만 내가 볼 땐 그래.


 증거물이 서랍 안에 있다라. 내 편지를 모아둔다 이거지. 좋았어. 다음부턴 예쁜 인쇄지라도 사서 편지를 프린트해야겠어. 한정판으로다가. 혹시 예쁜 상자에라도 담아두는 거야? 연애편지 모으듯이?


 그리고 타이타닉- 난 이게 이렇게 길게 끌 대화라곤 생각지도 못했는데. 맙소사. 너한텐 무슨 말을 못하겠어. 연구는 집어치우고 그 시간에 과제나 더 해두는 게 어때? 곧 기말고사 기간 아냐? 성적은 안전하십니까, 스파이더맨 선생?


 우선 아저씨가 아니고 키다리 아저씨고, 흠, 좋은 친구라. 그게 좋은 친구라니 놀라운데. 뭐, 일단 그렇다고 치자고…….


 이참에 아예 상상으로라도 하나 만들지 그래? 적당한 시기-가령 여자 친구 데리고 식사하러 오라고 물을 때 쯤 이라던가-에 우중충하게 지내면 아마 헤어졌다고 생각해서 더 묻지 않을 텐데. 잘하면 계란 셔틀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젊은 친구.


 그리고 그 사람에 관해선, 그래, 뭐, 노력한다는 게 중요하지. 그나저나 대관절 누구길래 신상을 지켜줘야 할 정도야? 내가 알 만한 사람인가?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팔콘? 누구야? 설마 우리 캡틴한테 무슨 고민거리가 생긴 건 아니겠지? 제발 아니라고 해줘, 스파이더맨.


 답장은 늦어져도 괜찮아. 거절당했다는 메시지만 받는 게 아니라면 말이지. 영웅이 바쁜 건 누구나 안다고. 더군더나 그게 스파이더맨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지. 스파이더맨만을 위한 고민 상담소는 늘 열려 있을 테니까, 너무 걱정 말고 느긋하게 할 거 하다 와. 난 언제나 여기 있을 테니까.


 제기랄, 그래서 새 디자인의 수트는 못 본다는 거지? 솔직히 말해서, 스파이더맨, 빨강은 개인적으로 존중하지만, 파랑? 망할 파랑이라고? 네 수트가 무슨 노을 지는 하늘색이야? 해 지는 바다에서 따온 건가? 이왕 준 돈이면 좀 새끈하게 뽑아보지 그랬어. 뭐, 지금도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야, 말이.


 난 이미 돈을 줬고, 그 이후론 네 소관이야. 네가 알아서 잘 쓰리라고 믿어. 기부를 하건, 네 까까를 사먹건 그건 네 소관이라고. 나한테 돌려줄 생각만 안하면 네가 그걸 빌런한테 기부한다고 해도 난 찬성이야.


 여튼 좋은 하루 보내고, 기말 고사 잘 보고, 건실한 하루 보내길 바란다.

 물론, 그 모든 날들을 안전하게 보내는 거 잊지 말고.

 그럼 다음에 보자고.


 스파이더맨의 고민 상담소에서, 스파이더맨만을 위한 키다리 아저씨가.


추신. 아, 근데 그 스파이더맨 호감도가 상승했다는 건, 스파이더맨의 나에 대한 호감도가 올라갔다는 거야, 뉴욕 시민들의 스파이더맨에 대한 호감도가 올라갔다는 거야?




 기다리다 목이 빠졌을 키다리 아저씨에게.


 설마 진짜로 목이 빠진 건 아니죠? 하하하……. 미안해요. 한동안 진짜 정신이 없었거든요……. 기말고사에, 아르바이트에, 여튼, 진짜 정신없는 날들이었어요.


 여름용 수트는 아주 잘, 입고 있습니다! 옛날 수트가 불편해서 못 입을 정도라니까요! 이러다 수트 한 벌만 입을 것 같아서 큰일이에요.


 호감도는, 음, 그냥 둘 다라고 해두죠. 후자쪽만이라고 하면 당신이 너무 실망할 것 같으니까 제가 봐드리는 거예요!


 그리고 호칭 말이에요, 솔직히 키다리 아저씨는 너무 길지 않아요? 우리 아저씨로 합의보죠! 가슴에 손을 얹고 아저씨죠, 그쵸? 내 초감각이 말하길 당신은 아저씨래요! 아니면 삼촌? 그건 좀 그렇고, 아저씨가 맞는 것 같아요, 아저씨.


 그 타코는 먹어봤어요. 아저씨 말대로 친구는 이미 애진작에 먹어 봤다더라구요……. 뉴욕에서 유명한 집이라는데 왜 난 몰랐지……. 여튼 그거 먹고 둘 다 다음날 난리도 아니었어요. 내 대장! 제 대장이 당신 편지를 찢어버리려는 걸 말리느라 혼났다고요……. 뭐, 그래도 다음에 한 두 번은 더 시도해볼 법한 것 같아요. 이건, 제 대장이나 위장한테는 비밀이에요. 걔네가 알면 먹기도 전에 뒤집어질 걸요.


 그리고 계란에 대해선 당신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이제야 뭔가 알 것 같네요. 앞으론 그냥 마음 편히 계란 셔틀이나 해야겠어요. 뭐, 그걸로 숙모가 안심한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나쁘진 않죠. 조금 힘이 들긴 하지만요.


 당신한텐 슬프게도, 그냥 서랍 안에 있습니다. 제가 좀 까마귀 습성이 있어서 여간한 건 다 모으거든요. 이 서랍 하나면 스파이더맨의 신상을 탈탈 털 수도 있다고요. 예쁜 인쇄지라고 말해서 말인데, 이 종이 어때요? 한정판은 아니지만 나름 괜찮지 않아요? 그 때 남은 돈으로 이것도 샀어요! 프린터에 자꾸 끼어서 겨우겨우 프린트 한 거라고요.


 그리고 제 성적은 매우 안전하게 잘 있습니다. 비록 수석은 놓쳤지만, 아마 다음 학기엔 수석자리를 노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쓸 데 없는 걱정은 넣어두시라고요, 아저씨.


 상상연인이라니! 상상도 못해봤네요. 하지만 그렇게 좋은 방법은 아닌 거 같아요. 그러려면 제 친구도 속여야 되고, 무엇보다 숙모를 속여야 되는 것도 좀 그렇고요. 우중충하게 있는 동안은 농담도 못할 거 아녀요? 아니 될 말씀이지요. 제 인생에서 농담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요.


 어휴, 도대체 우리 캡한텐 무슨 억하심정이 있으시길래 그렇게 집착적으로 물으시는 거예요? 다행이도 그 사람이 캡은 아닙니다. 아이언맨도 땡, 팔콘도 땡! 그 세 분 모두 본인들의 인생을 아주 건실하게 잘 살고 계시니까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거 같아요. 뭐, 어쨌거나 그 사람도 제가 조금만 설명하면 당신이 알아볼 정도의 사람이라서요. 혹시 또 모르잖아요. 내가 괜히 그 사람 이야기를 뒤에서 했다가 당신이 그 사람을 음, 제 시선에서 평가한대로 보게 될 지도요. 어쨌거나 요근래엔 그 사람이랑 마주칠 기회도 얼마 없어서 곁에 있어주는 건 고사하고 말도 못 나눠봤어요. 그리고, 요새 조금 조용해진 것 같기도 하고, 음, 확실한지는 모르겠는데 조금 거리를 두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요. 확실한 건, 그게 좋은 징조는 아닌 것 같다는 거죠. 어느 쪽이건 간에 말이에요. 요새는 글쎄 얼굴 보기도 힘들다니까요! 아, 이미 저 위에 적어놨네요. 내 정신이 오락가락 하나봐요. 이래서는 어디다 정신을 팔고 다니냐는 숙모 말에 반박도 못하겠네요.


 답장이 얼마나 늦어져도 괜찮은 거예요? 천년만년 기다릴 순 없을 거 아니에요? 제가 알기로 이 서비스가 1:1인데, 기다리시다가 정말로 좋은 인연을 놓치실 수도 있고……. 여튼, 언제든 너무 기다렸다 싶으시면 끊으셔도 원망은 않을 게요. 제 탓인 걸요. 어쩔 수 없죠.


 아, 근데 이거 꼭 교환식은 아니어도 되는 거 아세요? 그러니까, 제가 너무 바빠서 답장이 없을 땐 독촉 편지를 보내셔도- 음, 사실은 그냥 제가 편지를 보내지 않을 때 당신은 뭘 하고 지내는지 궁금해서요. 솔직히 저랑 이야기 하시면서도 개인적인 이야기는 별로 안 하시는 것 같고, 그게 불만이라는 건 아니지만, 너무 제가 제 이야기만 했나 싶기도 하고, 당신도 뭔가 이야기 할 상대를 찾아서 서비스에 가입한 걸 텐데, 저만 너무 이야기 하는 것 같아서요…….


 단언컨대 빨강과 파랑은 완벽한 색 조합입니다. 아주 완벽하죠. 동양 쪽에선 국기에 이 두 색을 박아 넣은 곳도 있다고요! 궁금하면 구글에 한국 국기라고 검색 해봐요. 스파이더맨은 여러분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고로, 빨강과 파랑은 완벽한 색 조합이란 말도 진실이란 말이죠!


 당신이 준 돈은, 타코 사먹은 것 외엔 아마 여름에 웹슈터 업그레이드 때 쓰게 될 거 같아요.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긴 했는데, 그렇게 페이가 좋은 편은 아니라서요……. 그렇다고 돈을 더 보내실 건 없어요! 이미 부품은 다 주문했거든요! 절대로, 더 보내지 마세요!


 음, 그리고 고마워요. 그냥 모든 게 다요. 솔직히 별 생각 없이 시작한 거였는데 이렇게 위로를 받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근데 말이죠, 만약에 이 서비스가 사라지면, 음, 그러면 우리도 얼결에 서로 연락할 길이 없게 되는 건데, 음, 그래서 말이죠, 음, 당신만 괜찮다면, 우리 한 번 만나는 게 어때요? 아니면 다른 연락책이라던가. 강요하는 건 절대로 아니고, 그냥, 진짜 그냥 물어보는 거예요! 답하기 싫으시면 답하지 않으셔도 되고요! 답장 말고 이 제의에 대한 답이요! 답장은 해주셔야 해요! 이 상담소 없이는 전 이제 살 수 없는 몸이 되었답니다.


 좋은 하루 보내고 근시일내에 또 봐요! 저도 이제 방학이라서 칼답장 할 수 있으니까, 어쩌면 더 자주 이야기 할 수 있겠네요!


 부디 좋은 하루 보내고 다음에 또 봐요! 헐, 이거 두 번이나 썼네요.


 호감도가 오른 스파이더맨으로부터.

 



 조용한 우리 키다리 아저씨에게.


 방학이에요!


 벌써 답장이 올 때가 지나긴 한 거 같긴 한데, 방학 맞은 기념으로 제가 한 통 더 보내죠, 뭐. 당신도 기다려줬는데 저라고 못할 건 뭐 있겠어요. 그냥 제가 심심해서 보내는 거예요. 그리고 동시에 독촉의 의미를 담고 있죠!


 이번 여름 방학을 놓치시면 겨울 방학까지는 신속한 답장을 못 받아볼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여튼 이번 방학도 바쁘긴 할 것 같아요. 그렇다고 답장할 시간이 없다는 건 아니고요! 아르바이트에, 숙모가 부탁한 일도 있고 –헛간에 물이 샌답니다……. 넵, 여러분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은 이번 여름 방학에 속성 목수 과정을 밟을 거예요…….- 그 쿠기 굽는 법 가르쳐준 친구가 이번엔 머핀 굽는 법을 가르쳐주기로 했어요. 다음엔 제 얼굴이 박힌 머핀도 같이 보내줄게요! 설마 다 상해서 가진 않겠죠? 그쵸? 잠깐만, 지난번 쿠키는 그럼……? 설마 그거 먹고 배탈 났던 건 아니죠……? 


 어쨌거나 전 좋은 하루들을 보내고 있어요. 간간이 빌런이나 좀도둑도 잡으면서요. 아저씨는 뭐 여름휴가 계획 같은 건 없어요? 돈도 많겠다, 여행도 좀 가고- 아, 벌써 간 건가. 갔다와서 답장 꼭 주세요! 슬슬 당신이 제 고민거리가 되고 있는 중이라고요……. 고민 상담소에서 고민을 만들면 어쩌자는 거예요…….


 여튼 여름휴가 잘 보내고 와요, 키다리 아저씨.

 다음에 보자고요!


 당신의 답장을 목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 스파이더맨이.




 답이 없는 우리 키다리 아저씨에게.

 저 진짜 기다리다가 목 빠질 뻔한 거 알아요? 벌써 한 달 째라고요…….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죠? 대장이 갑자기 뒤집어졌다던가…….

 지난번에 내가 제의한 것 때문이라면 그냥 잊어버려도 돼요. 제가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강요도 아니고, 그냥 물어본 거였어요, 그냥 지나가듯이, 행인이 길 묻 듯이요. 그러니까, 그거 때문이라면 제발 답장 좀 줘요.

 사실, 요즘 미칠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완전히 모습을 감췄거든요. 완전히는 아니고, 정확히는 제 앞에 나타나지 않는 다거나 제가 나타나면 빠르게 사라지거나, 제가 간다고 하면 갑자기 빠진다거나 한다는 게 맞겠지만요. 언제는 제가 좋다고 쫓아다니더니, 이제는 스파이더맨의 시옷만 보이면 달아나요. 제가 도대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뭐, 질렸을 수도 있죠……. 당신한테 말 하지 않았는데, 사실 그 동안 제가 음, 그 사람한테 좀 까칠하게 대하긴 했어요……. 그 사람 스타일은 저랑 좀 많이 다르거든요.

 처음엔 그냥 무시하려고 했는데, 음, 그게 사실 잘 안 돼요. 스파이더맨이 스토커라니, 말이 돼요? 몇 번 그 사람이 낀 미션에 끼려고도 해봤는데……. 그 때마다 어떻게 알고 쏙 빠지더라고요……. 키다리 아저씨, 전 도무지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필요해요! 뉴욕시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이 당신을 필요로 한다고요! 이래도 답장 안 해줄 거예요?

 여튼 제가 한 말 때문에 답장을 안 한 게 아니기만을 바랄게요.
 좋은 하루 보내고 있길 간절히 기도하고 있어요.
 그럼 다음에 꼭 봐요! 아, 편지로요!

 기다리다 목이 빠져버린 당신의 주디, 스파이더맨.



 어디 있는지 모를 스파이더맨 전용 고민 상담소의 키다리 아저씨에게.

 벌써 네 번째 편지네요. 내가 다 잘못했어요. 제발, 그냥 답장 하나만 줘요. 살아있으면 살아있다고, 그거 한 문장이어도 되니까, 제발.

 그리고 당신이 틀렸고, 숙모가 맞았어요.

 당신도, 그 사람도 없어지고 나서야 알 것 같은데, 난 이제 진짜 방법을 모르겠네요.

 제발, 점이라도 좋으니까 답장 좀 줄래요?
 
 당신의 답장을 기다리며, 스파이더맨이.

* * *

 파란색 봉투에 넣어져 돌아온 편지와 함께 담겨진 안내문의 내용은 간결했다.

 [상대방이 마니또 관계를 끊었습니다.]

 한참이고 옅은 하늘색의 용지를 노려보던 피터는 핸드폰을 들어 상담원을 찾았고, 친절하게 전화를 받았던 상담원의 목소리는 금새 난처함으로 물들어갔다.

 “네?”
 [그러니까, 음, 상대방분이 서비스도 해지하셔서-]
 “그럼 아이디라도 알려주세요.”
 [죄송하지만 고객 개인정보에 해당되는 정보는-]
 “아이디가지고 제가 뭘 하겠어요! 어차피 랜덤인 정본데!”
 [고객님, 애초에 드릴 수도 없지만, 개인에게 부여된 넘버는 해지 즉시 삭제됩니다. 그게 저희 서비스의 장점 중 하나로 유명하고요.]

 다소 날카롭게 말을 끝맺은 상담원은 이내 더 도와드릴 부분이 있겠느냐고 물어왔고, 맥빠진 목소리로 피터가 더 이상 없는 것 같다고 답하자 의례적인 감사인사로 상담을 끝맺은 상담원은 잠시간 피터가 먼저 전화를 끊기를 기다리다 이내 끊어졌다.

- 저러고 나서 알아서 사겼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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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pideypool
:

- 신청한 사람을 번호로 분류해서 익명으로 연결해주는 마니또 서비스.

- A의 편지를 서비스 센터에서 받아서 B한테 보내는 식.

- 편지를 받은 사람이 더 이상 답장을 보내고 싶지 않으면 서비스 센터에 거부 의사를 밝히고 그걸 서비스 센터가 상대방에게 알려줌.

- 서로의 주소는 그래서 모름.



 낯선 사람에게.


 어, 안녕하세요. 아마 처음은 이렇게 시작하는 게 맞겠죠? 하지만 저한텐 더 좋은 문구가 있으니까 그걸로 시작할래요.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입니다!


 와, 이렇게 적고 보니까 정말 바보 같네요. 외칠 땐 몰랐는데 적으니까 정말 바보 같아요. 이미 여기서 제 사칭이 넘치고 있는 거 같긴 한데, 뭐,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신대도 상관없어요. 그건 그거 나름대로 장점이 있을 테니까요, 그쵸? 그만큼 절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리고- 여튼 절 사칭한 사람들이 욕 섞인 답장만 받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건 저한테 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거니까요! 아닌가? 여튼, 전 그래요.


 그냥 말할 사람이 필요했어요. 사실 제 주변 사람들은 제가 스파이더맨인 걸 모르거든요. 넵, 여러분의 영웅들도 가끔씩은 속을 터놓고 말할 사람이 필요하답니다. 당신이 부디 이 편지를 받고 기뻐했으면 좋겠어요. 하나님, 제발 제 안티나 조나 제임슨만 아니게 해주세요. 설마 이 편지 받고 데일리 뷰글에 제보할 건 아니죠? 그쵸? 그 사람들이라면 제 바보 같은 사진이랑 같이 분명 악의 다분한 기사를 또 내보낼 거라고요…….


 이런,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여튼! 그냥 오늘도 어제도 그제도 너무 힘들었어요. 당신도 뉴욕시에 사니까 알잖아요, 이 뉴욕에 제 일거리가 얼마나 많은지 말예요. 솔직히 전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면 그 피로가 다 풀리곤 하는데 그마저도 받기 힘든 때도 많거든요. 안 믿기신다고요? 글쎄, 오늘 가방 찾아준 할머니는 손녀한테 물려줄 가방에 흠집을 냈다고 그 가방으로 절 후들겨 패시더라니까요! 가방에 흠집났다던 분이, 그 가방으로! 제가 흠집을 내고 싶어서 냈습니까, 그걸 들고 튀니까 그걸 잡아채느라 팔을 좀 휘둘렀고, 그게, 음, 제가 나빴네요. 가방 채집용 거미줄이라도 따로 만들어야 겠어요. 그 놈의 소매치기는 왜 그렇게 많은 건지. 뉴욕시에 일자리가 넘친다는 말도 다 옛말인가 봐요, 그쵸? 아니면 너무 박봉이라 그걸로 먹고 살기 힘들던가……. 그거라면 조금이나마 이해를, 하면 안 되죠! 어쨌거나 나쁜 짓이잖아요…….


 주말에 친구를 만나러 시내에 나가는 건 꿈도 못 꿔요. 시내에 나갔다 하면 바로 사건이 터지는 통에 늦는 건 양반이고, 만나고서도 별에 별 핑계를 대고 빠져나와야 하니까요. 제 친구들은 제가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 있는 줄 알아요……. 제 대장한테 자유의지라도 있었다간 전 아마 대장이 없는 채로 살아야 했을 거예요.


 그리고 숙모도 그래요. 그 놈에 계란은 어찌나 많이 쓰시는지 이틀에 한 번꼴로 계란을 사가야 하는데, 저한텐 그것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깨지는 건 다반사고 안 사갔다간 그 다음날 아침에 뭐가 올라오는지 압니까, 시민분? 네, 그렇습니다. 영국제 콩 통조림입니다. 미국제도 있는데 굳이 영국제를 꺼내주시죠. 굳이, 말이에요……. 차라리 그럼 30개짜리 한 판을 사다놓고 쓰시지, 왜 굳이 12개짜리를 고집하시는지도 의문이에요.


 어쨌거나 제 신세한탄은 끝났어요! 오늘로서는 말이에요! 혹시 불쾌하셨다면 죄송해요. 그래도 어디 말할 데가 있어야죠. 숙모한테 사실 제가 스파이더맨이라서 도둑 잡다 깨먹었어요 죄송! 이럴 순 없잖아요. 친구들한테도 마찬가지고요. 너희들도 내가 스파이더맨인 거 알지? 오늘도 이 형이 정의 구현 좀 하다 늦었다, 하하하! 에휴. 여튼 여기까지 읽어줬다면, 정말 고마워요. 답장은, 음, 안 해줘도 음, 실망하진 않을게요. 솔직히 저기에 뭐 답할 게 있겠어요? 그쵸? 심지어 손 편지도 아니고, 타자로 친 에이포 용진데. 하지만 이해 좀 해줘요. 요새는 세상이 무서워서 글씨체만으로도 알아낼 수 있는 게 너무 많거든요. 사실 이건 비밀인데, 이 편지도 저희 집 컴퓨터랑 프린터로 쓴 게 아니랍니다. 그러니까 그걸로 절 잡아낼 생각은 말아요, 셜록 홈즈!


 어쨌거나 읽어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좋은 하루 보내요. 당신의 안전은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이 지키니까 걱정 마시고요!


 비 오는 어느 봄, 여러분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으로부터.




스파이더맨에게.


 흠, 우선 만나서 반가워, 스파이더맨. 네 말대로 네 사칭이 너무 많아서 진짜 넌지 긴가민가하고 있긴 한데 내가 스파이더맨이라고 믿는 한 스파이더맨일 테니 스파이더맨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 그러다보니 답장이 너무 늦어진 거니까 너무 탓하지는 않았으면 해. 진짜 스파이더맨이라면 진짜 잭팟인데, 글쎄, 나한테 그런 행운이? 그건 차차 알아나가기로 하고.


 무엇보다도 구슬퍼하고 있을 네 대장에 심심찮은 애도의 말을 보낸다. 그래도 뭐 어쩌겠어, 네 몸에 노동력을 지불하고 세 들어 사는 처지에 그 정도는 이해하겠지. 몸이 안전을 확보해야 대장의 안전도 확보되는 거잖아? 세상엔 못 믿을 놈 천지라고, 스파이더맨의 대장 양반. 당신이 그 정도는 이해하고 양보해야 한다고.


 그리고 계란이라, 흠. 숙모한테 계란 배달 서비스에 대해선 말해본 거야? 아니면 온라인 쇼핑은? 요새는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정해진 시간에 문 앞까지 배달해주는데. 계란뿐만 아니라 그냥 모든 식재료가 다 가능하니까 추천해드리도록 해봐. 숙모의 무릎을 희생시켜가면서 장을 봐올 필요는 없는 거잖아? 우린 지금 21세기에 살고 있다고. 망할 20세기나 19세기가 아니라 말이지.


 데일리 뷰글은 신경 쓸 필요 없어. 거기에 동조하는 좆 같은 놈들도. 그 놈들은 좆 같은 놈들이라 좆이라서 대가리에 뇌가 없거든. 설마 스파이더맨은 좆 대가리에도 뇌가 있다고 할 참은 아니지? 내가 말한 좆 같은 놈들은 좆같다는 표현의 좆이 아니라 진짜 좆 같아서 좆이라고 한 거거든. 하는 짓이 좆같아서 좆같다는 건 좆 같은 거지 좆인 건 아니잖아, 그러니까 내말은 그 놈들이 좆이라서 좆과 같은 놈들이란 뜻이지.


 아, 그리고 고맙단 인사를 안 하고 튀는 놈들, 하. 나도 꽤 많이 겪는 일인데, 그거. 남 일 같지 않아서 말하지만, 그 놈들은 평생 그럴 놈들이야. 네가 아니라 아이언맨이 와도 똑같을 거라고. 자기 챙길 것만 챙기고 튀는, 이기적인 놈들이란 소리지. 타이타닉 호에 있었으면 여자나 아이, 노인 전부 밀쳐내고 구명정 가지고 튀었을 거야. 그것도 구멍 난 구명정으로. 그런 식으로 사는 놈들 중에 잘 되는 놈은 거의 없거든. 뭐, 내가 할 소린 아니지만.


 어쨌거나 좀 놀라긴 해도 못 들어줄 신세한탄은 아니었으니까 걱정 말라고. 스파이더맨의 사소한 걱정을 공유하는 건, 나한테도 꽤나 즐거운 일이거든. 그럼 안전한 하루 보내, 스파이더맨. 안전은 나보다는 너한테 필요한 거 같거든.


 그럼 다음 이 시간까지, 즐겁게 보내요, 거미 양반.


 나가 놀기 좋은 어느 봄, 당신의 고민 상담소 지킴이가.




 조금은 덜 낯선 사람에게.


 와, 사실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좋은 소식은, 제가 이 편지를 숙모가 발견하기 전에 들고 들어왔다는 거고, 나쁜 소식은, 제가 이 편지 봉투를 들고 방방 뛰다가 숙모한테 걸렸다는 거예요. 숙모가 무슨 편지냐고 묻긴 했는데 대충 무슨 사진 공모전 예선에 통과했다는 편지인 것 같다는 걸로 둘러대고 올라오긴 했지만, 글쎄요, 숙모 눈빛이 그다지 믿는 표정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요새 숙모가 자꾸 누구 없냐고 물으시는데, 없다고요, 숙모! 없어요! 그런 걸 만들 시간도 없다고요! 하나님, 거미들도 새끼를 치는데, 전 왜 여친도 없는 건가요!


 여튼 제 불쌍한 대장이 작은 감사의 표시로 보낸 쿠키는 맛있게 먹으셨길 바랄게요. 제 친구한테 배워서 구운 쿠킨데 도대체 그 모양으로 만든 쿠키를 누구한테 자꾸 물어서 둘러대느라 혼났어요. 똥 모양이긴 해도 음,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어요. 혹시 탄 부분 있으면 꼭 떼고 드시고요.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는데 가장자리에 둔 쿠키 몇 개가 조금 탔거든요…….


 아, 그리고 그 배달 서비스! 아무렴 제가 숙모께 안 권해봤겠습니까, 선생님……. 근데 인터넷 서비스는 못 믿으시겠다는 거 있죠! 배달원도 못 믿겠대요! 나 참! 문 앞에 두고 가라고 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럼 물건 확인을 못해서 안 된대요! 그럼 제가 있을 때 시간대로 주문하시라고 하려다가, 제가 스파이더맨인 게 떠올라서 입을 다물었죠. 넵, 그렇습니다. 전 그렇게 영원한 계란 셔틀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었습니다……. 옆집만 해도 잘만 주문해서 쓴다고 그렇게 설득을 해봐도 안 된다고 그러시네요. 뭐, 삶이 그렇게 쉽다면 –물론 충분히 쉬워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삶이 삶이 아닌 거겠죠. 애초에 저 글씨를 봐요. 저게 어디 쓰기 쉽냔 말이죠. 균형도 잘 맞춰 써야 모양새가 나오는 글씨라고요……. 겹받침이라니! 삶은 계란이라더니 전 삶도, 계란도 둘 다 지긋지긋해요.


 데일리 뷰글이라면 이제 괜찮아요. 뭐, 그거 읽고 즐거워하는 시민분이 있다면 저의 작은 굴욕은 그냥 넘길 수도 있어요, 네, 뭐, 그럴 수도 있죠. 그럴 수도……. 그나저나 한 문단에 좆이란 단어를 얼마나 쓴 거예요? 안 세보셨다면 제가 말씀드리죠! 무려 15개라고요! 15개! 그리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 제 뇌에겐 애석한 일지만 제 음, 그 부분에는 뇌가 없답니다. 그랬다면 아마 삶이 조금은 쉬워졌을지도 모르겠어요. 생각을 할 뇌가 두 개나 되는 거잖아요. 물론, 거기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말이죠. 그리고, 전 스파이더맨이지, 스파이더몬스터가 아니라고요! 거미도 거기엔 뇌가 없어요! 아마도? 아마 그럴 거예요. 현 인류가 아는 한 말이죠…….


 그리고 타이타닉이라니! 설마 평소에도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죠? 친구들이 다 도망갈 거예요! 그리고 구멍 난 구명정에서 사람을 구하려면 전 또 개고생을 해야 할 거고요……. 이상하게 사건이 일어나는 곳엔 늘 제가 있더라고요……. 아니면 내가 가는 곳에 사건이 생기나……. 


 어쨌거나 제 신세한탄이 그렇게 못 들어줄 건 아니라고 하셔서 하는 말인데요, 음, 설마 이게 마지막 편지는 아니겠죠? 여튼. 요새 계속 주변에서 알짱거리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 때문에 안 그래도 터질 것 같은 제 머리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에요. 그 사람은 늘 괜찮다고 하는데, 제 눈엔 그렇게 안 보이거든요. 근데, 각자의 인생은 각자가 알아서 하는 거고, 그리고 그 사람도 성인이고 어쨌거나 그 사람만의 방식이 있는 건데 제 생각만으로 판단해서 함부로 말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놔두기도 그렇고, 그런데 또 끼어들자니 좀 그렇고……. 아, 그렇다고 제가 막 그 사람을 그렇게 신경 쓰는 건 아닌데, 음, 그러니까 그냥 평범한 오지랖이죠, 오지랖. 그거 말곤 설명할 방법이 없어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니까요?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냐면, 사실 이 이야기를 친구 이야기라고 둘러대고 숙모한테 이야기 했더니 숙모가- 아, 여기까지만 말할래요. 더 말하면 제가 너무 슬플 것 같아요.


 여튼, 요새는 날이 더워져서 수트를 다른 걸로 바꿔 입어야 할 것 같아요. 문제는, 아침엔 춥고 저녁에 덥다는 건데- 아, 제가 설마 사시사철 똑같은 수트를 입고 다닌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저도 나름 봄, 가을용, 여름용, 겨울용 수트가 따로 있다고요! 물론, 그 전엔 하나로 버티긴 했지만요……. 그리고 제 통장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버리고 말았답니다……. 그래도 웹슈터가 고장 안 나는 게 어디예요……. 그건 한 번 고장 나면 제 통장이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는 걸로는 안 끝날 거예요……. 거미줄은 또 어떻고요. 가끔은 거미줄 비용 아끼려고 집까지 걸어간다니까요……. 사장님, 월급 적어요, 월급 좀 올려주세요, 엉엉엉.


 근데 이거 저한테 전달되는 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 걸까요? 사실 날 좋은 봄날을 단서로 추측해보려고 했는데, 요새 날이 하도 오락가락해서 쉽지가 않더라구요.


 여하튼, 여러분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은 이것으로 오늘 이야기를 끝내겠습니다! 왜 이렇게 짧냐고 구박마세요. 지금 안 그래도 절 찾는 알람이 마구 울리고 있는 걸 꾹 참고 마무리 짓고 있는 거라고요. 좋은 하루 보내요, 조금은 덜 낯선 양반. 아, 그리고 내 안전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사실 그 소리 듣는 것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라서 조금 감동 받았어요. 다들 제가 천하무적인줄 아는데, 저도 스파이더‘맨’ 이라고요. 사람이란 뜻이죠. 이런, 또 길어져버렸네.


 그럼 부디 다음 편지까지 우리 둘 다 무사하길 바라며!


 당신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이.


 추신. 당신 이름 좀 알려줄 수 있어요? 아니면 우리끼리 부를 호칭이라도? 매번 낯선 사람이라고 쓰긴 좀 그렇잖아요. 부르기에도 좀 그렇고……. 싫으시면 말고요……. 강요하는 건 아니었어요!




뉴욕시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에게.


 쿠키는 잘 먹었어. 생각보다 안타서 전부 다 먹어치웠으니까 나대신 네 대장에게 감사 인사 좀 전해줘. 아, 물론 내 대장도 감사 인사를 전해 달라 더라고. 사실, 그 쪽은 그렇게 안녕해 보이지 않지만 말이야. 네 쿠키 탓은 아니고, 고질병이야.


 호칭이라. 흠, 애매한 문젠데. 그냥 당신은 어때? 아니면 자기? 여보? 농담이야, 정색하지 말라고. 지난번에 친구한테 이런 농담 쳤다가 개정색 당해서 한동안 우울했거든. 그러니까 정색하지만 말아줘. 키다리 아저씨 정도로 하자. 다정스럽잖아. 그리고 거미한테서 유래된 이름이기도 하고. 스파이더맨과 거미에서 착안한 키다리 아저씨. 잘 어울리지 않아?


 삶이 지긋지긋하다니, 이렇게 익숙할 데가 있나. 삶은 계란이지. 먹어 치워서 끝내버려도 껍질이 남는, 그런 거란 말이야. 그래도 네가 남길 껍질에 감사할 사람은 많으니까 지긋지긋하더라도 당장 먹어치울 생각만은 말아줘. 그 감사하는 사람 중 하나가 나이기도 하니까, 아, 그건 상관없으려나. 어쨌거나, 너무 쉬운 게임은 금세 질리듯, 삶이 너무 쉬웠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문제였을 거야, 안 그래?


 그래서 30개들이 계란을 안 사시는 이유는 뭐래? 그건 말 안 해준 거 같은데.


 흠. 내가 좆이란 단어를 15번이나 썼다고? 그리고 우리 스파이더맨은 그 좆이란 단어를 일일이 셌고 말이지? 흠.


 타이타닉은 남극인가 북극인가 여튼 뉴욕시 밖에서 사단이 났고, 타이타닉 티켓 값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네가 무슨 수로 거기에 있게? 네 통장 사망한 거 아니었어? 아니면 설마 스파이더맨은 도박도 잘하나? 그 영화 남주처럼 도박으로 티켓이라도 따서 들어갈 참이야? 어쨌거나. 세상 모든 사람을 네가 구할 수는 없어, 스파이더맨. 그리고 모든 생명은 평등하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움이 더, 필요한 사람은 있기 마련이지. 사람들을 밀치고 구명정에 올라탈 정도의 악바리면 구명정에 구멍이 나도 살았을 거야. 네가 구해줄 필요는 없었을 거라고.


 아. 그리고 친구. 애초에 난 친구도 별로 없거니와 겨우 그 정도 소리를 듣고 달아날 친구도 없는 처지라서.


  니가 말을 줄이지 않아도 네 숙모가 뭐라고 했을지는 알겠다. 그건, 바로 사랑이란다, 스파이더맨. 뭐 비슷한 말을 했겠지. 아마 그래서 계속 누구 없냐고 하는 걸 테고. 뭐, 네가 뭐라고 설명하건 네 숙모는 그렇게 생각할 걸. 나야 네가 스파이더맨인 걸 아니까 그냥 평범한 오지랖이라고 납득하고 있지만 말이야. 흠. 어려운 문젠데. 그냥 내버려 둬. 네가 그냥 내버려둬도, 혹은 기를 쓰고 노력을 해도, 갈 사람은 가고, 살 사람은 살고, 죽을 사람은 죽는 법이거든. 적어도 내 친구 말론 그래. -내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난데 그 쪽이라며 아주 믿을만한 친구지.- 나이가 몇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스파이더맨에게 그런 고민을 안기다니, 못 미더운 친구인가 보지? 여튼, 내 조언은 그거야. 그냥 내버려두고 네 할 일을 하면서 곁에 있어줘. 어쩌면 그게 가장 좋은 대처법일 수도 있거든. 네가 하는 모든 일 –그게 얼마나 놀라운 일이건 간에 말이지- 에 대한 보상은 감사하단 인사 하나로 충분하다고 했던 거나, 내 작은 말에 네가 감동받았던 걸 생각해보면, 그 사람한텐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수도 있어.


 그리고 수트, 흠. 전혀 모르겠던데. 난 또 네가 똑같은 수트 여러 벌로 돌려 입는 줄 알았지. 근데 계절별로 하나씩이라니. 도대체 세탁은 해 입는 거야? 한 해에 한 번씩 하나? 어쩐지 스파이더맨이 간 곳엔 그 체취가 남는다는 말이 나돌더니, 그게 거짓말은 아니었구만. 깨끗하게 좀 살아, 거미양반. 사냥꾼한테 체취가 있으면 사냥감들이 다 도망간다고. 100미터 밖에서도 맡을 악취가 알람이 되는 수가 있다고.


 네가 내 편지에 바로 답장해서 보냈다는 걸 전제로 추측해 보건데 대충 2주 정도 소요되는 거 같은데, 글쎄.


 아, 그리고 같이 동봉한 수표는 부디 좋은 곳에 써달라고. 가령 네 계절별로 하나뿐인 수트를 두 벌씩으로 늘린다던가. 키다리 아저씨란 호칭을 가지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다시 반송하면 앞으로 이 고민 상담소는 영영 열리지 않을 거고, 난, 아주, 아주, 아주, 많이 슬퍼지겠지.


 그럼 다음엔 깨끗한 수트로 뉴욕시에 나타나줘, 스파이더맨.


 너의 키다리 아저씨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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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pideyp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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