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DN님 썰 보고 쓴 글, 카페 알바 하는 피터, 마지막.
썰/덷거미덷 2016. 3. 30. 10:52 |- DN님 썰은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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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멘탈 없음. 노 개연성. 이젠 나도 모름 ㅋㅋㅋㅋ
- 쓰면서 들은 노래
아무렇지 않게 시작되었던 일상의 부재는 피터에게 꽤나 크게 다가왔고, 피터는 이제 마셔줄 이가 없을 거라는 사실을 외면한 채 매일같이 거품 라떼 연습에 골몰하며 여전히 새벽 6시가 되면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응시했다.
이미 한 번 겪었던 부재이기에 금세 익숙해질 거라는 생각과 달리 두 번째 찾아온 부재는 꽤나 끈질기게 그의 삶을 갉아먹고 있었다. 설사 선을 넘는 일이 있더라도 그 때 붙잡았어야 했나, 라는 생각은 끊임없이 그의 심장을 난도질해왔고, 도대체 얼마 보지도 않았던 그 남자가 뭐라고 이리도 심란해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애써 그가 보지 않으려던 답변을 끌어내고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그 의문에 답하지 않은 채로 6시면 주문대에서 몸을 일으켜 다음 타임 알바가 문을 열고 들어올 때까지 아무도 오지 않는 카페 유리창 너머를 응시했다.
“오하요, 피터 파커 센빠이! 오늘은 제시간에 왔는데 칭찬 안 해줘요?”
경쾌한 인사와 함께 카페로 들어오던 루시안은 자신의 말엔 대답지 않고 빤히 얼굴만 응시하는 피터의 모습에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않은 채 멈춰 섰고, 주문대에서 나와 루시안을 한참 쳐다보던 피터가 망설이다 물었다.
“최근에 블랙커피의 사나이 본 적 있어……?”
“블랙커피의 사나이요? 그, 블랙커피만 주문하는 손님? 그 손님 지난 여름에 그러고서 안 오는 거 아니었어요?”
눈까지 동그랗게 뜨며 되묻는 루시안의 얼굴에서 거짓말의 기미를 찾아볼 수 없었던 피터는 힘없이 돌아서서 주문대로 돌아왔고, 피터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루시안은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탈의실에 들어가려다 말고 피터에게 다가와 말했다.
“만약에, 음, 아주 만약에 말인데요, 사랑싸움이라도 하신 거면-”
“뭐?”
“네?”
루시안의 말에 화들짝 놀라 피터가 돌아섰고, 그만큼이나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던 루시안이 헛기침을 두어번 한 뒤 말을 이었다.
“여튼, 그런 거면 그냥 빨리 전화하시는 게 제일 좋을 걸요. 어영부영하다간 어영부영 헤어지게 된다고요.”
피터가 고개까지 주억거려 가며 피터의 어깨를 두들기는 루시안의 손을 털어냈고, 잠시 말을 아끼던 피터는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루시안에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사랑싸움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고 옷이나 갈아입어.”
“진짜 아니에요? 진짜?”
“어, 아니라고. 애초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은 어디서 온 거야?”
“그도 그럴게, 형 표정이 제 친구가 제 다른 친구랑 사랑싸움하고 나서 화해 방법 물어올 때랑 똑같은 표정이었거든요. 만약에 남자끼리라서 저한테 말씀 못하시는 거면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전 그런 데엔 편견 없거든요.”
피터가 정색을 하거나 말거나 꽤나 진중한 어조로 말을 맺은 루시안은 피터의 말을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탈의실 쪽으로 사라져버렸고, 다소 멍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던 피터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전화번호를 모른다고, 망할 전화번호를 안 받았단 말이야…….”
평소와 달리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나온 루시안은 우중충한 피터의 얼굴을 보곤 15분이긴 해도 오늘은 일찍 들어 가보시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왔고, 딱히 그의 말을 거절할 생각이 들지 않은 피터는 늘 그렇듯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가 스파이더맨 수트로 갈아입은 뒤 곧장 어벤져스 타워로 향했다.
회의나 실험이 아니면 어벤져스 타워를 찾지 않는 피터가 이른 아침부터 타워를 방문한 탓에 침대 위에 늘어져 있다 목욕 가운 하나만 걸치고 나온 토니의 얼굴은 밝지 못했는데, 곧이어 사람 하나를 찾아달라는 피터의 말이 들리자 더 이상 구겨질 데 없이 일그러졌다.
“사람? 뭐, 빌런이야? 아니면 빌런 후보생? 그것도 아니면 여친 내연남 추려내기? 그보다 너 언제 나 몰래 여친 만들었냐? 자꾸 아빠한테 비밀 만들면 섭섭하다?”
“제발 좀, 토니. 사람이 부탁을 하면 좀 말없이 들어주면 안 돼요?”
“입 터는 꺼 빼면 시체인 사람한테 ‘말없이’라니, 너무 가혹한 처사 아냐? 그보다, 불법인 건 알고 하는 거지?”
“그 불법을 자행하는 이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갑자기 911 번호가 참 누르고 싶어지네요, 토니.”
“큼. 난 어디까지나 공적인 일로 조회하는 거고, 딱 봐도 사적인 일인 게 보이는데 나야말로 뉴욕 경찰청장 직통 번호 부르고 싶다, 핏.”
투덜거리면서도 자비스를 부른 토니는 피터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머리를 푸스스 털어내곤 자비스에게 조회를 부탁했고, 자리를 비켜주는 대신 아예 피터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피터가 이름과 함께 나열된 얼굴 사진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모양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자신이 찾던 웨이드 윌슨을 찾아낸 피터가 다른 정보는 싸그리 무시한 채로 재빨리 핸드폰 번호만 머릿속에 입력한 채 자리에서 일어섰고, 그런 피터의 어깨를 잡아 소파에 다시 앉힌 토니가 스크린을 당겨 그들 앞에 크게 펼쳐놓은 뒤 피터에게 프로필을 들이밀었다.
- 웨이드 윌슨.
나이 : 미상.
키 : 188.9 cm
몸무게 : 95 kg
코드명 : 데드풀.
능력 : 그의 능력은-
“이 웨이드가 데드풀이라고요?”
“뭐래. 데드풀 놈이 본명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게 웨이드 윌슨이겠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어? 애초에 그냥 데드풀이라고 하면 될 걸 왜 굳이 이렇게 고생해서 찾은 건지 물어나 보자.”
쭉 읽어 내리다 데드풀 항목에서 경악하는 피터를 의뭉스럽게 쳐다보며 답을 기다리던 토니는 새빨간 마스크 탓에 읽을 수 없는 피터의 표정이 그리 밝지만은 않을 거라는 것과 데드풀에게 그토록 스토킹을 당하면서 여태껏 본명을 몰랐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어렵사리 납득한 후 침묵을 지켰고, 피터의 손에 의해 화면이 꺼지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데드풀이 제가 알바 하는 카페에 오는 거 아셨어요?”
“뭐? 걔가 니가 알바 하는 카페는 어떻게 알고 가?”
토니의 경악한 듯한 얼굴에 답을 읽은 피터는 그를 붙잡는 토니를 무시한 채로 열린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보기 싫을 때면 언제고 모습을 드러내던 것과 달리 아무리 뉴욕시를 뒤져도 코빼기 하나 보이지 않는 웨이드, 아니. 데드풀을 찾는 데에 지친 피터는 보람 없이 체력만 축낸 채로 뉴욕 시가지에서 다소 떨어진 건물 옥상에 드러누웠고, 어디선가 나타난 토니가 그의 곁으로 다가와 그의 허벅지를 툭툭 차며 말했다.
“집 주소라도 줘?”
“집 주소요?”
“딱 보니까 이제 니가 데드풀 스토킹 하는 모양인데 스토킹 초보자인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 같아서 팁이나 하나 주려고.”
여전히 드러누워 있는 피터의 앞으로 지도와 함께 주소지가 찍힌 스크린을 띄운 토니는 전면 커버를 들어 올리곤 무어라 말을 할 듯하더니 이내 잘 해결 하라는 말만 남긴 채 자리를 떠버렸고, 우연찮게도 자신이 드러누운 건물 근처에 위치한 집주소를 노려보던 피터는 축축 쳐져오는 몸을 일으켜 건물 아래로 뛰어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의 집 문 앞에 도달한 피터는 벌써 몇 분째 초인종 위에 손을 올린 채 망설이고 있었다. 처음 뉴욕 시내를 뒤질 때야 터질 듯 부풀어 오른 분노가 이성을 마비시켰다곤 해도 토니가 집주소를 던져주고 간 이후부터는 오만가지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혀 놓고 있었고, 이제 그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분노에 차올라 데드풀을 찾은 건지에 대해조차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데드풀, 그러니까 웨이드가 모습을 감춘 시점은, 아마도 자신이 그 카페 알바생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와 일치했고, 처음에 그를 분노케 했던, 그가 자신의 스토킹을 하느라 카페를 찾았을 거란 가설은, 데드풀이 애초부터 그 카페에 소문난 ‘블랙커피의 사나이’ 였다는 사실에 무너져 내린 지 오래였다.
그는, 어째서 데드풀이 피터가 스파이더맨인 것을 알아차린 후에 모습을 감춘 건지 알 수 없었다. 데드풀은 분명 스파이더맨을 좋아했었다. 그토록 신나하는 어벤져스와의 팀업에조차도 일일이 청구서를 발행하는 인사가 어째선지 스파이더맨과의 팀업에서만큼은 돈 이야기를 꺼려했고, 피터가 달가워하건 하지 않건, 그 둘의 팀업은 늘 그렇듯 데드풀의 데이트 요청과 그의 거절로 끝을 맺곤 했다.
그럼, 웨이드가 피터 파커를 싫어했던 건가? 그가 볼 때 그간 웨이드가 해왔던 모든 행동은 분명히 호의나 호감에서 우러나온 것들이었다. 스파이더맨에겐 섹스하자는 말을 수없이 하면서도 자신의 조언에 따라 여태 섹스의 섹, 자조차 꺼내지 않은 것이나, 방문 시간을 굳이 한 시간 반이나 앞당기고 그 시간 내내 카페에 머물렀던 것, 그리고 자신의 하잘 것 없는 이야기를 일일이 들어주고 단 맛과 시나몬향이 지나치다면서도 단 한 번도 잔을 비우지 않은 적이 없던 것들.
초인종 위에 얹어졌던 손가락을 거둔 그는 문 전면을 가득 메운 전단지들과 문 옆에 우편물들이 가득 찬 탓에 자리가 모자라 그 밖으로까지 튀어나온 우편함을 보곤 아마도 다른 용건으로 다른 도시에 가서 못 온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설득시켰다. 그리고 그가 막 돌아서려는 그 때에, 문 안쪽에서 거친 욕설에 이어 소리를 잔뜩 죽인 둔탁한 파공음이 울렸고 그 소음이 무엇인지 누구보다도 잘 아는 피터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문을 걷어찬 뒤 플랫 안으로 들어섰다.
문을 열자마자 짙은 피비린내가 피터를 덮쳤고,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내린 피터의 시야로 지저분한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바닥엔 언제 먹었는지 알 수조차 없을 정도로 낡은 피자 박스들이 널부러져 있었고, 개중엔 데드풀이 자주 가자고 권했던 타코 가게의 상표가 박힌 포장지들이 섞여있었지만, 그 중 최근에 뜯어진 것으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내부로 들어갈수록 점점 짙어져가는 피 냄새에 숨을 깊이 들이쉰 피터는 굳게 닫혀있는 욕실 문을 조심스레 열어젖혔고, 이내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욕조 밖으로 축 늘어진 손에서 떨어진 총이 타일 바닥에 나뒹굴어져 있었고, 힘없이 떨궈진 머리가 기대고 있는 벽은 짙고 끈적한 검붉은 액체에 뒤덮여 있었다. 말이 많기는 해도 실력 하나는 알아줬던 용병은 정확히 어딜 쏴야 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천천히 그 시체에 다가선 피터는 뒤통수에 난 거대한 구멍에 결국 치밀어 오른 구토를 참지 못하고 변기로 향했다. 변기로 향하는 그의 발에 치인 탄피들이 달그락거리며 초대도 없이 집을 찾은 불청객에게 항변했고, 굴러가는 탄피들을 따라 시선을 옮긴 피터는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욕조 바로 옆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총알들을 보고 결국 울음을 터트려야 했다.
기다림은 길었다. 늘어져 있는 손의 바로 옆에 쌓여있던 총알들과 총을 모조리 욕실 밖으로 옮긴 피터는 변기 커버 위에 웅크리고 앉아 그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렸고, 작은 부스럭거림 소리에 얼른 욕조 곁에 다가가 자리를 잡았다. 손끝만 움찔거리던 손은 눈이 채 떠지기도 전에 바닥을 더듬으며 무언가를 찾는 듯 했고, 아직 혀가 덜 생성된 듯한 입이 불쾌한 모양으로 벙긋거리는 것을 본 피터가 그의 손을 잡았다.
“웨이드.”
잠시 몸을 움찔였던 상대는 말이 없었다. 차갑기만 하던 손은 어느 새 제 혈색을 찾고 빠르게 그 온기를 찾아갔고, 새파랗게 질려 있던 입술이 조금이나마 옅은 분홍빛을 띄기 시작한 것을 본 피터가 다시 입을 열었다.
“데드풀.”
힘없이 늘어져 있던 턱이 힘을 되찾은 듯 굳게 닫혔고, 셀 수도 없을 정도의 총질로 날아간 마스크 아래의 얼굴을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하게 된 피터의 손이 그의 얼굴에 닿았다.
“웨이드 윌슨. 들리는 거 다 아니까 눈이나 좀 떠봐요.”
피터의 속삭임에도 감겨있는 눈꺼풀은 끈덕지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꼼지락거리며 벗어나려는 손을 힘주어 잡은 피터가 여전히 힘없이 늘어져 있는 그의 몸을 일으켜 세운 뒤 욕조에 걸터앉았다.
“따지고 싶은 것도 많았고 하고 싶은 말도, 듣고 싶은 말도 많지만 하나만 물을 게요. 도대체 왜, 제가 스파이더맨이라는 걸 알고 나서 사라져버린 거예요? 제가 마음에 안 들었어요? 아니면 스파이더맨이? 그것도 아니면 스파이더맨이 저라는 사실이?”
그의 질문에 잠시 벌어졌던 입은 이내 기침과 함께 핏덩이를 쏟아 냈고, 푹 꺼져 있던 그의 흉부가 숨으로 들이차는 것을 본 피터는 끈기 있게 기다렸다.
“하나만 묻는다며, 물음표가 벌써 네 개나 되잖아, 스파이디.”
웃음과 함께 장난스런 목소리로 시작되었던 말은 밭은 기침으로 끝을 맺었고, 피터에게 잡힌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입가에 흐른 피를 닦아낸 웨이드의 눈이 떠졌다. 그 긴 시간동안 마주쳤음에도 단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한 눈을 마주하게 된 피터가 숨을 들이쉬었고, 그의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몰라도 고개를 숙인 웨이드가 말을 이었다.
“내가 스파이더맨을 마음에 안 들어 한다니, 도대체 어디서 나온 발상이야? 누구든 너한테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는 인종이 있으면 말만 해. 내가 아끼는 컬렉션 중 하나 빌려줄 테니까 그 혓바닥을 쏴버리라고. 하지만, 하지만 말이야, 스파이디, 이 뉴욕시에서 스파이더맨 안티를 찾으려면 애 좀 써야할 걸? 전혀 특별하지 않은 감정일 뿐이야. 팬심, 덕심, 몰라? 아니지. 너드인 네가 모르면 도대체 누가 알겠어? 그럼 그건 답이 된 건가.”
그륵거리는 목소리로 답한 웨이드가 기침과 함께 또다시 핏덩이를 토해내며 슬그머니 손을 빼갔고, 얼결에 그 손을 놓친 피터는 잠자코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피터 파커? 걔가 마음에 안 든다니 말이야, 콩이야? 난 네 그 브루넷이 미치도록 좋아. 처음에 내가 널 빤히 쳐다봤던 것도 그 브루넷 덕분이니까 그 머리칼 잘 간수해두라고. 오, 그리고 그 눈. 이제야 가까이서 보다니 이렇게 안타까울 데가 있나. 20대의 파릇파릇함이란! 그 푸르름에 스파이더맨 못지않은 인성을 마다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어, 피터.”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만 같던 목소리는 점차 안정되어 갔고, 들쑥날쑥하던 그의 숨이 비교적 고르게 변한 것을 본 피터는 여전히 바닥을 향하고 있는 그와 눈을 맞추려 애를 쓰며 그에게 말했다.
“그럼, 첫 번째 질문이랑 마지막 질문은요? 피터 파커도 좋고, 스파이더맨도 좋은데, 피터 파커 스파이더맨이나 스파이더맨인 피터 파커를 마다할 이유야 없겠죠. 좋아요, 그럼 마지막 질문은 대답한 셈 치고 첫 번째 질문에 답 해봐요, 웨이드. 도대체 왜 그 날 그렇게 간 거예요? 당신이라면-”
“나라면?”
피터의 말을 잡아챈 것과는 달리 지극히 자조적인 느낌의 반문에 벌어졌던 피터의 입이 닫혔고, 침묵 속에서 고개를 든 웨이드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래, 네가 아는 데드풀이라면 오두방정을 떨며 네가 달려들었겠지. 네가 아는 데드풀이라면, 그리고 내가 아는 데드풀이라면 말이야. 하지만 내가 그 시간들을 함께 보내고 네 조언을 따라 섹스의 섹자도 꺼내지 않은 채로 관계를 맺었던 피터 파커는, 그 데드풀을 모르잖아. 그리고 난, 나는, 그 녀석은 그 미친놈에 대해 몰랐으면 했어.”
피터가 단 한 번도 마주하지 못했던 웨이드의 눈은 방금 전까지 그의 머리 위를 뒤덮고 있던 하늘보다도 새파랗게 질려 있었고, 굳게 다물어진 채 매끄럽게 올라간 입가는 금방이라도 꺼질 듯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침묵 속에서 그 동안의 데드풀의 부재를 떠올렸던 피터는, 비단 자신의 전투 현장이 아니더라도 그들이 그 아침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 어느 시점부터 사건 사고 현장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고, 길다면 길었을 그 시간동안 자신이 단 한 번도 물어봤자 답이 올 리가 없다는 걸 핑계 삼아 그의 일상이나 그의 삶에 대해 단 한 차례도 묻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힘들긴 했어. 이렇게 생긴 놈을 받아주는 회사가 흔치는 않았거든. 사실은 몇 번 포기할까 생각도 해봤는데, 그러면 그 곱상하게 생긴 어리어리한 놈한테 정체 들키는 것도 쉽상일 테고, 알다시피 내 평판이 그렇게 좋진 못하잖아? 그래도 다행히 이 몰꼴로도 들어갈 수 있는 회사가 없진 않더라고.”
거기까지 말하고 몸을 일으킨 웨이드가 피터를 일으켜 세운 뒤 욕조 밖으로 나왔고, 그의 몸 위에 있던 탄피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욕조 안으로 쏟아져 내렸다.
“근데 뭐 이렇게 디 엔드. 끝이네. 반대를 무릅쓰고 날 자기 보디가드로 고용한 토니만 헛 짓거리한 거지, 뭐.”
웨이드 입에서 나온 이름에 미간을 찌푸렸던 피터는 어느 새 자신을 제치고 욕실 밖으로 걸어 나가고 있는 웨이드를 따라잡기 위해 뛰다시피 걸었고, 욕실과 그다지 멀지 않은 현관문을 열어젖힌 웨이드가 백화점 직원마냥 현관문 밖으로 손짓을 한 뒤 말했다.
“자, 질문에 답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스파이더맨. 그럼 나가시는 길은 이쪽입니다.”
“웨이드. 오히려 잘 된 거잖아요. 당신의 진짜 정체를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상대가, 그러니가 그 상대가, 당신 연인이 된다면요.”
연인이란 단어를 힘겹게 뱉은 피터는 내내 그의 얼굴로 향하고 있던 시선을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바닥에 박았고, 여전히 현관문 손잡이를 잡고 있는 웨이드의 발끝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요, 제가 당신한테 무관심해 보일 수 있었다는 거 자체는 인정할게요. 스파이더맨이 데드풀을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것도요. 하지만 제가 알고 있던 웨이드 윌슨이 데드풀이더라도 제가 상관치 않는다면요? 스파이더맨이 아니라 피터 파커로서 그 데드풀조차도 받아들일 수 있다면요? 애초에 제가 좋아했던 웨이드 윌슨이 어디로 간 것도 아니잖아요, 웨이드. 전 그거면 충분해요. 웨이드 윌슨. 그거면 충분하다고요.”
내내 쓰고 있던 마스크를 집어던진 피터는 어느 새 현관문을 놓고 뒷걸음질 치기 시작한 웨이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고, 그가 벽에 몰릴 때까지 끈기 있게 그를 구석으로 몰아갔다.
“당신이 웨이드 윌슨이라고 해서 데드풀로서의 당신의 방식이 마음에 든다는 건 아니에요. 그냥, 내가 봐온 웨이드 윌슨을 믿기로 한 거지. 그리고, 음, 이건 좀 웃긴 소리처럼 들릴 것 같은데…….”
더 이상 뒤로 물러날 곳이 없는, 웨이드가 벽에 등을 바싹 붙인 채 시선을 내리깔자, 그의 바로 앞으로 다가가 그의 발끝에 자신의 발끝을 맞춘 피터는, 바닥으로 내리깔린 그의 시선을 맞췄고, 잔뜩 커진 그의 동공을 보며 이유 모를 만족감에 미소 지으며 속삭였다.
“저도, 당신이 선택한 게 피터 파커라는 점이 마음에 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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