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N님 썰은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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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멘탈 없음. 노 개연성. 이젠 나도 모름 ㅋㅋㅋㅋ


- 쓰면서 들은 노래




 아무렇지 않게 시작되었던 일상의 부재는 피터에게 꽤나 크게 다가왔고, 피터는 이제 마셔줄 이가 없을 거라는 사실을 외면한 채 매일같이 거품 라떼 연습에 골몰하며 여전히 새벽 6시가 되면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응시했다. 


 이미 한 번 겪었던 부재이기에 금세 익숙해질 거라는 생각과 달리 두 번째 찾아온 부재는 꽤나 끈질기게 그의 삶을 갉아먹고 있었다. 설사 선을 넘는 일이 있더라도 그 때 붙잡았어야 했나, 라는 생각은 끊임없이 그의 심장을 난도질해왔고, 도대체 얼마 보지도 않았던 그 남자가 뭐라고 이리도 심란해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애써 그가 보지 않으려던 답변을 끌어내고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그 의문에 답하지 않은 채로 6시면 주문대에서 몸을 일으켜 다음 타임 알바가 문을 열고 들어올 때까지 아무도 오지 않는 카페 유리창 너머를 응시했다.


 “오하요, 피터 파커 센빠이! 오늘은 제시간에 왔는데 칭찬 안 해줘요?”


 경쾌한 인사와 함께 카페로 들어오던 루시안은 자신의 말엔 대답지 않고 빤히 얼굴만 응시하는 피터의 모습에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않은 채 멈춰 섰고, 주문대에서 나와 루시안을 한참 쳐다보던 피터가 망설이다 물었다.


 “최근에 블랙커피의 사나이 본 적 있어……?”

 “블랙커피의 사나이요? 그, 블랙커피만 주문하는 손님? 그 손님 지난 여름에 그러고서 안 오는 거 아니었어요?”


 눈까지 동그랗게 뜨며 되묻는 루시안의 얼굴에서 거짓말의 기미를 찾아볼 수 없었던 피터는 힘없이 돌아서서 주문대로 돌아왔고, 피터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루시안은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탈의실에 들어가려다 말고 피터에게 다가와 말했다.


 “만약에, 음, 아주 만약에 말인데요, 사랑싸움이라도 하신 거면-”

 “뭐?”

 “네?”


 루시안의 말에 화들짝 놀라 피터가 돌아섰고, 그만큼이나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던 루시안이 헛기침을 두어번 한 뒤 말을 이었다.


 “여튼, 그런 거면 그냥 빨리 전화하시는 게 제일 좋을 걸요. 어영부영하다간 어영부영 헤어지게 된다고요.”


 피터가 고개까지 주억거려 가며 피터의 어깨를 두들기는 루시안의 손을 털어냈고, 잠시 말을 아끼던 피터는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루시안에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사랑싸움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고 옷이나 갈아입어.”

 “진짜 아니에요? 진짜?”

 “어, 아니라고. 애초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은 어디서 온 거야?”

 “그도 그럴게, 형 표정이 제 친구가 제 다른 친구랑 사랑싸움하고 나서 화해 방법 물어올 때랑 똑같은 표정이었거든요. 만약에 남자끼리라서 저한테 말씀 못하시는 거면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전 그런 데엔 편견 없거든요.”


 피터가 정색을 하거나 말거나 꽤나 진중한 어조로 말을 맺은 루시안은 피터의 말을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탈의실 쪽으로 사라져버렸고, 다소 멍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던 피터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전화번호를 모른다고, 망할 전화번호를 안 받았단 말이야…….”


 평소와 달리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나온 루시안은 우중충한 피터의 얼굴을 보곤 15분이긴 해도 오늘은 일찍 들어 가보시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왔고, 딱히 그의 말을 거절할 생각이 들지 않은 피터는 늘 그렇듯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가 스파이더맨 수트로 갈아입은 뒤 곧장 어벤져스 타워로 향했다.


 회의나 실험이 아니면 어벤져스 타워를 찾지 않는 피터가 이른 아침부터 타워를 방문한 탓에 침대 위에 늘어져 있다 목욕 가운 하나만 걸치고 나온 토니의 얼굴은 밝지 못했는데, 곧이어 사람 하나를 찾아달라는 피터의 말이 들리자 더 이상 구겨질 데 없이 일그러졌다.


 “사람? 뭐, 빌런이야? 아니면 빌런 후보생? 그것도 아니면 여친 내연남 추려내기? 그보다 너 언제 나 몰래 여친 만들었냐? 자꾸 아빠한테 비밀 만들면 섭섭하다?”

 “제발 좀, 토니. 사람이 부탁을 하면 좀 말없이 들어주면 안 돼요?”

 “입 터는 꺼 빼면 시체인 사람한테 ‘말없이’라니, 너무 가혹한 처사 아냐? 그보다, 불법인 건 알고 하는 거지?”

 “그 불법을 자행하는 이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갑자기 911 번호가 참 누르고 싶어지네요, 토니.”

 “큼. 난 어디까지나 공적인 일로 조회하는 거고, 딱 봐도 사적인 일인 게 보이는데 나야말로 뉴욕 경찰청장 직통 번호 부르고 싶다, 핏.”


 투덜거리면서도 자비스를 부른 토니는 피터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머리를 푸스스 털어내곤 자비스에게 조회를 부탁했고, 자리를 비켜주는 대신 아예 피터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피터가 이름과 함께 나열된 얼굴 사진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모양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자신이 찾던 웨이드 윌슨을 찾아낸 피터가 다른 정보는 싸그리 무시한 채로 재빨리 핸드폰 번호만 머릿속에 입력한 채 자리에서 일어섰고, 그런 피터의 어깨를 잡아 소파에 다시 앉힌 토니가 스크린을 당겨 그들 앞에 크게 펼쳐놓은 뒤 피터에게 프로필을 들이밀었다.


- 웨이드 윌슨.

 나이 : 미상.

 키 : 188.9 cm

 몸무게 : 95 kg

 코드명 : 데드풀.

 능력 : 그의 능력은-


 “이 웨이드가 데드풀이라고요?”

 “뭐래. 데드풀 놈이 본명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게 웨이드 윌슨이겠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어? 애초에 그냥 데드풀이라고 하면 될 걸 왜 굳이 이렇게 고생해서 찾은 건지 물어나 보자.”


 쭉 읽어 내리다 데드풀 항목에서 경악하는 피터를 의뭉스럽게 쳐다보며 답을 기다리던 토니는 새빨간 마스크 탓에 읽을 수 없는 피터의 표정이 그리 밝지만은 않을 거라는 것과 데드풀에게 그토록 스토킹을 당하면서 여태껏 본명을 몰랐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어렵사리 납득한 후 침묵을 지켰고, 피터의 손에 의해 화면이 꺼지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데드풀이 제가 알바 하는 카페에 오는 거 아셨어요?”

 “뭐? 걔가 니가 알바 하는 카페는 어떻게 알고 가?”


 토니의 경악한 듯한 얼굴에 답을 읽은 피터는 그를 붙잡는 토니를 무시한 채로 열린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보기 싫을 때면 언제고 모습을 드러내던 것과 달리 아무리 뉴욕시를 뒤져도 코빼기 하나 보이지 않는 웨이드, 아니. 데드풀을 찾는 데에 지친 피터는 보람 없이 체력만 축낸 채로 뉴욕 시가지에서 다소 떨어진 건물 옥상에 드러누웠고, 어디선가 나타난 토니가 그의 곁으로 다가와 그의 허벅지를 툭툭 차며 말했다.


 “집 주소라도 줘?”

 “집 주소요?”

 “딱 보니까 이제 니가 데드풀 스토킹 하는 모양인데 스토킹 초보자인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 같아서 팁이나 하나 주려고.”


 여전히 드러누워 있는 피터의 앞으로 지도와 함께 주소지가 찍힌 스크린을 띄운 토니는 전면 커버를 들어 올리곤 무어라 말을 할 듯하더니 이내 잘 해결 하라는 말만 남긴 채 자리를 떠버렸고, 우연찮게도 자신이 드러누운 건물 근처에 위치한 집주소를 노려보던 피터는 축축 쳐져오는 몸을 일으켜 건물 아래로 뛰어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의 집 문 앞에 도달한 피터는 벌써 몇 분째 초인종 위에 손을 올린 채 망설이고 있었다. 처음 뉴욕 시내를 뒤질 때야 터질 듯 부풀어 오른 분노가 이성을 마비시켰다곤 해도 토니가 집주소를 던져주고 간 이후부터는 오만가지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혀 놓고 있었고, 이제 그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분노에 차올라 데드풀을 찾은 건지에 대해조차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데드풀, 그러니까 웨이드가 모습을 감춘 시점은, 아마도 자신이 그 카페 알바생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와 일치했고, 처음에 그를 분노케 했던, 그가 자신의 스토킹을 하느라 카페를 찾았을 거란 가설은, 데드풀이 애초부터 그 카페에 소문난 ‘블랙커피의 사나이’ 였다는 사실에 무너져 내린 지 오래였다.


 그는, 어째서 데드풀이 피터가 스파이더맨인 것을 알아차린 후에 모습을 감춘 건지 알 수 없었다. 데드풀은 분명 스파이더맨을 좋아했었다. 그토록 신나하는 어벤져스와의 팀업에조차도 일일이 청구서를 발행하는 인사가 어째선지 스파이더맨과의 팀업에서만큼은 돈 이야기를 꺼려했고, 피터가 달가워하건 하지 않건, 그 둘의 팀업은 늘 그렇듯 데드풀의 데이트 요청과 그의 거절로 끝을 맺곤 했다.


 그럼, 웨이드가 피터 파커를 싫어했던 건가? 그가 볼 때 그간 웨이드가 해왔던 모든 행동은 분명히 호의나 호감에서 우러나온 것들이었다. 스파이더맨에겐 섹스하자는 말을 수없이 하면서도 자신의 조언에 따라 여태 섹스의 섹, 자조차 꺼내지 않은 것이나, 방문 시간을 굳이 한 시간 반이나 앞당기고 그 시간 내내 카페에 머물렀던 것, 그리고 자신의 하잘 것 없는 이야기를 일일이 들어주고 단 맛과 시나몬향이 지나치다면서도 단 한 번도 잔을 비우지 않은 적이 없던 것들.


 초인종 위에 얹어졌던 손가락을 거둔 그는 문 전면을 가득 메운 전단지들과 문 옆에 우편물들이 가득 찬 탓에 자리가 모자라 그 밖으로까지 튀어나온 우편함을 보곤 아마도 다른 용건으로 다른 도시에 가서 못 온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설득시켰다. 그리고 그가 막 돌아서려는 그 때에, 문 안쪽에서 거친 욕설에 이어 소리를 잔뜩 죽인 둔탁한 파공음이 울렸고 그 소음이 무엇인지 누구보다도 잘 아는 피터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문을 걷어찬 뒤 플랫 안으로 들어섰다.


 문을 열자마자 짙은 피비린내가 피터를 덮쳤고,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내린 피터의 시야로 지저분한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바닥엔 언제 먹었는지 알 수조차 없을 정도로 낡은 피자 박스들이 널부러져 있었고, 개중엔 데드풀이 자주 가자고 권했던 타코 가게의 상표가 박힌 포장지들이 섞여있었지만, 그 중 최근에 뜯어진 것으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내부로 들어갈수록 점점 짙어져가는 피 냄새에 숨을 깊이 들이쉰 피터는 굳게 닫혀있는 욕실 문을 조심스레 열어젖혔고, 이내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욕조 밖으로 축 늘어진 손에서 떨어진 총이 타일 바닥에 나뒹굴어져 있었고, 힘없이 떨궈진 머리가 기대고 있는 벽은 짙고 끈적한 검붉은 액체에 뒤덮여 있었다. 말이 많기는 해도 실력 하나는 알아줬던 용병은 정확히 어딜 쏴야 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천천히 그 시체에 다가선 피터는 뒤통수에 난 거대한 구멍에 결국 치밀어 오른 구토를 참지 못하고 변기로 향했다. 변기로 향하는 그의 발에 치인 탄피들이 달그락거리며 초대도 없이 집을 찾은 불청객에게 항변했고, 굴러가는 탄피들을 따라 시선을 옮긴 피터는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욕조 바로 옆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총알들을 보고 결국 울음을 터트려야 했다.


 기다림은 길었다. 늘어져 있는 손의 바로 옆에 쌓여있던 총알들과 총을 모조리 욕실 밖으로 옮긴 피터는 변기 커버 위에 웅크리고 앉아 그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렸고, 작은 부스럭거림 소리에 얼른 욕조 곁에 다가가 자리를 잡았다. 손끝만 움찔거리던 손은 눈이 채 떠지기도 전에 바닥을 더듬으며 무언가를 찾는 듯 했고, 아직 혀가 덜 생성된 듯한 입이 불쾌한 모양으로 벙긋거리는 것을 본 피터가 그의 손을 잡았다.


 “웨이드.”


 잠시 몸을 움찔였던 상대는 말이 없었다. 차갑기만 하던 손은 어느 새 제 혈색을 찾고 빠르게 그 온기를 찾아갔고, 새파랗게 질려 있던 입술이 조금이나마 옅은 분홍빛을 띄기 시작한 것을 본 피터가 다시 입을 열었다.


 “데드풀.”


 힘없이 늘어져 있던 턱이 힘을 되찾은 듯 굳게 닫혔고, 셀 수도 없을 정도의 총질로 날아간 마스크 아래의 얼굴을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하게 된 피터의 손이 그의 얼굴에 닿았다.


 “웨이드 윌슨. 들리는 거 다 아니까 눈이나 좀 떠봐요.”


 피터의 속삭임에도 감겨있는 눈꺼풀은 끈덕지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꼼지락거리며 벗어나려는 손을 힘주어 잡은 피터가 여전히 힘없이 늘어져 있는 그의 몸을 일으켜 세운 뒤 욕조에 걸터앉았다.


 “따지고 싶은 것도 많았고 하고 싶은 말도, 듣고 싶은 말도 많지만 하나만 물을 게요. 도대체 왜, 제가 스파이더맨이라는 걸 알고 나서 사라져버린 거예요? 제가 마음에 안 들었어요? 아니면 스파이더맨이? 그것도 아니면 스파이더맨이 저라는 사실이?”


 그의 질문에 잠시 벌어졌던 입은 이내 기침과 함께 핏덩이를 쏟아 냈고, 푹 꺼져 있던 그의 흉부가 숨으로 들이차는 것을 본 피터는 끈기 있게 기다렸다.


 “하나만 묻는다며, 물음표가 벌써 네 개나 되잖아, 스파이디.”


 웃음과 함께 장난스런 목소리로 시작되었던 말은 밭은 기침으로 끝을 맺었고, 피터에게 잡힌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입가에 흐른 피를 닦아낸 웨이드의 눈이 떠졌다. 그 긴 시간동안 마주쳤음에도 단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한 눈을 마주하게 된 피터가 숨을 들이쉬었고, 그의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몰라도 고개를 숙인 웨이드가 말을 이었다.


 “내가 스파이더맨을 마음에 안 들어 한다니, 도대체 어디서 나온 발상이야? 누구든 너한테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는 인종이 있으면 말만 해. 내가 아끼는 컬렉션 중 하나 빌려줄 테니까 그 혓바닥을 쏴버리라고. 하지만, 하지만 말이야, 스파이디, 이 뉴욕시에서 스파이더맨 안티를 찾으려면 애 좀 써야할 걸? 전혀 특별하지 않은 감정일 뿐이야. 팬심, 덕심, 몰라? 아니지. 너드인 네가 모르면 도대체 누가 알겠어? 그럼 그건 답이 된 건가.”


 그륵거리는 목소리로 답한 웨이드가 기침과 함께 또다시 핏덩이를 토해내며 슬그머니 손을 빼갔고, 얼결에 그 손을 놓친 피터는 잠자코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피터 파커? 걔가 마음에 안 든다니 말이야, 콩이야? 난 네 그 브루넷이 미치도록 좋아. 처음에 내가 널 빤히 쳐다봤던 것도 그 브루넷 덕분이니까 그 머리칼 잘 간수해두라고. 오, 그리고 그 눈. 이제야 가까이서 보다니 이렇게 안타까울 데가 있나. 20대의 파릇파릇함이란! 그 푸르름에 스파이더맨 못지않은 인성을 마다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어, 피터.”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만 같던 목소리는 점차 안정되어 갔고, 들쑥날쑥하던 그의 숨이 비교적 고르게 변한 것을 본 피터는 여전히 바닥을 향하고 있는 그와 눈을 맞추려 애를 쓰며 그에게 말했다.


 “그럼, 첫 번째 질문이랑 마지막 질문은요? 피터 파커도 좋고, 스파이더맨도 좋은데, 피터 파커 스파이더맨이나 스파이더맨인 피터 파커를 마다할 이유야 없겠죠. 좋아요, 그럼 마지막 질문은 대답한 셈 치고 첫 번째 질문에 답 해봐요, 웨이드. 도대체 왜 그 날 그렇게 간 거예요? 당신이라면-”

 “나라면?”


 피터의 말을 잡아챈 것과는 달리 지극히 자조적인 느낌의 반문에 벌어졌던 피터의 입이 닫혔고, 침묵 속에서 고개를 든 웨이드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래, 네가 아는 데드풀이라면 오두방정을 떨며 네가 달려들었겠지. 네가 아는 데드풀이라면, 그리고 내가 아는 데드풀이라면 말이야. 하지만 내가 그 시간들을 함께 보내고 네 조언을 따라 섹스의 섹자도 꺼내지 않은 채로 관계를 맺었던 피터 파커는, 그 데드풀을 모르잖아. 그리고 난, 나는, 그 녀석은 그 미친놈에 대해 몰랐으면 했어.”


 피터가 단 한 번도 마주하지 못했던 웨이드의 눈은 방금 전까지 그의 머리 위를 뒤덮고 있던 하늘보다도 새파랗게 질려 있었고, 굳게 다물어진 채 매끄럽게 올라간 입가는 금방이라도 꺼질 듯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침묵 속에서 그 동안의 데드풀의 부재를 떠올렸던 피터는, 비단 자신의 전투 현장이 아니더라도 그들이 그 아침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 어느 시점부터 사건 사고 현장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고, 길다면 길었을 그 시간동안 자신이 단 한 번도 물어봤자 답이 올 리가 없다는 걸 핑계 삼아 그의 일상이나 그의 삶에 대해 단 한 차례도 묻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힘들긴 했어. 이렇게 생긴 놈을 받아주는 회사가 흔치는 않았거든. 사실은 몇 번 포기할까 생각도 해봤는데, 그러면 그 곱상하게 생긴 어리어리한 놈한테 정체 들키는 것도 쉽상일 테고, 알다시피 내 평판이 그렇게 좋진 못하잖아? 그래도 다행히 이 몰꼴로도 들어갈 수 있는 회사가 없진 않더라고.”


 거기까지 말하고 몸을 일으킨 웨이드가 피터를 일으켜 세운 뒤 욕조 밖으로 나왔고, 그의 몸 위에 있던 탄피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욕조 안으로 쏟아져 내렸다.


 “근데 뭐 이렇게 디 엔드. 끝이네. 반대를 무릅쓰고 날 자기 보디가드로 고용한 토니만 헛 짓거리한 거지, 뭐.”


 웨이드 입에서 나온 이름에 미간을 찌푸렸던 피터는 어느 새 자신을 제치고 욕실 밖으로 걸어 나가고 있는 웨이드를 따라잡기 위해 뛰다시피 걸었고, 욕실과 그다지 멀지 않은 현관문을 열어젖힌 웨이드가 백화점 직원마냥 현관문 밖으로 손짓을 한 뒤 말했다.


 “자, 질문에 답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스파이더맨. 그럼 나가시는 길은 이쪽입니다.”

 “웨이드. 오히려 잘 된 거잖아요. 당신의 진짜 정체를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상대가, 그러니가 그 상대가, 당신 연인이 된다면요.”


 연인이란 단어를 힘겹게 뱉은 피터는 내내 그의 얼굴로 향하고 있던 시선을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바닥에 박았고, 여전히 현관문 손잡이를 잡고 있는 웨이드의 발끝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요, 제가 당신한테 무관심해 보일 수 있었다는 거 자체는 인정할게요. 스파이더맨이 데드풀을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것도요. 하지만 제가 알고 있던 웨이드 윌슨이 데드풀이더라도 제가 상관치 않는다면요? 스파이더맨이 아니라 피터 파커로서 그 데드풀조차도 받아들일 수 있다면요? 애초에 제가 좋아했던 웨이드 윌슨이 어디로 간 것도 아니잖아요, 웨이드. 전 그거면 충분해요. 웨이드 윌슨. 그거면 충분하다고요.”


 내내 쓰고 있던 마스크를 집어던진 피터는 어느 새 현관문을 놓고 뒷걸음질 치기 시작한 웨이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고, 그가 벽에 몰릴 때까지 끈기 있게 그를 구석으로 몰아갔다.


 “당신이 웨이드 윌슨이라고 해서 데드풀로서의 당신의 방식이 마음에 든다는 건 아니에요. 그냥, 내가 봐온 웨이드 윌슨을 믿기로 한 거지. 그리고, 음, 이건 좀 웃긴 소리처럼 들릴 것 같은데…….”


 더 이상 뒤로 물러날 곳이 없는, 웨이드가 벽에 등을 바싹 붙인 채 시선을 내리깔자, 그의 바로 앞으로 다가가 그의 발끝에 자신의 발끝을 맞춘 피터는, 바닥으로 내리깔린 그의 시선을 맞췄고, 잔뜩 커진 그의 동공을 보며 이유 모를 만족감에 미소 지으며 속삭였다.


 “저도, 당신이 선택한 게 피터 파커라는 점이 마음에 들거든요.”

Posted by Spideyp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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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젠 글이 어디로 향하는 지도 모르겠다.


- 쓰면서 들은 노래






 그 뒤로 사내의 방문은 6시에 맞춰져 반복되었고, 그는 피터의 평일 근무가 이어지는 내내 카페를 찾았다. 맨 처음 열 개를 채운 쿠폰을 제외하곤 그의 쿠폰은 9개까지 찍히고 나면 어김없이 잃어버렸다는 말과 함께 새로운 쿠폰으로 시작되었고, 처음엔 의아해하던 피터는 이내 그의 기행에 익숙해진 채 그의 열 번째 방문 때마다 미리 준비한 쿠폰과 함께 커피를 내놓곤 했다.


 피터의 평일 근무가 끝나고 나서부터 웨이드는 아예 주말만 골라서 방문하는 듯 했고, 아침 단골을 잃었다는 평일 근무자의 말에 남몰래 미소 지은 피터는 새로운 거품 라떼 연구에 골몰했다.


 피터의 예상대로 주말 카페 알바 덕에 완수했던 과제들이 빛을 본 듯 차석에 해당되는 장학금을 따낸 피터는 재빨리 웹슈터를 업그레이드 한 뒤 남은 돈으로 웨이드에게 디저트를 산더미처럼 내놓았고, 잠시 어안이 벙벙한 듯 테이블을 가득 메운 디저트를 쳐다보고만 있던 웨이드는 피터가 자신의 앞에 앉자 포크를 집고선 이어지는 피터의 수다를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 쪽지 이후로도 웨이드가 피터를 피터나 핏으로 부르는 일은 없었지만, 그 쪽지를 일종의 수락의 의미로 받아들인 피터는 그를 고객님 대신 웨이드로 부르기 시작했고,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아침, 그러니까 손님이 가장 없을 법한 시간대면 종종 그의 앞자리를 차지한 채 수다를 이어갔다. 원래도 말 수가 적은 듯 피터가 답 없는 대화를 이어가는 동안에도 사내는 묵묵히 들어주는 역할에 충실했다. 피터는 그의 대화를 말없이 듣는 동안에도 웨이드의 시선이 종종 창밖의 어딘가를 향한다는 것과, 그리고 그 시선이 창밖에 머물 때면 그 자리가 카페 구석 자리였다는 걸 알아차리고서도 굳이 그 이유를 묻지 않았고, 사내 또한 어째서 그 자리를 꽤 오랫동안 고수했으며 왜 최근에도 종종 그 자리에 앉는지에 대해 말하는 일은 없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여름도 어느 새 끝물에 접어들고 있었고, 선선해진 가을바람과 하루 종일 여유로웠던 뉴욕시의 분위기와 달리 현재 피터의 속은 바짝 타들어가고 있었다.


 금방 끝이 날 줄 알았던 전투는 출근 시간이 2시간 반을 남겨놓은 시점에도 끝이 나질 않은 상태였고, 자신의 공격을 받고도 끊임없이 다시 일어서는 빌런들을 보던 피터의 팔에 있던 웹슈터가 웹캡슐 고갈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알람을 울리기 시작했다. 카페와 현재 자신의 위치를 대략 계산한 피터는, 남은 웹캡슐을 아끼지 않는 한 카페에 제시간에 도달할 방법은 영영 없을 거라는 결론을 도출해내곤 자신에게 유리한 공중전을 포기한 채 바닥으로 내려가 벽을 등진 채 빌런들을 차분히 하나씩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택시비정도는 남겨놓고 웹슈터를 업그레이드 할 걸 그랬다고 중얼거린 피터가 자신이 미친 듯이 돈을 쓴 디저트는 생각지도 않은 채로 오늘따라 지원이 늦는 어벤져스 멤버들에 대한 원망의 말을 삼켰을 때 요란스런 총소리가 허공을 울렸다.


 “허니, 베이비! 나 기다렸어?”


 근 몇 달간은 모습을 보이지 않던 불청객의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놓고 그가 쏘아대는 총알에 난도질이 되는 빌런들에 기겁한 피터가 얼른 데드풀에게 다가갔고, 피터의 위치를 확인한 데드풀이 수류탄을 냅다 던졌다.


 “데드풀!”

 “괜찮아, 이러라고 있는 데미지 컨트롤이잖아!”


 또 다시 총을 빼어드는 데드풀의 팔을 잡아 내린 피터는, 굉음을 울리며 터진 수류탄에 순식간에 반으로 준 빌런들의 모습에 구급차를 부를 틈이 있을지 고심하며 광고판 구석에 있는 시계를 확인했고 이 와중에 건물 외벽의 광고판으로 향하는 그의 시선을 본 데드풀은 잠시 의아해하다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 총 대신 카타나를 빼어들었다.


 데드풀의 지원 아닌 지원에도 불구하고 전투는 8시 반이 지나고서야 끝을 맺었고, 이제 데이트나 하자는 데드풀의 말을 귓등으로 넘긴 피터는 다급히 건물을 향해 웹슈터를 쏴 카페로 향했다.


 익숙한 골목에서 옷을 갈아입은 피터가 막 옷을 다 갈아입고 골목에서 나올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요란한 소음과 함께 사과의 말을 전해온 토니에게 성의 없이 괜찮다는 말을 읊조리던 피터는, 골목 밖에서 보이는 익숙한 수트에 경악을 하며 재빨리 돌아섰다.


 “데드풀! 도대체 뭐하는 거예요? 나도 사생활이 있는 사람이라고요! 우리 서로의 시크릿 아이덴티티는 지켜주기로 합의 봤잖아요!”


 평소라면 그의 말에 어처구니없는 논리로 스토킹의 정당성을 주장했을 데드풀은 말이 없었고, 여전히 연결되어 있던 토니가 무슨 일이냐는 말을 외치거나 말거나 조심스레 뒤를 돌아봤던 피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데드풀에 의아해하다 데드풀이 묘한 데서 선을 지키곤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곤 토니에게 별 일이 아니라고 답한 뒤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전 타임 근무자와 교대했다.


 다소 힘들었던 저녁과 달리 새벽은 늘 그렇듯 평화로웠고, 그 전날 과제를 다 끝내놓은 탓에 할 일이 없던 피터는 저녁에 있었던 전투에 대한 인터넷 기사들을 찾아보다가 어느 덧 6시에 가까워진 시계를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흐끄무레하게 날이 밝은 밖으로 곧 모습을 드러낼 남자를 기다리던 피터는, 이윽고 익숙한 검은 후드가 카페 유리창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한 달간 연습한 라떼를 들이밀 생각에 발꿈치를 연신 들었다 놓다가, 고개를 숙인 채 카페 문 앞에서 망설이던 웨이드가 그대로 다시 걸어가 버리자 재빨리 카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그를 붙잡았다.


 “웨이드!”


 저도 모르게 힘을 주어 팔을 잡았는데도 신음소리 하나 없는 웨이드를 보며 어색하게 팔을 놓은 피터는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릴 때까지 기다렸고,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확인하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에 입술을 깨문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어, 오늘은 커피 마실 기분이 아닌가보네요.”


 쪽지 이후에 좁혀졌던 거리는 어느 새 저만치로 멀어져 있었고, 침묵 속에서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한 피터는 천천히 내려가는 그의 고개를 보고서도 붙잡지 못한 채로 서서 그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 * *


 쪽지를 남겨놓고 온갖 망상에 시달렸던 웨이드는 하루 종일 침대에서 구르며 발을 동동거린 것과는 별개로 정확히 6시에 맞춰 카페를 찾았고, 친한 친구라도 온 듯 자신을 웨이드라고 부르며 반갑게 인사하는 피터를 보곤 또 다시 숨 막힐 듯 뛰어오르는 심장을 잠재우기 위해 침묵했다.


 피터와의 만남 횟수를 굳이 헤아리지 않아도 대신 셈을 헤아려주는 쿠폰들을 계산대 안에 넣는 것이 싫었던 웨이드는 쿠폰에 도장이 9개가 찍힐 때마다 잃어버렸다는 핑계로 새 쿠폰을 요구하면서도 피터가 딴지를 걸까 두려워했지만 처음에만 의아해하던 피터는 이내 그가 쿠폰을 잃어버렸다는 말을 할 때마다 알 수 없는 미소를 얼굴에 띄운 채로 그의 이름이 단정하게 적힌 쿠폰을 내밀곤 했다.


 평일에서 주말로 이어지던 만남이 2주에 이르렀을 때 그의 앞자리를 꿰차고 앉은 피터는 다음 주부터는 다시 주말 근무만 하게 될 것 같다는 말을 시작으로 끊임없이 수다를 늘어놓았고 자신의 잔이 빌 때까지 대화를 지속해갔다.


 그는, 이제 라떼를 아주 천천히 마시는 듯 마는 듯 들이켰고, 그가 블랙커피를 주문하는 일은 다시없었다. 처음에는 단 맛은 물린다고 징징거리던 노란 박스조차도 피터가 그의 앞자리를 종종 차지하고 나서부터는 가끔씩 카페 구석자리에 앉는 것으로 합의를 봤고 피터가 말을 할 때면 두 박스는 입을 다문 채 그가 그 하잘 것 없는 대화들에 집중하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날따라 일찍 일어났던 웨이드는 하루 종일 틀어져 있는 텔레비전에 앉아 피터의 출근시간을 헤아리다 갑작스레 뉴스 속보가 흘러나오는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스파이더맨의 모습에 수트를 챙겨 입은 뒤 밖으로 향했고, 오랜만에 보는 스파이더맨에 신이 난 노란 박스는 물론, 흰 박스까지 외치기 시작한 환호에 입을 맞추며 은행들이 모여 있는 거리로 향했다. 


 어느 새 쌀쌀해진 가을바람이 건물 사이를 파고들며 개떼처럼 모여든 빌런들을 스치고 지나가 웨이드의 얼굴을 쓴 뒤에야 사라졌고, 피 비린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바람에 입을 비죽인 데드풀은 한동안 꺼내들 일 없었던 신상 총을 신명나게 쏘아댔다.


 “허니, 베이비! 나 기다렸어?”


 웬 일로 땅에 발을 붙인 채 빌런들 무리에 둘러싸여 있던 스파이더맨이 그를 발견하자마자 재빨리 그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고, 대충 스파이더맨이 뭐 때문에 저토록 다급히 달려오는 지 파악한 웨이드는 스파이더맨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그가 자신의 총을 붙잡기 전까지만이라도 빌런 수를 줄여놓을 요량으로 서둘러 총질을 감행했다. 코 앞으로 다가온 스파이더맨을 확인한 웨이드는 왼손에 들고 있던 총을 내팽겨 친 뒤 미리 챙겨놓았던 수류탄을 저 뒤쪽의 빌런 무리들을 향해 던졌고, 그와 동시에 분노에 찬 스파이더맨의 외침이 들려오자 이래야 내 스파이더맨이지, 라는 노란 박스의 외침에 동조하며 순순히 팔을 붙잡혀주었다.


 “데드풀!”

 “괜찮아, 이러라고 있는 데미지 컨트롤이잖아!”


  붙잡힌 오른손을 대신해 왼손으로 총을 꺼내보았지만 그 팔을 휘두른 보람도 없이 스파이더맨이 그의 총을 잡아 던져버렸고, 던졌던 수류탄이 터진 듯 굉음이 허공을 갈랐다. 빌런들이 잠시 주춤한 사이 광고판으로 향하는 스파이더맨의 시선을 본 데드풀은 고개를 갸웃하다 이내 달려드는 빌런들을 잡아 족치기 위해 카타나를 휘두르기 시작했고, 한숨을 내쉰 스파이더맨도 그 대열에 합류해 싸우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총과 칼을 쓴 자신에게 잔소리를 퍼부었을 스파이더맨은 데이트를 하자는 자신의 말에 대꾸조차 안한 채로 황급히 건물 위로 웹슈터를 쏴 사라졌고, 눈을 가늘게 뜬 채 그 등을 바라보던 웨이드에게 노란 박스가 속삭였다.


 (여섯시까지 시간도 남았는데 오랜만에 스토킹이나 해볼 생각 없나, 제군.)

 “흠. 일리가 있어. 우리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이 저렇게 다급히 사라질 일이라면 단 하나밖에 없지.”

 [단 하나라니? 빌런 소탕도 있는데 무슨 섭한 말씀을.]

 (데이트군.)

 “데이트야.”

 [그보다 우리 개인적인 일엔 관여하지 않기로 한 거 아니었어? 지난 팀업 이슈 때-]

 “그 이슈는 나오지도 않았다고! 한마디로 공식 계약이 아니란 소리지!”


 웨이드의 결정에 불만을 표하는 흰 박스의 말을 무시한 채 이미 뛰고 있던 차에 더욱 더 박차가 가해졌던 발걸음은, 어느 시점부터 점점 힘을 잃기 시작했고, 스파이더맨의 모습이 익숙한 골목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본 웨이드는 인상을 찌푸린 채 골목 앞에 서서 입술을 짓씹었다.


 “……그럴 수도 있죠, 토니. 그럼요, 이해해요. 그보다 저 지금-”


 골목 속에서 들리던 부시럭거리던 소리가 끝나려던 찰나, 카페에서 몇 번 들었던 벨소리가 골목 밖으로 새어나왔고, 곧이어 들린 익숙한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노란 박스가 얼른 이 자리를 떠야 한다며 난리법석을 떨기 시작했지만 보도블록에 고정된 그의 발은 움직일 생각이 없는 듯 붙박여 버렸고, 마침내 골목 그림자로 반쯤 모습을 드러냈던 사람이 재빨리 돌아서자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데드풀! 도대체 뭐하는 거예요? 나도 사생활이 있는 사람이라고요! 우리 서로의 시크릿 아이덴티티는 지켜주기로 합의 봤잖아요!”


 거의 비명에 가깝게 소리를 지르는 뒷모습을 잠시 쳐다보던 웨이드는 스파이더맨, 아니. 피터의 말이 끝을 맺기도 전에 사람들 사이로 모습을 감췄고, 충격에 말문을 열지 못하던 노란 박스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어리어리한 자식이 스파이더맨이라니.)

 [하기사 이 뉴욕에서 스파이더맨 빼고 누가 우릴 상대나 해주겠어, 안 그래? 내 말은, 이 뉴욕에서 이 얼굴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대해줄 정도의 인성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는 거지.]

 

 흰 박스의 말에 발걸음을 멈춘 웨이드는 그렇게 조심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곳곳이 찢어진 수트와, 그 찢어진 수트 틈으로 드러난, 벌써 다 아문 피부에 헛웃음 소리를 내며 정처 없이 발걸음을 옮겼고, 그의 수트를 알아본 사람 몇몇이 아는 체를 하며 말을 걸어오다 거리가 가까워지고 나서야 수트 안쪽의 피부를 보곤 경악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뉴욕의 밤거리는 순식간에 고요를 되찾아갔고, 아직은 발을 완전히 돌리지 않은 여름의 끝자락을 물고 늘어진 태양은 어김없이 하늘을 푸르게 물들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오랜 습관을 따라 움직인 발걸음은 그를 피터 파커가 일하고 있을 카페 앞으로 인도했고, 투명한 유리문 손잡이를 잡은 채 망설이던 그는, 힘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웨이드!”


 경쾌한 종소리가 그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졌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의 이름을 부른 청년의 손이 그의 팔을 일반인이라면 상상조차 못할 힘으로 지나치게 세게 잡고 있었지만 이 청년이 스파이더맨이라는 걸 안 웨이드는 굳이 신음소리를 꾸며 낼 생각조차 못한 채로 자신의 발 앞에 나란히 놓인 발끝을 응시했다. 스파이더맨으로서도, 그리고 피터 파커로서도 침묵을 싫어하는 것 같던 청년은 끈기 있게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고,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고개를 들어 올린 그는,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숨을 들이쉬며 빠르게 일그러진 청년의 얼굴을 보고서야 자신의 얼굴이 엉망진창일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으로 말려들어갔던 입술이 압박으로 붉어졌고, 애진작에 놓여 졌던 팔이 어느 새 종전의 모습을 되찾은 후에야 청년의 입이 다시 말을 토해냈다.


 “어, 오늘은 커피 마실 기분이 아닌가보네요.”


 어색하게 뱉어진 말에 묻어나는 씁쓸함은 그가 즐겨 마셨던 블랙커피의 끝 맛보다도 아렸고, 천천히 고개를 내린 그는 여전히 자신의 앞에 서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청년에게서 돌아서서 여전히 어두컴컴한 거리를 향해 발을 내딛었다.

Posted by Spideypool
:

- DN님 썰은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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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면서 들은 노래.







 소란스러운 밤이었다. 그리고 유달리 조용한 밤이기도 했다. 빌런 소탕에 열중하던 피터가 언젠가부터 배경음으로 깔리던 응원 소리가 들리지 않기 시작했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소란스러움 속에서 오는 허전함이 어디에서 오는지 깨달은 피터는, 그 깨달음과 함께 든 시원섭섭한 느낌에 혀를 차면서도 마지막으로 만났던 때의 시무룩했던 웨이드가 부디 그 불쌍한 알바생과 건전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기를 바랐다.


 바빴던 한주가 끝나고 나면 늘 그렇듯 찾아오는 주말에 그는 환호했고, 그가 카페 알바자리를 찾고 나서부터 주말 새벽 경계를 대신해주는 자비스와 토니에게 감사 인사를 건넨 뒤 익숙한 골목에서 옷을 갈아입고 카페로 향했다.


 제아무리 바쁜 뉴욕이라고 해도 주말의 새벽만큼은 고요하기 그지없었고, 어느 새 그 고요에 익숙해진 피터는 6시 반이면 찾아오는 그의 손님을 염두에 둔 채로 빠르게 타자를 쳐내려갔다. 카페 알바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비교적 안정적으로 과제를 낼 수 있게 된 덕분에 수석은 몰라도 차석은 따 놓은 당상이었기에 다음 학기부터는 학비의 압박으로부터도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을 터였고 그렇게만 된다면 내내 미루고 있는 웹슈터 업그레이드도 어렵지 않을 터였다. 


 “어서 오세요! 어, 오늘은 좀 일찍 오셨네요.”


 6시 반에 방문할 거라는 그의 예상을 깨고 6시 정각에 문을 열고 나타난 사내는 여전히 피터의 인사에 답을 하지 않은 채로 느긋한 걸음걸이로 주문대 앞에 섰고, 그가 주문대 앞에 서기 전에 피터가 포스기에 아메리카노 입력을 끝냈을 때 평소보다 많은 돈을 주문대에 올리며 다시 한 번 피터의 예상을 깼다.


 “그 토순인가 뭔가 하는 라떼 한 잔.”

 “라떼요? 지금 토순이 라떼 주문한 거 맞으시죠?”


 깜짝 놀란 피터가 포스기 화면에서 시선을 떼고 되묻던 말던 계산대 위에 올린 손가락만 따닥거리던 사내는 피터가 돈을 받아가자 무언가 떠오른 듯 주문대 위로 작은 종이를 올렸고, 도장이 네 개 찍힌 쿠폰을 본 피터는 자꾸만 올라가려는 입 꼬리를 애써 잡아 내리며 쿠폰을 집어 들었다.


 “근데 말이야.”

 “네?”


 6시 반의 방문이 지속되고 나서부터도 별 말이 없던 사내는 오늘따라 말이 많았고, 피터가 막 다섯 번째 도장을 찍었을 때 따닥거리던 손가락을 멈춘 사내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로 헛기침을 두어번 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는 원래 쿠폰에 손님 별명을 적나?”

 “아.”


 사내의 질문에 작게 탄성을 내지른 피터가 쿠폰 위에 ‘블랙커피의 사나이’라고 적힌 글씨를 보고 머뭇거렸고, 크게 숨을 들이쉰 사내가 잠시 망설이다 어물거리며 말을 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아닌 거 같아서. 아, 불만이 있다는 건 아닌데, 내 이름이 적혀있지 않다는 게 문제라는 게 아니라, 내가 라떼를 주문한 시점에서 그 명칭은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럼 헷갈릴 수도 있는 거잖아? 아닌가. 여튼 그러니까 내 말은-”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다시 만들어드릴 게요.”


 피식 웃은 피터가 새 쿠폰에 도장 다섯 개를 연달아 찍으며 사내에게 물었고, 사내가 답이 없어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던 피터는 들린 얼굴 위에 떠오른 멍한 표정이 어째선지 귀여워 보인다는 생각을 지우려 애를 쓰며 그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성함으로 적어드릴게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몇 번 소리 없이 입만 뻐끔거리던 사내는 이내 고개를 내렸고, 피터가 막 포기하려는 찰나에 그가 피터의 질문에 조용한 목소리로 답했다.


 “웨이드 윌슨.”


 피터가 쿠폰에 정성들여 이름을 쓰는 동안 끈기 있게 기다린 사내는 피터가 건네주는 쿠폰을 잠시 쳐다보다 주머니에 넣었고, 그 동안 사내가 건네 준 돈을 계산대에서 다시 꺼낸 피터가 생긋 웃으며 돈을 건넸다.


 “웨이드라고 불러도 되죠? 어쨌거나 얼굴 본지도 꽤 됐잖아요. 그 정도 친분은 되는 거 같은데. 명패를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전 피터 파커구요, 피터나 핏이라고 부르셔도 돼요. 만약에 웨이드라고 부르시지 못하게 할 거 같으면 피터 말고 저기요, 라고 부르시고요.” 


 무슨 말이 나올까 기대하며 물은 피터의 말에 대꾸조차 없이 돌아선 사내는 그대로 자신의 지정석으로 향하는 듯, 등을 돌려버렸고 어쨌거나 오늘은 한 마디 이상 하지 않았냐고 어깨를 으쓱인 피터는 여전히 열려있는 계산대 서랍을 닫은 뒤 커피를 내리기 위해 돌아섰다.


 그 뒤로도 사내는 매주 6시에 카페를 방문해 블랙커피 대신 종종 라떼를 주문했고, 라떼를 주문할 때면 토순이나 곰돌이를 덧붙이곤 했다. 피터는 사내가 블랙커피 대신 라떼를 주문하는 날이면 사내 대신 미리 만들어놓은 블랙커피를 두어번 마신 후부터 시간에 맞춰 커피 내리는 걸 포기한 상태로 사내를 기다렸고, 어느 새 자신의 자리를 주문대 근처로 옮긴 사내는 다음 타임 알바가 오는 6시 반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다 조용히 카페를 떴다.


 봄에서 시작되었던 방문이 6시로 당겨지다 여름으로 계절이 넘어갔던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그를 기다리며 과제를 끝마치던 피터는 경쾌하게 울리는 종소리에 몸을 일으켰다가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의 얼굴을 보곤 당황한 기분을 감추지 못한 채로 시계를 확인했다.


 “즐겁고 힘차며 강한 아침입니다, 피터 파커 센세!”

 “루시안, 오늘은 웬 일로 일찍 왔어?”

 “네? 무슨 소리세요? 벌써 6시 40분인데?”


 의아한 표정으로 피터의 말을 받은 다음 타임 근무자, 루시안은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탈의실로 들어가 버렸고, 루시안의 말대로 6시 40분을 가리키는 시계를 보고 경악한 피터는 하나마나한 시제확인을 하기 위해 계산대 서랍을 열면서도 그 날 방문하지 않은 사내에 대한 생각을 지우려 애썼다.


 한 번쯤은 그럴 수 있다는 피터의 생각과 달리 다섯 번째 쿠폰을 찍으러 와야 할 사내는 달이 넘어가도록 카페를 방문하지 않았고, 그는 다시 핸드폰 알람을 6시 반에 맞춘 뒤 과제를 하는 일상에 익숙해져갔다.


 그리고, 길고 긴 기말고사가 끝이 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된 7월 중순, 피터가 여름을 맞아 여행을 간다는 평일 새벽 알바 대신 평일 새벽 알바 자리에 섰던 그 날, 6시에 울리는 카페 문 종소리에 피터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인 채 인사를 외쳤다.


 “어서 오세요.”


 경쾌하게 울리다 애매하게 끝났던 종소리는 한참이나 있다 다시 소리를 울렸고, 머뭇거리며 주문대로 걸어오는 사내에게 한껏 친절하게 웃어 보인 피터는 포스기 위에 손을 올린 채 익숙한 검은 챙을 노려보며 그에게 물었다.


 “음료는 뭐로 준비해드릴까요?”


 피터의 질문이 떨어지고 나서도 한참이나 어물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는 사내를 노려보던 피터는 여전히 주머니 속에 박혀 있는 그의 손을 쳐다보다 한숨을 내쉬었고, 그의 한숨 소리에 크게 움찔한 사내가 잔뜩 구겨진 지폐를 주문대 위에 조심스레 올리며 말했다.


 “라떼 한 잔. 곰돌-”

 “고객님, 죄송하지만 저희 카페에 그런 메뉴는 없어서 주문이 어려우세요.”

 “하지만-”

 “그런, 메뉴는! 없! 다! 구! 요!”


 피터의 단호한 말에 또 다시 한참 어물거리던 사내는 주문대 위에 돈을 올려놓은 채 힘없이 돌아섰고, 그런 그를 향해 고개를 내저은 피터는 지폐를 계산대에 넣다가 그가 쿠폰을 내놓지 않았단 사실을 깨닫곤 그를 불렀다.


 “고객님!”


 마치 그가 부르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재빨리 돌아서는 사내의 모습에 헛웃음을 지은 피터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로 도장을 잡고 말을 이었다.


 “쿠폰이요, 쿠폰.”


 피터가 쿠폰을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내는 제자리에 서서 어물거렸고, 결국 이유 모를 짜증에 피터가 고개를 쳐들자 재빨리 고개를 숙이곤 피터의 자리에선 들릴락 말락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늘은 없는데…….”


 그제야 매일 카페를 방문하는 것 치고는 찍히는 숫자가 적었던 그의 쿠폰을 떠올린 피터는 미간을 찌푸렸다가 이내 어쩌면, 아주 어쩌면 그가 쿠폰을 들고 오는 건 자신의 근무일 때뿐일지도 모르며, 그간 주말을 피해 평일에만 방문한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어째서 자신을 피해 다닌다는 생각에 기분이 상했던 건지에 대해 고민하다 머리를 휘저은 뒤 새 쿠폰을 꺼내 그의 이름을 적었다.


 벌써 자기 자리를 찾아 갔을 거란 피터의 생각과 달리 사내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피터에게 대답하고 나서도 피터의 말을 기다린 듯 그 자리에 서 있었고, 손을 휘저어 그만 가보라는 시늉을 해보인 피터는, 아주 잠깐 손님에게 이래도 되나, 라고 생각했다가 아무려면 어떠냐는 생각으로 억지를 부리며 샷을 두 개 내린 뒤 라떼 두 잔을 재빨리 만들어냈다.


 “이건 제 커스텀 메뉴라고요. 애초에 아무한테나 주는 것도 아니고요.”


 쟁반도 받치지 않은 채로 곰돌이와 자신의 새 신작 냥냥이 라떼를 만들어 그의 자리로 다가간 피터는 사내의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았고 여태 보지 못한 피터의 기행에 놀란 듯 은근슬쩍 의자를 뒤로 빼며 자리를 벌리는 사내에 인상을 찌푸렸다.


 “뭐 마시실 거예요? 얜 냥냥이예요.”


 퉁명스러운 피터의 질문에 망설이던 사내의 손이 제 신작으로 향하는 걸 본 피터는 입술을 비죽이다 어쩔 수 없이 웃음을 터트렸고, 머그잔을 쥐고 있던 사내의 손이 잔을 다시 테이블 위에 내려놓자 목을 가다듬은 뒤 입을 열었다.


 “그 동안 뭘 하셨길래 안 오신 거예요? 솔직히 이런 말 하는 게 좀 우습긴 한데 조금 서운했다고요. 아, 제가 조금이라고 했나요? 좀 많이요.”


 사내가 입을 댄 탓에 모양이 일그러진 고양이 모양의 거품을 응시하던 피터가 테이블 위로 새로 만든 쿠폰을 올렸고, 머그잔에서 손을 뗀 사내가 쿠폰을 조심스레 가져갔다.


 “웨이드 윌슨, 맞죠?”


 결국 다시 입을 연 건, 침묵을 이기지 못한 피터였고, 그의 질문에 조심스레 끄덕여지는 사내의 고개를 본 피터는 잠시 자신이 도대체 무얼하고 있느냐에 대해 고민하던 피터는 어느 새 6시 반에 가까워진 시계를 확인한 뒤 자신의 라떼 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객님이 편하시면 그렇게 불러드리고요.”


 자리에서 일어선 피터가 다시 한 번 말을 던졌지만, 사내는 쿠폰만 만지작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둘 사이에 흐르는 침묵에 진절머리가 난 피터는 한숨을 내쉬며 시제확인을 위해 주문대로 발걸음을 돌렸다.


 바로 다음 날이 주말이었던 탓에 7시가 되도록 손님이 없는 카페에서 시제확인까지 마친 뒤 제시간에 맞춰 나타난 다음 타임 근무자와 교대를 한 피터가 막 카페를 떠나려던 때에 픽업대를 정리하려던 다음 타임 근무자가 그를 불러 세웠다.



 “핏. 이거 네 건가 본데?”


 아마도 사내가 두고 갔을 머그잔을 한 손에 든 다음 타임 근무자는 커피 얼룩이 남아있는 냅킨을 그를 향해 흔들어보였고, 의아해면서도 냅킨을 받아든 피터는 잔뜩 힘주어 쓴 듯 보이는 볼펜 글씨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라떼 고마워, 핏. 그래도 시나몬은 좀 줄이는 게 좋을 거 같은데.」


* * *


 웨이드 윌슨, 그는 현재 대기 중이었다. 벌써 2주째 이어진, 카페 건너편 건물 옥상에서의 대기에 지친 노란 박스가 이럴 시간에 스파이디 뒤꽁무니나 쫓자며 난리법석을 떨고 있었고 노란 박스만큼은 아니어도 웨이드가 헛된 희망에 목 멜 때면 늘 그렇듯 잔소리를 해대는 흰 박스 또한 중간중간에 끼어들어 노란 박스의 말에 동조하고 있었지만 건물 옥상에 걸터앉은 채 다리를 휘젓고 있는 그의 심장은 피터 파커, 그가 그 골목에서 모습을 드러낼 때부터 조금씩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5시 50분을 알리는 핸드폰 화면을 확인한 웨이드는 잠시 망설이다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대신 비상계단을 타고 내려가 오가는 차도 없는 도로를 조심조심하며 건넌 뒤 정확히 6시에 맞춰 문을 열고 카페에 들어섰고,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주문대 위로 올라오는 브루넷에 미소 지었다.


 “어서 오세요! 어, 오늘은 좀 일찍 오셨네요.”


 조금은 당황한 듯한 피터 파커의 얼굴에 아주 잠깐 시선을 뒀던 그는 피터 파커와 눈을 마주치기 전에 재빨리 고개를 내린 뒤 갈 거면 빨리 가기나 하라는 박스들의 재촉을 무시한 채로 느긋하게 주문대 앞에 섰고, 그가 주문을 하기도 전에 아메리카노를 입력해놓은 포스기 화면을 흘깃 쳐다본 뒤 미리 준비해놨던 현금을 주문대 위에 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 토순인가 뭔가 하는 라떼 한 잔.”

 “라떼요? 지금 토순이 라떼 주문한 거 맞으시죠?”


 늘 주문하던 블랙커피 대신 라떼를 주문한 자신의 말에 놀란 듯, 포스기에서 시선까지 떼며 되묻는 피터를 보곤 소리 없이 웃은 그는, 이내 이번에 찍으면 총 열 개의 도장이 모조리 찍힐 쿠폰을 주문대 위에 올렸고, 그 쿠폰을 집어가는 고운 손을 보곤 미간을 찌푸렸다.


 [저 곱다란 손을 보라고. 우리한테 가당키나 한 상대야?]

 (도망이나 안 간 게 용하지. 지난번에 간 카페 알바 얼굴 생각나?)

 [뭐, 저 곱상한 얼굴을 하고 고어 영화가 취미인 대딩일 수도 있지]

 (오호, 좀비가 취향이라 이건가?)


 처음엔 제일 먼저 나서서 설레발을 치던 노란 박스는 어느 새 연애 관련 문제라면 부정적이기만 한 흰 박스 편으로 돌아서서 웨이드에게 당장 카페를 박차고 나갈 것을 종용하고 있었지만 그 둘의 말을 모두 씹어 삼킨 웨이드는 다섯 번째 도장을 찍고 있는 피터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근데 말이야.”

 “네?”


 또 다시 화들짝 놀라는 피터의 모습에 마른 침을 삼킨 웨이드는 잘못 넘어간 침에 사레가 들려 두어번 기침을 한 뒤 초조함에 저도 모르게 따닥거리고 있던 손가락을 멈춘 채 숙이고 있던 고개를 더 숙일 수 조차 없을 정도로 숙인 뒤 말을 이었다.


 “……여기는 원래 쿠폰에 손님 별명을 적나?”

 “아.”


 피터의 작은 탄성에 이어진 머뭇거림을 본 웨이드는 자신의 질문이 조금은 무례하게 혹은 불만조로 들릴 수 있었겠다, 는 생각에 잠시 망설이다 숨을 크게 들이쉰 뒤 변명조로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았다.


 “아니,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아닌 거 같아서. 아, 불만이 있다는 건 아닌데, 내 이름이 적혀있지 않다는 게 문제라는 게 아니라, 내가 라떼를 주문한 시점에서 그 명칭은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럼 헷갈릴 수도 있는 거잖아? 아닌가. 여튼 그러니까 내 말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쿠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피터가 픽, 하고 웃음소리를 냈고, 분명 비아냥거리는 조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싶어 고개를 들었던 웨이드는 미묘하게 올라간 입 꼬리를 보곤 자신도 모르게 멍한 표정으로 피터를 쳐다보았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다시 만들어드릴 게요.”


 피식 웃은 피터는 어느 새 새 쿠폰을 꺼내 도장 다섯 개를 연달아 찍고 있었고, 웨이드가 계산대 안으로 들어간 도장 열 개짜리 쿠폰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쳐다보는 사이 도장을 다 찍은 피터가 그에게 다시 한 번 물어왔다.


 “성함으로 적어드릴게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자신이 말을 꺼내놓고도 막상 이름을 묻는 피터의 질문에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던 웨이드는 몇 차례 입만 뻥긋 거리다 고개를 숙였고, 머릿속에선 흰 박스가 그러기에 왜 그렇게 멍청한 이름을 선택했냐고 비아냥거리고 있었다. 그가 잠시 망설이던 사이 피터가 새 쿠폰을 다시 서랍 안에 넣으려는 것을 본 웨이드는 바짝 마른 입술을 축인 뒤 한껏 낮춘 목소리로 조용히 답했다.


 “웨이드 윌슨.”


 그의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주문대 안쪽에 비치되어 있는 듯한 파란색 펜을 꺼내 든 피터가 새 쿠폰에 자신의 이름을 쓰는 걸 지켜본 웨이드는 곧 이어 건네진 쿠폰에 적힌 이름을 잠시 쳐다보다 주머니에 넣었고, 그 사이 계산대 안에서 돈을 꺼낸 피터가 그가 주었던 라떼 값을 건네 왔다.


 “웨이드라고 불러도 되죠? 어쨌거나 얼굴 본지도 꽤 됐잖아요. 그 정도 친분은 되는 거 같은데. 명패를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전 피터 파커구요, 피터나 핏이라고 부르셔도 돼요. 만약에 웨이드라고 부르시지 못하게 할 거 같으면 피터 말고 저기요, 라고 부르시고요.” 


 아마도 쿠폰 탓이라 생각한 그가 아무 생각 없이 그 돈을 받아들려 할 때,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또 다시 들려왔고, 피터가 한 말의 내용에 놀란 그는 쳐들려지려는 머리를 애써 숙이며 돌아서야 했다.


 피터의 브루넷 외엔 볼 수 없지만 스파이더맨이 앉아 쉬곤 하는, 그러니까 어쩌면 스파이더맨의 형체나마 볼 수 있을 마천루가 보이는 구석자리와 피터의 브루넷과 어쩌면 그 얼굴까지도 흘깃댈 수 있을지 모를 주문대 근처 자리에서 고심하던 그는 이내 주문대 근처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고, 조용한 카페에서 울려 퍼지는 타자소리를 들으며 여전히 미치도록 단 라떼를 최대한 천천히 마셨다.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느긋하게 시작되었던 봄은 끝에 가선 흔적도 없이 사라져 여름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었고, 그 날부터 웨이드는 다음 타임 알바와 시간이 겹치는 6시 반을 피해 매일같이 6시에 맞춰 카페를 찾기 시작했다.


 처음 한 두 번은 아메리카노를 미리 준비해놓던 피터는 그가 두어번 라떼를 주문하기 시작하자 더 이상 미리 커피를 준비해놓지 않았고 피터가 근무를 시작하는 시간대부터 피터의 자리가 잘 보이는 위치로 자리를 옮긴 웨이드는 6시가 다가오면 주문대 앞에 서서 카페 문을 응시하고 있는 피터를 바라보다 정확히 6시에 맞춰 카페에 들어섰다.


 하지만, 데드풀로서의 삶은 그 사소한 일상조차 허락지 않았고, 또 다시 열 번째 도장을 찍히면 계산대 안으로 들어갈 쿠폰에 그가 아쉬워하던 그 주말 전날, 토니의 요청으로 미션에 참가했던 그가 깨어난 건, 카페의 마지막 방문으로부터 거즌 2주가 지난 시점이었다.


 여름의 태양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여명으로 하늘을 물들였고, 새파랗게 질려가는 하늘 아래 그림자로 얼룩져가는 거리를 걷는 웨이드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다른 때라면 피터와 눈이 마주칠까 두려워 카페 유리창을 애써 무시했던 시야는 굳이 그럴 필요도 없이 보도블록에 박혀있었고, 오늘은 그의 근무일이 아님을 알면서도 카페를 찾는 자신을 탓하는 박스들의 목소리는 어딘가 맥이 빠진 듯 늘어져 있었다.


 “어서 오세요.”


 힘없이 문을 밀던 그의 손은 예상치도 못한 익숙한 목소리에 움직임을 멈췄고, 주문대 위에 비죽 솟아나있는 브루넷을 발견한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문손잡이를 잡은 채 머뭇거리던 그는 이내 조심스레 문을 닫은 뒤 주문대로 천천히 걸어갔고, 비어있는 포스기 화면을 본 그는 한계를 모르고 박차를 가하는 심장이 터져버릴까 두려워 입술을 깨문 채 심박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음료는 뭐로 준비해드릴까요?”


 친절하기는 해도 사무적으로 들리는 피터의 목소리에, 그가 기분이 상했음을 눈치 챈 웨이드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한 채로 주머니에 꽂고 있던 손에 잡힌 지폐를 구겼고, 피터의 한숨 소리가 들리자마자 얼른 지폐를 움켜쥔 손을 주문대 위에 올리며 입을 떼었다.


 “라떼 한 잔. 곰돌-”

 “고객님, 죄송하지만 저희 카페에 그런 메뉴는 없어서 주문이 어려우세요.”


 웨이드의 말을 끊은 피터는 친절로 무장한 단정한 문구로 그를 응대했고, 어째선지 서러워진 그는 잔뜩 구겨진 지폐만큼이나 우그러들고 있는 폐에 숨을 불어넣으며 항변했다.


 “하지만-”

 “그런, 메뉴는! 없! 다! 구! 요!”


 그의 항변을 아주 깔끔하게 끊어먹은 피터는 그가 돌아서자마자 경쾌한 소리를 내며 열린 계산대에 돈을 집어넣는 듯 했고, 오늘은 아무래도 구석자리에나 처박혀야겠다는 노란 박스의 말에 그가 수긍하려는 찰나 등 뒤에 들린 목소리에 그는 얼른 돌아섰다.


 “고객님!”


 그가 돌아서자마자 픽, 하고 들린 헛웃음 소리는 명백하게 비웃음을 담고 있었고, 피터의 입에서 처음 나온 부정적인 소리에 놀라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에 피터의 고개는 여전히 주문대 아래를 향한 채였다.


 “쿠폰이요, 쿠폰.”


 거울을 보지 않아도 잔뜩 일그러졌음이 분명할 자신의 얼굴을 차라리 못 봐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잠시 주문대 아래를 향했던 고개가 들리는 것이 보이자 얼른 고개를 숙인 웨이드는 찌그러진 폐를 피려고 애쓰며 빈 주머니에 꽂힌 손을 꼼지락거리다 조그만 소리로 웅얼거렸다.


 “오늘은 없는데…….”


 새 쿠폰을 다시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적인 생각을 애써 무시하면서도 차마 그 기대를 저버리지 못한 그가 멍하니 서 있을 때 짜증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든 피터가 비둘기 쫓는 공원지기 같은 손짓으로 그를 쫓았고, 뒤돌아서는 등을 잠시 응시하던 그는 조금 전의 흰 박스의 제안대로 카페 구석자리에 엉덩이를 붙인 채 창밖을 쳐다볼 생각조차 못한 채로 테이블에 시선을 박고 조용히 자신이 주문한 라떼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주문대 뒤에서 들리는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뒤로 한 채 흰 박스와 노란 박스의 구박에 응수하고 싶은 마음을 참고 입술만 벙긋거리던 그는,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멎자 숨을 깊게 들이쉰 뒤 커피를 찾아가라는 외침을 기다렸지만, 그에게 들려온 것은, 그의 테이블로 다가오는 피터의 조심스러운 발걸음 소리뿐이었다.


 다소 신경질 적으로 내려진 두 잔의 라떼 위엔 익숙한 곰돌이 모양 거품과 시나몬 가루로 범벅이 된 주황색 고양이 모양의 거품이 있었고, 저도 모르게 올라가려는 입 꼬리를 막을 생각으로 그가 입술을 깨물었을 때 그의 맞은편 자리에, 피터가 자리를 잡았다.


 “이건 제 커스텀 메뉴라고요. 애초에 아무한테나 주는 것도 아니고요.”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것 같은 느낌에, 물론 그건 자신이 발자국 소리가 들렸을 때부터 숨을 참은 탓임이 분명했지만, 어쨌거나 더욱 더 폐부를 부풀린 그는 조심스레 의자를 뒤로 뺐고, 조심스레 시선을 올려 팔짱을 낀 피터의 팔을 보곤 천천히 숨을 뱉었다.


 “뭐 마시실 거예요? 얜 냥냥이예요.”


 도대체 저 실망스런 네이밍 센스는 어디서 온 거냐는 노란 박스의 투덜거림에 비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은 그는, 마시지 않아도 맛이 엉망일 듯한 고양이 모양의 거품이 올려진 라떼로 손을 뻗었고, 이제 노란 박스는 신종 자학은 그만해달라며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노란 박스의 비명 소리에 먹먹해진 머릿속을 뚫고 들려온 웃음소리에 놀란 그는 최대한 거품이 어그러지지 않도록 노력하며 머그잔을 다시 테이블 위로 내려놓았고, 몇 번의 침음을 낸 피터가 불만스런 어조로 그에게 물어왔다.


 “그 동안 뭘 하셨길래 안 오신 거예요? 솔직히 이런 말 하는 게 좀 우습긴 한데 조금 서운했다고요. 아, 제가 조금이라고 했나요? 좀 많이요.”

 [오-서운하셨다? 우린 그동안 큐브 조각 단위로 나눠진 몸을 복구하느라 바빴는데 그걸 듣고도 서운할 수 있는지나 한 번 볼까?]

 (서운한 건 둘째 치고 그 소리 들으면 미친놈 취급하면서 도망갈 걸?)

 [그것도 나쁘진 않지. 애초에 그 정도에 놀라서 달아날 놈이라면 얼른 도망가는 게 낫다고.]


 피터의 한 마디에 열 마디를 쏟아 부으며 불만을 표하는 박스들에 저도 모르게 닥치란 말을 하려던 웨이드는, 어느 새 테이블 위로 올려진 쿠폰을 발견하곤 벌어지려던 입을 다문 채 조심스레 쿠폰을 챙겼고, 그가 쿠폰을 챙길 동안 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피터가 곰돌이 모양 라떼에 손을 뻗어왔다.


 “웨이드 윌슨, 맞죠?”


 또 다시 들려온 질문에 입을 열어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그가 끄덕인 찰나 낮은 한숨을 뱉은 피터가 머그잔을 든 채로 자리에서 일어섰고, 그가 무언가 말을 하려는 순간 피터가 불만스런 어조로 그에게 말했다.


 “고객님이 편하시면 그렇게 불러드리고요.”


 웨이드가 차마 자신을 이름으로 불러달라는 말을 꺼내지 못한 사이 잠시 테이블 곁에 서서 그를 기다리던 피터가 주문대를 향해 사라져버렸고, 여전히 따스한 머그잔을 감싸 쥐고 있던 그는, 테이블 옆에 놓인 냅킨을 쳐다보며 망설이다 고객만족설문용 펜을 집어 들었다.


 [멍청한 짓이었어.]

 (이왕 대사를 칠거면 좀 멋있게나 치던가. 애초에 그거 컴플레인 종이에 적어야 했던 말 아니야? 네 나이스한 엉덩이를 내게 보여줄래, 라던가.)

 “닥쳐. 우리의 영웅 스파이더맨이 그랬다고, 초면에 섹스하자는 말은 해선 안 되는 말 중 하나라고 말이지.”

 (그러고 보니 스파이더맨 엉덩이를 안 본지 얼마나 됐지?)

 [7주가 넘어섰습니다, 고객님.]


 피터의 어조를 따라한 흰 박스는 이내 피터 파커와의 연애가 불가능한 이유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했고, 웨이드는, 흰 박스의 말에 종종 딴지를 걸 거나 수긍하는 노란 박스의 말에 대답하는 것조차 잊은 채로 서서히 느려져가는 심장 박동에 아쉬워하며 집으로 향했다.


Posted by Spideyp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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