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ora_runaway로

끄적거림 2016. 1. 23. 02:23 |





 아주 멀고 먼 옛날 두 자매가 살았습니다. 아니, 혼란을 피하려면 정확히 말하는 게 좋겠군요. 아주 멀고 먼 옛날 두 마녀가 살았습니다. 그녀 둘을 아는 숲 인근의 마을 사람들은 그 둘을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나 여신으로 부르곤 했지만 그녀들 스스로가 마녀로 불리기를 원했으니 마녀라고 부르는 것이 맞겠죠. 그 둘은 아주 깊고 깊은 숲 속에 살았고, 그 둘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이라곤 숲 인근의 마을 사람들뿐이 없었습니다. 그녀들은 자신들에게 붙여진 여신이나 천사라는 명칭을 극히 부인하며 그저 마녀라는 이름이면 족하다고 했습니다. 그녀들은 자신들이 머무는 숲을 사랑했고, 순박하기 그지없는 그 마을 사람들을 사랑했습니다. 그 둘 모두 소란이라면 이미 질릴 정도로 충분히 겪은 사람들이었고, 두 명 다 더 이상의 소란이나 분쟁은 원치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숲을 돌보는 일과 마을 사람들의 자잘한 고민 따위를 해결하는 데에 자신들의 시간을 소비하며 자신들의 삶을 차츰 죽여 나가고 있었더랬습니다. 아마도 그 사건이 아니었더라면, 혹은 그 사내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그녀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일이 없었을 지도 모르겠군요. 그녀들이 얼마나 대단한 마녀였건 간에 말입니다.


 그녀들의 소망과는 별개로 세상은 혼란스러웠고 온갖 왕들이 자신들만의 왕국을 세워 숲에 둘러싸인 이 마을을 제외한 대륙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바로 어제 세워졌던 왕국이 하룻밤 사이에 무너져 잿더미가 되는 것이 허다한 것이 바로 우리가 철의 시대로 기억하는 바로 그 시대였습니다. 수많은 어미들이 아들의 시체들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트렸고 부모를 잃은 수많은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떠돌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 우리가 위대한 왕으로 부르는 바로 그 사내가 큰 전쟁에서 패배해 숲을 지나 마을로 숨어들었지요. 마녀들 또한 그가 숲으로 들어온 것을 알았습니다만 그 둘 중 누구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전쟁에서 도망친 또 다른 병사이겠거니 하고 두었을 뿐이었죠. 


 사내는 부상당한 것은 물론 자신의 실패에 심히 절망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니까, 순박하기 그지없는 마을 사람들 중 하나가 마녀들을 찾아가보라고 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르죠. 만약 그가 조금만 더 자신감에 차있고 덜 절망했더라면 전설로나 전해져오는 마녀들을 찾아가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는 아주 절박했고 지쳐있었습니다. 자신보다 훨씬 무식해 보이는 농부의, 꿈과도 같은 그 말을 믿을 정도로 말이죠. 마을 사람 손에 붙들린 채 허름한 오두막에 도달한 사내는 한참을 망설였고 결국 오두막의 문을 두드린 것도 처음 그에게 제안을 했던 바로 그 농부였습니다. 익숙한 노크 소리에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던 자매 중 어린 축에 속했던 그녀는 사내를 보곤 얼굴을 굳혔습니다만 농부의 간청에 사내를 집안으로 들였고 그를 끌고 왔던 농부는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곤 자신의 할 일은 마쳤다는 듯 사라졌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던 사내는 자신의 앞으로 찻잔이 놓일 때까지도 말을 아꼈고, 피곤한 일이 벌어질 것이 뻔한 상황에서 그녀 또한 말을 아꼈습니다. 그리고 그 때 그녀의 언니가 오두막으로 들어왔죠. 잠시 자신의 동생과 사내가 마주 앉아있는 꼴에 할 말을 잃고 서있던 그녀는 이내 손짓 하나로 사내를 치료해주곤 오두막은 물론 마을에서 떠나달라는 말을 축객령 삼아 그를 쫓아버렸고, 순식간에 오두막 밖으로 몰린 그는 오두막 안에서 들리는 날카로운 말들을 들으며 다시 마을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손짓 하나로 자신을 치유한 그녀를 볼 때에 그녀의 도움만 있다면 앞으로 벌어질 모든 전투에서 자신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날이 어두워졌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다시 숲으로 향했고, 길을 잃었습니다.


 한 밤의 숲은 고요했고 사방에 깔린 어둠은 그를 휘감고 놓아줄 줄 몰랐습니다. 몇 번이고 마주친 늑대나 곰은 그를 본 척도 않고 스쳐지나갔고, 밤의 자장가를 부르던 나이팅게일조차도 그를 본체만체 하자 그제야 그는 이 숲에서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닫고 걷기를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 낮에 처음 만났던 마녀가 그의 앞에 나타났죠.


 낮의 햇살 아래에서 그녀의 타는 듯한 붉은 색이었던 머리칼이 전쟁터에서 수없이 목격했던 땅에 말라붙은 전사들의 검붉은 피의 색으로 물들인 듯 어둡게 빛나고,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녹색 눈은 그 어느 맹수의 눈보다도 섬뜩하도록 냉정하게 빛을 발하는 것을 보고서야 그는 자신이 마주한 것이 나중에 들어와 그를 내쫓았던 그녀인줄 깨달았습니다. 횃불을 든 채 그를 빤히 쳐다보던 그녀가 조용히 그에게 물었습니다. 소원이 무어냐고 말이죠. 그는 솔직하게 답했습니다. 역사에 다시없을 위대한 왕국을 세우고 싶으며 역사에 길이 기록될 왕이 되고 싶다고 말입니다. 그의 대답을 들은 그녀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다시 물었습니다. 누구를 위한 왕국이며 누구를 위한 왕이냐고. 그는, 당신들이 이 숲에 조용히 침묵을 지키는 동안 자신은 수많은 전쟁을 봐왔으며 수많은 울음들을 들어왔노라 말했습니다. 자신이 그 모든 걸 종식시킬 왕이 되고자 한다고도요. 한참이고 그를 쳐다보던 마녀는 돌아섰고, 그대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발자취대로 남겨진 빛을 보고서야 그는 그게 수락의 뜻이었다는 걸 깨닫고 그녀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고 합니다.


 네, 그 뒤의 이야기는 아무도 알지 못하고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오직 그 두 마녀의 이름과 위대한 왕이었다는 그의 이름뿐이죠. 마녀 중 하나는 전쟁 중에 그를 떠나며 마을과 함께 사라졌고, 남은 하나는 끝까지 그의 곁을 지키다 그의 임종과 함께 자취를 감췄죠. 혹자는 그토록 긴 침묵을 지켰던 두 마녀가 그를 지지한 것은 그의 대답이었다고 하고, 혹자는 그건 모두 후대가 지어낸 말일 뿐, 그 두 마녀 중 냉정하기로 소문난 첫째가 그를 먼저 찾은 것은 그의 검붉은 머리칼 때문이라고도 합니다만, 기록조차 불타 사라져버린 우리의 시대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추측, 추측. 그 뿐이죠. 아마 과거로 가서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는 한 그렇단 이야깁니다. 하지만 제겐 수많은 문들이 있고, 어쩌면 그 문들 중 맞는 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제가 맞는 문을 찾는다면 당신은 어쩌시렵니까? 추측뿐인 전설들에 만족하며 여기에 머무시렵니까,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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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pideyp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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