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일럿님 트윗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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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내가 스파이더맨이라서 좋은 거예요, 아니면 피터 파커인데 스파이더맨이라서 좋은 거예요, 그것도 아니면 스파이더맨이 피터 파커라서 좋은 거예요?]


 마스크를 집어던진 청년의 얼굴은 붉었다. 그것이 목소리에 담긴 분노 때문인지, 아니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끓어오른 혈기 때문인지 그 당시 그는 알 수 없었다.


 청년과 그 사이에 끼어든 박스들 때문에 그가 답하지 못한 사이 침묵 속에서 자신이 생각했던 가장 최악의 답을 그의 대답이라 생각한 청년이 입술을 깨물고 돌아서 마스크를 집었고, 한여름, 가장 해가 높이 뜨는 때의 그 짙은 그림자 속에서 여전히 박스와 고군분투하고 있던 그는, 그가 겪었던 현실과는 달리 재빨리 청년을 잡아챘다.


 [핏, 나는-]


 따스한 바람과 함께 떨어진 물방울이 그의 잠을 깨웠고, 몸을 덮고 있던 꽃잎을 털며 일어선 그는 어느 새 시선이 닿기도 힘들 정도로 위로 뻗어버린 나뭇가지 끝을 보려 노력했다.


 소년의 나이와 같을 아몬드 나무는 봄이 오자 어김없이 꽃을 피워냈고, 옅은 분홍빛 꽃무리를 통해 쏟아지는 햇살은, 모두가 꿈꿔왔던 봄처럼 따스하게 그를 비췄다.


 아몬드 나무를 중심으로 포진한 식물들 중 여러 해를 살 수 있는 모든 것들은 소년의 나이에 맞춰져 있었지만 그의 시간은 매 해 다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한 해 살이 풀에 멈춘 지 오래였다.


 하루가 모여, 달이 되고, 달이 모여, 해가 되면 다시 삶을 시작하는 그들의 삶과는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간은 아몬드 나무가 퀸즈 한복판에 만들어진 이 정원에 뿌리를 박던 때에 멈췄고, 그 때부터 자라난 아몬드 나무는 물론이고 길을 마주보고 늘어선 미루나무들이 아름드리나무로 자라는 동안에도 정원의 풍경이 변하는 일은 없었다.


 이른 봄을 알리는 에리카가 그 붉은 잎을 틔우고, 그 붉은 잎이 흩어질 때쯤엔 아몬드화가, 아몬드화가 지고 여름을 알리는 태양빛 아래에 희디 흰 아스포델이 아몬드 나무 주변을 포진하고, 마침내 열기가 물러난 가을, 국화가 이젠 초록색에 불과한 에리카를 둘러싸고 흰색 꽃잎을 벌리는 동안에도 그의 하루는 달라지지 않았고, 그건 그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맨 처음에 그들 사이로 자리 잡은 잡초나 이름 모를 꽃따위를 열심히 뽑아내던 그는, 이내 그 소년이라면 그들조차도 사랑했을 거란 생각에 손을 거두었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정원을 둘러싸고 있던 높다란 벽은 그 해 아몬드화가 지기도 전에 그 소년의 이름으로 흔적도 없이 허물어졌다.


 무미건조한 건물들 틈바구니에 끼인 정원을 반긴 이는 아이들이나 그들의 부모뿐만이 아니었고, 매일 같이 찾아오는 방문객들과 그들 때문에 쓰러진 꽃이나 긁힌 나무들, 그리고 쓰레기에 불평불만을 토하면서도 그는, 그 모든 것을 소년의 이름으로 해결해나갔지만, 그의 보살핌 속에서 자라난 나무들이 여름의 태양조차 침범하지 못하는 그늘을 만들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는지 혹은, 맨 처음 그가 심었던 화초들이 알아서 제각기 다른 때에 꽃을 피운 게 몇 년 째인지 그는 기억하지 못했다.


 매해 꽃을 피우고 잎을 틔우는 나무가 해를 세지 않고, 오로지 사계절만 알 뿐 그 이상의 시간을 알지 못하는 화초가 그러하듯, 그는 아주 오래 전에 날 세기를 그만두었고, 모든 나무들이 그의 팔 둘레를 넘어선 이후부터 그는, 지금쯤이면 소년이 몇 살이 되었을지 어림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사실이 그렇다 한들, 그에게 소년의 나이는 상관없었다.


 그 소년이 몇 살이건 간에 그 소년은 늘 그에게, 처음 만났던 그 때의 모습 그대로였으니까.


 희망과 용기로 가득 찬 채로 뉴욕을 활보하던 그 어리고 여리던 소년은, 맨 처음부터 그리고 자신을 잘 알게 된 이후에조차 다른 이들과는 달리 한 결같이 진심어린 걱정과 조언을 건네곤 했고, 그랬기에 그는, 다른 이가 말했더라면 대번에 코웃음 쳤을 고백이나 터무니없는 약속들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그는 그 소년의 약속을 믿고 기다릴 셈이었다.


 이미 한껏 꽃을 피워내고 진 이에겐 내년이란 때가 있고

 지금 한껏 꽃을 피워내고 있는 이에겐 지금이 때이며

 아직 꽃을 피워내지 못한 이에게는 다음 계절이란 때가 있으니까


 그러니, 그 때 또한 다시 오리라고 그는 믿고 있었다.


 그가 아는 한 어차피 질 꽃이니 피워내지 않겠다는 나무는 없었고, 어차피 시들 운명이기에 싹조차 틔우지 않겠다는 씨앗은 없었기에, 그리고 긴긴 고독 속에서조차 찬란하게 빛나는 소년을 본 그였기에, 그는 수많은 시간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이 치들처럼 자신의 자리를 지킬 작정이었다.


 설사 그 자리가 짙은 어둠 속이라 할지라도, 그에게 있어 소년이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광원이었기에 그는, 자신이 서 있는 곳은 한치의 빛도 없는 어둠이 아닌 소년의 빛 덕택에 생긴 그림자 속이라 믿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여전히 그 그림자 속에서 그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원을 찾는 이는 많았고, 그의 시선은 늘, 꽃밭을 온통 헤집는 아이들이나 길가에 다소곳이 선 미루나무 그늘을 즐기러 온 연인들이 아닌, 천천히 서로를 의지해 정원을 산책하는 노부부들을 향했고, 그 때만큼은 그의 박스들조차도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켰다.


 꽃을 떨궜다 해서 슬퍼하는 나무나 화초는 없었다.


 여러 해를 사는 나무들은 다음해면 또 다시 같은 때에 꽃들을 피워냈고,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마냥 사라졌던 꽃무리들마저도 따스한 봄이 다시 찾아오면 싹을 틔우고 잎을 벌려 꽃을 피웠지만 연분홍빛 꽃 무덤 속에 덮인 아몬드나무 뿌리 아래의 그 소년이 다시 그를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설사 그가 그 소년을 찾아가려고 해도, 아주 오랜 기간 그를 외면하고 있는 그의 옛 연인은 여전히 연락이 없었고, 헛된 희망에 부풀어 날렸던 총알이 준 짧은 안식 후에 그는, 그 총알에 붙어 달아난 기억들이 있는지 없는 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소년에게 받았던 수많은 약속들, 그에게 소년이 받았던 수많은 약속들이나 그와 소년의 행복했던 기억들, 혹은 그렇게 행복하거나 달갑지 않은 기억들이 그를 물고 늘어졌고, 폭풍우에 흔들리는 나무가 그러하듯, 그는 늘 약속이행과 그 자신의 행복 속에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는 중이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수많은 약속들과 이미 희미해지기 시작한 기억들뿐이었고, 빨간 복면 마스크를 벗어던지며 그의 품에 안겨들었던 그의 꿈속의 소년은, 이제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를 제외한 그 소년을 기억하는 이들은 수없이 흐른 시간 속에서 죽은 지 오래였고, 그 소년의 이름이 기록되었던 매체나 기록 장치는 사장된 지 오래였으며, 기록 속에 남은 소년은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거야 당연하다 쳐도 역사 속에 남은 소년을 설명하는 문자는 너무나도 차갑고 딱딱해서 그는 도무지 그 활자 속에서 그 소년의 모습을 떠올릴 수 없었다.


 그가 아는 소년은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고, 자신마저 사라진다면, 이 세상에 분명 존재했던 그 소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만 같아서, 그래서, 그는 아직 죽을 수 없었다.


 어깨를 마주한 채 걷는 노부부들의 모습에 귓가를 맴도는 어쩌면, 만약 따위의 환청이나, 뜸금 없이 떠오른 소년의 부질없고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약속들에 화가 날 때 혹은 이따금 언젠가 자신이 소년을 오롯이 잊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올 때면 그는, 조용히 아몬드 나무 아래에 누워 눈을 감았다.


 나무는 때를 따라 변해갔고, 때를 따라 변해가는 그늘 속에서 그는, 그 소년이 수없이 그에게 속삭였던 약속을 곱씹었다.


 언제나 함께할 거라던 약속.

 반드시 찾아낼 거라던 약속.

 당신의 곁을 반드시 지킬 거라던 약속


 혹은, 그가 소년의 곁에 함께할 수 있게 할 거라던 그, 약속들을.


 그가 아는 소년은, 아니. 그의 연인은 거짓말을 하기엔 너무나도 올곧은 이었고, 헛된 약속을 한 적이 없기에 그는 여전히 소년의 때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진 채 다음 해를 기약하고 있는, 피처럼 붉은 꽃잎을 흩은 에리카처럼

 자신의 때를 맞아 수없이 견딘 해의 수만큼 수많은 연분홍빛 꽃을 피어내고 있는 아몬드처럼

 그리고, 곧 다가올 자신의 때를 기다리며 짙은 녹색 아래 흰 꽃잎을 숨긴 아스포델처럼.


 얇은 꽃잎을 통해 들어온 따스한 봄볕은 처음 사랑을 고백하던 소년의 볼만큼이나 붉었고, 조용히 눈을 감은 그는 그 어둠 속에서 수많은 것들을 기억해내려 애썼다.


 긴긴 겨울을 견디고 봄을 맞아 나무가 피워낸 아몬드화는 여전히 작은 바람에도 부질없이 꽃잎을 떨구고 있었고, 그의 소년은 여전히 그 아래에서 조용히 잠든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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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pideyp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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