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one like you_피터른 전력 60분, 구속, 속박.
썰/덷거미덷 2016. 3. 6. 02:11 |비가 내리고 있었다. 새벽부터 늦장을 부리던 하늘은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내일이 마감인 레포트를 두드리는 학생의 손마냥 바쁘게 빗방울을 떨궈내고 있었고, 아직 다 녹지 않은 땅에 닿은 빗방울들은 여기저기에 물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빈 나뭇가지에 닿은 빗방울을 하릴없이 궤도를 변경해 땅으로 향했고,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묘비에 닿은 빗방울들은 매끄러운 표면을 따라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아마도 내일이면 오늘 내린 비의 흔적은 모조리 사라져 있을 터였고, 대리석에 내리그어지고 있는 저 흔적들조차도 언제 존재했냐는 듯 사라질 터였지만 늘 그렇듯 죽음만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터였다. 늘 그렇듯, 그 자리에 서서 너의 빈 구멍이 여기에 있노라, 외칠 터였다.
그는, 익숙해져가는 상실감에 때때로 절망했다. 처음엔 그저 빈자리로 남아있던 그 일상들이 어느 새 다른 일들로, 다른 누군가로 채워져 가는 자신에 실망했고, 자신이 그래도 되는가, 혹은 그 상실감에 갈수록 무뎌져 가도 되는 가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어쩌면 그랬기에 그는 아직도 그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상실감에 익숙해져가고 무뎌져가는 자신에게서 도망치기 위해서, 그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기 위해서.
묘비 앞에 놓인 화병엔 오늘 사다 꽂아놓은 꽃이 빗방울에 짓뭉개져가고 있었다. 자신이 고작 죽은 이를 위해 바쳐질 것을 알았더라면, 볼 이도, 그 꽃을 받아들고 기뻐할 이도 없는 이 묘비 앞에 놓여질 것을 알았더라면, 저 꽃이 그 싹을 틔우고 잎을 펼쳐 봉우리를 벌렸을까. 하릴없는 고민에 빠져있던 그는 자신이 받쳐 들고 있는 우산살을 한참이고 쳐다보다 고개를 저었다. 저들에게 그런 고민을 할 틈은 없을 터였다. 그들에게는 주어진 시간은 짧디 짧은 몇 달, 아니면 며칠이 전부였고, 꺾여지는 것도, 누군가의 손에 쥐어지는 것 또한 강자의 강요에 의해 벌어진 폭력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그들로선 이 모든 것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그녀를 잃은 것과는 전혀 다른, 손 쓸 도리가 없는, 그런 일.
그는 더 이상 새벽 2시가 즐겁지 않았고, 옥상 위에서의 기다림이 기껍지 않게 느껴지기 시작하자 새로운 옥상을 물색했고, 얼마 되지 않아 그를 찾아내곤 환호하는 불청객을 피해 몇 번이고 장소를 바꿨다. 숨바꼭질 아닌 숨바꼭질이 몇 번이고 지속되자, 이미 일상 중에 하나가 되어버렸던 새벽의 불청객 또한 더 이상 그를 찾지 않는 듯 했다. 그의 새벽은 또 다시 고요로 가득 찼다.
비워진 빈자리를 또 다른 일상으로 채우는 일은 쉬웠고, 그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몰아붙였다. 뉴욕은 시끄러운 도시였고, 늘상 비명을 지르는 이들이 넘치는 곳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잡념 속에서 그는 매일같이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쓰잘데기 없는 농담을 던지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설레임과 죄의식이 공존하던, 그 옥상만은 피했고 불청객의 소식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한참 만에 들려온 불청객의 소식에 그는 숨을 죽였다. 반대편에 앉은 상대의 손에 들린, 보라색과 검은색, 빨간색으로 어우러진 청첩장에 시선을 박은 채 주먹을 그러쥔 그는 늘 그렇듯 급한 볼일이 생겼다는 핑계로 자리를 떴고, 마스크를 쓴 그의 핑계를 믿은 상대는 결혼식에 보자는 말로 대화를 끝맺었지만 그의 우편함은 여전히 비어있는 채였다.
그는 아주 오랜만에 새벽 2시에 맞춰 그 옥상을 찾았다.
그리고 그 불청객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 그 자리에 앉아 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함께했던 그 때처럼, 자신이 여기에 있는 것만큼 당연한 일은 없다는 듯.
환호와 함께 다짜고짜 자신을 껴안는 팔에 그는 안도했고, 분노했다. 그는, 사실 자신이 지금 무얼하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한 채로 주먹을 휘둘렀고 뼈를 부러뜨리며 살을 뭉갰다. 귓가로 들려오는 비명이나 애원은 바람에 흩어졌고, 그 와중에도 상대가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그가 가차 없이 가하던 폭력을 멈춘 건, 상대의 말이 멈추고도 한참이 지나서였고, 감겼다고 표현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뭉개진 눈가에 입을 맞춘 그는 의식을 잃고 쓰러진 불청객을 안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그는 더 이상 그 무엇도 잃을 생각이 없었다. 손끝에서 놓쳤던 그녀처럼, 또 다시 무언가를 놓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제 불청객은 더 이상 불청객이 아니었고, 그는 사냥에 능한 거미였다. 자신의 거미줄에 걸린 먹잇감은 절대로 놓치지 않는 거미인한 그로부터 그의 먹잇감을 앗아 갈 수 있는 것이란 없었다.
- 쓰면서 들은 곡이 Someone like you.
- 그래서 제목이 someone like you 인데 내용은 혼파망인 게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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