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썰/피터른 전력 60분 2016. 3. 13. 20:27 |- 쓰면서 들은 음악은 맨 아래에.
다들 알아듣기 힘들어 하는 거 같으니 비교를 통해 일깨워주지.
그래, 난 그 정도로 친절한 생명체라고.
화가가 빈 캔버스를 채우고 싶어 하는 거나
작곡가가 빈 악보에 곡을 써놓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욕구잖아?
그 욕구들은 당연시하고, 환호하면서 왜 다들 유독 나한테만 매정한 거냐고.
도대체, 왜 이해하질 못하느냔 말이야!
애초에, 난 악마라고!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놈을 찾아 헤맸나?
아니, 절대로 아니지.
먼저 대가릴 들이민 건 그 녀석이었어!
그 녀석이 먼저 한 떨기의 꽃과도 같은 예술성을 가진 내 앞에 나타났다고!
제 발로 걸어서 들어온 건 그 녀석이었단 말이지!
그러니, 자 봐 바.
화가가 텅 빈 캔버스를 등한시하고
작곡가가 악보를 비워둔 채 내버려둔다면,
그거야 말로 통탄할 일이 아니겠어?
그러니까, 내가 만약, 아주 만약에, 그걸 그냥 내버려둔다면,
그건 신이 내게 준 소임을 소홀히 하는 거잖아?
그거야 말로 안 될 말이지.
안 그래, 거기 엿듣고 있는 친구들?
피터른 전력 60분, 위로.
아름다운 날이었다. 풀린 날씨를 즐기러 나온 연인들이 거리를 서성였고, 그런 연인들로 가득 찬 카페는 내부는 물론 외부에 내놓은 테이블마저 만석 상태였고,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고블린 상에 앉아 거리를 살피는 피터를 제외한 모두의 표정이 밝은, 여느 때의 주말 점심 시간대였다.
[그러니까, 가끔은 너도 쉴 필요가 있다니까. 핏, 공권력을 믿어. 정부에서 나한테 걷어가는 세금이 얼만데 그 정도도 못 지키겠어? 게다가 쉴드가 있잖아. 여차하면 쉴드 직통 번호로 신고를 하라고.]
“네, 네. 전 당신 같은 자산가가 아니라서 국가에서 걷어가는 세금이 얼마 안 되가지고 통 믿지를 못하겠네요.”
[내 말은, 데이트 좀 하란 소리야. 아니면 적어도 숙모네 집에 자주 좀 들리던가. 그것도 아니면 내 핑계 대는 일 좀 그만하라고. 네가 자꾸 우리 랩실에 있다고 하니까 어제는-]
“그건 좀 봐주면 안 돼요? 메이 숙모가 전화를 하면- 어, 잠시만요, 토니.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숙모랑 MJ네요. 그렇게 뉴욕을 돌아다녀도 마주치기 힘드시던 분들이-”
한가롭던 피터의 아침은 그걸로 끝이었다.
신호를 무시하고 직선으로 달리던 차는 신호를 따라 직진하며 속도를 높인 차를 그대로 들이박았고, 한 번 방향을 잃고 휘어진 차는 그대로 길을 건너려던 메이 숙모와 MJ를 치고 건물에 들이박혔다. 차라리 일찌감치 벽에 처박힌 차는 그 외의 피해를 내지 않았지만, 그 뒤로 주르륵 달려온 차들이 연속으로 부딪히며 평화로웠던 뉴욕의 거리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연이어 달려오는 앰뷸런스는 물론, 고블린 상 위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스파이더맨을 외치는 사람들의 소리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로 피터는 고블린 상에 붙박인 듯 붙어 메이 숙모와 MJ가 피 웅덩이에서 건져져 구급차에 실려 가는 모습을 보고 있어야만 했다.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토니는, 여전히 엉망진창인 현장에 가기보다는 여전히 넋을 잃고 있는 피터에게 일상복을 입힌 뒤 병원으로 향했고, 자신은 병원의 규칙을 따라 순서대로 처치할 뿐이라는 병원 관계자와 입씨름을 하다 결국 메이 숙모와 MJ를 토니 개인 소유의 병원으로 옮겨놓고서야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문 채 멍하니 있는 피터를 그 둘이 입원하게 될 입원실에 앉혀놓곤 자리를 떴다.
충돌 직전 MJ가 메이 숙모를 감싸지 않았더라면 메이 숙모는 거기서 즉사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피터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머리를 굴리려 애썼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방향을 잃고 질주한 차가 그 둘을 향하는 모습과 MJ가 황급히 메이 숙모를 감싸는 장면만이 반복되었고, 그의 시간은 거기서 더 이상 움직일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의사와의 면담이 끝나고 병실에 앉아있던 피터는 그 둘의 수술이 끝나고 침상에 눕혀지고 나서야 나란히 놓인 두 침대 사이에 주저앉으며 깊은 숨을 토했고, 그제야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술이 끝나고 하룻밤이 지나는 동안에도 응급 벨은 몇 번이고 울렸고, 그 때마다 달려온 의사들은 처치가 끝날 때쯤 안정되는 바이탈 사인에 지친 얼굴로 병실을 비우며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보호자를 찾았지만, 병실을 지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뉴욕의 밤거리는 고요했다. 스파이더맨의 등장 이후로 범죄율이 급감했다고는 해도 갱이나 슈퍼 빌런이 활보할 법한 시간대의 거리를 활보할 만큼 간 큰 사람은 얼마 없었고, 사람들이 없는 거리의 가로등들은, 오랫동안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방치 되어 그 불빛조차도 희미했다. 매일 같이 고개를 드미는 달이나 별들은 도시의 불빛 속에서 까맣게 죽어갔고, 거리에서 가장 환한 불빛이라곤 밤늦게까지 하는 가게들의 간판이나 상품 파는 데에 목숨을 건 기업들의 광고 전광판이 전부였다.
그 늦은 밤거리를 떠돌던 피터는,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 조차 모른 채 바닥만을 응시한 채로 여전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장면들을 떨쳐내기 위해 갖은 애를 썼고,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야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사람들이 찾을 것 같지 않은 곳에 위치한 가게 간판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Wish maker’s Crow]
새까만 배경에 흰 색으로 써진 가게 이름 한쪽 귀퉁이에 새하얀 까마귀가 그려진 간판을 쳐다보며, 가게 문 손잡이를 잡은 채 한참을 망설이던 피터가 갑작스레 울린 스파이더 센스에 놀라 공격적으로 돌아섰고, 아마도 그의 스파이더 센스를 울리게 한 장본인인 듯한 사내가 얼른 두 손을 들어 보이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조심하라고, 젊은 친구. 4,50대 젊은 남성의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가 심장마비거든. 가게 문이 아직 안 열려 있어서 화난 건 알겠는데, 애초에 우리 단골도 아니니 이해해달라고 할 수도 없고, 나 원 참. 그보다 손을 그렇게 내민다고 공격을 할 수는 있겠어?”
사내의 말에 움찔한 피터는 자신이 저도 모르게 거미줄을 발사할 때나 할 법한 모양새로 손을 내밀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뒤 문에서 물러났고, 어깨를 한 번 으쓱인 사내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문을 연 채로 서 있던 사내는 자신이 들어가라는 듯 턱짓을 해보이고 나서야 어두컴컴한 내부로 발을 들이는 피터를 보고는 피식 웃은 뒤 가게 문을 걸어 잠궜고, 또 다시 공격적으로 돌아서는 피터에게 한숨을 내쉬며 열쇠를 던져주곤 피터를 지나쳐 빠른 속도로 아래로 내려가며 그에게 말했다.
“배려를 해줘도 욕먹기 쉬운 세상이지, 안 그래? 하루 매상을 포기하게 만들 정도로 우거지상을 짓고 있던 게 누군데? 지금 네 표정을 보면 누군들 나처럼 행동할 걸. 나가려면 나가시고요. 나가시면서 열쇠는 문 바로 옆에 있는 고리에 좀 걸어두고 나가라.”
심상한 어조로 말한 사내는 정말로 피터가 나가도 상관이 없다는 듯 계단 아래로 사라져버렸고 사내가 아래로 내려가며 불을 켠 듯, 희미한 불빛이 계단 쪽으로 들어온 희미한 불빛 속에서 드러난 열쇠고리에 걸린 세 마리 개 사진을 확인한 피터는 손에서 끊임없이 잘그락 거리는 열쇠를 만지작거리다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가게는 간간히 장식성으로나 사용된 흰색을 제외하면 대부분 검은색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어둠 속에서 점점 차분해지는 머릿속을 느낀 피터는 바 뒤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사내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한창 바쁘게 움직이던 사내는 피터의 주문을 받지도 않은 채로 잔을 테이블 위로 올렸고, 컵 안의 황금빛의 액체에 잠시 인상을 찌푸리던 피터가 술을 단숨에 들이키자 휘파람을 불며 다시 두 잔을 더 가져와 한 잔은 피터에게 건넨 뒤 그의 맞은편에 아예 자리를 잡고 앉더니 피터가 술잔을 만지작거리는 걸 지켜보다 테이블 위에 놓인 열쇠고리를 챙겨 바 안쪽으로 놓곤 턱까지 괴며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사내의 질문에 피터는 대답 없이 잔을 또 다시 들이켰고, 피터가 자신의 잔까지 가져가려하자 질색을 하며 빈 잔과 자신의 잔을 테이블 아래에 숨기곤 다시 입을 열었다.
“인생이야 늘 힘들지, 안 그래? 특히 ‘너’같은 젊은 친구한텐 더더욱. 오해할까봐 말하는 건데 너 같은 젊은 친구들이면 다 힘들다는 거지, 별 뜻은 없었어. 밀려오는 과제에, 앵앵거리는 애인, 히어로 노릇에 거기다 학자금 대출까지, 안 그래?”
“지금 뭐라고-”
“별말 안 했어. 그보다 말이야, 그래도 다들 잘 해낸단 말이지. 요즘 세대들은 불평할 줄을 몰라. 내가 볼 땐 너희 세대는 둘 중 하나야. 시스템에 잘 적응해 그냥 저냥 살아가던가, 그 시스템의 문제를 파악하고 고쳐나가던가. 근데 나한텐 그게 문제란 말이야. 그게, 바로 문제라고. 다들 왜 기도나 소원 같은 건 잊고 사느냔 말이지. 나 같은 놈들은 뭘 하라고?”
점점 늘어지려는 몸을 추스르려 노력하며 건네진 술이 생각보다 꽤나 독한 것이었다고 생각하던 피터는 사내의 말에서 자신이 무언가를 놓친 것 같다는 찝찝함을 누른 호기심에, 결국 말을 끊고 한숨을 내쉬는 사내를 빤히 쳐다보았고, 피터의 의문이 무엇인지 알아챈 듯, 사내가 비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가게 이름 못 봤어? 난 사람들의 소원을 이뤄주는 존재야. 소원 요정 같은 거랄까. 문제라면 내 날개 색 정돈데, 우린 소원가지고 장난을 치진 않는다고. 저기 위에 사는 누구들처럼 매일같이 쌓이는 공문서들을 랜덤으로 돌려서 들어주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단 소리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그것도 다 걔네가 퍼트린 헛소리야. 자기들 근무 태만의 변명거리라고. 노력해도 안 되는 일 때문에 다들 기도하는 거잖아. 근데 내가 볼 땐 방향이 틀렸어. 기왕지사 기도하고 소원 비는 데에 시간을 보낼 거라면 하늘이 아니라 땅을 향해야지. 이왕이면 사거리 한복판이면 더 좋고.”
사내가 말을 끊자 잠시 감았던 눈을 뜬 피터 앞엔 두꺼운 종이 뭉텅이가 들이밀어져 있었고, 어느 새 검은색 정장을 갖춰 입은 사내가 피터에게 펜을 건네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자, 그래서 우리의 친절한 이웃, 피터 파커 선생. 내가 네 모든 소원이 현실이 될 수 있는 계약을 제시한다면 어쩌겠어? 대가? 이번만은 무상으로 해주지. 나도 널 꽤나 좋아하거든. 이 뉴욕에서 네 팬이 아닌 사람을 찾는 건 상당히 어려울 걸? 물론, 나라고 네 그 빨갛고 파란 수트까지 좋아하진 않는데, 아무련들 어떠겠어. 언젠간 네가 ‘검은’ 수트를 꺼내는 날도 올 텐데 그 정도는 기다려 줄 수 있지. 나한테 넘치는 게 시간이거든.”
한껏 흐려진 눈으로 종이 위에 늘어선 문자들을 해독하려 애쓰던 피터는 사내가 어째서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지는 궁금해 하지도 않은 채로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기기 시작했고, 답답한 표정으로 피터를 빤히 쳐다보던 사내가 테이블 아래에서 새 종이를 꺼내 피터에게 내밀었다. 옆으로 밀쳐진 종이 뭉텅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고, 그 쪽으로 향한 피터의 턱을 잡아 새 종이가 놓인 방향으로 고정시킨 사내가 종이에 쓰여진 내용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원랜 이렇게까지 안 하지만, 네가 저걸 다 읽을 때까지 기다리다간 내 개들 밥 줄 시간을 놓칠 것 같아서 말이야. 첫 번째, 비밀 엄수. 이 계약은 너와 나 사이의 계약이니까 아무도 알아선 안 돼. 말로 내뱉는 거, 수화, 서면, 뭐든지 간에 그 누구도 알아선 안 된다고. 네가 알려주는 것뿐만 아니라 남들이 알아차려서도 안 된단 말이지. 만일 누군가 알아차리거나 네가 알리는 그 즉시 너도, 그 사실을 알게 된 사람도 끝이 그렇게 좋지 않을 거라는 것만 알아두고. 두 번째, 이 계약이 끝나는 즉시 너의 영혼은 내 것이 될 거야. 세 번째, 너나 내가 끝이라고 말하는 순간 이 계약은 끝이 나고 네 영혼도 내 것이 될 거라는 거지. 그 뒤에 벌어지는 일들에 관해선 나도, 너도 상관치 않아야 하고. 네 번째, 이 계약은 네가 수락을 하는 그 즉시부터 향후 10년간 지속되며 그 이후엔 내게 네 영혼을 줘야 해. 네가 스스로 주지 않는다면 내가 찾으러 갈 거고. 자, 이해했어? 그래서 어쩔 셈이야?”
항목을 하나 하나 짚으며 설명한 사내는 테이블 위에 놓여진 피터의 손 옆에 펜을 둔 채 그의 대답을 기다렸고, 한참동안 망설이던 피터는
- 은 수퍼내추럴 크라울리는 내 최애캐 중 하나.
- 사거리의 악마,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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