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N님 썰은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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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젠 글이 어디로 향하는 지도 모르겠다.


- 쓰면서 들은 노래






 그 뒤로 사내의 방문은 6시에 맞춰져 반복되었고, 그는 피터의 평일 근무가 이어지는 내내 카페를 찾았다. 맨 처음 열 개를 채운 쿠폰을 제외하곤 그의 쿠폰은 9개까지 찍히고 나면 어김없이 잃어버렸다는 말과 함께 새로운 쿠폰으로 시작되었고, 처음엔 의아해하던 피터는 이내 그의 기행에 익숙해진 채 그의 열 번째 방문 때마다 미리 준비한 쿠폰과 함께 커피를 내놓곤 했다.


 피터의 평일 근무가 끝나고 나서부터 웨이드는 아예 주말만 골라서 방문하는 듯 했고, 아침 단골을 잃었다는 평일 근무자의 말에 남몰래 미소 지은 피터는 새로운 거품 라떼 연구에 골몰했다.


 피터의 예상대로 주말 카페 알바 덕에 완수했던 과제들이 빛을 본 듯 차석에 해당되는 장학금을 따낸 피터는 재빨리 웹슈터를 업그레이드 한 뒤 남은 돈으로 웨이드에게 디저트를 산더미처럼 내놓았고, 잠시 어안이 벙벙한 듯 테이블을 가득 메운 디저트를 쳐다보고만 있던 웨이드는 피터가 자신의 앞에 앉자 포크를 집고선 이어지는 피터의 수다를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 쪽지 이후로도 웨이드가 피터를 피터나 핏으로 부르는 일은 없었지만, 그 쪽지를 일종의 수락의 의미로 받아들인 피터는 그를 고객님 대신 웨이드로 부르기 시작했고,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아침, 그러니까 손님이 가장 없을 법한 시간대면 종종 그의 앞자리를 차지한 채 수다를 이어갔다. 원래도 말 수가 적은 듯 피터가 답 없는 대화를 이어가는 동안에도 사내는 묵묵히 들어주는 역할에 충실했다. 피터는 그의 대화를 말없이 듣는 동안에도 웨이드의 시선이 종종 창밖의 어딘가를 향한다는 것과, 그리고 그 시선이 창밖에 머물 때면 그 자리가 카페 구석 자리였다는 걸 알아차리고서도 굳이 그 이유를 묻지 않았고, 사내 또한 어째서 그 자리를 꽤 오랫동안 고수했으며 왜 최근에도 종종 그 자리에 앉는지에 대해 말하는 일은 없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여름도 어느 새 끝물에 접어들고 있었고, 선선해진 가을바람과 하루 종일 여유로웠던 뉴욕시의 분위기와 달리 현재 피터의 속은 바짝 타들어가고 있었다.


 금방 끝이 날 줄 알았던 전투는 출근 시간이 2시간 반을 남겨놓은 시점에도 끝이 나질 않은 상태였고, 자신의 공격을 받고도 끊임없이 다시 일어서는 빌런들을 보던 피터의 팔에 있던 웹슈터가 웹캡슐 고갈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알람을 울리기 시작했다. 카페와 현재 자신의 위치를 대략 계산한 피터는, 남은 웹캡슐을 아끼지 않는 한 카페에 제시간에 도달할 방법은 영영 없을 거라는 결론을 도출해내곤 자신에게 유리한 공중전을 포기한 채 바닥으로 내려가 벽을 등진 채 빌런들을 차분히 하나씩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택시비정도는 남겨놓고 웹슈터를 업그레이드 할 걸 그랬다고 중얼거린 피터가 자신이 미친 듯이 돈을 쓴 디저트는 생각지도 않은 채로 오늘따라 지원이 늦는 어벤져스 멤버들에 대한 원망의 말을 삼켰을 때 요란스런 총소리가 허공을 울렸다.


 “허니, 베이비! 나 기다렸어?”


 근 몇 달간은 모습을 보이지 않던 불청객의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놓고 그가 쏘아대는 총알에 난도질이 되는 빌런들에 기겁한 피터가 얼른 데드풀에게 다가갔고, 피터의 위치를 확인한 데드풀이 수류탄을 냅다 던졌다.


 “데드풀!”

 “괜찮아, 이러라고 있는 데미지 컨트롤이잖아!”


 또 다시 총을 빼어드는 데드풀의 팔을 잡아 내린 피터는, 굉음을 울리며 터진 수류탄에 순식간에 반으로 준 빌런들의 모습에 구급차를 부를 틈이 있을지 고심하며 광고판 구석에 있는 시계를 확인했고 이 와중에 건물 외벽의 광고판으로 향하는 그의 시선을 본 데드풀은 잠시 의아해하다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 총 대신 카타나를 빼어들었다.


 데드풀의 지원 아닌 지원에도 불구하고 전투는 8시 반이 지나고서야 끝을 맺었고, 이제 데이트나 하자는 데드풀의 말을 귓등으로 넘긴 피터는 다급히 건물을 향해 웹슈터를 쏴 카페로 향했다.


 익숙한 골목에서 옷을 갈아입은 피터가 막 옷을 다 갈아입고 골목에서 나올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요란한 소음과 함께 사과의 말을 전해온 토니에게 성의 없이 괜찮다는 말을 읊조리던 피터는, 골목 밖에서 보이는 익숙한 수트에 경악을 하며 재빨리 돌아섰다.


 “데드풀! 도대체 뭐하는 거예요? 나도 사생활이 있는 사람이라고요! 우리 서로의 시크릿 아이덴티티는 지켜주기로 합의 봤잖아요!”


 평소라면 그의 말에 어처구니없는 논리로 스토킹의 정당성을 주장했을 데드풀은 말이 없었고, 여전히 연결되어 있던 토니가 무슨 일이냐는 말을 외치거나 말거나 조심스레 뒤를 돌아봤던 피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데드풀에 의아해하다 데드풀이 묘한 데서 선을 지키곤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곤 토니에게 별 일이 아니라고 답한 뒤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전 타임 근무자와 교대했다.


 다소 힘들었던 저녁과 달리 새벽은 늘 그렇듯 평화로웠고, 그 전날 과제를 다 끝내놓은 탓에 할 일이 없던 피터는 저녁에 있었던 전투에 대한 인터넷 기사들을 찾아보다가 어느 덧 6시에 가까워진 시계를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흐끄무레하게 날이 밝은 밖으로 곧 모습을 드러낼 남자를 기다리던 피터는, 이윽고 익숙한 검은 후드가 카페 유리창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한 달간 연습한 라떼를 들이밀 생각에 발꿈치를 연신 들었다 놓다가, 고개를 숙인 채 카페 문 앞에서 망설이던 웨이드가 그대로 다시 걸어가 버리자 재빨리 카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그를 붙잡았다.


 “웨이드!”


 저도 모르게 힘을 주어 팔을 잡았는데도 신음소리 하나 없는 웨이드를 보며 어색하게 팔을 놓은 피터는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릴 때까지 기다렸고,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확인하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에 입술을 깨문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어, 오늘은 커피 마실 기분이 아닌가보네요.”


 쪽지 이후에 좁혀졌던 거리는 어느 새 저만치로 멀어져 있었고, 침묵 속에서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한 피터는 천천히 내려가는 그의 고개를 보고서도 붙잡지 못한 채로 서서 그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 * *


 쪽지를 남겨놓고 온갖 망상에 시달렸던 웨이드는 하루 종일 침대에서 구르며 발을 동동거린 것과는 별개로 정확히 6시에 맞춰 카페를 찾았고, 친한 친구라도 온 듯 자신을 웨이드라고 부르며 반갑게 인사하는 피터를 보곤 또 다시 숨 막힐 듯 뛰어오르는 심장을 잠재우기 위해 침묵했다.


 피터와의 만남 횟수를 굳이 헤아리지 않아도 대신 셈을 헤아려주는 쿠폰들을 계산대 안에 넣는 것이 싫었던 웨이드는 쿠폰에 도장이 9개가 찍힐 때마다 잃어버렸다는 핑계로 새 쿠폰을 요구하면서도 피터가 딴지를 걸까 두려워했지만 처음에만 의아해하던 피터는 이내 그가 쿠폰을 잃어버렸다는 말을 할 때마다 알 수 없는 미소를 얼굴에 띄운 채로 그의 이름이 단정하게 적힌 쿠폰을 내밀곤 했다.


 평일에서 주말로 이어지던 만남이 2주에 이르렀을 때 그의 앞자리를 꿰차고 앉은 피터는 다음 주부터는 다시 주말 근무만 하게 될 것 같다는 말을 시작으로 끊임없이 수다를 늘어놓았고 자신의 잔이 빌 때까지 대화를 지속해갔다.


 그는, 이제 라떼를 아주 천천히 마시는 듯 마는 듯 들이켰고, 그가 블랙커피를 주문하는 일은 다시없었다. 처음에는 단 맛은 물린다고 징징거리던 노란 박스조차도 피터가 그의 앞자리를 종종 차지하고 나서부터는 가끔씩 카페 구석자리에 앉는 것으로 합의를 봤고 피터가 말을 할 때면 두 박스는 입을 다문 채 그가 그 하잘 것 없는 대화들에 집중하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날따라 일찍 일어났던 웨이드는 하루 종일 틀어져 있는 텔레비전에 앉아 피터의 출근시간을 헤아리다 갑작스레 뉴스 속보가 흘러나오는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스파이더맨의 모습에 수트를 챙겨 입은 뒤 밖으로 향했고, 오랜만에 보는 스파이더맨에 신이 난 노란 박스는 물론, 흰 박스까지 외치기 시작한 환호에 입을 맞추며 은행들이 모여 있는 거리로 향했다. 


 어느 새 쌀쌀해진 가을바람이 건물 사이를 파고들며 개떼처럼 모여든 빌런들을 스치고 지나가 웨이드의 얼굴을 쓴 뒤에야 사라졌고, 피 비린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바람에 입을 비죽인 데드풀은 한동안 꺼내들 일 없었던 신상 총을 신명나게 쏘아댔다.


 “허니, 베이비! 나 기다렸어?”


 웬 일로 땅에 발을 붙인 채 빌런들 무리에 둘러싸여 있던 스파이더맨이 그를 발견하자마자 재빨리 그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고, 대충 스파이더맨이 뭐 때문에 저토록 다급히 달려오는 지 파악한 웨이드는 스파이더맨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그가 자신의 총을 붙잡기 전까지만이라도 빌런 수를 줄여놓을 요량으로 서둘러 총질을 감행했다. 코 앞으로 다가온 스파이더맨을 확인한 웨이드는 왼손에 들고 있던 총을 내팽겨 친 뒤 미리 챙겨놓았던 수류탄을 저 뒤쪽의 빌런 무리들을 향해 던졌고, 그와 동시에 분노에 찬 스파이더맨의 외침이 들려오자 이래야 내 스파이더맨이지, 라는 노란 박스의 외침에 동조하며 순순히 팔을 붙잡혀주었다.


 “데드풀!”

 “괜찮아, 이러라고 있는 데미지 컨트롤이잖아!”


  붙잡힌 오른손을 대신해 왼손으로 총을 꺼내보았지만 그 팔을 휘두른 보람도 없이 스파이더맨이 그의 총을 잡아 던져버렸고, 던졌던 수류탄이 터진 듯 굉음이 허공을 갈랐다. 빌런들이 잠시 주춤한 사이 광고판으로 향하는 스파이더맨의 시선을 본 데드풀은 고개를 갸웃하다 이내 달려드는 빌런들을 잡아 족치기 위해 카타나를 휘두르기 시작했고, 한숨을 내쉰 스파이더맨도 그 대열에 합류해 싸우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총과 칼을 쓴 자신에게 잔소리를 퍼부었을 스파이더맨은 데이트를 하자는 자신의 말에 대꾸조차 안한 채로 황급히 건물 위로 웹슈터를 쏴 사라졌고, 눈을 가늘게 뜬 채 그 등을 바라보던 웨이드에게 노란 박스가 속삭였다.


 (여섯시까지 시간도 남았는데 오랜만에 스토킹이나 해볼 생각 없나, 제군.)

 “흠. 일리가 있어. 우리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이 저렇게 다급히 사라질 일이라면 단 하나밖에 없지.”

 [단 하나라니? 빌런 소탕도 있는데 무슨 섭한 말씀을.]

 (데이트군.)

 “데이트야.”

 [그보다 우리 개인적인 일엔 관여하지 않기로 한 거 아니었어? 지난 팀업 이슈 때-]

 “그 이슈는 나오지도 않았다고! 한마디로 공식 계약이 아니란 소리지!”


 웨이드의 결정에 불만을 표하는 흰 박스의 말을 무시한 채 이미 뛰고 있던 차에 더욱 더 박차가 가해졌던 발걸음은, 어느 시점부터 점점 힘을 잃기 시작했고, 스파이더맨의 모습이 익숙한 골목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본 웨이드는 인상을 찌푸린 채 골목 앞에 서서 입술을 짓씹었다.


 “……그럴 수도 있죠, 토니. 그럼요, 이해해요. 그보다 저 지금-”


 골목 속에서 들리던 부시럭거리던 소리가 끝나려던 찰나, 카페에서 몇 번 들었던 벨소리가 골목 밖으로 새어나왔고, 곧이어 들린 익숙한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노란 박스가 얼른 이 자리를 떠야 한다며 난리법석을 떨기 시작했지만 보도블록에 고정된 그의 발은 움직일 생각이 없는 듯 붙박여 버렸고, 마침내 골목 그림자로 반쯤 모습을 드러냈던 사람이 재빨리 돌아서자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데드풀! 도대체 뭐하는 거예요? 나도 사생활이 있는 사람이라고요! 우리 서로의 시크릿 아이덴티티는 지켜주기로 합의 봤잖아요!”


 거의 비명에 가깝게 소리를 지르는 뒷모습을 잠시 쳐다보던 웨이드는 스파이더맨, 아니. 피터의 말이 끝을 맺기도 전에 사람들 사이로 모습을 감췄고, 충격에 말문을 열지 못하던 노란 박스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어리어리한 자식이 스파이더맨이라니.)

 [하기사 이 뉴욕에서 스파이더맨 빼고 누가 우릴 상대나 해주겠어, 안 그래? 내 말은, 이 뉴욕에서 이 얼굴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대해줄 정도의 인성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는 거지.]

 

 흰 박스의 말에 발걸음을 멈춘 웨이드는 그렇게 조심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곳곳이 찢어진 수트와, 그 찢어진 수트 틈으로 드러난, 벌써 다 아문 피부에 헛웃음 소리를 내며 정처 없이 발걸음을 옮겼고, 그의 수트를 알아본 사람 몇몇이 아는 체를 하며 말을 걸어오다 거리가 가까워지고 나서야 수트 안쪽의 피부를 보곤 경악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뉴욕의 밤거리는 순식간에 고요를 되찾아갔고, 아직은 발을 완전히 돌리지 않은 여름의 끝자락을 물고 늘어진 태양은 어김없이 하늘을 푸르게 물들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오랜 습관을 따라 움직인 발걸음은 그를 피터 파커가 일하고 있을 카페 앞으로 인도했고, 투명한 유리문 손잡이를 잡은 채 망설이던 그는, 힘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웨이드!”


 경쾌한 종소리가 그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졌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의 이름을 부른 청년의 손이 그의 팔을 일반인이라면 상상조차 못할 힘으로 지나치게 세게 잡고 있었지만 이 청년이 스파이더맨이라는 걸 안 웨이드는 굳이 신음소리를 꾸며 낼 생각조차 못한 채로 자신의 발 앞에 나란히 놓인 발끝을 응시했다. 스파이더맨으로서도, 그리고 피터 파커로서도 침묵을 싫어하는 것 같던 청년은 끈기 있게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고,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고개를 들어 올린 그는,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숨을 들이쉬며 빠르게 일그러진 청년의 얼굴을 보고서야 자신의 얼굴이 엉망진창일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으로 말려들어갔던 입술이 압박으로 붉어졌고, 애진작에 놓여 졌던 팔이 어느 새 종전의 모습을 되찾은 후에야 청년의 입이 다시 말을 토해냈다.


 “어, 오늘은 커피 마실 기분이 아닌가보네요.”


 어색하게 뱉어진 말에 묻어나는 씁쓸함은 그가 즐겨 마셨던 블랙커피의 끝 맛보다도 아렸고, 천천히 고개를 내린 그는 여전히 자신의 앞에 서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청년에게서 돌아서서 여전히 어두컴컴한 거리를 향해 발을 내딛었다.

Posted by Spideyp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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