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도 가끔은 피터를 부둥부둥 해주고 싶습니다. 아주 가끔은.

 - 쓰면서 들은 노래는 Sing Street의 Up (Bedroom Mix)


 밤의 뉴욕은 아름다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늦은 저녁과 이른 밤이라고 해야 할 시각의 뉴욕은, 환하게 불을 밝힌 건물들이 배경을 만들고, 그 아래로 복잡하게 얽힌 차도를 꽉 메운 차들이 거기에 빛을 더해, 오만가지 색으로 빛나는 중이었다.


 저도 모르게 언젠가 라디오에서 들었던 아름다운 밤이란 단어가 들어간 노래를 흥얼거리던 피터는 잠시간의 평화도 내버려두지 못하겠다는 듯 치직거리기 시작한 경찰 무전에 집중했고, 사건의 내용은 들어보지도 않은 채로 주소지가 나오자마자 잠깐의 휴식을 즐기고 있던 건물 옥상에서 풀쩍 뛰어내렸다.


 집을 향해 가던 사람들이 그들의 머리를 스칠 듯 낮게 하강했다가 다시 재빨리 솟구쳐 올라가는 스파이더맨을 향해 환호하기 시작했고, 평소와 다른 반응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흥이 나 평소보다 과한 동작으로 사건현장에 도착한 피터는 어깨까지 잔뜩 세워 올리며 어둠뿐이 보이지 않는 골목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와줘요, 스파이더맨!”


 비명과도 같은 외침에 막다른 골목 벽을 보고 있던 피터는 이상하게도 아까부터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는 스파이더 센스에 의아해 하며 돌아섰고, 무언가가 불쑥 내밀어지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재빨리 뒷걸음질을 친 뒤 내밀어졌던 물체를 향해 거미줄을 쏘았다.


 “오, 이런.”


 아마도 자신의 마스크 모양이었던 듯한 케이크는, 달라붙은 뒤 거세게 당겨진 거미줄 탓에 엉망이 되어 있었고, 아마도 갸날픈 비명을 질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경찰의 얼굴이 낭패감에 물든 것을 보곤 어떻게든 케이크를 원상복귀를 시키려 했지만, 한 번 뭉개져버린 케이크는 제 모양을 되찾기 어려워보였고, 피터가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도 몰라 당황해하고 있을 즈음, 또 다른 비명이 들려왔다.


 “나도 좀 도와줘요, 스파이더맨!”


 이번만큼은 거미줄을 쏘는 대신 고개만 돌려 소리가 들린 곳을 응시한 피터가 스파이더맨 모양의 케이크를 보고 탄성을 내질렀고, 그제껏 울상으로 케이크 판을 들고 있던 경찰이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저 친구가 촛불 끄는데 재능이 없어서 구조 요청을 한 거였거든요. 가서 불 좀 꺼주지 그래요, 스파이더맨?”


 어리둥절해하며 골목 밖에 서 있는 경찰을 향해 걸어간 피터는 골목을 벗어나자마자 골목 안쪽 시야를 피해 모여 있는 사람들에 한 번 놀랐다가 맞은편 건물에서 [사랑해요, 뉴욕시의 친절한 이웃!] 이란 현수막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펼쳐지는 데에 다시 한 번 놀랐고, 바로 그 현수막 옆으로 [스파이더맨 10주년 기념 –PLS]에 다시 한 번 놀라야만 했다.


 “어, 그러니까 이건, 어, 기대도 못했던 건데, 그러니까-”

 [꿈이란 소리죠.]


 어느 새 곁으로 다가온 아이가 그에게 속삭이듯 말했고, 순식간에 먼지처럼 사라져가는 사람들 틈에서 고개를 숙여 아이와 마주보기 위해 쭈그리며, 피터는, 어느 새 반토막이 난 케이크를 미련 없이 던져버렸다.


 “또 너구나.”

 [네.]


 까맣게 변한 공간에 홀로 남아 피터와 눈을 마주친 아이는 배시시 웃어보였고, 가느다랗게 접힌 눈꺼풀 사이로 녹색의 눈동자가 사라지는 모양새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피터는 옆으로 멘 가방끈을 쥐고 있는 손을 끌어당긴 후 속삭였다.


 “미안해.”

 [알아요.]

 “정말, 미안해.”

 [오빠는 그만 미안해할 줄 알아야 해요.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오빠가 구할 수 없다는 것도요. 오빠가 없었더라면 살지 못 했을 사람들을 떠올려 봐요. 아마 오빠가 방금 본 사람들보다 더 많을 걸요.]

 “하지만 내가 스파이더맨이 아니었더라면 더 많은 사람이 살았을 수도 있지.”

 [더 많은 사람이 잘못된 길로 걸어갔을 수도 있고요. 세상일이란 모르는 거니까요.]


 피터의 손에 잡혀있던 손이 바르작거림을 멈추었고, 어느 새 다정한 미소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울음이 나올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인 피터가 입술을 굳게 다물자 한숨을 내쉰 아이가 그에게 말했다.


 [사람들이 스파이더맨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게 바로 오빠라서예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오빠, 그 자체여서요. 난 단 한 번도 오빠를 탓해본 적이 없다고 하면 믿을 건가요?]

 “하지만, 그웬, 네 아버지, 그리고 너까지 나 때문에 죽었어.”

 [아니요. 전 그 빌런 때문에 죽은 거예요. 오빠는 최선을 다했고요. 아빠는 할 일을 하다 돌아가신 거고요.]

 “하지만 네가 내 여자 친구가 아니었더라면-”

 [오빠, 장담컨대 미래의 전 죽는 순간까지도 오빠가 제 남자 친구였던 걸 원망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을 거예요. 오히려 자랑스러워했을 거라고요. 오빠가 한 모든 일들을 생각해봐요.]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이란 말을 너무 많이 한 것 같다곤 생각 안 해봤어요? 농담이라도 해봐요. 이래서는 오빠가 제가 아는 스파이더맨인지도 모르겠네요. 농담 빼면 시체인 게 스파이더맨 아니었어요? 아니면 내가 보고 있는 게 피터 파커가 아니라-]

 “제발. 그 이야기는 하지 말자.”


 아이의 말에 결국 울음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웃음을 터트린 피터의 뺨으로 혼자 놀고 있던 손이 와 닿았고, 갑작스러운 접촉에 피터가 몸을 떨자 손을 뗀 아이가 어깨를 으쓱였다.


 [난, 오빠가 좀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좀 더 죄책감을 버리고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그래서는 오빠가 아닐 테죠?]


 아이답지 않은 얼굴로 씁쓸하게 웃은 아이가 피터의 손에 잡혀있던 자신의 손을 빼내었고, 멀리서 밝아오는 빛에 인상을 찌푸린 피터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뭐, 그래서 내가 오빠를 사랑하는 거긴 해요. 그런 바보 같은 점에 빠져버리다니, 답도 없는 거죠.]


 저멀리 점으로 시작되었던 점은 어느 새 그들의 발치까지 다가와 재촉하고 있었고, 마지막으로 피터와 눈을 맞춘 아이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사랑해, 피터 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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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pideyp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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