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을 관둔 피터 X 덷
썰/덷거미덷 2015. 10. 4. 23:30 |거리는 어두웠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빠르게 어두워지는 거리를 오가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었다. 스파이더맨이 있던 시기라면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한둘은 있을 법한 시간이었지만, 더 이상 스파이더맨이 없는 뉴욕의 거리는 퇴근 시간이 지나면 빠르게 비워졌고, 어디서 나타날지 모를 스파이더맨을 피해 뒷골목을 배회하던 이들이 거리를 차지한지도 오래였다. 어쩌다가 일이 늦어 귀가가 늦어진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른 사람들과 눈 마주치는 것조차 두려워하며 땅으로 향한 시선을 들지 못한 채 빠르게 걸음을 놀리고 있었다. 언젠가는 거리를 가득 메웠던 소음 대신 평소엔 잘 듣지도 않던 시끄러운 음악으로 귀를 메웠던 그는, 그 시간대 치고도 지나치게 한산한 거리를 둘러보다가 멀지 않은 뒷골목에 시선이 이르자 귀에 꽂았던 이어폰을 빼고는 연달아 들리는 파공음에 작게 욕설을 내뱉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깊지 않은 뒷골목으로 보이는 사람의 인영을 살피기 위해 한참이나 눈살을 찌푸리던 그는 눌러썼던 후드를 더욱 깊게 눌러쓰곤 골목 안으로 발을 디뎠다.
“데드풀.”
그의 불음에 반응이라도 하듯 한 손으로 움켜쥔 사내를 막 내려치려던 손이 공중에서 멈췄고, 골목 안에서 사람을 두들겨 패던 이가 누구인지 확신한 그는 골목 안으로 더 들어서려다가 비가 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발 아래로 찰박이는 액체의 소리에 고개를 숙였다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제야 공기를 가득 메운 피비린내를 알아차리고 인상을 찌푸린 그는 여전히 한 손으로 누군지 모를 사람을 움켜쥔 채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인영을 향해 한숨을 내쉬었다.
“스파이디.”
“데드풀, 우리 서로 합의 본 거 아니었어요? 적어도 뉴욕에서는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요.”
“아, 그런 적이 있었나? 한 며칠 전에 머리를 한 번 크게 날린 적이 있어서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오. 그런 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네. 네가 말도 없이 사라지기 전이었으니까, 거의 한 일 년 전인가?”
빈손으로 장난스럽게 머리를 총으로 날리는 시늉을 해보인 데드풀은 등 뒤에 꽂혀있는 카타나로 손을 뻗었다가 피터가 재빨리 날린 거미줄에 등에 있던 카나가 건물 벽에 처박히는 꼴을 보고는 짜증스런 비명을 내며 항의했다.
“스파이디, 허니. 제발 좀. 도대체 퍼니셔랑 데어 데빌한테는 그렇게 친절하면서 나한테는 이렇게 구는 이유 좀 말해줄래?”
“적어도 그 둘은 민간인은 안 건드니까요, 데드풀.”
“이 새끼가 민간인이라고 누가 그러든?”
어깨를 으쓱인 그는 그제껏 한 손으로 잡고 있던 사내를 피터의 발치로 내던졌고, 순간 뒤로 물러섰던 피터는 자신의 발치 아래에서 신음하는 사내의 얼굴을 한참이나 살피다가 사내의 얼굴이 상당히 엉망이고, 병원에 데려가지 않는다면 오늘 밤엔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채곤 들쳐 업었다. 가만히 서서 팔짱을 낀 채 피터가 사내를 들쳐 업는 모양을 지켜보던 데드풀이 생각보다 무거운 사내에 짓눌려 내는 피터의 신음소리를 듣고는 못마땅한 어조로 피터에게 말했다.
“허니는 진짜로 자기 적에 대해선 관심이 쥐뿔만큼도 없구나. 걔가 누군지 모르겠어?”
“이 사람이 설사 옥닥이나 미스테리오, 아니. 사실은 누구인지는 상관없어요.”
“네가 더 이상 스파이더맨이 아니라고 해도?”
“난 그저 사람이라면 마땅히 할 일을 할 뿐이에요, 데드풀.”
“오, 그럼 난 사람도 아닌가보네, 그것보다 조나 제임슨이, 그리고 그를 신봉하는 인간들이 스파이디가 이 새끼들의 윗대가리라던데, 나 모르는 사이에 전향이라도 했어? 이 새끼를 챙기는 것도 그래서 챙기는 건가?”
“……당신도 말했다시피 난 이제 스파이더맨이 아니니까 그것도 상관없어요.”
“그게 자기 매력 포인트긴 하지, 그래도, 스파이디, 오늘은 아니야, 오늘은-”
피터의 등에 힘없이 늘어져 있던 사내의 머리를 데드풀이 한 손으로 잡아 그 머리에 총을 겨눈 것도, 그리고 그 방아쇠를 당긴 것도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파공음이 나기 무섭게 바닥에 처박힌 자신의 총을 본 데드풀이 고함을 내질렀다.
“제발 좀!”
“내 앞에선 안 돼요, 데드풀.”
“그럼 골목에서 나가시던가! 내가 내 일 좀 끝내게!”
평소 같지 않게 조급해 보이는 데드풀이 혼잣말은 단 한순간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피터가 눈을 가늘게 떴고 궁시렁거리며 쪼그리고 앉은 데드풀은 거미줄이 붙어 엉망이 된 총을 정리하며 말을 이었다.
“저 새끼를 죽이고 나면 또 뒷조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이번엔 이놈에 빌런 새끼들은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끊임없이 기어 나오는지도 조사해봐야겠어.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으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도 아니고.”
“데드풀, 그게 무슨 소리예요? 죽여도 죽여도, 라니요?”
마침내 총이 회사불능 상태라는 데에 동의한 데드풀은 여전히 깊게 눌러써진 후드 아래로 굳게 다물린 입술을 한참이나 응시했고, 다시 한 번 등 뒤의 사내를 고쳐 업은 피터가 그에게 다가서며 재차 물었다.
“웨이드 윌슨, 데드풀. 죽여도 죽여도, 라는 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어요.”
“그럼 도대체 네가 없이도 뉴스 타임라인이 미어터지지 않는 게 뭐 때문이라고 생각했어? 스파이더맨으로 활동한 게 너무 오래라 네가 있기 전 뉴욕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잊기라도 한 거야, 스파이디? 아니면, 조나 제임슨이 시장으로 취임하고 사건 사고 타임라인 배정을 축소라도 시킨 줄 알았어? 아, 그거라면 가능성이 좀 있기라도 하네. 그것도 아니라면, 네가 없는 동안 어벤저스가 마침내 관심사를 이 하찮은 뉴욕 시민에게 옮긴 줄 알았어? 최근 맷 머독이 맡은 사건을 본 적이라도 있어? 아니면, 조나 제임슨 목소리도 듣기 싫어서 텔레비전을 때려 부순 탓에 뉴스라곤 구경도 못했나? 네가 없는 뉴욕이 이 정도로 굴러가기 위해 누가 얼마만큼 희생했을 거라고 생각을 해보긴 했어? 아니면, 지난 일 년이 빌런들의 고난주간이라도 되어서 걔네가 자중이라도 했다고 생각했나? 스파이디, 내가 무보수에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일을 하는 건 절대로 흔치 않다고. 그러니까 그 망할 자식은 여기다 놓고 가는 게 좋을 거야.”
회생불능이 된 총을 등 너머로 던진 데드풀은 자신의 허리 뒷춤에서 새로 권총을 빼들었고, 등 뒤의 사내의 호흡이 느려진 걸 느낀 피터는 한숨을 내쉬며 등 뒤의 사내를 거미줄로 고정한 뒤 튈 준비를 하며 말을 받았다.
“내가 스파이더맨을 관둔 건 맞아요. 내가 스파이더맨을 관둔 건, 사건 사고를 찾아다니는 걸 관둔 거지, 뉴욕 시민을 관두기로 한 건 아니었다고요.”
“스파이디, 내가 적어도 뉴욕에선 내 의뢰를 받지 않겠다고 한 건, 어디까지나 네 희생정신에 감동해서였지, 너랑 싸울 게 두려워서는 아니었다는 것만 알아 둬.”
'썰 > 덷거미덷'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터가 데드풀 과거에 간 거로. (0) | 2015.10.07 |
---|---|
the One that Got Away. (0) | 2015.10.05 |
닥터후 시즌 9 2화로 스파이디, 그웬, 데드풀. (0) | 2015.09.30 |
Flowers for a ghost (0) | 2015.09.24 |
죽어라 빌런 (0) | 2015.0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