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풀 알파벳 합작, K_indness.
썰/덷거미덷 2016. 4. 7. 17:15 |- 쓰면서 들은 곡
데드풀 알파벳 합작, the K_indness.
01.
그는, 뉴욕시를 사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모든 히어로들이 서식하고 있는 뉴욕시를 사랑했다. 그는 그 히어로들이야말로 인간들이 순전히 선의만으로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말해주는 훌륭한 지표라고 생각했고, 그랬기에 그는 그들과 함께 맞서 싸울 수 없는 자신을 저주하면서도 작은 도움을 주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게 무슨 일이건 간에.
- 현재 진행_?.
02.
벌써 이틀째였다. 어떠한 의뢰가 들어와도 주말만은, 정확히는 주말 저녁만은 사수하던 웨이드가 집에 들어오지 않은 지 이틀째였고, 아주 가끔 –사실 동거한 이후로 그런 날은 없었지만- 주말에 들어오지 못하는 날이면 보내던 문자들조차도 오지 않은지 하루 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허니, 어디야? 나 지금 도서관 앞인데!」
정확히 약속 시간 30분 전에 온 문자를 씹는 게 아니었다. 조금만 하면 끝낼 과제였기에 그 정도는 자리를 지키고 있을 거란 기대는 약속 시간을 10분 넘겨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산산이 깨어졌고, 어디서 또 괜한 짓을 벌일까 걱정을 하면서도 1시간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섰던 것이 잘못이었을까, 아니면 애초에 문자에 답장을 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던 걸까. 수많은 질문들은 초조함을 몰고 오고 있었다.
그래, 이틀 정도는 사라지곤 하지 않았던가.
제 연인의 지난 행적을 핑계 삼아 정체모를 불안감을 씹어 삼킨 그는 검게 변한 핸드폰 잠금을 열어 다시 제 연인의 태평하기 그지없는 문자를 손으로 쓸어보다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창문 아래로 뛰어내렸다.
뉴욕은 늘 그렇듯 소란스러운 도시였고, 그 도시는, 스파이더맨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 11월 20일 일요일, 저녁 8시, 뉴욕 어딘가_P.
03.
[그래서 언제까지 답을 미룰 참이에요?]
신경질적으로 새빨간 색 마스크를 벗은 청년이 무서운 기세로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등 뒤의 벽은 그에게 도망칠 구석하나 주지 않았고, 그가 주변을 둘러보는 모양새를 지켜보던 청년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날 사랑한다면서요?]
[그래, 사랑하지, 암, 사랑하고 말고, 스파이디. 하지만, 사귀는 건 또 다른 문제거든?]
적어도 열 걸음은 넘게 벌어져 있던 거리는 어느 새 한 걸음으로 좁혀져 있었고, 그의 등 뒤로 차가운 벽이 그에게 대답할 것을 종용하고 있었다.
[너도 내가 누군지 알잖아? 뉴욕시의 소문난 미친 놈 몰라?]
[그 미친 놈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제 눈에는 엄청나게 사랑스러워 보인다는 걸, 당신만 모르는 것 같은데, 알려드릴까요?]
청년의 손이 마스크를 벗기는 걸 느끼며 그는 눈을 질끈 감았고, 곧 다가올 따스한 온기를 기대한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지만, 그에게 다가온 것은 칠흑과도 같은 어둠이었고, 이내 발밑이 꺼지는 듯한 느낌에 그는 허전한 입술을 깨물며 곧 이어 다가올 환상을 기다렸다.
- 11월 20일 일요일, 저녁 7시, ?_D.
04.
솔직히 그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람은 누구나 저에게 호의를 보이는 사람에겐 약했고, 그 호의가 근 반 년 동안 지속되었다거나 혹은 다른 이들에게선 받기 힘들던 것이었다면 이야기는 더욱 쉬워졌다.
그는 여전히 친절한 미소를 유지한 채 난처한 표정으로 도서관 입구와 자신이 든 책들을 번갈아 보는 사내에게 가식으로 점철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괜찮아요. 피터 선배랑 어긋나시면 안 되죠. 제가 허약해 보이긴 해도, 이 정도는 들 수 있거든요.]
괜찮다는 말과 함께 부러 삐끗한 팔에서 책들이 쏟아져 내렸고 사내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나오자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사내는, 이 별 것 없어 보이는 저에게 일말의 경계심도 품지 않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어차피 내가 일찍 나온 거라서 시간은 충분하니까 들어다 주지. 아마 또 10분은 지나서 헐레벌떡 뛰어나올 텐데, 10번 중 한 번 내가 늦는다고 타박할 놈도 아니고.]
[진짜요?]
기쁨으로 밝아진 목소리, 그리고 미안한 표정. 어깨를 으쓱인 사내가 그의 손에서 책 더미를 받아들었고, 그 중 두 권 정도를 도로 빼앗아 온 그는 사내보다 앞서 걸으며 지하 주차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 11월 19일 토요일, 오전 11시 35분, 도서관 정문_?
05.
죽자 사자 달려드는 강도들을 신경질적으로 벽을 처박은 그는 여전히 자신의 심장을 두들기고 있는 불안감을 애써 잠재우려 애썼다. 그의 속을 알 리 없는 스파이더 센스가 근처에 또 다른 사람이 위험에 처했음을 알려왔고, 멀찍이서 들리기 시작한 경찰 사이렌 소리에 깊이 숨을 들이쉰 그는, 다시 건물 숲 위로 뛰어올랐다.
- 11월 20일 일요일, 저녁 8시 반, 뉴욕 시내_P
06.
은행털이범이 은행을 점거한 거리는 소란스러웠다. 간발의 차로 은행에 들어가지 않은 그는 도망가는 대신 은행 길 건너편 골목에 숨어 자신의 영웅이 도착하길 고대했고, 그의 하나뿐인 영웅은, 늘 그렇듯 누구보다도 먼저 현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탄성이 새어나오기도 전에-
[여러분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
그리고 그 영웅의 입에서 문구가 끝나기도 전에, 은행털이범의 동료가 몬 것으로 추정되는 차가 착지 중이던 스파이더맨을 거칠게 치었고, 그는 가빠져오는 호흡에 주저앉아 몸을 웅크렸다.
[저 애가 하면 뭘 하겠어요? 역시 그건 제가-]
[그렇게 따지면 내가 맡는 게 맞지, 내가 바로 걔 형이라고!]
[어머, 그 형이란 분이 혹시 돈 떼먹고 나른 그 형이 아닌가?]
죽음은 늘 갑작스레 문을 두드렸고, 그건 그의 부모라고 마다할 수 있는 방문이 아니었다. 죽음은 그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갔고, 장례식에서조차 애도는 뒤로 한 채 유산과 사업을 운운하던 그 괴물들의 얼굴들, 그 얼굴들이란!
[이봐요, 괜찮아요? 음, 누가 여기 구급차 좀 불러주세요!]
어깨에 닿아오는 손을 무의식중에 뿌리쳤던 그는, 익숙한 목소리에 간신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고 시야를 가득 메운 빨간 마스크에 점차 진정되어 가는 호흡을 갈무리 하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차에 치여 사망했던 그의 부모와는 별개로 그의 영웅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굳건히 두 발로 서서.
두 발로 선 것과는 별개로 곳곳이 찢겨진 슈트 아래엔 총알이 스친 자국들이 버젓이 남아있었고, 아마도 차에 치였을 때 난 듯한 검은 상흔이 슈트의 절반을 덮고 있었다.
다른 이들보다 강하다곤 해도 그의 영웅 또한 인간에 불과했고, 그 영웅에겐 무언가 해결책이 필요했다. 무언가 ‘강력한’ 해결책이.
- 약 8개월 전, 뉴욕 시내_?
07.
이유는 없었다. 그냥 할 일이었기에 할 뿐이었다. 그에게 중요한 건 오로지, 돈, 돈뿐이었으니까.
집 외벽에 붙은 등 외에 켜진 전등이 없는 집은 고요했고, 아무런 경계심 없이 외벽에 설치된 가스관을 여는 것이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잘 정돈된 잔디가 그의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며 외부인이 침입했음을 알렸지만, 그는 그 집을 ‘침입’할 생각이 없었다.
[빙고.]
현관문 앞의 인조 잔디 깔개에서 열쇠를 찾은 그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문을 쉽게 열고 들어갔고, 아마도 집 주인이 끄는 것을 잊은 듯한 벽난로 앞에 서서 온기나 쐬다 곧 있으면 아무 의미 없어질 사진들의 행렬에 코웃음을 친 뒤 주방으로 향했다.
싸구려 술에 싸구려 화재경보기. 도대체 누가 이런 집에 사는 사람들을 무슨 이유로 죽여 달라고 한 걸까. 별 의미 없는 질문이 그의 뇌리를 스쳤지만 그 또한 잠깐 뿐이었다. 어쨌거나 그는 입금만 제대로 되면 그만인 일이니까.
어째선지 익숙해 보이는 복도를 지나 아무 망설임 없이 방문을 열어젖힌 그는 깔끔하게 정돈 되어 있는 아이 방에 발을 디뎠다. 아마도 아이는 아직도 집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그게 아니라면-
[내가 뭔 상관이야, 남의 집 자식이 어떻게 되었건.]
자꾸만 드는 잡생각을 떨치듯 손에 쥐었던 글로브를 2층에서 제거한 화재경보기와 함께 침대 위에 내려놓은 그는 세상모르고 잠이 들어 있는 노부부의 방문을 열었다 다시 닫은 뒤 1층으로 향했다. 그에겐, 할 일이 있었다.
마시다 만 술을 마구잡이로 뿌리고 벽난로의 불을 옮겨 붙이는 일은 쉬웠다. 여태 그가 해온 모든 일에 비해 이상하리만큼.
폭발하는 집에서 튀어나온 야구 글로브가 그의 발 앞으로 떨어졌고,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글로브를 집어 옆으로 던져버린 그는 앓는 소리를 내며 차에 올랐다. 열기에 익은 등은 뜨거웠고, 또 다시 그의 발밑은 새까맣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 조금은 먼 옛날, D의 옛집_D.
08.
이제 그는 조금 당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시간은 남아있었다. 그간 그의 연인의 행태로 볼 때 못해도 오늘 저녁엔 난잡스런 모습을 하고 나타나 되도 않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제 기분을 풀어주려 애 쓸 것이 분명했다.
“피터 선배!”
다른 때와 달리 도서관 안에서도 소리 상태로 해놓은 핸드폰이 울리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핸드폰을 확인하던 그의 등 뒤로 소리 없이 다가온 상대가 숨 죽여 그의 이름을 불렀고, 재빨리 핸드폰 화면을 점멸시킨 그는 애써 입 꼬리를 올리며 저에게 생글거리고 있는 청년에게 인사했다.
“응, 마센스.”
“그 날 윌슨씨는 잘 만나셨어요? 제 책 들어주시느라 혹시 어긋났나 싶어가지고요.”
어느 새 제 옆자리를 꿰차고 앉은 청년은 백팩에서 부산스레 책을 꺼내기 시작했고, 잠시 생각에 잠긴 채 청년을 쳐다보던 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그 날 이후로 통 보이질 않아서 말인데, 혹시 뭐 다른 일은 없었어? 뭔가 이상해 보였다거나…….”
그의 질문에 난처한 표정을 지은 청년은 헛기침 소리를 내며 아무것도 아니라며 부자연스럽게 책으로 시선을 돌렸고, 재빨리 책 위로 손을 얹은 그가 다급히 물었다.
“뭔데?”
“어, 그게, 음, 제가 말하면 안 될 거 같아서요.”
“제발. 말 좀 해주라. 연락도 안 돼서 미칠 것 같거든, 지금.”
그의 다급한 질문에도 눈알만 굴리던 청년은 마음을 바꾼 듯 책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청년이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재빨리 팔을 붙잡은 그가 간신히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었다.
“무슨 일이길래 그래? 혹시 무슨 연락을 받고 갑자기 나갔다거나 그러진 않았어? 아니면 어디가-”
“선배가 이러시면 제가 윌슨씨 볼 낯이 없어지는데……. 음, 힌트를 드리자면 선배한테 뭔가 줄 게 있을 거예요, 아마.”
방실대며 그에게 손을 흔든 청년은 빠른 속도로 도서관을 빠져나갔고, 곧 있으면 저희 둘의 기념일이라는 걸 깨달은 그는 여전히 울릴 줄 모르는 핸드폰을 쳐다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번에 돌아오면 반 죽여 놓을 거라는 다짐을 하면서도 주체할 줄 모르고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내리기 위해 애썼다.
- 11월 21일 월요일, 11시, 도서관_P.
09.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쏟아져 들어오는 사람들에 눈살을 찌푸리던 그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부상당한 히어로들을 치료하기 위해 처치대로 다가섰다. 혹시나 자신이 바라는 그 사람이 내부에 있을까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의 시야로, 슈트가 반 이상은 찢겨나간 것으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참견질에만 골몰하는 사내가 들어왔고, 그의 시선에서 의문을 읽은 토니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쟨 괜찮아.]
[네?]
[힐링 팩턴가 뭔가가 알아서 해결해주거든. 아, 저기 스파이디 오네. 네 영웅님 납셨는데, 가서 치료나 해줘. 여긴 다른 사람한테 맡길 테니까.]
애초에 스타크 타워 연구진 내에서도 스파이더맨 팬으로 유명했던 그가, 문제의 은행 사건 이후로 생화학 병기 무력화 부서에서 치료제 부서로 옮기겠다고 했을 때부터 내내 스파이더맨 팬걸이라고 놀리던 토니는 그 이후로 그를 스파이더맨의 주치의라도 된 듯 굴려먹었고, 그런 배려아닌 배려가 내심 달가웠던 그 또한 평소처럼 스파이더맨이 앉은 의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허니, 그러게 내가 방패막이 해준다고 할 때 받지!]
[내가 그런 말 하지 말랬죠? 어쨌거나 아픈 건 당신도- 아, 닥터 디티드. 데드풀, 이쪽은 날 전담 마크하고 있는 의사분이시고 이 쪽은-]
[스파이디의 하나뿐인 연인 데드풀, 본명은 우에이드-]
[닥쳐요, 좀.]
배에 냅다 꽂은 주먹질로 자신의 본명을 말하는 걸 막은 스파이더맨이 그에게 멋쩍게 웃어보였고, 그가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사이 그들 곁으로 다가온 토니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쓰러져 있는 데드풀을 향해 혀를 찼다.
[스파이디, 연인한테 해도 너무 하는 거 아니야?]
[저 인간은 좀 맞아도 싸요.]
[아뇨, 그건 안 되죠. 아픈 건 똑같잖아요, 안 그래요? 저기 마그누센 박사님, 오늘은 당신이 스파이더맨 좀 봐주실래요? 전 이 사람을 좀 봐야할 것 같아서요.]
그의 시선은 못 해도 갈빗대가 두 대는 나갔음이 분명한 데도 벌써 제 모양을 찾은 흉곽에 박혀 있었고, 거듭 거부의사를 표하는 데드풀을 두 팔로 감싸 안고 일어난 그는, 엉망진창인 피부에서 어렵게 찾은 혈관으로 충분한 양의 ‘샘플’을 채취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가 데드풀의 편을 들고 나설 때부터 머쓱한 얼굴로 있던 스파이더맨은 치료제는 의미가 없으니 진통제 처방을 위해 스크리닝 검사가 필요할 것 같다는 그의 말에 쉽게 동의해주었고, 처음부터 불퉁한 표정으로 있었던 데드풀도 제 연인의 말엔 별 수 없다는 듯 검사실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정말 고마워요, 닥터.]
불투명한 검사실 유리를 통해 우람한 체격의 그림자가 오가는 걸 보느라 정신을 팔고 있던 그는 뒤늦게 자신의 앞에 내밀어진 새빨간 색의 장갑을 마주잡았고, 아마도 마스크 안에서 미소를 짓고 있을 스파이더맨을 향해 마주 웃으며 답했다.
[별 말씀을요. 오히려 협조해주셔서 제가 더 감사하죠.]
당신도 곧 제게 감사하게 될 거구요, 라고 조그맣게 웅얼거린 소리를 들은 듯 스파이더맨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에게 되물어왔고, 자신이 여전히 손을 잡고 있음을 깨달은 그는 손을 놓으며 말을 이었다.
[아뇨, 그냥 마센스라고 부르셔도 된다고요.]
- 약 3개월 전, 빌런과의 싸움 후, 스타크 타워_M.
10.
제 시간에 뒤집는 데에 실패한 핫케이크는 시꺼멓게 타 있었고 지글대며 다른 쪽 면이 익고 있는 걸 그대로 쓰레기통에 처박은 그는, 신난 얼굴로 백팩에서 무언갈 꺼내오는 제 연인을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또 뭘 사왔길래 그렇게 신이 났어?]
[짜란!]
무언가 또 덕후스러운 물품일 거란 그의 예상과 달리 피터가 꺼내든 것은 하얀색 알약으로 가득찬 주황빛깔의 불투명한 플라스틱제 약병이었고, 고개를 갸웃거리다 노란 박스의 말에 납득한 그가 외쳤다.
[드디어 임신할 수 있는 약을 찾은 거구나, 허니!]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면 그런 답이 나오는 건지 전 도통 모르겠네요, 웨이드 윌슨씨.]
그의 대답이 기가 찬 듯 한숨을 내쉰 피터는 약병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고, 어처구니없는 답을 내놓은 노란 박스에 그가 욕을 한바가지 퍼붓는 걸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마센스가 지난번에 스크리닝 검사 했었잖아요. 당신한테 맞는 진통제를 찾아준다고.]
[응. 엿 같았지.]
그의 칼 같은 답변에 피터의 미간이 구겨졌고, 얼른 입을 다문 그는 가스 불을 끈 뒤 주방 스톨 너머에 서서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피터에게 다가갔다.
[그 약이 오늘 나왔습니다!]
[똑같겠지 뭐.]
[토니가 일반인은 절대로 먹으면 안 된다는 거 봐서는 안 똑같을 것 같은데요. 마센스, 걔가 소문과 달리 괜찮은 앤 거 같아서 다행이야. 지난번에 웨이드 얼굴 봤을 때도 그렇고, 또- 웨이드!]
[실험해보는 게 제일 빠르지 안 그래? 임상실험이 중요한 거잖아.]
[제발, 그런 짓 좀 하지 말라니까요!]
잔뜩 성이 난 제 연인은 뒤로 한 채 비죽 웃어 보인 그는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알약병을 털어 들이마시다시피 했고, 곧 이어 멀어져가는 시야에 헛웃음을 지었다.
- 약 3개월 전, 그들의 플랫_D.
11.
벌써 나흘째였다. 제아무리 이벤트를 위해서라고는 해도 지나치게 긴 잠적에 초조해진 그는 거의 반쯤 정신을 놓은 채로 어벤져스 회의석에 앉아있는 상태였다. 결국, 몇 번이고 그에게 주의를 주던 캡틴 아메리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평소보다 발리 회의를 끝마쳤고, 회의가 끝나고도 제자리에 앉아 이 화상을 잡아와야할지 내버려둬야 할 지 고민에 빠진 그에게 다가온 건 토니였다.
“스파이디.”
“아, 토니. 지난번 부탁한 거 말인데요-”
“네가 지난번에 부탁한 거 말이야-”
거의 동시에 같은 주제에 대해 말을 꺼낸 둘은 서로 먼저 이야기 하라고 하다가 결국 두 손을 든 건 그였고, 멋쩍게 웃은 그가 얼굴을 긁적이며 사뭇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토니에게 말했다.
“알고 보니까 별 일이 아니더라구요. 아마 웨이드가 또 뭔가 멍청한 짓을 꾸미고 있는 것 같아요.”
“멍청한 짓?”
애써 장난스럽게 이야기를 꺼낸 보람도 없이 그의 말에 토니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되물었고, 여간해선 이쯤해서 농담으로 받아치고 돌아섰을 인사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초조해진 그가 말을 이었다.
“어, 그게 조금 있으면 저희 기념일이라서, 음, 그것 때문에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 같은데, 토니 생각은 다른가 보죠?”
그의 말에 헛웃음 소리를 낸 토니가 자비스를 불러 회의실에 스크린을 띄웠고, 책더미를 나눠 든 두 사람이 지하 주차장 입구로 들어오는 장면에 그가 무언가 말을 하려는 찰나 토니가 고개를 저으며 감시카메라 화면을 빠르게 돌렸다. 11시 50분쯤에 있던 감시카메라 화면은 8시, 9시, 그리고 12시가 넘어 지하주차장이 닫힐 때까지 돌아갔지만 지하주차장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 데드풀은 없었다.
“자, 그럼 차량 쪽 감시카메라를 보자고.”
11시부터 시작된 감시카메라는 빠르게 돌아가다 50분쯤부터 제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벤틀리 차량이 나올 때 화면을 멈춘 토니가 멍한 표정으로 스크린을 쳐다보고 있는 그에게 말했다.
“저게 우리의 닥터 디티드, 그러니까 너한텐 후배 되시는 마센스의 차야. 이게 12시 10분. 문제는 바로 이 차야.”
화면을 되감기 하던 토니는 운전석이 비어있는 낡은 SUV 차량에서 화면을 멈추었고 차 뒤쪽이 찍힌 화면을 확대해 그의 앞에 펼쳤다.
“저 둘이 들어오고, 그리고 네 후배 차가 나가는 사이에 나간 차는 이 차뿐이 없어. 근데 문제는 뭐냐, 운전석이 텅텅 비어있더라는 거지. 그래서 추적을 해봤더니 이 허허벌판에 있네? 더 큰 문제는 뭔지 알아, 스파이디?”
손벽을 쳐 스크린을 모두 닫은 토니가 회의실 탁자 위로 3D 영상을 띄웠고, 영상으로 된 차의 보닛을 열어젖히며 그에게 말했다.
“이 낡아빠진 차 안에 이런 게 들어있더라는 거지. 아직 상용화도 안 된 자동 운전 기능을 이 낡은 SUV에 장착시킨 데다가 안엔 아무도 그 무엇도 없었어. 증거라고는 하나도 남겨놓지도 않았고. 그래서 데드풀이 뭘 하고 계시다고요, 고객님?”
- 11월 22일 화요일, 오후 5시, 스타크 타워_P.
12.
마침내 풀린 의문에 그는 미소 지었다. 그, 스파이더맨이 피터 파커라니. 이 쉬운 사실을 어째서 다들 모르고 있는 것인지가 의문일 정도로 한번 실마리를 잡고 나서부터 쉽사리 풀려나간 수수께끼의 주인공을 눈앞에 둔 그는 자신에게 반갑게 인사해오는 두 남자에게 한껏 웃어 보였다.
수많은 결석과 말도 안 되는 그 사진사 핑계라니. 꽤나 똑똑한 줄 알았던 제 선배는 헛똑똑이에 불과했고,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이가 없을 거라는 생각에 방심하고 있는 자의식 부족의 사내였다.
문제는, 바로 시간이었다.
어느 시점이 적절하느냐, 그리고 얼마나 자신에게 시간을 벌어줄 수 있느냐.
친절과 호의로 점철된 관계 속에서 경계심은 어느 새 저만치로 멀어져 있었고, 그들은 자신이 그들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아니, 사실 이 상황에서 저가 그 사실을 안다해도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 사내라면 또 모를까, 온갖 선의와 희망에만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저 사람이라면, 저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말한대도 오히려 저에게 그동안 속여서 미안하다고 말할 터였다.
그러니까, 저 사람도 과정이야 어찌되었건, 저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본다면 결국엔 자신을 용서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 약 2개월 전, M.
13.
이게 도대체 몇 번째인지 헤아리려던 그는, 이내 의미 없는 숫자세기를 포기했다. 오만가지 방법을 쓰고, 수없이 똑같은 자리에서 깨어나도 결과는 같았다.
차갑게 지면을 적시고 떨어지는 빗물은 피와 엉겨 금세 제 색을 잃고 붉게 물들었고, 축 늘어진 팔은 그를 안아주지 못한 채 차가운 빗물 아래에서 온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동자, 그리고 그 말들. 영원하지 못하리라는 것도, 언젠간 끝이 날 것이며 결국에 남는 것은 저 혼자뿐일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전혀 익숙해질 줄 몰랐고, 금방이라도 멈출 듯 느리게 뛰던 심장은 이내 제 속도를 찾고 박차를 가했다.
타임 리밋을 알리듯 먼 곳부터 점멸해가는 세상을 보며 그는 괴성을 질렀지만, 그 곳에서 그의 비명을 들어줄 이는 없었다.
- 11월 22일 화요일, 오후 5시, ?_D.
14.
그는 여전히 무언가에 골몰한 듯 현미경을 살피고 있는 마센스의 모습을 살피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섰고, 아마도 실험에 몰두한 탓에 문이 열리는 소리를 못 들은 듯 여전히 현미경 렌즈에 고개를 박고 있는 마센스의 어깨를 조심스레 두들겼다.
“워우.”
갑작스러운 접촉에 놀란 마센스의 손이 삐끗하며 나사를 회전시켰고, 현미경 렌즈에 맞부딪힌 슬라이드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어져나갔다. 잠시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마센스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섰다가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얼굴을 폈고, 뻗었던 손을 뒤로 감춘 그가 한참을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닥터 디티드.”
“마센스요. 갑자기 또 왜 거리감을 두시는지 모르겠네요. 약이 다 떨어졌나 보죠?”
그의 부름에 어깨를 으쓱인 마센스가 약을 찾으려는 듯 실험실 찬장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고, 무심결에 그가 팔을 잡아오자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왜 그러시죠?”
“그게, 그게 말이죠, 제가 원래는 이런 질문을 잘 안 하는데, 당신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지난주 토요일에 뭐하셨죠?”
자기가 질문을 해놓고도 취조보다는 취조당하는 사람에 가까운 목소리에 가깝단 생각에 그가 눈을 질끈 감았고, 잠시 의뭉스런 표정으로 있던 마센스가 대답했다.
“학교 도서관에 갔다가 점심쯤에 집으로 돌아갔는데요.”
“혹시 평소와 뭐 다른 건 없었고요?”
“평소와 다른 거요? 음, 그 날 따라 빌런 보기 힘들었다는 거?”
가늘게 떨리는 그의 목소리와 달리 농담조로 말을 받았던 마센스가 이내 괜찮냐는 말과 함께 그의 어깨를 잡아왔고, 그가 얼떨결에 마센스의 팔을 쳐내자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그거 말고 다른 건 없었어요. 아침에 도서관에 갔다가 점심쯤 제 차 타고 집으로 돌아온 게 다여서요. 그게 다예요. 알리바이를 물으시는 거면 제 학교 선배 피터 파커한테 물어보시구요. 도서관에선 같이 있었으니까요. 그 뒤로는, 음, 없네요. 집에 혼자 살거든요. 아, 고용인들이 있구나. 근데 어쩌죠? 고용인들도 주말엔 쉬거든요. 제가 주 5일제를 워낙 사랑해서. 저희 사장님과 달리 말이죠.”
마지막에 가선 투덜거린 마센스는 다시 찬장으로 향했고, 마센스의 하얀 가운을 빤히 쳐다보던 그는 마스크를 벗었다.
“헐?”
막 찬장에서 익숙한 주황빛깔의 약병을 꺼내오던 마센스가 그대로 굳었고, 예상했던 반응에 그가 뭐라 말을 할지 몰라 망설이는 사이 피식 웃은 마센스가 그에게 약병을 건네왔다.
“뭐 이런 반응이라도 기대한 거예요, 선배?”
“네, 아니, 뭐?”
“뻔하잖아요. 제가 스파이더맨 팬이란 소문 못 들었어요? 그건 소문도 아니고 거의 기정사실인데. 거기다 학교에선 내내 붙어있고요. 선배 출결이랑 스파이더맨 등장만 맞춰 봐도 답이 나오는데요, 뭘.”
“하지만, 난 어-”
“스파이더맨 사진 기사요? 제가 선배 부상을 제일 먼저 보는 사람이라는 것도 잊었나 보네요.”
혀를 찬 마센스가 고개를 내저으며 엉망이 된 현미경을 정리하기 시작하다 손을 놓은 채 책상에 기대어 여전힌 얼빠져 있는 그와 마주섰다.
“윌슨씨, 그러니까 데드풀이 여전히 안 돌아왔나 보죠? 그건 그렇다 쳐도 이미 다 들은 이야기를 들으러 오신 건 아닐 테고 그 마스크까지 쓰고 온 건 좀 그렇네요.”
실망한 듯 눈썹을 늘어뜨리는 상대의 얼굴을 본 그는 말문이 막혀 한참동안 어물거렸고, 마센스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짚고 나서야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아니, 그게, 알고 보니까 너랑 지하 주차장에 내려가고 나서 나온 기록이 없더라구, 거기다 이상한 차도 있었고, 혹시나 네가 뭔가 본 게 있나 해서, 그걸, 그걸 물으려고…….”
“이상한 차요?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 윌슨씨랑 차 앞에서 잠시 이야기 하다 헤어진 게 다라서요. 선배도 알다시피 데드풀이잖아요. 무슨 일이야 있겠어요? 아마 선배가 추적할 거 알고 그러신 거 아닐까요?”
어조에서 느껴지는 묘한 냉기에 그가 멈칫한 사이 흰 가운을 벗은 마센스가 심상한 어조로 가방을 챙겨들었고, 더 이상 할 말을 찾지 못한 그는 마센스가 건네는 작별 인사에 힘없이 답한 후 실험실의 문이 열렸다 닫히는 모양새를 지켜봐야만 했다.
- 11월 23일 수요일, 오후 3시, 스타크 타워_P.
15.
[일어나요, 웨이드.]
이젠 그 금의 위치까지도 외울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한 천장이 시야로 들어오자 재빨리 몸을 일으킨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가스렌지 앞에 서 있던 제 연인을 낚아챘고, 때마침 솟구친 가스렌지 불이 그의 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게 왜 이러지?]
황급히 가스렌지 불을 끄며 제 팔을 살피는 연인의 모습에 한숨을 내쉰 그는 수없이 봤던 시나리오 중에 다음에 이어질 사고를 계산하다 터져나갈 것 같은 머리를 잡고 주저앉았고, 그의 기행에 놀라 허리를 숙인 피터의 머리 위로 전등이 떨어져 내렸다.
낮은 신음소리와 함께 자신의 머리를 축축이 적시고 내려가는 액체에 그가 숨을 들이쉴 틈도 없이 적막이 그를 찾아왔고, 또 다시 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나요, 웨이드.]
- 11월 23일 수요일, 오후 3시, ?_D
16.
그는 때때로 자신이 여전히 그 장례식장에 홀로 서 있는 어린아이와 같은 기분을 느끼곤 했다.
고요, 적막, 그리고 침묵, 아마도 장례식장에 어울렸을 법한 그것들은 그가 기억하는 장례식장에선 찾아볼 수 없었고, 그에게 있어 소음이란 그 장례식장에서 울려 퍼지던 고성과도 같아서 그는, 소음으로 들어차 그에게 끊임없이 그 장소를 떠올리게 만드는 뉴욕시를 사랑하면서도 증오했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어쨌거나 그의 집은 소음과는 먼 곳에 위치해있었고, 이 집은 초대받지 못한 자는 발을 들일 수가 없는, 그런 곳이었으니까.
넓은 정원을 지나 서재로 향한 그는, 서재의 양 옆에 달린 전등을 동시에 잡아당겼고, 그와 동시에 소음을 내며 길을 터주는 대리석 책상에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시공사조차도 알지 못하는 지하의 실험실엔 그가 그의 영웅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 거즌 완성되어 있는 참이었다. 샘플 제공자의 사전 동의는 얻지 못했지만 결과물을 본다면 샘플 제공자도 만족할만한 결과였다. 임상실험? 그건 바보 천치들에게나 필요한 말이었다.
사내는 여전히 사지가 결박된 채 끝없는 꿈에 빠져 있는 중이었고, 그 사내가 꿀 꿈은 제 소관 밖이었다. 끊임없이 움찔거리던 근육들은 어느 순간부터 늘 긴장상태에 머물렀고, 종종 감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긴 했지만 그로서는 저 사내가 어째서 울음을 토하는지 알 방법도 없었거니와 그 또한 그의 관심사 밖의 일이었다.
[침입경보입니다.]
“괜찮아. 내 손님일 거야. 빨강에 파랑, 맞지?”
[네, 주인님.]
“손님이나 맞으러 가보자고.”
인공지능 시스템이 띄운 화면 속에서 잔뜩 몸을 곧추세운 채 활짝 열린 현관문으로 들어오고 있는 인영을 확인한 그는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주사기를 보며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저은 뒤 불청객 아닌 불청객을 맞기 위해 지상 위로 발을 디뎠다.
- 11월 23일 목요일 저녁 6시, M의 저택_M.
17.
토니가 그 차 안의 부품을 역추적해 구매자를 찾기까지 걸린 시간은 장장 이틀이었고, 그 이틀 내내 스타크 타워에 박혀있던 그는, 주소지를 찾았다는 자비스의 알람을 듣자마자 그 주소의 주인이 누군지는 듣지도 않은 채로 창문 아래로 뛰어내렸다.
뉴욕에서 좀 벗어난 교외지역에 위치한 집은, 그의 예상과 달리 온갖 가을꽃들이 만발한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대저택이었고, 높게 솟은 검은색의 철제문에서 망설이던 그는, 담벼락을 넘어 집 안으로 발을 디뎠다.
집주인의 취향이 반영된 듯 높다란 정원수 하나 없는 정원은 정원수를 대신해 집을 에워싼 담벼락에 사면이 막혀 있었고, 깔끔하게 지어진 저택을 제외한다면 그 어떤 건축물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하게 닫혀 있을 거란 예상과 달리 활짝 열린 현관문에 잠시 당황하던 그는, 이내 조심스레 집 안으로 발을 디뎠고, 마치 그를 기다렸다는 듯 어디선가 튀어나온 집사의 환영인사에 숨을 삼켰다.
“스파이더맨 도련님이시죠? 주인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집사는 느긋한 발걸음으로 그를 식당에 데려다놓더니 사라져버렸고, 천천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그는 할 말을 잃은 채 식탁 끝에 자리 잡고 앉은 청년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좀 늦으셨네요. 하마터면 다 식은 식사를 드실 뻔 했잖아요.”
다정스레 말을 건넨 마센스는 자신의 맞은편에 있는 자리를 가리켰고, 대기하고 있던 고용인들 중 하나가 의자를 빼어 그에게 앉으란 시늉을 해보였지만 그가 앉지 않자 부드럽게 미소 지은 마센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앉으시지 그래요? 조금 늦게 간다고 해서 죽을 사람도 아니고, 뭘 그리 안달 나 하세요?”
“웨이드가 어디 있는지 물으러 왔어.”
“우리 식사부터 하죠. 추수감사절이 내일이긴 해도 칠면조도 구워놨거든요. 제가 무려 한 달 전에 주문해놓은 거라구요. 선배가 오늘 올지, 내일 올지 몰라 두 마리나 주문해놨었죠.”
처음부터 그제껏 미소를 짓고 있던 마센스는 반복되는 권유에도 그가 미동도 않자 표정을 굳혔고 이내 나이프를 식탁에 박은 뒤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계속 그렇게 서계시다간, 윌슨씨의 발톱 하나도 구경하지 못하게 되실 거예요. 제가 한 번 더 앉으라고 말해야 하나요?”
악의가 가득한 말이 떨어짐과 함께 몸을 떨고 있는 고용인을 본 그가 이를 악물며 의자에 앉았으며 입을 열었다.
“자, 앉았어. 그래서 웨이드는 어디있지?”
“선배는 웰던이었죠? 아, 칠면조라서 별 상관이 없나? 식사 예절은 도통 알 수가 없어서요. 선배가 안 그래도 급한 거 같으니까 우리 칠면조로 그냥 족하자고요.”
“웨이드는-”
“한 번만 더 제 입에서 드시라는 소리가 나오면 우리 그냥 다 엎고 싸움이나 할까 봐요. 아니면 제가 이대로 그냥 접시물에 코 빠져서 죽는 수도 있죠. 그럼 우리 가여운 윌슨씨가 어디 있는지는 누가 가르쳐줄지 진짜 궁금한데 어때요? 아, 뭐 찾기야 하겠죠. 근데 그 때까지 윌슨씨가 어떻게 지낼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선배는 어때요?”
“마센스.”
“네, 피터 선배.”
자신의 앞으로 놓여지는 칠면조를 쳐다보던 그가 나이프를 잡으며 마센스를 불렀고, 상황에 맞지 않게 발랄한 어조로 답한 마센스가 막 고기를 썰려던 나이프를 멈춘 채 그에게 답했다.
“이래서 네가 얻는 건 뭐야? 웨이드를 납치하고, 또 날 여기로 유인해서 얻는 게 뭐냔 말이야. 도대체 누가-”
“누군 없어요, 선배.”
온 힘을 다해 고기를 썰기라도 하는 듯 사기그릇에 닿은 나이프가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고, 미간을 찌푸리며 고기를 썬 마센스가 포크에 찍힌 칠면조 고기를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식사 한 번, 선물 하나, 그거면 충분하거든요. 아, 하마터면 지금 드시라고 할 뻔 했어요! 혹시 그 말이 듣고 싶으신 거예요?”
고기는 이미 차게 식어 있었다. 서걱거리며 베어나간 고기는 그의 입에서 쉽게 짓뭉개졌고, 보라는 듯 고개를 들어 고기를 씹어 삼킨 그는 만족한 듯 웃고 있는 마센스를 향해 물었다.
“난 입이 짧아서 말이야. 그래서, 웨이드는 어디 있지?”
“이번 고기는 별로던데. 선배는 어때요?”
“웨이드는, 어디 있느냐고.”
“이미 만나셨잖아요.”
“뭐?”
싱긋 웃은 마센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그의 접시를 가리켰고, 솟구쳐오는 오심에 숨이 막힌 그가 식탁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농담이에요. 도대체 그 사람을 가지고 칠면조 고기를 어떻게 만들어 낸다는 건지. 그건 토니 스타크가 와도 못할 거라고요.”
생글거리며 다가온 마센스가 비틀거리는 그를 부축했고, 자신의 몸이 비틀거리는 게 비단 충격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알아챈 그가 눈을 부릅떴을 때 그의 마스크를 벗긴 마센스가 그의 이마에 다정스레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쉿, 잠시면 돼요, 선배. 아직 선물이 남아있거든요.”
- 11월 23일 목요일 저녁 6시 30분, M의 저택_P.
18.
그의 계획이 틀어진 건, 스파이더맨을 계단 아래로 굴린 직후부터였다. 아니, 근원부터 따지자면 혹여나 몸에 무리가 갈까 두려워 양 조절에 실패한 마취제부터가 문제였다.
어쨌거나 처음부터 들어 올릴 힘이 없어 질질 끌고 지하실 입구까지 온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어차피 힐링 팩터라면 금세 해결할 부상에 연연해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인 후 스파이더맨을 계단 아래로 굴렸고, 곧이어 들린 요란한 소리에 한숨을 내쉰 그가 지하실로 들어섰을 때에 계단 아래에 있어야 할 스파이더맨은 보이지 않았다.
스파이더맨이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지상으로 향하는 문을 폐쇄한 그는, 이내 자신의 손에 들러붙는 거미줄을 겨우 떨쳐낸 뒤 테이블 위에 있던 주사기를 어떻게든 스파이더맨에게 꽂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일반 사람에 불과한 그가 스파이더맨을 이길 방법은 없었다. 순식간에 그를 제압해 벽에 고정시킨 스파이더맨은 의식을 잃은 채 누워있는 제 연인의 팔에서 링거줄을 떼내기 바빴고,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프로토콜 메이데이.”
[프로토콜 메이데이를 정말로 실행하시겠습니까.]
“마센스, 여기서 그만 두는 게 좋을 거야. 토니도 지금쯤이면 사태를 파악하고 오고 있을 거고-”
“그 때쯤이면 다 끝나있겠죠. 프로토콜 메이데이 실행.”
[네, 주인님. 프로토콜 메이데이를 실행하겠습니다.]
단호한 어조로 스파이더맨의 말을 끊은 그는 지하실 바닥부터 차오르기 시작한 녹색 가스에 만족한 듯 웃으며 멀어져가는 의식에 몸을 맡겼다.
19.
그는, 스스로가 깨어진 유리 파편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아무 쓸 데 없는 유리 파편.
그에게 있어 피터 파커란, 유일한 광원이자 유일한 피사체였고, 유일한 삶의 이유였다. 그리고, 그의 삶의 유일함은 그의 앞에서 수없이 빛을 잃고, 숨을 멎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이래요, 웨이드? 아침부터 요란스럽더니 이젠 나더러 밖에 나가지 말라고까지 하고.]
[다 이유가 있어서 그래, 자기야. 오늘 하루만이야. 오늘 딱 하루.]
환상이라는 것쯤은 애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고통이 덜어지는 것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피터 파커의 죽음에 익숙해지는 것 또한 아니었다.
영문을 모른 채 눈알만 굴리며 소파에 앉아있는 제 연인은 그가 아는 그 누구보다도 순수했고, 아름다운 이였다. 이번만은, 이번만은.
그의 외침이 무색하게도 크게 한 차례 흔들린 건물은 빠른 속도로 붕괴되기 시작했고, 소파에 앉은 채로 속절없이 추락하는 제 연인을 어떻게든 붙잡으려던 그의 노력도, 검은 구멍 속으로 내던져진 제 연인처럼 산산이 깨어져나갔다.
[괜찮아요, 웨이드! 전 스파이더맨이잖아요- 그러니까-]
[스파이더맨도 결국은 죽는 인간일 뿐이죠.]
제 연인의 말을 끊고 나타난 사내의 얼굴은 희었다. 늘상 쓰고 있던 뿔테 안경은 어디로 집어던진 건지 안경 뒤로는 흐리멍텅해 보이던 회색빛의 눈은 음울하게 빛나고 있었고, 갑작스레 바뀐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그는 눈을 껌뻑여 보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당신은 달라요, 웨이드. 피터 선배는 당신을 그렇게 부르더군요. 웨이드라고.]
다정스레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늘어져 있었고, 손에 들린 메스를 본 그는 어차피 별 소용이 없음을 알면서도 움직이기 위해 버둥거렸다.
[나나 당신이 가진 공통점이라면, 피터 파커, 그러니까 스파이더맨이 죽길 바라지 않는다는 거겠죠. 당신도 스파이더맨이 죽는 걸 바라진 않잖아요? 저랑 그의 공통점이라면, 죽음이라면 지긋지긋하다는 거고요.]
자조적으로 웃은 사내의 말에선 씁쓸함이 묻어났고, 둔해진 감각 속에서 메스가 닿아오는 것을 느낀 그는 눈을 감았다.
[당신을 죽일 생각은 없어요. 하고 싶어도 못하고, 지금 그에게서 당신을 빼앗아 가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전, 그냥 며칠만 빌리면 되는 거거든요. 당신도 동의해줄 거라 믿어요. 그리고 당신을 아프게 할 생각도 없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며칠 잠만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끝나 있을 거예요. 꿈 몇 번만 꾸면 끝날 일이라고요. 꿈 몇 번만-]
“일어나요, 웨이드!”
애초부터 흐리멍텅했던 환상을 깬 건 익숙한 목소리였다. 차가운 공기가 피부를 스치고 지나갔고, 시야를 가득 메운 얼굴은 눈물로 젖어 엉망이었지만, 누군지 못 알아 볼 정도는 아니어서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는 결박이 풀린 손이 제 감각을 찾기도 전에 이미 엉킬대로 엉킨 브루넷을 움켜쥔 채 긴 숨을 토했다.
“젠장. 이게, 도대체-”
“키스는 안 해주는 거야?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깨웠으면 책임을 져야지.”
“이 상황에서 그런 농담을 하는 거 보니 정신을 차린 건 맞나 보네요. 일어나요, 얼른!”
엉망진창이 된 실험실 바닥엔 깨어진 유리조각이 널려있었고, 무심결에 바닥에 발을 디뎠다 유리조각에 발을 디뎠던 그는 오랜만에 느껴지는 통증에 인상을 찌푸렸다. 통증이 느껴지는 곳으로 시선을 내렸던 그는 허리까지 차오른 가스에 숨을 깊게 들이쉬었고, 그가 일어나자마자 모니터에 매달려 무언가를 열심히 두들기고 있는 제 연인에게 다가갔다.
“상황 설명 좀 해줄래, 자기?”
“나중에요, 프로토콜 메이데이 취소.”
[죄송하지만 프로토콜 메이데이에는 취소 프로그램이 따로 없습니다.]
“젠장!”
욕설을 내뱉은 피터가 머리를 감싸 쥐고 뭔가 고민하다 계단 옆에 있는 버튼을 미친 듯이 두들겼지만 지하실 내엔 별 변화가 없었고, 가스는 어느 새 그들의 가슴까지 올라와 있었다.
“프로토콜 메이데이가 뭔데?”
[프로토콜 메이데이란, 마센스 디티드 주인님이 스파이더맨을 위해 고안한 힐링 팩터 변형 프로젝트의 최종 단계로, 가스로 힐링 팩터를 주입시키게 됩니다.]
“스파이더맨을 위해서라고? 그럼 웨이드는?”
[아무런 변화가 없으실 겁니다.]
무미건조한 어조로 그와 피터의 질문에 답한 인공지능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고, 잠시 망설이던 피터가 여전히 벽에 의식을 잃은 채 늘어져 있는 마센스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다시 물었다.
“그럼……네 주인은?”
[이 혈청은 어디까지나 스파이더맨을 위해 고안된 것으로-]
“결과만 말해.”
[이미 신체기능 일부가 망가진 상태에서는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받아들이는 게 불가능하다는 건, 그냥 적용이 안 된다는 거지?”
[거기 계시는 윌슨씨께서 이 단어를 불쾌하게 여긴다는 주인님의 말씀이 있으셔서 그 단어를 말할 수는 없겠군요.]
여전히 덤덤한 어조로 마센스에게 사망선고를 내린 인공지능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고, 평소 그가 여간해서는 입에 담기 꺼려하는 단어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피터가 눈을 감은 채 마지막으로 폐에 숨을 들이쉰 뒤 입을 열었다.
“이 지하실에서 나갈 방법은?”
[마센스 디티드 주인님의 음성 없이는 허가될 수 없는 명령입니다.]
“-라고 누가 그래? 내가 늘 그러지, 어벤져스는 뒀다가 국 끓여먹을 거냐고, 피터!”
고함을 치며 지하실 문을 그대로 날린 토니가 안으로 들어오려다 벌거벗고 있는 그의 모습에 멈칫했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피터가 재빨리 박살이 난 문을 밟고 지상으로 올라섰다.
“왜 이제 와요? 토니 스타크도 이젠 늙었나 보죠?”
“니가 스타크사 사장 해보던가. 페퍼도 없어서 이젠 힘들다고, 나도. 그 영감탱이들이- 니 남자 친구 분은 저기서 왜 안 올라오시는지 좀 물어볼래, 핏?”
그제야 그가 여전히 실험실 아래의 가스 속에 서 있다는 걸 눈치 챈 피터가 의아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고, 두 손으로 아래를 가린 채 어깨를 으쓱인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로미오와 줄리엣 장면을 놓쳐서 말이야. 우리 그거 찍으려던 거 아니었어, 허니?”
20.
[피터 도련님 몸엔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주인님.]
“다시 체크해봐, 다시.”
[벌써 다섯 번째 재검산데, 이러다간 피터 도련님 몸에 남아나는 피가 없을 것 같은데 계속할까요?]
“자비스-”
[네, 주인님.]
“뮤트.”
굳이 시무룩한 효과음을 내며 조용해진 자비스에 고개를 저은 토니가 자신의 목욕 가운을 걸치고 피터의 곁에 붙어 앉아있는 데드풀을 보며 혀를 찼고, 머쓱한 표정으로 제 어깨에 둘러진 팔을 내린 피터가 토니에게 그 지하실 바닥에서 주워온 주사기를 건넸다.
“이건 또 뭐야?”
“그 가스 원액일 거예요. 필요하실 지도 모르잖아요.”
“네 몸에 이상이 없으면 됐어. 갖다 버려, 더미.”
“토니.”
“뭐?”
불퉁한 어조로 피터의 말을 받은 토니가 더미에게 주사기를 건네려다 말고 피터를 쳐다보았고, 어색한 미소를 지은 피터가 그에게 물었다.
“마센스는 괜찮아요?”
피터의 질문에 기가 찬 듯 고개를 내저은 토니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주사기를 더미에게 줘버렸고, 당황한 피터는 더미의 손에서 주사기를 빼내 뒤에서 박스들과 말장난을 하고 있던 웨이드에게 던졌다. 딴짓을 하고 있던 것과 달리 정확히 주사기를 받아낸 웨이드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피터와 토니가 서 있는 쪽을 쳐다보았고, 피터의 옆에 서 있던 더미가 낑낑거리며 웨이드를 향해 움직였다.
“더미 괴롭히지 말고 줘, 데드풀.”
“음, 안 되겠는데요, 토니. 전 제 남자친구가 준 거라면 냅킨 하나도 소중히 하는 사람이라서 말이죠. 말이 나와서 말인데 피터, 지난번에 내가 침대 밑에 숨겨뒀던 박스 치운 거 너야?”
“그 쓰레기들이라면 맞는 거 같네요.”
“쓰레기라니! 아니, 쓰레기 아니거든? 그건 피터가 나랑 아직 안 사귈 때 줬던 핫도그 포장지랑-”
피터와 대화하다 어느 새 박스들과 다투기 시작한 웨이드는 주사기를 허공에 대고 휘두르기 시작했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의 손에서 주사기를 빼온 토니가 여전히 멋쩍은 표정을 짓고 있는 피터를 향해 혀를 차며 말했다.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은 너한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야, 피터. 그 힘이 꼭 물리적인 힘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고.”
“네, 네, 옳으신 말씀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런 말도 있죠.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피터를 향해 눈썹을 치켜세웠던 토니는 여전히 투명하게 빛나는 초록색 액체가 담긴 주사기를 냅다 던지려는 시늉을 해보였고, 피터와 웨이드는 물론 더미까지 합세해 말리려는 시늉을 하자 한숨을 내쉬었다.
“마센스는 무사하답니다, 영웅 나으리. 백신을 만들 필요도 없어. 어디까지나 네 맞춤형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인공지능이-”
[인공지능도 가끔 거짓말을 하긴 하죠. 그게 자기 창조주의 안위가 걸려 있을 땐 더더욱 말입니다.]
“내가 너 뮤트라고 하지 않았나?”
[피터 도련님, 제가 주인님한테 뮤트 상태라 그런데 말 좀 전해주시겠습니까. 본인한테 말한 게 아니라고요.]
“라는데요, 토니.”
피터의 웃음기 어린 목소리에 성이 난 토니가 주사기를 냅다 던져버렸고, 갑작스런 행동에 놀란 셋, 그러니까 웨이드, 피터, 더미가 동시에 주사기를 향해 뛰어드느라 난장판이 벌어진 통에 의료실이 들썩였지만, 그것만 제외한다면 나름 평화로운, 추수감사절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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