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고 있었다. 아마도 그가 있는 곳이 농장이나 어느 숲 속이었더라면 비에 젖은 흙 내음이 그의 기분을 한껏 고조시켜줬겠지만 그가 걸터앉아 다리를 휘두르고 있는 곳은 흙 내음과는 거리가 먼 도시 한복판이었고, 비에 젖어 색이 짙어진 아스팔트 위로 오만가지 색의 우산들이 지금쯤이면 한껏 피어났을 봄꽃들을 대신해 피어난, 평화로운 오후였다.


 “스파이디, 비 맞으면 감기 걸린다니까?”


등 뒤에서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는 비에 젖은 듯 무거웠고, 이미 푹 젖어버린 수트가 연인의 몸에 닿지 않게 웅크린 그의 머리 위로 빨강과 파랑으로 도배가 된 우산이 씌워졌다.


 “오늘은 웬 일로 이렇게 일찍 왔어요?”


 그의 질문에 대답대신 어깨만 으쓱인 데드풀이 그에게 우산을 넘긴 뒤 파우치에서 삼단 우산을 꺼내 펼쳤고, 덩치에 맞지 않은 핫핑크색 우산도 모자라 그 위에 그려진 고양이 캐릭터를 본 그가 웃음을 터트렸다.


 “도대체 이런 거나 그런 건 어디서 사는 거예요? 키티는 그렇다 쳐도 이건 저도 못 보던 건데.”

 “있어,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사랑만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구할 수 방법이 많고도 많지, 허니.”


 여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침착하게 답한 데드풀이 피터의 곁에 자리 잡고 앉아 거리 아래를 구경하기 시작했고, 그가 제 곁에 앉고 나서야 비 냄새에 섞여 풍겨오는 피비린내를 맡은 피터가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또, 음, 그러니까, 그런 건 아니죠?”

 “그런 거, 에 해당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아서 뭔지 모르겠는데 콕 집어서 말해줄래?”

' > 덷거미덷'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형선고 받은 데드풀로.  (0) 2016.05.04
자장가  (0) 2016.04.21
지난번에 떠올렸던 소재로.  (0) 2016.04.18
작별  (0) 2016.04.13
그냥 보고 싶어서 씀  (0) 2016.04.13
Posted by Spideypoo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