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용의자로 몰린 스파이더맨으로 5
썰/스파이디 2015. 12. 8. 13:51 |- 전편 : http://cobwebinny.tistory.com/53
소란스럽던 기자회견장은 아이언맨 슈트를 입은 토니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순식간에 고요해졌고, 제시간에 도착했다는 자비스의 알람을 들은 토니는 한숨을 내쉬며 아머를 벗어 한쪽 구석에 세워둔 채 단상에 올라섰다. 단상 아래 놓인 의자들 앞줄엔 기자들이, 그리고 그 뒤쪽으론 아마도 뉴욕시 기득권층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사람들 얼굴을 눈으로 훑던 토니는 낯익은 데일리 뷰글의 기자를 확인하곤 한숨을 내쉰 뒤 마이크를 고쳐 잡은 뒤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이게 얼마만인지 모르겠군요. 제 기분상으론 거의 10년은 된 거 같은데, 맞습니까?”
터무니없는 토니의 셈법에 몇몇 기자가 웃음을 터트렸고, 장난스레 어깨를 으쓱인 토니는 기자회견장으로 향하기 전 페퍼가 쥐어줬던 성명서를 양복 안쪽 주머니에서 꺼내 대충 눈으로 훑은 뒤 인상을 찌푸린 뒤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늘 그렇듯이 대본은 대본으로 남겨두도록 하죠. 여기 계신 여러분이나 저나 시간 낭비는 싫어하는 사람들이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여러분의 기대와 달리 스파이더맨은 그 병신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뭐, 그 망할 거미줄 때문에 그 병신의 살해범이 그 병신을 죽이는 게 쉬워졌을지는 모르겠지만, 여러분, 그 친구는 그 병신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토니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뒤쪽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신음소리를 내며 의자 등받이에 등을 붙인 채 팔짱을 끼기 시작했고, 개중 몇몇은 자리에서 떴다. 뒤쪽에서 자리를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대충 눈으로 훑은 토니는 앞쪽에 앉아 미친 듯이 손을 들고 있는 기자들을 흘깃 쳐다본 뒤 못해도 서너장은 되는 종이를 하나하나씩 접기 시작하며 빙긋 웃었다.
“팔들 내리세요. 손드신 열정엔 죄송하지만 오늘은 여러분이 질문하는 날이 아닙니다. 제가 말을 하고, 질문을 던지는 날이죠. 그 질문은, 여러분이 저 뒤쪽에 앉으신 몇몇 예의는 밥 말아 먹은 인간 말종처럼 나가는 걸 막기 위해 마지막에 던지도록 하죠.”
신경질적으로 말한 토니는 앞쪽으로 다 접은 종이비행기 하나를 날렸고, 가장 앞줄에 앉아있던 기자 하나가 주우려는 걸 제지한 보디가드가 종이를 주워 다시 단상 위로 올렸다.
“전 오늘 여기에 어벤져스의 대변인이 아니라 스파이더맨의 친구로서 왔습니다. 그리고 그 스파이더맨의 치눅로서 말하건데, 여러분의 기대나 상상과 달리 그 친구는, 빌런이 될 수 없는 인삽니다. 빌런이 되기엔 병신같이 착하고, 너무나 순진무구한 친굽니다. 아마 그 친구는 빌런이 되어봤자 열심히 돈 벌어서 빈민가에 돈 뿌리기로 인플레이션 일으키는 정도일 겁니다. 그것도 그 친구 통장 잔고가 빵빵할 때 이야기고 말이죠.”
자신의 단상 앞에 선 보디가드를 흘깃 쳐다본 토니는 다시 단상 위로 올라온 종이비행기 옆에 곱게 접은 아이언맨 아머 모양의 종이접기를 세운 뒤 다시 말을 이었다.
“네, 뭐 어느 영화의 문구처럼 그렇게 될 수도 있겠죠. 어쩌면, 아주 어쩌면, 그리고 우리가 봐온 누군가처럼, 열정이, 분노가, 그리고 무기력함이 좋은 사람을 냉혹하게, 그리고 빌런으로까지 탈바꿈시킬 수 있다는 것 자체는 부정치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도 그 친구를 빌런으로 탈바꿈시킬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기에 이 친구는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잃어왔어요.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말입니다. 빌런이 되려면 애진작에 되어야 했을 거란 말입니다.”
점점 격양되어 가는 목소리를 낮추기 위해 말을 멈췄던 토니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고, 그의 한숨에 쓰러진 아이언맨 모형의 종이를 다시 세운 뒤 그 옆에 새로 접은 캡틴 아메리카 모형을 세웠다.
“그는 아마 그가 할 수 없는 그 날까지 당신들을 구할 겁니다. 그가 마지막 숨을 내쉬는, 바로 그 순간까지 말입니다. 그가 살리려 했고 지키려했던 모든 사람들이 이 친구에게 등을 돌리고 바로 지금 오늘 당신들처럼 그가 하지도 않은 일로 비난을 하고 손을 내밀어주지 않는다 해도, 지금 당장 여러분이 길거리에서 지갑을 소매치기 당하고 뒷골목으로 끌려가 강도를 마주한다면, 자신에게 쏟아졌던 그 모든 어처구니없는 중상모략과 수없이 봐야 했던 그 등들은 모두 잊은 채 당신들의 적을 본인이 마주할 인사라는 겁니다.”
조용해진 회장 내로 소음을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말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손을 놀린 결과 만들어낸 스파이더맨을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 모형 앞에 세운 토니는 내내 단상 아래로 향해있던 시선을 들어 자신의 앞에 주르륵 앉은 사람들을 지나쳐, 회장 뒤로 세워진 카메라를 응시했다.
“제 사랑하는 뉴욕 시민 여러분, 그리고 멍청하기 그지없는 여러분, 그 친구는 저 하늘에서 떨어진 천사나 히어로 같은 게 아닙니다. 애초에 그 친구가 되고 싶은 것조차도 히어로 따위가 아니라는 건 다들 잘 알고 계시리라 믿겠습니다. 그는, 여러분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입니다. 자기가 가진 힘으로 빌런들을 잡으며 희열을 느끼기 위해 히어로 노릇을 하고, 신 놀음을 하는 그런 병신이 아니라, 당신들과 저 거리를 걷고, 월급날에 잠시 기뻐하다 금세 비워진 통장 잔고에 애통해하는 그런, 당신들과 똑같은 이웃 말입니다.”
거기까지 말한 토니는 기자회견장 한 면을 이루고 있는 유리창 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조용히 그의 시선을 따라 카메라 앵글을 돌린 카메라맨들 중 하나는, 넓은 유리창 밖으로 펼쳐진 뉴욕 전경을 카메라로 담아내다 토니가 말을 다시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카메라를 고정시켜놓은 채로 기자회견장을 뛰어나갔다. 잠시 그를 향해 인상을 찌푸렸던 토니는 방금 뛰쳐나간 카메라맨 옆에 있던 사람이 여전히 창밖으로 고정되어 있는 카메라를 자신에게 돌려놓자 카메라들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말을 이었다.
“그는, 빌런이 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것을 잃었으며 너무나도 많은 죽음을 봐온 사람입니다. 죽음에는 기가 질린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가 이 뉴욕에 얼굴을 들이민 이후, 그가 단 한 번이라도 자의로 판결을 내려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을 보신 분이 있으십니까? 그랬다면 오늘도 이 자리에 앉아있는 저 데일리 뷰글이 조용히 있지 않았겠죠. 말도 안 되는 루머와 한 순간의 돈을 위해, 시청률을 위해 당신들의 친절한 이웃을 잃는 멍청한 짓을 저지르실 분들이 아니라는 건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만, 지금까지의 사태를 지켜봐온 저로서는 그 멍청한 사태가 조만간 벌어질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가 없군요.”
토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앞줄에 앉아있던 기자들이 일제히 울리기 시작한 핸드폰을 꺼내 알람을 껐고, 잠시간 술렁이는 사람들을 쳐다보던 토니는 자신의 귀에서도 울리기 시작한 자비스의 알람에 인상을 찌푸린 채 말을 계속했다.
“좋습니다. 그래요, 스파이더맨이 당장 그 얼굴을 까고 재판대에 올라 무슨 죄목으로건 감옥에 갔다 치자 이겁니다. 여태껏 여러분의 곁에서, 여러분이 거니는 그 거리에서, 여러분과 제가 걷던 그 거리를 지키던 그 친구가, 그 수많은 적들에게 모든 신상이 까발려졌다 치자, 이겁니다. 여태 여러분을 지키기 위해 스파이더맨이 감옥으로 보냈던 수많은 빌런들과 강도들이 꿈꾸던 그 일이 벌어졌다 치잔 말입니다. 그들이 원하던 복수는 스파이더맨의 가족, 친구들에게 일어나겠지만,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안 그래요? 우리 일도 아닌데요? 여기 앉아계신 기자 여러분들은 그 건으로 기사나 좀 더 쓰고 뉴스들은 시청률이나 잠깐 올리면 그만인 일이니까요. 하지만, 바로 지금 여기서 이 모든 사태를 수수방관하던 여러분의 돈이 맡겨진 은행이 털릴 대, 혹은 당신들의 지갑을 소매치기가 빼앗아 소리를 질러도 다른 시민들이 아는 체도 하지 않은 채 제 갈 길만 갈 때, 치솟는 불길에 소방관들마저도 진입을 망설일 때, 경찰조차도 힘에 부치는 빌런이 나타나 여러분의 생명에 위협을 가할 때, 어벤져스는 이 뉴욕에 없을 가능성이 높으며, 자신들의 히어로를 비난하기 바쁜 여러분을 위해 나타나줄 제 2의 스파이더맨은 없을 겁니다. 여기서 질문을 하죠.”
잠깐 말을 끊은 토니는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기자들의 핸드폰이 다시 일제히 울리는 모습을 쳐다보다 여전히 계속해서 울리고 있는 이어링의 버튼을 눌렀고, 기다렸다는 듯 자비스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메인 스트릿에서 다수의 빌런과 경찰 대치 중입니다.]
[그리고 스파이더맨의 모습이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주인님.]
침음을 낸 채 고개를 숙였던 토니는 핸드폰 화면을 켰던 기자들이 그대로 굳어있는 모습을 잠시 쳐다보다 조소했고 다시 말을 이었다.
“과연, 그런 상황, 아니 이런 상황일 때 여러분은 스파이더맨의 이름을 다시 떠올리지 않으실 거라고 장담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제야 다들 스파이더맨의 형량 감축 서명서를 만들어 돌리실 작정이시냔 말입니다. 그래요, 그 병신 같은 친구는 지금도 당장 구속당해 자신의 신상이 까발려질 위험을 감수하고 여러분을 위해 또 나섰다는 군요. 아마 여러분이 그의 모든 신상을 까발려 감옥에 처넣은 후에도 그는 여러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이 벌어진 후에도 여러분은 한 치의 양심의 가책도 없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의 호의를 받아들이고 그의 이름을 부르실 수 있겠느냔 말입니다.”
거기까지 말한 토니는 재빨리 단상 위의 모든 종이를 챙겨 주머니에 우겨넣은 뒤 아머를 불러 착용했고, 여전히 돌처럼 굳어 본인들의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급한 일이 있어 전 먼저 자리에서 뜨죠.”
아머의 전면 커버조차 올리지 않은 채로 토니는 그대로 유리창을 깨고 밖으로 나가버렸고, 기자회견장으론 침묵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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