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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18.01.25 Broken Crown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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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17.11.25 Broken Crown #05

Run

썰/덷거미덷 2019. 7. 7. 00:47 |


 그는 여전히 답을 알지 못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혹은

 그것조차 상관없는 일인지.

 그래서 그는 결정했다.

 그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기로.

 


 피터 벤자민 파커, 그에겐 ‘그럭저럭’ 평화로운 나날들이었다.

 비록 빌런들이 매일 출현하긴 했지만, 그가 감당할 만큼의 빌런이었고, 어느 순간부터 빌런들 때문에 그의 일상이 일그러지는 일은 없었다. 똑같은 일상과 똑같은 전투 속에서 반복되는 일상에 만족감을 느낄 때 즈음 등장한 저 남자가 그냥 평화로울 뻔한 날들을 ‘그럭저럭’ 이란 수식어가 붙게 만들었지만.

 “가라, 스파이디! 다 부셔버려! 이겨라, 이겨라! 이기는 편 우리 편! 난 자기 편 하고 싶으니까, 이겨야 돼, 자기!”
 “그러니까-난, 당신이랑! 사귄다고, 한! 적이, 없다구요!”
 “우리 같이 살잖아!”
 “그거야 당신이 당신 집을 날려서-”
 “조심해야지, 스파이디. 난 내 물건에 흠집 나는 걸 엄청 싫어하거든.”

 웨이드와의 대화 때문에 정신이 흐트러진 스파이더맨을 노리고 날아온 맨홀을 카타나로 친 웨이드는 이내 날이 나간 카타나를 보고 분노해 날뛰기 시작했고, 이젠 누가 빌런인지 구분이 안 가는 광경에 기가 질린 피터는 빌런이고 웨이드고 간에 구분하지 않고 거미줄을 쏴 포박했다.

 “오늘은 구속 플레이야?”
 “닥쳐요, 좀.”
 “그럼 이것 좀 풀어줘. 내 카타나가 거미줄이 붙어서 울고 있다고…….”
 “벌로 2시간동안 그러고 있어요.”

 ‘벌’이란 말에 꽂혀 또 다시 말을 쏟아내는 웨이드를 무시한 채로 경찰에게 경례한 스파이더맨은 빌런이 있는 곳을 가리킨 뒤 자리를 떴다.

 그의 말을 따르자면 본명 웨이드 윌슨, 코드네임 데드풀.

 불빛 하나 없는 골목에서 발견되었던 그는 발견당시엔 이미 죽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신체 징후가 하나같이 미약했지만 피터가 상태를 파악하는 사이에 회복해 난리법석을 떨기 시작했고, 그의 능력이 불사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된 건 여러 번의 사건을 통해서였다.

 온 몸에 달고 다니는 살벌한 무기가 무색하게 그는 여간해선 무기를 뽑지 않았고, 꺼낸다 하더라도 전투보단 장난에 가깝게 휘두르는 일이 잦았던 터라 피터는 그냥 그가 별난 능력을 갖고 있는 일반인으로 생각하기로 결정한지 오래였다.

 정신 나간 말 속도와 비슷한 정신 상태인지 종종 정신 나간 짓을 일삼더니 몇 달 전에 피투성이가 된 채로 자기 집이 날아갔다며 가방 하나만 달랑 든 채로 갑자기 피터의 집으로 찾아왔고, 얼결에 그와 살게 된 지 반 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미스테리한 등장과 달리 그는 하루의 대부분을 소파에서 시시껄렁한 티비쇼와 드라마를 보는 데에 쏟았고, 불쑥 사라졌다가 돌아올 때면 희미한 피 냄새가 났지만 같이 살면서 그가 심한 암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 피터는 자세한 사항은 묻지 않았다.

 비록 처음부터 낡았던 소파가 웨이드가 누워있는 모양대로 더 내려앉았고, 종종 미친 듯이 구워대는 팬케이크에 바꾼 후라이팬이 수십개가 넘었으며 저녁에 돌아오면 벽에 알 수 없는 구멍이 뚫려 있곤 했지만, 그런 점만 빼면 웨이드는 썩 괜찮은 룸메이트였다.

 물론, 반으로 줄어든 월세 부담도 한몫했지만.

 그리고 집에 돌아갔을 때 불 꺼진 방이 아니라 맞아줄 사람이 있다는 것도 꽤 나쁘지 않은 기분이라 피터는 어느 순간부터 웨이드에게 언제 나갈 거냐고 묻지 않았고, 웨이드 또한 그다지 나갈 생각이 없는 듯 어느 새 창고로 쓰던 방을 정리에 제 살림살이를 하나 둘씩 늘리고 있는 중이었다.

 때때로 웨이드가 종종 피터의 관심을 갈구하며 날뛰는 날도 있었고, 어쩌다 피터가 오늘처럼 그를 방치하는 일도 있었지만, 모든 불만사항은 타코 하나로 충분히 해결되곤 했다.

 “웨이드 윌슨씨, 타코 배달 왔습니다.”
 “물론 세트 이야기 하는 거겠죠?”
 “스페셜 세트니까 문 열어요. 손 없단 말이에요.”
 “잠깐만.”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열린 문 안으론 팬티 바람의 웨이드가 환하게 웃고 있었고, 그의 손에 타코를 맡긴 채 욕실로 간 피터는 물에 젖은 채 진동하며 빛을 깜빡이고 있는 웨이드의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웨이드, 전화 온 것 같-”
 “쓸모없는 전화야. 망할 텔레마케터 같으니라고.”

 진동소리를 들은 듯 황급히 욕실 쪽을 향해 걸어온 웨이드는 화면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로 통화 거절을 누르더니 어깨를 으쓱인 뒤 종이 백에서 음식들을 꺼내 커피테이블에 차리기 시작했고, 눈을 가늘게 뜬 채 그를 잠시 쳐다보던 피터는 다시 욕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거의 대부분의 질문에 답하고 하다못해 자기 무기 이름까지 떠벌리는 웨이드였지만, 단 하나 자신의 핸드폰에만큼은 피터의 접근을 기겁하며 막았고, 매번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으면서도 휴대폰을 늘 충전해 놓고 끄지 않는 모습에 매번 튀어나오려는 질문을 참느라 애쓰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때 다시 휴대폰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웨이드-”
 “또 광고네!”
 “당신 뭐 범죄 저지르고 쫓기고 있는 건 아니죠?”
 “내가? 범죄는 저질렀을 수 있는데 여기선 아직 저지른 게 없는데?”
 “네?”
 “내가 범죄자 상이야, 피터?”
 “아뇨. 그게 아니라-”
 “그럼 됐네. 밥 먹자! 우리 타코 치즈가 차갑게 죽어가고 있다고, 허니.”

 대놓고 얼버무리는 모습에 한숨을 내쉰 피터가 포기하고 자리에 앉는 순간 휴대폰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고, 재빨리 웨이드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은 피터가 통화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총성이 울렸다.

 “웨이드?”
 “다음엔 머릴 쏠 거야. 너한테 피해 끼치지 않을게. 다른 뉴욕 시민한테도. 그냥 모르는 척 해.”

 웨이드의 배를 관통하고 나간 총알은 벽에 박혔고, 온 사방에 피가 튄 탓에 엉망이 된 거실 바닥으로 웨이드가 쓰러졌다.

* * *

 구급차를 부르려는 피터를 말린 웨이드는 상처가 아물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익숙한 듯 거실 정리를 재빠르게 끝마쳤고, 너무나도 익숙한 듯 행동하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피터는 방금 전 총질로 난 구멍과 웨이드가 들어온 이후로 하나 둘씩 늘어가던 벽의 구멍을 번갈아 보다 인상을 구긴 채로 타코를 먹고 있는 웨이드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타코 치즈가 죽었어……, 피터……. 이건 모두 네 잘못이야…….”

 피터가 그러거나 말거나 타코를 베어 문 웨이드가 우물거리며 우는 소리를 한 뒤 피터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피터는 여전히 미간을 구긴 채 그를 노려보고 있는 중이었다.

 “앞으론 집에서도 옷을 입고 있는 게 어때요?”

 갑작스런 요구에 당황한 웨이드가 입에서 씹고 있던 타코를 뿜었지만, 피터는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로 웨이드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고 몇 번 콜록인 웨이드가 타코를 내려놓고 반문했다.

 “반나체라 거슬려?”
 “아뇨. 근데 저 구멍은 좀 거슬리네요.”

 시선은 웨이드에게 고정한 채로 피터가 정확히 소파 뒷벽 위쪽에 뚫린 구멍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고, 웨이드 또한 피터가 뭘 가리키고 있는지 눈치를 채고 고개를 돌려 확인하지 않은 채로 대답했다.

 “벗었다 입으면 되지.”
 “그 문제라면 제가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뭐, 감시카메라라도 달게? 천하의 스파이더맨이 관음증-”
 
 농담을 늘어놓으려던 웨이드의 입에 거미줄이 쏘아졌고,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으쓱인 피터가 비죽 웃으며 말했다.

 “제가 집에 없는 시간만큼 붙어있을 접착제면 충분할 거 같은데요. 그거 만드는 시간은 거미줄 녹을 시간이면 충분할 거 같고요. 어때요, 내기할래요? 아, 말을 못하는 구나. 그럼 티비나 보고 기다리세요. 아깝네. 돈 좀 뜯어낼 수 있었는데.”

 싸늘하게 웃은 피터가 어안이 벙벙해져 눈만 굴리고 있는 웨이드를 뒤로 한 채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걸어가다가 돌아서서 다시 웨이드에게로 성큼성큼 걸어와 먹다 만 타코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뭐? 거실이 엉망이 돼서 미안하다고요? 빨리 청소할 수 있다고요? 죽지 않는다는 걸 알아도 친구가 배에 총 맞은 걸 보는 사람 심정을 당신이 알아요? 나 참. 제가 총 맞았다고 생각해보세요. 죽지 않으면 아프지도 않아요? 아니잖아요. 앞으론 당신 핸드폰 안 건드릴게요! 제가 당신이 숨겨둔 부인한테 머리채 잡히는 일만 없게 해줘요, 알겠어요?”

 피터의 고함에 웨이드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고, 피터는 본인이 할 수 있는 한 비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앞으로 일주일간 타코는 금지예요. 저런 일이 또 한 번 발견되면 영원히 금지할 거예요. 여어어어어엉원히.”

 마지막 음절과 함께 먹다 남은 타코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쓰레기통으로 추락했고, 절망한 웨이드의 몸이 소파 위로 쓰러졌다.


* * *

 일주일이 지난 후로 웨이드가 타코를 금지당하는 일은 없었다. 다만, 웨이드의 핸드폰은 이전보다 더 자주 울리기 시작했고, 종내엔 계속해서 오는 전화로 인해 핸드폰 진동이 끊이질 않게 될 지경이 되었지만 웨이드는 여전히 핸드폰을 끌 생각은 없는 듯 알림 설정을 무음으로 바꾼 뒤 충전기에 하루 종일 꽂아둘 뿐이었다.

 번호는 늘 바뀌었고, 핸드폰의 LED등 불빛도 각양각색이었지만, 피터가 알아낼 수 있는 건 그게 다였다.

 그라고 화면에 뜬 번호로 전화할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피터가 전화 받는 것을 꺼리고 웨이드 본인도 그 전화를 피하면서도 어째서 연락처를 대놓고 보이게 두는지 이해하지 못하던 피터는 대여섯 개의 번호를 시도해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번호들은 하나같이 없는 번호라는 무미건조한 음성과 함께 끊어졌고, 최근 피터의 가설은 그가 사채를 쓰고 도망친 한량이란 거였다. 아니면 유령에게 쫓기거나.

 어쨌거나 늘 느긋해 보이는 웨이드임에도 불구하고 휴대폰으로 시선이 닿을 때면 그의 눈동자는 늘 불안으로 가득 찼고, 그럼에도 그 핸드폰을 버리지 않는 이유를 모르는 피터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최근 늘어난 밤 외출 또한 그의 의심을 증폭시키는 요인 중 하나였다.

 피터를 깨우지 않기 위해서인 건지, 아니면 몰래 나가기 위해선건지 모를 숨죽인 발자국 소리가 조용히 닫히는 현관문 소리와 함께 사라진 뒤 침실에서 나가면 늘상 충전기에 꽂혀있던 휴대폰도 사라진 채였고, 몇 번이고 웨이드의 뒤를 쫓으려고 해봤지만 빌런을 쫓는 데면 늘 도움을 주던 스파이더 센스마저도 작동하길 거부하는 마당에 신출귀몰한 웨이드를 쫓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그가 생각해낸 방법은 추적기였고, 핸드폰에 붙은 추적기를 따라 이동하던 그는 어느 골목에서 쏟아진 푸른 불빛에 드러난 웨이드의 모습을 보곤 몸을 숨긴 채 빛이 쏟아진 골목을 끼고 있는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해봤자 2층 높이인 건물 옥상에 오르는 건 식은 죽 먹이였고, 이내 옥상 난간 뒤에 숨어 고개를 내민 그는 아까보다 어두워진 푸른 불빛 아래 드러난 모습에 숨을 삼켰다.

 거기엔 자신의 것과 거의 비슷해보이지만 등에 거미가 새겨진 검은 색과 붉은 빛의 수트를 입은 사내가 피터를 등지고 푸른빛이 새어나오는 손목을 향해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안녕, 가짜 스파이더맨.”

 익숙한 목소리에 시선을 돌리자 골목으로 막 들어선 데드풀이 총을 꺼내 든 채 건들거리며 사내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고, 고개를 살짝 돌려 데드풀을 흘깃 쳐다본 사내가 냉소적인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가짜? 더 나은, 스파이더맨이겠지.”

 손목에서 나오던 푸른 불빛이 크게 흔들렸고 사내가 불빛이 나오고 있는 손목을 흔들며 말을 이었다.

 “그보다 넌 눈치 챘나 보군. 네가 존경하는 그 스파이더맨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던데. 그것만 봐도 내가 더 나은 스파이더맨이란 걸 모르겠나?”
 “그 쪽은 네 말대로 덜 떨어졌다 하더라도 스파이더맨이고, 넌 애초에 스파이더맨이라고 볼 수가 없지. 네 정의감엔 스파이더맨 캐치프레이즈가 없잖아. 여러분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이나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같은 거 말야. 뭣보다 진정성이나 절박함도 없고.”

 웨이드가 뭐라 하건 말건 다시 손목에서 나오는 불빛에 집중하기 시작한 사내는 대답을 하지 않은 채로 열중했고,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 듯 했던 웨이드가 신랄한 어조로 공격했다.

 “아, 그래. 적어도 절박함은 있더라. 끝에 다다라서는 말이야. 적어도 난 그렇게 봤어. 놀랍지 않아? 내가 니 코믹스 라인을 다 봤다는 게?”

 희미했던 푸른 불빛은 조금 더 밝아지는 대신 점멸하기 시작했고 신경질 적으로 한숨을 내쉰 사내가 빛을 뿜고 있는 팔을 내린 채 웨이드를 향해 돌아섰다. 그 덕에 사내의 손목에서 나오는 불빛의 정체를 보게 된 피터는 눈을 가늘게 떴다.

 빛을 뿜고 있는 건, 희안하게 생긴 손목장치였다.


 “여전히 알 수 없는 헛소리만 지껄이는 군! 정의감, 그래! 정의감! 그래서 이렇게 팔자 좋은 곳에 눌러앉았나, 웨이드 윌슨? 늘상 스파이더맨이 없으면 죽고 못 살 것처럼 굴은 행동들이나 지금 나에게 한 말들과 네 행동이 모순된다고 생각하지 않아? 네가 그토록 좋아하는 ‘그’ 스파이더맨들이 온 세상에서 죽어가는 마당에?”
 “너도 알다시피 언제나 탈출구는 있어.”
 “네가 아는 스파이더맨들이 그 탈출구로 도망치는 인물들이긴 하고?”

 냉소적으로 말한 사내는 다시 손목장치로 관심을 돌렸고, 미간을 구긴 채 팔짱을 낀 웨이드가 사내만큼이나 냉소적인 어조로 대답했다.

 “언젠간 탈출하는 법을 배우게 되겠지. 그리고 언젠간 탈출구를 찾게 될 거야. 아직 찾지 못 찾았을 뿐이라고. 하긴, 네 말대로 탈출할 인간들도, 탈출구를 찾을 인간들도 아니지. 아니, 그렇게 만들어진 건가? 아니!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솔직히 말해서 어차피 몇 명 빼곤 필요하면 다시 다 살릴 속셈들인데! 굳이 그들이 짜놓은 판에 내가 낄 필욘 없지. 낄 수 있는 지조차 지금은 미지수야.”
 “여전히 궁지에 몰리면 헛소리만 지껄이는 군. 어중이 떠중이처럼 이쪽에서 일했다 저쪽에서 일했다 하는 용병다워, 데드풀.”
 “멸종은, 너희만의 문제가 아니야, 슈페리어 스파이더맨.”

 으르렁거리듯 낮아진 목소리에 슈페리어 스파이더맨이라 불린 사내의 고개가 올라갔지만 흘깃 쳐다본 게 전부였고, 팔짱을 낀 채로 손에 들고 있는 총을 까닥이기 시작한 웨이드가 이를 갈며 말했다.

 “불 타고 있는 건 너네 세계뿐이 아니라고. 누구에게나 천적이 있어. 제 3차 대멸종이라고 들어는 봤어?”
 “하하. 그래서 본인은 거기서부터 탈출할 탈출구를 찾으셨다 이 말인가? 탈출하기 전에 탈출구 위에 적혀있는 명패는 확인해봤어? 내 생각엔 쥐구멍이나 도망자라고 적혀있었을 거 같은데. 그런 건 확실히 해야 좋거든.”

 낮고 빠르게 말하는 사내의 시선은 여전히 손목에 가있었고, 총을 쥔 웨이드의 손에 힘이 들어간 것을 발견한 피터는 그를 지금 나가서 잡아야 할지 아니면 지금 저 둘이 하는 말을 더 들어야 할지 망설였다.

 “너야 말로 살아남는 거라면 일가견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래서 여기로 왔잖아.”

 평이한 어조로 대답한 사내의 눈조리개가 가늘어졌다 이내 정상 크기로 돌아왔고, 잠시 그런 사내를 노려보던 웨이드가 신경질적인 어조로 말을 이었다.

 “네가 아무리 더 나은 스파이더맨이라고 말해봤자 네 세계는 그 얇고 찢어지기 쉬운 이차원이야. 네가 최근 본 것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수없이 많은 차원을 난 봐왔어. 그 대가가 너무 비싸서 넌 감히 엿볼 엄두도 못 내는, 그런 차원을.”
 “그건 네가 도망자에 불과하다는 내 주장에 뒷받침밖에 안 돼, 데드풀. 그 대가를 치르고 선택한 결과가 이거라고? 스파이더맨과 맞서 싸우던 나조차도 그 징글징글한 거미떼들에 둘러싸여 같이 살아보자고 이딴 짓거리를 하고 있는데 말이야. 그러고 보니 희얀한 게 하나 있긴 했지. 그 징글징글한 거미떼가 지나치게 깨끗하더라고. 난 솔직히 그 드글드글한 거미들 사이에 종양 덩어리 한 두 개 정도는 껴있을 줄 알았는데 종양이라곤 조직세포 검사 할 만큼도 없더군. 뭐, 스파이더맨을 존경하니 사랑하니 하던 것도 다 그 미친 헛짓거리 중 하나였나 보지?”

 손목에서 시선을 뗀 사내는 이제 아예 대놓고 비아냥거리고 있었고 비난어린 목소리로 웨이드가 속삭이듯 말했다.

 “난 이미 내 스파이더맨을 잃었어. 그리고 그나마 잃을 가능성이 제일 낮은 스파이더맨을 찾아 온 거야. 내가 아는 스파이더맨들이라면 아무도 여길 찾지 않을 줄 알았거든.”
 “……틀린 말은 아니야. 다들 여긴 가봤자 소용없다고 하면서 리스트에서 지웠거든.”
 “그럼 그냥 그대로 꺼져, 닥터 옥토푸스. 넌 내가 뭔 말을 해도 이해하지 못 할 테니까. 그러고 보면 그 자식들이 하는 일이 틀리다고만 할 수는 없겠어. 죽이고 살리고, 죽이고 살리고- 이젠 지겨워, 지겹다고! 왜 그냥 해피엔딩으로 끝내지를 않는 거야?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가 디즈니 엔딩 아닌가? 아니면 그 엔딩도 자본주의에 무릎이라도 꿇었대?”
 “헛소리라면 그만하는 게 좋겠어. 그보다-”

 사내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로 손가락을 튕겼고, 그 순간 피터가 숨어있는 자리 위로 떠오른 거미 형태의 비행체가 빛을 뿜어냈다.

 “벌레가 하나 있는 거 같은데.”

 빛과 함께 피터의 모습이 드러나자 마스크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피터는 웨이드의 얼굴이 구겨질 때로 구겨졌다는 걸 깨달았고 재빨리 비행체를 공격해 떨어뜨린 뒤 웨이드와 사내 사이에 끼어들었다.

 피터의 어깨 위로 뻗어진 팔 끝엔 총이 쥐어져 있었고, 철컥이는 소리와 함께 총이 장전되었다.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린 사내의 손목의 장치는 이제 안정적인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난 그저 도움을 요청하러 온 것뿐이야. 다른 거미들은 여기가 닫힌 세계라고 하더군. 아니나 다를까 아주 평화로워. 네가 여기서 평화로운 일상을 즐기는 동안 다른 거미들은 활활 불타고 있거든, 스파이더맨. 흠, 그것보단 거미 전용 살충제가 대량 살포됐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군. 받아.”

 주먹이 쥐어져 있던 다른 손에서 던져진 기계는 허공에 떠 있던 그 짧은 순간에 웨이드의 총에 맞고 날아갔고, 혀를 찬 사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공식적으로 난 어쨌거나 여기에 불시착한 거고 그 과정에서 시계를 하나 잃은 셈 쳐야겠군. 좋은 핑계거리 아주, 고마워, 데드풀. 그 시퍼런 놈 표현을 따르자면 여기가 닫힌 세계라는데, 그게 니가 말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인가?”

 비웃음 가득한 사내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총알이 그의 마스크를 스치듯 지나가 뒤쪽 벽에 박혔지만 여유롭게 낮은 소리로 웃은 사내가 사라지기 시작한 자신의 발끝을 눈짓하며 말을 이었다.

 “한 대 치기 전에 난 이만 가보지. 이래봬도 꽤나 중요한 인물이라서 말이야.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아보라고, 데드풀.”

 사내는 맨처음 골목 밖에서 보았던 폭발하는 듯 하는 푸른빛과 함께 사라져버렸고, 여전히 사내의 빈자리를 향해 뻗어진 팔을 잡아내린 뒤 돌아선 피터는 웨이드가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겼다.

 그의 예상대로 웨이드의 얼굴은 구겨질 대로 구겨진 채였고, 누구보다 위로가 필요해보였지만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를 넘길 수 없었던 피터는 그를 위해 침묵하라는 마음 속 속삭임은 눌러 넣은 채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설명할 일이 아주 많은 것 같은데요, 데드풀.”

 

* * *

 웨이드의 설명은 길었다.

 웨이드가 피터의 세계로 온 건 말 그대로 도망이었고, 수많은 평행세계에서 죽어가고 있고 죽이고 있는 자신들을 피하기 위한 도피였다. 끊임없이 걸려오던 전화는 그들의 전화였다.

 피터가 살고 있는 세계는 일명 닫힌 세계로 그웬 스테이시가 죽고 그가 라이노를 물리친 날로 더 이상 진행이 없는 세계로 그가 ‘그럭저럭’ 평화롭다 말하던 날들이 그 반증이라는 게 웨이드의 설명이었다.

 방금 그 사내가 한 이야기에 대한 설명은 비교적 간단했다. 저 바깥 차원 어딘가엔 차원을 이동하며 스파이더맨의 정수를 흡수하는 빌런이 있고, 그 빌런들이 대대적인 사냥을 시작했으며 그 사냥을 막기 위해 모든 차원의 스파이더맨이 모이고 있는 중이라는 것.

 “아까 이야기한 스파이더맨 이야기는 뭐예요? 당신 세계의 스파이더맨도 그 빌런에게 당한 건가요?”
 “아니.”
 “그럼요?”
 “날 구하다 죽었어.”
 “당신은-”
 “그렇게 멍청한 죽음이 어딨어? 죽지 않는 놈이 죽을 까봐 다시 못 구하는 자기 목숨을 버리는 죽음이.”

 조용한 목소리로 읊조린 웨이드는 내내 바닥으로 향해 있던 시선을 들어 피터와 눈을 맞췄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알잖아요. 내가 갈 거라는 거.”
 “저 새끼가 왜 왔는지 몰라? 네가 이럴 걸 알고 온 거야. 다른 스파이더맨들이 오만 스파이더맨을 다 모으면서 왜 널 빼놨는지 알아? 닫힌 세계? 그딴 게 어딨어! 넌 거기 가면 무조건 죽을 걸 알고 뺄 거라고! 그걸 저 새끼가 알면 널 일회용 쓰듯 쓰고 버릴 거라는 걸 알고 둘러댄 거고!”
 “그럼 더더욱 가야겠네요. 어쨌거나 내가 필요하단 거잖아요.”
 “난, 이 모든 상황을 알고 널 찾아온 거야. 다른 스파이더맨이 찾지 않을 유일한 스파이더맨을 찾아서. 절대로 죽지 않을 스파이더맨을 찾아서.”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죠. 죽지 않는 사람은 없어요.”
 “날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당신은 수없이 죽음을 겪었잖아요. 다른 사람은 한 번으로도 힘든 죽음을 수없이요.”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
 “그거 없인 스파이더맨이 아니라면서요?”

 엷게 웃는 피터를 향해 비식 웃은 웨이드가 여전히 잡혀있는 팔을 재빨리 틀어 빼낸 뒤 총을 장전한 뒤 피터의 오른손을 겨눴다.

 “미안. 그래서 너희를 좋아하긴 하는데 너흰 너무 착해빠졌어.”

 날카로운 총성과 함께 오른손을 움켜쥐고 피터가 쓰러졌고, 다시 총을 장전한 웨이드가 이번엔 그의 왼손을 겨눴다.

 “그리고 난 이제 착한 사람들이 죽는 영화는 지겹고.”

 다시 한 번 총성이 허공을 갈랐다. 신음하는 피터의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으로 구급차를 부른 웨이드는 그를 지나쳐 바닥에 떨어져 있던 기계 장치를 주워 파우치에 넣은 뒤 벨트에 고정된 장치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잘 있어, 스파이디. 난 이제 이 모든 걸 끝낼 준비가 된 거 같거든. 난, 내 탈출구를 찾았어.”

 

- 쓰면서 들은 노래 : https://youtu.be/P6btN_cdL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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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의 뉴욕은 고요했다.


 원래도 낮보다야 고요했지만, 근래 들어 매일같이 한 건씩 일어나는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밤에 돌아다닐 용감한 범죄자는 없었고, 어쨌거나 살인범이 있다는 사실에 겁에 질린 시민들도 일찍 귀가하기 시작한지 오래였다.


 익숙지 않은 고요함 속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던 피터는 아래쪽에서 들려온 둔탁한 소리에 재빨리 옥상 난간 아래로 뛰어내렸다.


 “자, 다들 동작 그만! 여러분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이-”

 

 피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내를 구석으로 몰고 있던 사람이 악마라도 본 것 마냥 화들짝 놀라며 피터를 멀찌감치 피해 골목 밖으로 도망쳤고, 피터가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태평하게 골목에서 걸어 나온 사내가 피터에게 불쑥 손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요……? 한 것도 없는 데요.”


 피터의 말에 비죽 웃은 사내가 어쨌거나 스파이더맨 덕이라며 피터를 지나쳐 걸어가기 시작했고 어디선가 들은 듯한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피터가 이내 옥상 난간에서, 그리고 빙수집에서 마주쳤던 사람이었다는 걸 깨닫곤 재빨리 그를 따라잡아 붙잡아 세웠다.


 “뉴스 안 보세요? 요새 살인범 돌아다닌다는 소식도 못 들으셨어요?”

 “봅니다. 그 살인범 범죄자만 잡는다면서요. 하긴 조나 제임슨 말론 스파이더맨이 종적을 감췄다던데, 여기 있는 거 보면 뉴스를 믿어도 되는 건가 싶긴 하네요.”

 “흠흠, 좀 쉬었던 것뿐이에요. 어쨌든 할 일도 없는데 데려다드릴게요!”


 대화를 하는 내내 고개를 숙인 채 모자챙 아래로 얼굴을 숨기고 있던 사내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고, 웃음을 허락의 뜻으로 받아들인 피터가 그의 옆에 서서 어서 가자는 시늉을 하자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제가 살인범일 수도 있는데, 안 무섭나 보죠?”

 “설마 살인범이세요?”

 “글쎄요…….”


 피터의 장난스런 물음에 말끝을 흐린 사내가 어깨를 으쓱인 뒤 가던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피터가 그의 집 방향이 그 쪽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은 건 나중의 일이었다.


 * * *


 늘 그렇듯 그 곳은 고요했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별들이 가득 찬 하늘을 쳐다보던 그는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냉기에 고개를 돌렸고, 그 곳엔 그 어느 빛도 허용하지 않는 그림자가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얼마 안 남았어.”

 [리스트는 계속 생겨날 거야. 늘 그랬잖아. 오늘도 봐바. 그 쪼그만 녀석이 다시 거리로 나왔다고.]

 “그거야 우리가 너무 많이 죽여서 그렇지. 적당히 텀을 둬야 하는데-”

 [그러다 죽으면?]


 섬뜩한 내용과 달리 웃음기 섞인 목소리에선 즐거움이 묻어나고 있었고, 웃는 있는 사람처럼 일렁이는 그림자를 응시하던 데드풀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끝없이 펼쳐진 공간에 있어야 할 이는 없었다.


 [데스라면 네가 벌인 일 때문에 무척 바빠.]

 “아니면 그냥 내가 보기 싫을 수도 있지.”

 [데스가 죽음을 마다한다니, 그보다 웃긴 농담은 없었어, 웨이드. 역시 넌 웃겨.]

 “웃기라고 한 소린 아니었는데 둘 중 하나라도 즐겁다니 다행이네.”

 [날이 밝는군.]

 “일 하나는 정말 끝내주게 잘하는 힐링 팩터라니까.”


 신랄하게 빈 공간을 채우던 말은 끝에 가서 어그러졌고, 아직 덜 아문 듯 늘어져있는 턱을 끼워 맞춘 데드풀은 화장실 앞으로 늘어진 푸른 그림자를 확인한 뒤 다시, 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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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이 된 거리는 부산했다. 그늘막을 잔뜩 내린 가게 유리벽엔 여름 특선 메뉴 포스터들이 붙어있었고, 바싹 마른 보도블럭을 적시는 건, 아이스 음료에서 흘러내린 물방울이 유일했다. 더위를 식힐 비는 도시를 찾지 않은지 오래였고, 태양이 작열하는 거리 위의 사람들은 짧은 옷을 입은 채 제각기 할 일에 몰두한 채 거리를 오가고 있었다.


 고민 끝에 수트를 집에 두고 다니기 시작한 피터는 그 거리를 걸어서 하교를 하는 중이었고, 줄지어 있는 포스터들을 보다 결국 유혹에 못 이겨 얼마 전 열었다는 빙수집의 문을 열었다.  가게는 아마도 그와 같은 이유로 가게를 찾은 이들로 가득 차 있었고, 빙수를 든 채로 자리를 찾아 헤매던 그는, 이상하게 비어있는 창문가 자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창문을 따라 길게 놓여진 테이블은 가운데에 앉은 사내 양 옆으로 자리가 비어있었고, 피터는 테이블 가까이로 가서야 왜 그의 양 옆으로 자리가 비어있는지 깨닫곤 고개를 저으며 비어있는 자리로 다가가 사내에게 물었다.


 “여기 자리 있나요?”


 딸기시럽이 가득 올려진 빙수를 막 푸던 사내가 고개를 저었고, 감사하단 인사를 한 피터는 건너편 거리의 전광판에서 나오는 뉴스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스파이더맨 노릇을 멈추건 말건 살인사건은 계속되고 있었다. 뉴스 기사와 별개로 사태를 대충 파악한 듯한 범죄자들이 뉴욕시를 벗어나기 시작한 때도 있었지만, 그 사실을 어떻게 눈치 챈 건지 범인은 그들이 벗어나기 바로 전날 혹은 벗어나는 그 날 그 사람들부터 살해했고, 암암리에 퍼진 소문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그러다 다 녹으면 차가운 죽 먹어야 될 걸.”

 “네?”

 

 피터의 되물음에 사내는 말없이 숟가락으로 이미 녹기 시작한 빙수를 가리켰고, 아니나다를까 빙수는 이미 형태를 잃고 무너진 상태였다. 한숨을 내쉬고 빙수를 숟가락으로 찔러 섞던 피터는 뒤늦게 사내의 목소리를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다는 생각에 자신의 옆자리로 고개를 돌렸지만 사내는 이미 자리를 뜬 후였다.


 * * *


 “똑똑, 똑똑똑, 똑, 똑.”


 리듬감 있는 노크소리가 방 안으로 울려 퍼지자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웅크리고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물쇠로 떡칠이 된 문을 열기 전 문구멍으로 현관문 밖에 누가 있는지 확인한 그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고, 현관문 바로 밖에 있는 상자를 문 안으로 끌어오던 그는 시선 끝에 걸린 어둠 속의 사내를 발견하곤 재빨리 문을 닫으려했다. 하지만, 그의 비명이 목구멍을 나가기도 전에 총구가 그의 입을 비틀어 막았고, 밝은 빛과 함께 그의 몸이 현관바닥으로 쓰러졌다. 총구에 묻은 피를 대충 털은 사내는 현관문 밖에 있던 상자를 발로 밀어 넣은 뒤 조용히 현관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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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면서 들은 노래 : Mumford & Sons - Broken Crown.


 그는,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중이었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로 그는 밤거리를 달리고 있었고, 평소라면 질색을 할 그 시뻘건 수트가 근처에라도 보이길 간절히 기도했다. 어쨌거나 이럴 때 이 뉴욕시에서 도움을 요청할 이라면 그뿐이 없지 않은가.


 몰이라도 당하듯 대로변에서 조금 더 작은 거리로, 그리고 거리에서 골목으로, 골목에서 막다른 길에 당도한 그는 거친 숨을 헐떡이며 다 죽어가는 가로등 불빛을 향해 몸을 돌렸지만, 그 곳에 스치듯 보았던 빛은 없었다.


 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아 번득이는 칼날이 그의 턱 아래에 들어왔고, 서늘한 감촉에 헐떡이던 숨을 들이쉰 그의 코를 비릿한 향이 가득 메웠다.


 “사, 살려주세요!”

 “글쎄.”


 싸늘한 목소리에 자비심은 없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늘을 쳐다보느라 치켜 올라간 그의 턱선을 따라 칼날이 미끄러져 들어왔다.


 “신에게 기도라도 하게? 아니면-”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한 이는, 대답 따윈 바라지 않는다는 듯 칼을 그대로 그었고, 그는 날카로운 통증과 함께 무언가 흘러내리는 걸 느끼며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번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차가운 쇳덩이가 그의 이마로 닿았고, 구름 사이로 드러난 별빛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가 한껏 웃으며 말을 맺었다.


 “스파이더맨이라도 찾는 건가.”


* * *


 토니의 사무실 방문 이후로 뉴스를 챙겨보기 시작한 그는, 사이트 메인에 뜬 뉴스 기사를 클릭해보곤 이를 악물었다.


 「또 다른 범죄자 사체 발견! 정의의 사도인가, 빌런인가.」


 경찰도, 토니도, 피터도 그 피해자들이 스파이더맨에게 잡혔던 범죄자인 게 밝혀지길 원치 않았고, 이해관계가 일치한 세 측은 피터의 이야기만 빠진 정보를 신문사들에 넘겼다. 사람들은 여전히 정체모를 이가 흉악범을 잡는 거라 생각했고, 몇몇 사람들은 그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상태였다.


 그 아파트를 발견한 뒤 경찰은 타 지역으로 이동한 범죄자들 중 조건에 부합한 이들을 추적했고 그들의 시체를 찾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단순히 범죄자들끼리의 다툼 중에 사망한 것으로 생각한 타 지역의 경찰들은 다른 수사에 집중하고 있었고, 뉴욕에서 발견된 시체 더미가 아니었더라면, 그들의 사망은 여전히 미제 사건으로 그저 묻혀있었을 터였다.


 아파트가 발견된 뒤 범인은 시체 숨기기를 포기한 듯, 사건 현장에 그대로 시체를 남겨두었지만, 거기서 발견되는 증거는 없었다. 하나 같이 뒷골목에서 등장하는 시체들에 질린 경찰들은 온 도시의 CCTV를 뒤져가며 범인 찾기에 몰두 중이었지만, 그 수많은 CCTV 중 그 어떤 것도 범인이나 피해자의 모습을 잡은 건 없었다.


 “이쯤 되면 이 노릇을 관둬야 되나 싶기도 하고.”

 “서커스단처럼 남의 집 비상계단 난간에 걸터앉는 거 말이라면 관두는 게 나을 거 같은데?”


 갑자기 들려온 퉁명스런 목소리에 놀란 피터가 휘청거렸고, 재빨리 그의 팔을 잡아챈 사내는 그가 난간에서 내려올 때까지 기다린 뒤 팔짱을 끼고 훈수하기 시작했다.


 “여기가 8층인 건 알지?”

 “넵.”

 “일찍 생 마감하고 싶은 생각 아니면 난간 위에 올라앉아 있는 노릇은 그만하는 게 좋겠어.”

 “원랜 안 이러거든요? 근데 오늘은 컨디션이 좀 안 좋나 봐요.”


 컨디션이 안 좋다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잠시 올라갔던 모자챙은 그의 시선이 얼굴에 닿기도 전에 빠르게 내려갔고, 주머니에 손을 꽂은 사내가 잠시 그의 발끝을 응시하다 말을 이었다.


 “그럼 계단에 걸터앉아있으면 되잖아.”

 “그럼 통행에 방해되잖아요.”

 “8층 난간에서 청소년이 자살한 건물 되는 것보단 그게 나을 거 같은데.”

 “애초에 여긴 비상계단인데 비상상황이세요?”

 “화장실이 급하거든.”


 신경이 날카로웠던 탓에 비딱한 어조로 대답하던 피터는 태평한 어조로 화장실 소리를 하는 사내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고, 피식 웃은 사내는 어깨만 으쓱한 채 그대로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사내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냄새가 익숙하면서도 불쾌하단 생각에 그 냄새가 뭔지 고민하던 피터는 핸드폰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리고 있단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고, 화면에 뜬 메이 숙모의 이름을 보곤 전화를 받으며 그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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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 안을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을 흘깃대던 피터는 명랑한 소리를 내며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올라 생각에 잠겼다.


 평소와 달리 싸늘한 목소리로 전화한 토니는 빌런을 잡던 중이더라도 지금 당장 그의 사무실로 오라고 나지막이 말했고, 무슨 일이냐고 묻는 피터에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일단 오라는 말만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 말 한 마디당 최소 두 세마디는 농담을 하던 토니였기에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심각한 일일 거라 생각한 피터는 집에 일이 생겼다는 핑계로 학교 수업도 빼먹은 채로 교실을 나섰고, 교문 앞에 서있는 검은 색 차를 보곤 자신의 예상보다 심각한 일이 생긴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긴장한 상태였다.


 차 안에서 수트로 갈아입으라고 했다고 말한 해피는 그가 뭔가 말을 하기도 전에 가림막을 올려버렸고, 그의 손은 이미 식은땀으로 젖은 상태였다. 수트가 끊임없이 그의 땀을 날려버렸지만, 그 때마다 나온 땀은 그의 손을 끊임없이 적셨고, 그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가설들이 떠올랐다 사라져갔다.


 그렇게 세워졌던 수많은 가설들은 그가 사무실 안의 또 다른 사람을 발견하자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고, 멍하니 서있는 그에게 다가온 경찰복을 입은 사람이 그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스파이더맨.”

 “캐런, 스파이더맨 목소리 변조 기능 키고, 스파이더맨, 여긴 이번 수사를 맡은 수사관이야.”

 “어, 저도 반갑습니다? 근데 수사요?”


 말없이 손짓으로 그에게 따라오란 시늉을 한 토니가 빠르게 걸어 스크린 하나를 허공에 띄웠고, 스크린에 뜬 머그샷들을 찬찬히 살피던 피터는 그런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수사관의 시선을 피해 토니에게 물었다.


 “이게 다 뭐예요, 토니?”

 “어제 나온 뉴스의 시체들 중 신원이 파악된 사람들입니다.”

 

 토니를 대신해 대답한 수사관은 피터가 어리둥절해 있는 걸 눈치 챈 듯 한숨을 내쉬더니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자고 토니에게 말했고, 모두가 착석할 때까지 기다린 수사관이 내내 들고 있던 파일을 꺼내 사진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뉴스를 안 본 것 같으니 말씀드리죠. 어제 뉴욕 한 아파트에서 심한 악취가 난다는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종종 고독사 사건이 있어서 경관 하나가 방문해서 집주인과 함께 문을 땄고요. 근데 그 안이 온통 시체더랍니다. 신원 파악하는데 고생 좀 했죠. 아시다시피 이제 곧 여름이잖아요?”


 마지막 사진을 내려놓은 수사관이 턱을 괴고 있는 토니를 흘깃 쳐다본 뒤 열심히 사진을 살피고 있는 피터를 향해 물었다.


 “아는 얼굴이 있나요?”

 “음, 거의 다 아는 얼굴들 같은데요.”

 “한 해에 당신이 우리 관할 경찰서로 넘기는 범죄자 수가 얼만지 압니까?”

 “음, 아니요.”

 “이번에 알게 생겼습니다.”


 수사관에 말에 사진을 보느라 숙이고 있던 피터의 고개가 번쩍 들렸고, 한껏 벌어진 렌즈 모양을 한참 쳐다보던 수사관은 그와 시선을 맞추는 대신 사진으로 시선을 돌린 채 말을 이었다.


 “유례없는 살인사건이라 모든 경찰관, 수사관이 이 사건에 매달려서 공통점을 찾으려고 애를 썼죠. 지인, 전과, 지역, 성별, 인종, 다 따져봤는데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설마 지금 제가 용의선상에 오른 건 아니죠?”

 “그럴 리가요. 용의선상은 아니고, 피해자들 공통점이 당신이었습니다.”

 “네?”


 차분한 표정으로 피터와 눈을 맞춘 수사관은 토니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침묵이 이어지자, 테이블이라도 뚫을 기세로 머그샷들을 노려보던 토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첫째, 스파이더맨에게 잡힌 전적이 있을 것. 이건 뉴욕시 대부분의 잡범이나 빌런이 해당되는 거라 수사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정보였지. 중요한 건 두 번째 공통점이었어. 두 번 이상 같은 범죄를 저질렀거나 혹은-”

 “혹은 당신에게 위해를 가했거나 가하려고 했던 사람들.”

 “그 중에는 죄를 정말로 뉘우치고 잘 살고 있는 사람도 포함이었어. 진짜로 그냥 기회가 한 번 더 필요했던 사람 말이야, 스파이디. 중요한 건-”

 “범인을 잡는 거겠네요. 그래서 저를 급히 찾으신 거고요.”

 “그건 경찰이 할 일이지. 내게 중요하고, 내가 지금 궁금한 건, 이 인사가 너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 지야.”


 이어진 토니의 말에 난처한 표정을 한 채 고개를 떨군 수사관과 달리 심각한 목소리로 말한 토니가 피터를 똑바로 응시했고,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깨달은 피터가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주먹을 쥐었다. 등받이에서 등을 뗀 수사관이 테이블에 늘어놓았던 사진을 하나씩 집어 들기 시작했고, 말없이 피터를 쳐다보던 토니도 본인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피해자가 범죄자라고 수사를 멈출 순 없죠. 세상 살다 살다 범죄자들 보호를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어쨌든 뭐 범죄자라고 목숨이 여러 개인 것도 아니고, 우리가 지켜주지 않아도 될 사람은 아니니까 어쩔 순 없는데, 문제는 다음 순서가 누군지 모른다는 거예요. 그도 그럴게-”

 “수사 기록에 제 이름은 안 올라가니까요.”


 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수사관이 어두운 표정으로 마지막 사진을 집어 들었고, 뒤늦게 사진 속 인물을 알아본 피터의 시선이 사진으로 향한 걸 알아본 수사관이 사진을 흔들며 씁쓸하게 말했다.


 “생활고에 몰려서 강도짓 했던 사람이었죠? 그러다 출소해서 나름 잘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말이에요.”

 “말은 제대로 하셔야죠. 강도 미수였어요. 미수였다고요. 근데-”

 “문제라면 당신과 몸싸움하면서 칼을 들었다는 거였겠죠, 범인한테는?”


 피터가 끝맺지 못한 말을 맺은 수사관은 마지막 사진까지 파일에 넣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를 따라 일어난 피터에게 수사관이 손을 내밀었다.


 “일단은 정보 수집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습니다. 몸 조심해요, 스파이더맨.”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의 손을 꽉 잡은 수사관은 토니에게 짧은 인사를 건넨 뒤 방 밖으로 빠져나갔다. 수트의 기능들이 무색하게 피터의 손은 식은땀에 젖어 축축한 상태였고, 건물 밖으론 사이렌 소리가 쟁쟁하게 울리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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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면서 들은 노래 : Zack Hemsey - "The Way (Instrumental)“


 그는, 추락하는 별들 사이에 서있었다. 세상만사에 달관한 듯 보였던 달은 이미 꽁무니를 빼고 달아난 지 오래였다. 추락한 별의 빛은 땅 위로 번져, 비명조차 삼켜버리는 불꽃이 되었고, 수많은 생명들이 그 불꽃에 삼켜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그를 잡아먹을 듯 건물을 타고 올라오는 불꽃 속에서 그는, 여전히 타오를 별들이 남은 하늘을 노려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는 안 됐어.”


 별들이 비운 자리를 채운 어둠이 번들거리며 다음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지상에 깔려있어야 할 어둠이 하늘을 채우느라 비운 자리는, 추락한 별들의 비명이 채우고 있었다.


 “양심이 있다면! 이 세상에 순리라는 게 있다면!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고!”

 [뭘?]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그는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천천히 몸을 돌렸고, 그 어느 때보다 환한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그늘이 진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다시 그에게 물어왔다.


 [뭘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그 앤 세상에 마지막 남은 친절이었어.”

 [글쎄. 모든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기 마련이잖아. 자기만족이었을 거야.]

 “그럼 더더욱 안 되지. 남을 돕는 걸로 만족하는 애를 그렇게 빨리 데려간다고?”

 [위로를 바라는 거라면 이런 말도 있어. 신이 사랑해서 먼저 데려간 거라고.]


 냉소적으로 말한 이는 여전히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였고, 그는, 그 어둠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검을 빼들었다.


 “죽지 않을 수도 있었어.”

 [세상 모든 슬픔은 만약, 이란 단어에서 나오지. 안 그래?]

 “내가 해결할 수도 있었어.”

 [무슨 수로?]

 “그 애한테 미움 받을 게 두려워서 발을 뺀 게 잘못이었어.”


 그의 그림자는 이미 어둠 속에 맞닿은 채였고, 어둠 속으로 향한 검 끝은, 빛을 반사하지 못한 채 짙은 어둠 속에 잠겨들었다.


 “이 세계는 글렀어.”

 [하지만 세계가 하나만 있는 건 아니지.]

 “어정쩡한 우정을 바라고 알랑대느니 어둠 속에 살지언정 평형을 맞추는 일을 하겠어.”

 [그러면 그 애가 다신 아는 체도 안할 텐데?]

 “친구 놀음이라면 실컷 한 거 같은데. 영웅 놀음도 실컷 해봤고.”

 

 신랄한 그의 말에 어둠 속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고,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손이 그의 검 끝을 휘감았다.


 [내 세계로 온 걸 환영해, 웨이드 윌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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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ken Crown #08

썰/덷거미덷 2018. 1. 25. 13:39 |

Chapter 08_Absence

 

 [스파이디, 허니! 자기가 무슨 일로 전화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바빠서 전화를 받을 수가 없네. 데이트 일정이라면 1번 팀업 일정이라면 2번 이도 저도 아니고 나한테 급하게 할 말이 있는 거라면 가령 사랑한다던가- 3번을 눌러줘!]

 

 방정맞게 이어진 말은 이내 통화 종료 음과 함께 끝이 났고, 몇 번의 통화 끝에 애초에 번호를 눌러도 다를 게 없다는 걸 깨달은 피터는 까맣게 변해가는 핸드폰 커버를 닫은 뒤 텅 빈 채 먼지가 쌓여있는 데드풀의 집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먼지가 쌓인 것 외에 자기가 본 이래 가장 깨끗한 집은 식탁 위의 파랗게 곰팡이가 핀 정체모를 반죽덩어리를 포함해서 온 힘을 다해 주인의 부재를 그에게 알리고 있었지만 애써 그들의 표현을 무시한 피터는 천천히 집 안을 둘러보다 집에서 유일하게 데드풀 집처럼 지저분한 욕실 앞에 멈춰 섰다. 까맣게 들러붙은 핏자국으로 가득한 욕조 안엔 탄피들이 나뒹굴고 있었고, 바닥에 아무렇게 던져진 수건의 꼴도 그 욕조와 별다를 것이 없었다.

 

 데드풀이 사라진지 정확히 일주일째였다.

 

 벤자민이 찾아오기 전까지면 이른 아침이건, 한낮이건 밤이건 어쨌거나 하루 한 번은 나타나 알짱거리던 데드풀 덕에 피터만이 유일하게 그의 부재를 정확히 눈치 채고 있었고, 처음엔 유독 벤자민을 챙기던 데드풀이 상실감에 그럴 거라 여기고 굳이 찾지 않던 피터는 그 부재가 일주일째 이어지고서야 그의 행적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새로운 미션이라도 준 거냐는 피터의 질문에 기괴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던 토니는 그가 진지하게 묻고 있다는 걸 깨닫곤 고개를 저었고 오랜만에 전화해서 용건이 그거냐는 울버린은 말할 것도 없다며 짜증을 내며 전화를 끊었다. 언젠가 데드풀이 빼앗아간 저장한 덕에 핸드폰엔 그의 번호가 남아있었지만 받는 이 없는 번호는 아무 쓸모가 없었다.

 

 혹시나 싶어 다시 전화를 걸었던 피터는 침실에서 들려오는 스파이더맨 애니메이션 주제가에 전화를 끊었고, 그와 동시에 신나게 울리던 벨소리는 적막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피터가 침실 안으로 들어서려던 순간 스파이더 센스가 강렬하게 울렸고, 그가 경계 태세를 한 채 돌아설 때 그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이네요, 스파이더맨.”

 

 갑작스럽게 부엌 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또 다른 피터 파커가 밝은 얼굴로 그에게 손을 흔들다가 빠른 속도록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피터에 질겁하며 뒷걸음질 치더니 두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날 공격할 생각은 아니죠?”

 

 그의 질문에 피터가 발걸음을 멈추었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의 손목에 웹슈터가 장착되어 있는 걸 본 피터의 눈이 커지자 옷소매를 내려 손목을 감춘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하지도 않은 대답에 답했다.

 

 “은퇴하긴 했지만 저도 스파이더맨이었거든요. 혹시 몰라서 차고 온 거예요. 제 웨이드는 적이 많은데 문도 안 잠그고 다니는 인사라 저쪽에선 몇 번 불시에 습격 받은 적이 있어서.”

 “데드풀은 역시 거기 있나 보네요.”

 “. 부탁 받은 물건이 있어서 찾으러 온 거예요. 그나저나 여긴 무슨 일로 온 거죠? 전할 말이 있으면 말해요. 전해줄 테니까.”

 

 피터의 말을 대충 받은 그는 침실 문 앞에 서 있던 피터를 지나쳐 침실로 들어가더니 익숙한 듯 드레스 룸을 찾아 들어갔고, 부시럭거리는 소리를 듣던 피터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

 

 “설마 데드풀을 당신 남편 대용품으로 쓸 생각은 아니죠?”

 

 피터의 질문이 끝남과 동시에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멎었다가 다시 이어졌고, 잠시 대답을 기다리던 피터는 침실 안으로 들어가 드레스 룸 문을 막고 섰다.

 

 “그럴 생각이에요?”

 “그러면 어쩔 건데요? 이제 와서 데드풀을 챙기는 척하면서 도로 구출해갈 건가요, 스파이더맨? 우리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이 그런 꼴을 보고 있을 리는 없죠. 걱정 마요. 그런 거 아니니까. 쓸 데 없이 오해를 만들 이유는 없으니까 굳이 당신한테 해명하는 거라는 것도 알아두고요.”

 

 신랄한 어조로 피터에게 답한 그는 옷으로 가득 찬 가방을 어깨에 메고 나가려다 문 앞을 가로막고 있는 피터에 한숨을 내쉰 뒤 말을 이었다.

 

 “전할 말 있으면 빨리 하시죠, 피터 벤자민 파커.”

 “데드풀은 그래서 언제 돌아온대요?”

 “그건 내가 알 바도 당신이 알 바도 아니죠. 애초에 내가 데려간 것도 아니고 난 기계를 주고 그에게 선택하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여기로 오거나 떠나는 건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라 그가 결정할 일이라고요, .”

 “그가 있을 자리가 여긴 건 아시죠?”

 “있을 자리의 정의부터 다시 하는 게 어때요. 우리가 무슨 나무도 아니고 태어난 자리에 뿌리박고 죽을 때까지 똑같은 광경만 보며 살아야 되는 것도 아닌데, 있을 자리라는 게 뭔지 다시 생각해봐요, 피터. 아니면 적어도 당신이 굳이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수십통 전화하는 이유라도 생각해보던가.”

 

 언제 챙긴 건지 모를 데드풀의 핸드폰이 피터의 품안으로 던져졌고, 귀찮다는 듯 피터를 밀치고 드레스 룸을 나간 그는 식탁 위의 접시를 보곤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접시를 집어 들었다.

 

 스파이디외의 아무 기록도 남아있지 않은 핸드폰 통화목록엔 자신의 이름으로 뜬 수십통의 부재중 전화 기록이 남아있었고, 핸드폰 화면을 끄고 나온 피터는 접시를 다 닦고 나온 그와 마주 섰다.

 

 “당신이 원하면 여기 왔었다는 이야기 정도는 해줄게요, 피터. 솔직히 가끔은 그 놈에 스파이더맨 이야기에 지칠 때가 있거든요. 바로 옆에 내가 있어도 은퇴한 스파이더맨으론 성이 안 차나 보더라고요. 그나마 다행인 건 벤자민 앞에선 스파이더맨 이야기를 안 한다는 거 정도고요.”

 “아니요, 굳이 그럴 필요는-”

 “잘 생각해봐요, . 나도 그랬었으니까. 경험자로 말하는데 시간은 내 생각처럼 남아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 , 죽어도 내가 먼저 죽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웨이드는 늘 그랬던 것처럼 벤자민이 다 크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다시 자랄 때까지 늘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늘 추측이나 생각을 뛰어넘죠. 하루 몇 번이고 머리를 날려도 깨어나던 그 사람이 죽을 거라고 그 누가 예상했겠어요, 안 그래요?”

 

 빠르게 말을 쏟아낸 그는 마스크 탓에 표정을 알기 힘든 피터를 한참 쳐다보다 한숨을 내쉬었고, 짧은 작별 인사와 함께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자리에만 흩어진 먼지덩이들은 거실바닥을 뒹굴다 구석에 처박혀서야 멈췄고, 깔끔하게 정리된 식탁을 보고 집 정리를 한 게 그라는 걸 깨달은 피터는 먼지가 쌓인 집에서 유일하게 깨끗한 식탁에 걸터앉아 집을 둘러보았다.

 

 아마도 청소로 어쩔 수 없었을 총알 자국이나 핏자국들이 남아있는 벽들 중 유일하게 깨끗한 곳엔 그도 보지 못한 스파이더맨 포스터나 오려낸 신문들이 붙어 있었고, 크레용으로 그린 우스꽝스러운 스파이더맨 그림에 눈이 닿은 피터는 식탁에 내려와 그 벽 앞에 섰다.

 

 데드풀은 늘 그를 쫓아다니며 사랑을 외쳤지만, 그는 단 한 번도 그 고백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 원래 성격이 오락가락 하는 이었고, 한 때는 캡틴 아메리카를 그렇게 쫓아다녔다더라, 라는 말을 들은 이후엔 더더욱이 그 말을 귀담아 듣지 않으려고 한 탓도 있었다.


 그랬기에 그가 데드풀에게 진심이냐고 묻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매일같이 그의 귓가로 날아오는 데드풀의 사랑고백이 달라지는 일 또한 없었다.

 

 그는 데드풀과 한 첫 팀업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날아다니는 총알에 막무가내로 휘두르는 카타나는 검이라기보다는 둔기에 가까웠고, 날려버려도 끊임없이 나오던 총들에 질색을 하는 그에게 데드풀이 던졌던 저질스런 농담도 그는 모조리 기억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어법으로 된 못 살게 해주겠다!’를 외치던 데드풀이 총알받이를 자처해 그의 앞을 막아섰던 것도, 그리고 엉망이 된 몸에서 총알을 뽑아내며 빨간약이면 충분하다고 정 그렇다면 걱정할 시간에 뽀뽀나 한 번 해달라고 치근덕거렸던 것도.

 

 유일하게 사인이 된 그의 사진은 그렇게 얻어낸 거였다.

 

 그 뽀뽀 대신으로.

 

 뿌옇게 먼지가 앉은 액자 유리 안의 빨갛고 파란 수트를 입은 그는, 초점이 흐려진 채로 흔들려 있었고, 그 위에 아무렇게나 쓰여진 스파이더맨, 이란 단어는 무미건조했다. 사랑하는 데드풀에게, 라는 추신을 써달라는 요청을 무시하고 정자로 쓴 글자들은 액자틀에 일부가 잘린 채였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어떻게 하고 싶은 건지, 혹은 데드풀이 뭘 원했던 건지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데드풀이 자신을 사랑한다면, 그러니까 만약에 사랑하고 있다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자신을 사랑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세상일엔 결과가 있으면 원인이 있기 마련이었고, 원인이 없는 결과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에게 있어 데드풀의 사랑고백은 토대 없이 허공에 지어진 공중누각과도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가.

 그에게 나는, 사랑받을 만한가.

 혹은 나는 그가 내게 사랑에 빠질 법한 행동을 그에게 했는가.

 

 그 질문들의 답은 늘 아니요, 였고, 그렇게 그는 늘 데드풀의 사랑 고백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고민하던 그가 현관문에 손을 얹었을 때 스파이더 센스가 또 다시 강렬하게 울렸고, 재빨리 돌아선 그의 앞엔 데드풀이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채 아까 그 사람과 똑같은 손목시계를 찬 채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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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ken Crown #07

썰/덷거미덷 2017. 11. 25. 19:26 |


Chapter 07_Nightmare


 그의 앞엔 여전히 굳게 닫힌 문이 굳건히 서 있는 채였다.


 똑. 똑. 똑.


 그리고 그는 수십번을 반복한 짓을 여전히 하고 있는 중이었다.


 문은, 아직도 열리지 않은 채였다.


 현관에서 이어진 복도 끝 방의 울음소리는 그의 귀 바로 옆에서 울리고 있었고, 넓게 난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붉었다. 해가 지고 있는 건지 뜨고 있는 건지는 중요치 않았다. 중요한 건, 문이 ‘아직’ 열리지 않았다는 거였고, 그는 손을 들어 다시 문을 힘차게 두들겼다.


 분명, 자신이 내는 소리가 문 건너편에 전달되지 못해서일 터였다. 그렇지 않고서는 문이 열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건 한낱 놀이에 불과했지만 동시에 언제고 지켜지던 약속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문은 ‘아직’ 열리지 않은 것뿐이었다.


 [병신아, 이제 그만해.]


 머릿속에 울린 나지막한 목소리는 동정보단 비난에 가까웠고, 흰 색이었던 문에 난 붉은 자국들은 짙은 색을 내며 나무문을 태우고 있었다.


 [니가 그런다고 니 아버지가 돌아올 것 같냐.]


 귓가에서 맴돌던 울음소리는 흐느낌으로 변해갔고, 하늘은 여전히 어두워지지도, 밝아지지도 않은 채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어쩌면 아직 돌아올 시간이 아닐 지도 몰랐다. 어쩌면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방금 나갔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애초에 니 이야기가 아니었어. 다른 세계 사는 다른 놈 이야기였다고. 모든 걸 받아주는 사랑? 그게 가당키나 해?]


 낮은 고도 탓에 길어진 그림자가 그의 시야를 가렸고, 타오른 문 밖엔 아무도 없었다. 흐느낌은 멎어있었다. 그림자에 물든 적막이 그 빈 공간을 타고 차오르기 시작했다. 바닥부터 차오른 적막은 금세 그의 가슴께로 차올라 그의 숨통을 조여 왔고, 잠시간의 휴식에 움직임을 멈췄던 폐가 고통에 숨을 토해냈다.


 깊게 몰아쉰 숨과 함께 돌아온 시야엔 엉망진창인 욕실 천장이 담겼고, 욕실 타일 벽에 진득하게 눌러 붙은 머리를 천천히 뗀 그는, 현실로 돌아와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3일 예약한 호텔 스위트룸을 이르게 체크 아웃하는 이유를 묻는 직원의 시선은 처음을 제외하곤 그의 얼굴에 닿지 않았다. 소년이 챙겨가지 않은 옷가지들은 그나마 깨끗한 침실 침대 위에 올려진 채였다. 어쩌면, 혹시라도 그 옷을 되찾아가기 위해 돌아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까-


 [딱 봐도 돈 많게 생겼던데 그깟 옷 하나 찾으러 오겠냐.]


 일말의 희망조차도 짓밟은 흰 박스가 킬킬거리며 웃었고, 노란 박스는 아까부터 데스를 중얼거리며 이렇게 끝내선 안 된다고 중얼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욕실 바닥에 떨어진 총에는 아직 4발의 총알이 남아있었다. 아직 뻐근한 머리를 짚은 채로 그가 다른 손으로 욕실 바닥의 총을 향해 손을 뻗을 때, 조금 흐릿했던 시야가 완벽하게 돌아왔고, 열어놓았던 욕실 문에 누군가가 있는 것을 눈치 챈 웨이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총을 집어든 뒤 재빨리 문 앞의 누군가에게 총을 겨눴다.


 “옷이나 찾으러 왔는데 집 주인한테 말은 하고 가야 할 거 같아서 기다렸더니 돌아오는 게 총알이에요?”


 총이 겨눠지거나 말거나 아무렇지 않게 말한 피터가 손에 들린 쇼핑백을 흔들어보였고, 공이를 푼 웨이드가 걸려있던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려다 이미 개판인 수건 상태에 욕을 내뱉자 웃음을 터트렸다.


 “준비도 안 하고 다짜고짜 머리를 터트리는 거 하나만큼은 똑같네요. 자요.”


 어디서 꺼내온 건지 모를 수건은 깨끗했고 약하게 느껴지는 섬유유연제 냄새에 그가 킁킁거리는 모습을 보고 다시 웃음을 터트린 피터가 문에서 비켜섰다. 엉망인 얼굴을 대충 닦고 나오던 그는 그제야 자신이 빨래할 것이 귀찮아 맨 몸으로 머리를 날렸단 사실을 깨닫곤 황급히 수건을 허리에 둘렀고, 뒤에서 웨이드가 그러거나 말거나 앞서 가던 피터가 그를 식탁으로 불렀다.


 집은, 그가 머리를 날리기 전의 모습과 사뭇 달랐고, 깔끔하게 정리된 집의 모습에 웨이드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던 피터가 팬케이크 접시 두 개를 식탁 위로 올리며 그에게 말했다.


 “무기는 무기 거치대에, 빨래는 코인 세탁방에 가서 건조까지 끝내서 정리했고, 바닥 닦는 건 좀 힘들더라고요. 청소 로봇을 쓴지 꽤 됐거든요. 자요. 핫케이크 말고 팬케이크.”


 깔끔하게 구워진 팬케이크 위엔 아무것도 토핑 되어 있지 않았고, 이 모든 상황에 할 말을 잃은 웨이드가 멍하니 식탁 옆에 서 있는 사이 부엌에 들어갔다 나온 피터가 생크림, 딸기잼, 메이플 시럽을 식탁 위에 올렸다.


 “당신이 뭘 좋아할지 몰라서요. 보통 제 웨이드는 딸기잼을 바르고 메이플 시럽 범벅을 한 다음에 생크림까지 산처럼 쌓아서 먹었거든요.”


 부드럽게 웃은 피터는 다른 접시 앞에 앉아 메이플 시럽을 접시에 뿌리다 웨이드를 빤히 쳐다보았고, 그 눈빛에 밀려 웨이드는 얼결에 피터의 맞은편 자리에 앉아 무심코 딸기잼을 집었다가 피터의 눈치를 보았다.


 웨이드가 식탁에 앉을 때 이미 메이플 시럽을 다 뿌린 피터는 첫 번째 팬케이크를 입에 물고 우물거리고 있었고, 밖은 이미 해가 진 듯 켜진 전등이 식탁 위를 밝히고 있었다.


 “집에 가서 벤이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웨이드가 있었으면 금방 웃게 해줬을 텐데 난 도무지 방법을 모르겠더라고요. 여기선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학교만 끝나면 토니의 랩에 가서 밤늦게까지 돌아오지도 않았어요. 웃기야 웃는데 일기도 더 이상 안 쓰고…….”


 말끝을 흐린 피터가 여전히 깔끔한 웨이드의 팬케이크를 보다 비식 웃었고, 딸기잼을 그의 앞으로 밀었다.


 “괜찮아요. 원래 취향이 그럴 수 있죠. 같은 유전자라는 게 무섭긴 하네요.”


 웨이드가 봉해져 있는 딸기잼 뚜껑을 따는 사이 생크림 캔을 집어든 피터가 열심히 캔을 흔든 뒤 팬케이크 위에 생크림을 잔뜩 올렸고, 웨이드의 시선을 느낀 듯 말을 이었다.


 “세 개 다 바르면 전 너무 달더라고요.”

 “그 쪽 세계 스파이더맨은 우리 스파이더맨과 다른가보지?”


 웨이드의 질문에 생크림을 그어 내려가던 포크가 멈췄고, 무언가 말을 하려다 마는 듯 피터의 입술이 몇 번이고 벌어졌다 다물어졌지만 웨이드는 아무 말 없이 메이플 시럽을 집어 들었다.


 “글쎄요. 이 쪽 스파이더맨으로서 말씀드리자면 다를 건 없죠. 신분 보장에 예민하고, 사건을 보면 앞 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고, 그러다 다치고, 누군가를 다치게 만들고, 누군가가 그래서 또 죽고, 그 쪽 스파이더맨 인생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제 인생은 꽤나 기구해서 말이에요.”


 담담한 어조로 말한 피터가 자신 쪽에 있던 생크림을 몇 번 흔들어 뜻밖의 말에 멍하니 있는 웨이드의 손에 쥐어주었고, 무심코 위쪽을 눌렀던 웨이드는 식탁 위에 흩뿌려진 생크림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신분 보장에 너무 예민해서 벤에게 말을 안 한 건 잘못한 일인 거 같아요. 혹시나 애가 말실수를 해서 위험해질까봐 말을 안 한 건데, 멍청했죠. 이제 와서 네가 그렇게 원망하는 사람이 바로 나야! 할 수도 없고.”

 “최소한 자기 아빠가 널 구하다 죽었다는 건 알겠지.”

 “그럼 원망하지 않게 될까요?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될 사건이었을지도 몰라요. 그 자리엔 캡틴도 있었고, 토니도 있었고-”

 “내가 아는 스파이더맨이도 그런 건 상관 안하고 뛰어들었을 것 같은데.”

 “그쵸. 그리고 내가 아는 웨이드도 자기 몸은 신경 안 쓰고 날 돕겠다고 뛰어들 사람이었고요. 그걸 왜 몰랐을까요.”


 씁쓸하게 웃은 피터가 식탁 위에 놓여져 있던 냅킨으로 생크림을 닦아냈지만 흰색의 유분기는 식탁 유리에 눌러 붙은 채 닦이지 않았고 행주를 가지러 일어나는 피터를 웨이드가 붙잡았다.


 “애초에 그렇게 깨끗한 식탁도 아니었어. 잘 쓰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깨끗해질 이유가 없지도, 깨끗해질 수 없는 것도 아니죠.”


 자리에서 일어난 피터는 부엌에 들어가 집에서 본 적 없던 행주를 가져와 생크림을 닦아냈고, 잠시간 식탁 위에 머물렀던 물방울들은 빠르게 사라졌다.


 “그 쪽이 스파이더맨이라는 건, 그럼 우리 세계 스파이더맨도-”

 “그건 저도 모르죠. 어쨌거나 같은 세계가 아니라 평행 세계니까요.”


 웨이드의 말을 빠르게 끊은 피터가 식탁 위에 놓여있던 생크림을 쭉 짜내 웨이드의 팬케이크 위에 올렸고, 콘 아이스크림 모양새로 올려진 생크림을 보던 웨이드가 포크로 생크림만 떠내 입에 넣었다.


 “설마 내가 진짜로 옷 가지러 여기 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그럼?”

 “우리 세계로 올래요, 웨이드?”


 입안의 생크림은 빠르게 녹아 단맛만을 남기고 자취를 감췄고, 할 말을 잃은 채 눈만 크게 뜨고 있는 웨이드를 빤히 쳐다보던 피터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 웨이드 대체품으로 쓸 생각은 없어요. 그냥 거래를 하자는 거예요. 난 당신을 통해 데이터를 얻고 당신은 나를 통해 그 암과 힐링 팩터를 컨트롤할 방법을 찾고요. 그게 거의 끝나갈 즘에 웨이드가…….”

 “못 살게 되었다고?”


 피터가 끝맺지 못한 말을 웨이드가 끝내주었고, 웨이드의 말을 들은 피터가 웃음을 터트렸다. 피터가 무엇 때문에 웃음을 터트린 건지 알지 못하는 웨이드가 어정쩡한 표정을 짓다가 생크림 째로 팬케이크를 입에 쑤셔 넣었고, 금세 웃음을 멈춘 피터가 웨이드에게 깨끗한 냅킨 하나를 건넸다.


 “웨이드도 늘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죽었다라던가 죽인다는 말은 너무 폭력적이라나 뭐라나.”

 “데드풀들만의 유행어지. 좀 있으면 모든 작가들이 쓰게 될 걸. 그리고, 네 웨이드 말인데, 만약에 너네가 메인 유니버스면 곧 살아 돌아올 거야. 걔네는 우리가 죽어있는 꼴을 못 보더라고.”

 “그도 늘 그렇게 말하곤 했어요. 언제나 돌아올 거라고. 근데 그거 알아요? 그게 벌써 2년째예요. 요만하던 꼬맹이가 이만큼 커서 이 쪽으로 넘어올 텔레포트 벨트를 만들어낼 정도의 기간이요.”


 식탁 아래 언저리로 손을 내렸다 아침까지만 해도 웨이드의 곁에서 재잘거리던 소년만큼 손을 올렸던 피터가 정장 재킷 안쪽에서 손목시계를 꺼내 식탁 위로 올려놨고 웨이드의 시선이 시계에 닿는 걸 보고 잠시 기다렸지만 포크를 쥔 웨이드의 손이 시계에 닿는 일은 없었다.


 “당신이 결정해요, 웨이드. 아니면 그냥 별 생각 없이 놀러 와도 좋고요. 말은 그렇게 했어도 벤이 당신을 많이 보고 싶어 하거든요.”

 “당신이 말하지 않았나, 헛된 희망을 가지게 하지 말라고?”

 “당신이 제 웨이드랑 같은 경험을 했다는 가정 하에 말할게요. 그래서 그 헛된 희망 때문에 당신이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나요? 가끔은 가짜 희망이라도 곁에 두는 게 나을 때가 있죠.”

 “그럼 나더러 가짜가 되라고-”

 “웨이드.”


 웨이드의 말을 끊은 피터가 포크를 쥐고 있던 웨이드의 손을 끓어 감쌌고, 침묵 속에서 잡힌 자신의 손을 쳐다보던 웨이드는 고개를 들어 피터와 눈을 맞췄다.


 “나나 벤도 당신 입장에선 헛된 희망 아닌가요? 웨이드는 늘 그랬어요. 자기는 운이 너무 좋다고요. 원래는 이뤄질 수 없는 일이라고 말이죠.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누군가의 입장에선 웨이드가 돌아올 거란 내 꿈도 말도 안 되는 허상에 불과할 거고요. 근데 말이죠.”


 웨이드의 손을 감싸 쥔 피터의 손가락엔 아마도 그의 취향일 듯한 단순한 디자인의 반지가 끼워져 있었고, 반지 중앙엔 푸른 색 보석이 이따금 전등 빛을 반사해 반짝였다.


 “난 그 허상이 허상으로 남지 않게 노력할 참이에요. 우리 웨이드가 돌아와서 왜 살려냈냐고 원망을 해도, 혹은 당신을 보고 바람이라도 핀 거냐며 난리를 쳐도 그만 돌아온다면 상관없을 것 같아요. 분명 제가 할 법한 짓은 아니지만 이미 그런 짓을 세자면 밑도 끝도 없어요. 가령, 스파이더맨 노릇을 관둔다거나 하는 거요.”

 “내가 아는 스파이더맨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안 관두겠죠. 하지만 난 당신이 아는 그 스파이더맨과는 달라요. 겪어도 안 될 일들을 너무 많이 겪었죠. 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세상을 구할 거예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고 하지만 그러면 도대체 큰 책임에 따라오는 큰 권리는 어디로 간 거죠? 책임이 있다면 분명 권리도 있을 텐데 난 최소한의 행복할 권리도 잃은 거 같거든요.”


 말을 마친 피터가 자리에서 일어나 접시를 싱크대로 가져갔고, 초록색 빛이 점멸하고 있는 손목시계를 쳐다보던 웨이드는 조심스레 손목시계로 손을 뻗었다.


 [안녕하세요, 웨이드 윌슨씨. 전 당신을 안내할 캐런입니다.]

 “캐런, 이번엔 일단 나한테 맡겨줘.”

 [그러죠, 주인님.]


 손목시계 화면에서 솟아올랐던 인영은 빠르게 모습을 감췄고, 어느 새 식탁 옆에 서서 주머니에 한 쪽 손을 꽂아 넣은 피터가 나머지 손을 웨이드를 향해 내밀었다.


 “나랑 같이 갈래요, 웨이드?”


 공교롭게도 내민 손은 반지가 끼워져 있던 왼 손이었고 얇다란 은색 금속이 반짝이는 모습을 보던 웨이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목시계를 손목에 찬 채로 그의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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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ken Crown #06

썰/덷거미덷 2017. 11. 25. 19:25 |


Chapter 06_Grief


 그는 여전히 엉망진창이었던 웨이드, 아니 데드풀과의 첫 번째 팀업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소리를 지르거나말거나 안전제일을 외치며 끊임없이 던져버려도 어디선가 나오는 총을 난사하던 데드풀의 모습이나, 결국 모든 총을 빼앗기자 등 뒤에 쟁여두었던 카타나를, 카타나마저 빼앗기자 단도를, 그마저도 빼앗기자 땅에 떨어져 있던 적의 총을 주워 쓰려다 조금 헤매는 듯하더니 그걸 둔기처럼 휘두르던 데드풀의 모습은 그의 스타일과는 도무지 맞지를 않았고, 다시는 보지 말자는 그의 말에 데드풀은 엉망진창이었던 싸움만큼이나 엉망이 된 몸을 추스르지도 않은 채로 키들거리며 다음에 꼭 다시 보자는 말을 남긴 채 사라졌었다.


 그 말을 지키기라도 하려는 듯 데드풀은 끊임없이 그의 곁을 맴돌았고, 꼭 가야만 하는 출장이 아니라면 뉴욕시를 떠나는 일이 없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태양이 작열하던 날이나, 혹은 눈발이 거세 거미줄이 잘 들어먹지 않던 날, 혹은 그가 가장 행복했던 그 어느 날이나 아니면 그의 인생의 최저점이라고 자부할 만큼 우울했던 날에도 그의 곁엔 데드풀이 있었고, 그의 그림자의 곁에 데드풀의 그림자가 겹쳐지는 날이 늘어갈수록 그는 혼란스러웠었다.


 그는 여전히 왜 그토록 데드풀이 자신의 곁을 맴돌았는지 알지 못했다.


 몇 번이고 물어봤지만 데드풀의 답은 늘 같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는 그 단순한 대답은 여전히 그의 가슴 속에 남아있었고, 데드풀의 숨이 끊어지는 날까지도 그가 들을 수 있었던 대답은 그게 다였다.


 그 또한 데드풀의 똑같은 질문에 같은 답 외의 다른 답을 내놓을 수는 없었고, 그가 그의 질문에 답한 데드풀의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답을 내놓을 때면 데드풀은 늘 같은 얼굴로 웃었다.


 문제의 그 날에도 데드풀은 늘 하던 일을 했고, 피터의 운명 또한 늘 하던 일을 했을 뿐이었다.


 자신의 그림자가 데드풀의 얼굴 위에 드리워졌던 날 또한 그는 잊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데드풀을 떠나가게 만든 자신을 용서치 못했고, 그는 종종 데드풀의 그림자는 여전히 자신의 발치 어딘가에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늘 그랬듯, 떠난 듯 보여도 그의 곁엔 데드풀이 있었고, 영영 나타나지 않을 것처럼 연락이 닿지 않았던 그 어느 날처럼, 자신이 사랑을 고백하기 전 그 길게만 느껴졌던 공백처럼, 이건 그냥 그런 부재일뿐이고 언젠가 언제 사라졌냐는 듯 다시 나타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 데드풀은 영영 떠오르지 않을 것만 같아 보여도 기다리면 언젠가 떠오를 태양과도 같았기에 그는, 여전히 웨이드 윌슨, 그의 연인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의 아들 벤자민에게 있어 벤자민이 태어난 이후 뉴욕시 밖으로 떠난 적이 없던 웨이드의 부재란 낯설기 그지없는 것이었고, 벤자민이 스파이더맨에 대한 원망과 증오를 드러낼 때면 그는 갈 곳을 잃은 채 헤매야만 했다.


 그나,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똑똑한 벤자민 또한 웨이드의 힐링 팩터가 서서히 그 기능을 잃고 있다는 것쯤은 아주 잘 알고 있었고,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그들의 최대 난제는 항암치료가 다였다.


 그는 때때로 웨이드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유일한 이가 자신이란 느낌이 들 때면 벤자민이 잠든 방에서 가장 먼 서재의 앨범들을 뒤졌다. 여전히 자리를 찾지 못한 뼛가루가 든 납골 항아리는 데드풀이 가장 좋아하던 서재 소파 위에 있었고, 그의 흐느낌을 듣는 것 또한 그 납골 항아리가 유일했다.


 벤자민이 다른 세계의 아빠를 찾겠다고 떠들던 걸 말리지 못한 채로 데드풀의 텔레포트 벨트만 숨긴 건 아마도 그래서였을 터였다. 다른 세계의 데드풀은 우리의 웨이드 윌슨과 다르다고 수십번을 말해도 벤자민의 말은 한결 같았다.


 그래도 유전자는 같으니 얼굴이라도 보고 싶은 것 뿐이라고.

 다른 사람이라는 건 자기 자신도 아주, 잘, 알고 있다고.


 다른 세계의 웨이드 윌슨 품에 안긴 채 끊임없이 재잘거리고 있는 벤자민의 얼굴은 밝았고, 그 둘과 조금 거리를 둔 채 걸어가는 그의 시선은 여전히 얼굴을 가리고 있는 후드에 박혀있는 채였다.


 “윌슨씨.”


 그의 조그만 부름에도 사내의 고개는 빠르게 자신을 향했고, 사내의 어깨 너머로 올라온 벤자민의 얼굴을 향해 미소 지은 그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제 가봐야 될 것 같아요. 토니가 아마 지금쯤이면 온갖 걱정에 미쳐가고 있을지도 모르거든요.”

 “아빠~”

 “안 돼, 벤. 약속했잖아. 방법을 찾으면 얼굴만 보기로. 근데 만나기까지 했잖아.”

 

 그의 딱딱한 어조에 울상을 지은 벤자민이 말없이 웨이드를 쳐다보았지만 대답 대신 벤자민을 땅에 내려놓고 손을 잡은 웨이드의 눈이 그를 향했다.


 “텔레포트 벨트를 충전하려면 3일이 걸린다고-”

 “그건 토니와 이 녀석이 개조하기 전 이야기죠. 사실 충전할 필요가 없거든요. 벤자민 네이튼 파커-웨이드. 거짓말까지 했어?”


 엄한 표정을 짓는 그를 쳐다보며 난감한 표정으로 벤자민을 쳐다보던 웨이드가 천천히 그에게 벤자민의 손을 넘겼고, 벤자민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렸지만, 이내 울음을 참아낸 듯 활짝 웃었다.


 “잘 있어요, 웨이드 아저씨!”

 “오냐.”


 벤자민의 말에 짧게 대답한 웨이드가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이 난 듯 허리를 숙여 벤자민의 귀에 속삭였고, 그 말이 다음을 기약하는 것임을 깨달은 그가 한숨을 내쉬며 웨이드의 어깨를 짧게 두드렸다.


 “이게 마지막이에요, 윌슨씨. 왜인지는 당신도 잘 알 테죠.”


 그의 말에 결국 벤자민이 울음을 터트렸고, 머슥한 표정으로 벤자민의 머리칼을 헝클어트린 웨이드가 차분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이야기할 필요는 없지 않나 싶은데.”

 “애라고 괜한 거짓말로 거짓 희망을 주는 것도 못할 짓이죠.”

 “가령 죽은 아빠가 돌아온다던가?”


 웨이드의 말에 벤자민의 울음이 그쳤고, 자신과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오는 걸 느낀 그가 어금니를 꽉 깨문 채로 그의 말을 받았다.


 “데드풀이잖아요. 돌아올 겁니다.”

 “안 그런 세계 투어라도 시켜줘?”

 “웨이드!”


 그가 시큰둥한 얼굴로 되묻는 웨이드에 소리를 질렀고 처음으로 이름이 불려 놀란 웨이드의 눈이 크게 떠졌다. 분노한 그가 무언가 말을 하기도 전에 벤자민이 그의 손을 꼭 잡은 채로 앞으로 나섰고, 그제야 벤자민의 존재를 깨닫고 웨이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우리 아빠한테 그렇게 말하지 마요. 우리 아빠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하지 말고요.”

 “벤, 나는-”

 “벤자민이라고 부르시죠. 아니면 파커나 웨이드도 괜찮고요, 웨이드씨.”


 차갑게 말한 벤자민이 가방에서 벨트를 꺼내 몸에 두른 뒤 그의 손을 잡아끌었고, 어째선지 울 것처럼 보이는 웨이드의 얼굴을 잠시간 쳐다보던 그는 벤자민의 채근에 못 이겨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가 작동 버튼을 눌렀다.


 골목 끝에 큰 그림자가 그들을 응시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마도, 그의 착각일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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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ken Crown #05

썰/덷거미덷 2017. 11. 25. 19:21 |


Chapter 05_Illusion


 만지면 사라질 것만 같던 청년의 손은 따스했고 그의 목소리만큼이나 부드러웠다. 자기도 모르게 오래 잡고 있었던 탓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놓은 웨이드는 다가갔던 만큼 뒷걸음질 쳐 그에게서 멀어졌고, 청년의 등 뒤에 서있는 토니가 크게 헛기침 소리를 내며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우리 둘이 할 이야기가 있을 거 같은데, 핏.”

 “파커라고 부르셔도 돼요, 스타크씨. 당신이라면 토니보다는 이편이 더 편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닌가요? 자비스?”

 [네.]

 “당신 주인님이 우리 벤자민더러 호칭을 어떻게 하라던가요?”

 [스타크씨로 하라고 하셨죠.]


 자비스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보라는 듯 어깨를 으쓱인 청년은 안을 쭉 둘러보더니 크게 숨을 내쉰 뒤 주머니에서 작은 패드를 꺼내 따닥였고, 흥미롭게 쳐다보는 토니의 시선을 피해 패드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당신이 뭘 궁금해 하는지는 대충 알아요. 근데 문제는 알려드릴 수가 없네요. 저작권이나 특효권이 저한테 있는 게 아니라 스타크 인더스트리에 있는 거라서요. 텔레포트 벨트는 정확히는 제 아들이랑 스타크씨가 공동 소유하고 있고요.”

 “아까 그 꼬맹이 이야기 하는 거야, 설마?”

 “그 꼬맹이가 제 아들이거든요, 스타크씨?”


 청년의 설명에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던 토니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고개를 까닥인 청년이 잠시 토니를 쳐다보다 데드풀을 피해 구석으로 끌고 가 한참을 속닥이더니 둘이서 툭탁거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산타가 준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그럴 리가 없잖아.」

 [오랜만에 맞는 소리하네.]

 「그도 그럴게 산타는 지난번에 우리가 다 쏴죽였잖아.」

 “하나쯤 남아있을 수도 있지.”

 [어쨌거나 그 골칫덩어리하고도 안녕이군.]

 

 청년은 여전히 토니와 열띤 토론 중이었고, 청년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웨이드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저 사람이 나 같은 사람이랑 결혼했다고?”

 「우리가 뭐 어때서? 엉덩이? 이정도면 합격, 몸매? 끝내주지. 밤일은 뭐 말할 것도 없고-」

 [얼굴은 왜 빼먹냐.]

 「사람이 어떻게 얼굴만 보고 사냐, 병신아. 명언 중에 그거 몰라? 가난이 창문 틈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대문으로 나간다는 거? 우린 그 구멍들을 벤자민 프랭클린 얼굴로 막고 살 수 있는 인간이라고!」

 “웨이드, 박스들한테 닥치라고 전해줘요. 그리고 당신 같은 사람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제 세계 데드풀, 그러니까 웨이드 윌슨이랑 결혼한 건 맞아요.”


 토니와 한창 대화중이었던 듯 보이던 청년이 갑작스레 뒤를 돌아 웨이드를 향해 말했고, 벙찐 그의 표정을 보더니 키득거리며 제가 귀가 좀 밝거든요, 라고 덧붙인 뒤 토니의 등을 떠밀어 엘리베이터에 태워버리곤 웨이드를 향해 걸어왔다.


 “그래서, 벤자민은 어디 있죠?”

 “스파이더맨이랑 같이 내보냈는데, 토니가.”


 웨이드의 대답에 눈썹을 치켜뜨고 웨이드를 쳐다보던 청년은 몇 번이고 입을 열었다 닫았고 대충 그가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눈치 챈 웨이드가 그에게 물었다.


 “벤자민은 왜 스파이더맨을 싫어하지?”


 웨이드의 질문에 입을 오물거리던 청년은 대답 대신 웨이드의 뒤에 있던 소파에 주저앉더니 웨이드를 쳐다보며 자신과 조금 떨어진 자리를 툭툭 쳐 앉으라는 시늉을 해보였고, 웨이드가 앉을 때까지 기다린 뒤 입을 열었다.


 “제 세계에서도 당신은 데드풀이었고, 음, 당신이랑 조금 다른 점이라면 히어로였다는 거겠네요. 그리고 스파이더맨이랑 상당히 친했어요. 상당히요.”


 거기까지 말한 청년이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다 애매한 표정으로 웃으며 코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그냥 짧게 말하죠. 제 남편은 스파이더맨을 구하다 죽었어요.”

 「좋은 죽음이었다, 웨이드 윌슨. 스파이더맨의 완벽한 엉덩이 라인과 허벅지를 살리고 넌 죽은 거야.」

 [이런 남편을 두고 따질 엉덩이와 허벅지가 있다면 말이지.]

 「어쨌든 둘 다 세상에 남긴 거잖아.」

 “그 전까지는, 그렇게 싫어하지 않았는데, 그 이후로는, 뭐, 말 안 해도 되겠죠.”


 씁쓸하게 말을 마친 청년이 말을 마친 뒤 웨이드의 얼굴을 살폈고 웨이드는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고개를 숙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청년은 여전히 뒤에 앉아있었고, 그를 등진 채로 센세등을 밝히기 시작한 창문을 쳐다본 웨이드가 청년의 눈앞에 손을 흔든 뒤 창문을 가리키자 청년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곁에 섰다.


 “이번에 오면 진짜로 혼내주려고요. 토니도 마찬가지예요. 그 동안 방관하다가 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애가 오지 않는다면서 죽을 상 하고 오기나 하고 말이죠.”

 “너한테 안 알리고 그 쪽 토니가 왔으면 더 웃겼을 텐데 말이야. 아쉽게 됐어.”


 아까보다 더 빠르게 점멸하는 불빛을 보며 갑작스레 대화가 끊긴 게 자신의 탓인가 싶어 웨이드가 청년이 와서 아쉬웠단 소리가 아니였다고 변명해야 되나 고민할 때쯤 그의 옆에서 앞으로 와서 선 청년의 갈색 눈동자가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웨이드가 보고 싶은 건 벤자민 뿐이 아니거든요. 설사 그 마음 때문에 저지른 일로 그 이에게 미안해진다고 해도 말이에요.”


 갑작스런 말에 당황한 웨이드가 답할 말을 찾지 못해 당황하고 있는 사이 자꾸 창문을 깨고 들어오는 스파이더맨 때문에 만든 자동 개폐식 창문이 부드럽게 열리며 찬바람이 안쪽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잠시 멈칫했던 스파이더맨이 조심스럽게 벤자민을 내려놓았다.


 “벤자민.”


 혼내줄 거라는 종전의 말과 달리 부드러운 목소리로 벤자민을 부른 청년은 그를 향해 뛰어온 아이를 번쩍 안아들더니 아이가 건넨 봉투를 확인하곤 웃음을 터트렸다. 봉투 바깥에 찍힌 로고가 스파이더맨이 자주 가는 핫도그 가게임을 눈치 챈 웨이드가 스파이더맨이 데려갔나보다, 짐작하고 있을 때 청년의 품에 안겨있던 아이가 가방을 앞으로 끌어 열더니 그에게 갈색 봉투와 흰 봉투를 건넸고 그것이 자신의 단골 타코 가게 런치 세트임을 눈치 챈 데드풀이 놀라 쳐다보자 벤자민이 속삭였다.


 “이 쪽 스파이더맨은 생각보다 안 나쁜 거 같아요. 흰 색은 스파이더맨 아저씨 거예요.”


 스파이더맨은 사실 핫도그를 더 좋아한다고 말해줘야 하나 싶던 웨이드는 봉투를 건네자마자 신이 나서 청년과 떠드는 아이의 모습에 곧 떠날 판에 굳이 이야기 해줄 필요가 없겠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고, 시선을 자신들에게 향한 채로 뒷걸음질 치고 있는 스파이더맨을 불러 세웠다.


 “허니, 아니, 스파이디. 당신 앞에서 다른 사람한테 허니라고 하면 좀 그런가?”

 「그대여, 그 바람 피지 마오.」

 [삑. 제 남편이 아닙니다.]


 무심코 평소대로 스파이더맨을 부른 웨이드는 허니라고 부르기가 무섭게 자신을 향하는 벤자민의 시선에 움찔해 말을 뱉었지만, 말을 받아야 할 청년은 자신과 피터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미묘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저을 뿐이었고, 애초에 그가 애칭을 부르던 아이언맨에게 성이나 부르자고 못 박던 걸 떠올린 웨이드는 어깨를 으쓱인 뒤 스파이더맨을 향해 흰 봉투를 던졌다.


 “하긴 내가 당신이랑 결혼한 것도 아니고. 스파이디, 이거 받아.”

 [딩동댕. 우린 아직 솔로라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솔로.]

 「데스 보고 싶은 건 나뿐? 레알로 나뿐?」


 데스를 부르짖는 노란 박스의 말에 입을 비죽인 웨이드는 이제 신이 나서 자신이 해준 팬케이크와 핫케이크의 다른 점에 대해, 과학적인 측면에서 떠들고 있는 벤자민으로 시선을 돌린 채로 집 안에 남은 총알 수를 기억해내려 애썼고, 그가 집에 남은 총알 수를 다 기억해냈을 때엔, 창문 앞에 서 있던 스파이더맨은 이미 모습을 감춘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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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pideyp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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